• 녹색사회당으로 가자
        2011년 05월 11일 02: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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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깃발이다 – 우리는 왜 미아가 되었나

    김형탁 진보신당 민생특위 위원장은 며칠 전 진보신당 홈페이지 당원게시판에서 “또 다시 깃발의 시대인가”라고 개탄했다. 대통합 연석회의의 깃발, 백만민란의 깃발, 내가 꿈꾸는 나라의 깃발, 진보의합창, 노동계의 여러 깃발들이 생기고 있지만 아무런 감동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측 가능한 결론, 즉 기존 세력의 이합집산인 정계 개편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란 말이다.

    지당한 말이지만 슬픈 말이다. 왜냐하면 정작 우리의 깃발은 없기 때문이다. 누구는 심계파로, 누구는 노계파로, 누구는 심지어 진보신당파를 자처하며 이리 저리 몰려다니고 있지만 고유한 노선과 전망이 없는 좌파에게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 몰려다님일 뿐이다. 숨기거나 돌려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미아가 되었고, 당과 독자파 모두가 말라죽어가고 있으며 당 내외의 모두가 그것을 감지하고 있다.

    자연인으로서의 리더의 가치는 결코 폄하될 수 없다. 그것이 수령론이 되고 진리의 담지체인 전위의 지령으로 받들어지는 지경까지 가면 곤란하지만, 문건과 찌라시가 아무리 옳더라도 사람과 세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그럼에도 문제는 노선과 깃발이다. 그것과 리더십을 일치시키는 것이 원칙이요 최선이지, 리더에 노선과 전망을 끼워 맞추는 방식은 좌파의 것일 수 없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참으로 좌파답지 않은 방식에 익숙해져 왔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때에도 누가 같이 오면 살아남고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었고, 당 운영과 선거 대응도 누가 동의하면 되고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었고, 지금도 통합에서 누구까지 같이 가면 되고 누구까지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누가 우리들을 챙겨주는 것도 아닌데, 참으로 가련한 미아 신세다.

    짚고 넘어갈 것은 이러한 현상이 진보신당 창당 때부터 생긴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당내 경선 때부터였다. 이미 자주파의 패악질과 정치적 실용주의로 당은 망가지고 있었지만 대선 경선에 뛰어든 후보들과 캠프의 인자들에게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지도부 입과 합의서 문구만 쳐다볼 때 아니다

    왜 그때 권영길 캠프를 택한 이들만 비난받아야 하는가? <전진>이 사실상 와해된 것도 <전진>이 제출한 대선 강령을 사실상 무시한 세 후보를 모두 지지하기로 하는 해괴한 결정을 하고 많은 회원들이 세 캠프로 나뉘어 뛰어든 게 결정적인 계기였지 않았나.

    노 캠프와 심 캠프에 속했던 이들, 그리고 지금 분열을 비난하는 노동계의 인사들은 그 때 당의 상황에 대해 어떤 언급을 하고 어떤 노력을 기울였던가? 눈에 띌 만한 발언조차 없었다. 자주파를 자극할 이야기는 안 꺼내는 게 당내 경선에 도움이 되니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 당이 어찌 되든 이미 형성된 자기 계파를 중심으로 일단 문제를 풀어가려 했고, 그것이 분당과 진보신당 창당 과정에서 그대로 재연된 것이었다.

    때문에 이 문제는 진행형이다. 지난 3월 27일 당대회에서 진보대통합의 기준을 정할 때 “과거에 반신자유주의 등의 가치 기준에 반하는 정치 활동을 했던 세력에 대해서는 조직적 성찰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하다”라는 문구가 통과된 바 있지만, 좌파 내부에서도 이제까지 당의 가치를 훼손하고 좌파 정치를 무력화해 온 개인과 집단에 대해 역시 조직적 성찰을 선행해야 한다.

    어쨌든 지금 통합파와 독자파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논쟁도, 이면에는 결국 누구를 앞세우고 통합을 하여 싸우거나 누구를 중심으로 독자로 남아 생존하자는 이야기를 깔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정치적 생존이 현실이고 인물이 관건이라 하더라도 이 판은 뒤집어져야 한다.

    지방선거 이후 노, 심 두 고문 그리고 조승수 대표의 입과 진보대통합 관련 합의문서의 문구만 쳐다보고 있는 바보짓을 멈추어야 한다. 우리는 날 때부터도 미아가 아니었을 뿐더러, 우리의 원래 길을 스스로 찾을 때 동지를 다시 발견하고 리더도 다시 발견하게 될 것이다.

    등대정당 맞다

    김형탁 동지는 깃발보다 소통에 신경 써야 한다는 의견이었지만,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깃발이다. 진중권 교수도 좋아라 할 만한 아주 새로운 깃발이 아니라, 우리의 방향타가 되고 외연을 알려줄 깃발을 간명히 정리하는 일이다. 우리의 갈 길과 할 일이 분명하고 절실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은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일단 그 전에 최근 논의 구도의 문제부터 이야기했으면 한다.

    우선 지금 눈에 불을 켜고 싸우고 있는 진보대통합의 조건을 보자. 그래서 종북 문제, 패권 문제가 제도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해결되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더 많아진 노동자 당원과 보다 주의 깊어지고 세련된 자주파, 비판적 지지에서 한발 더 나아간 시민사회 일부, 그리고 당 내에 지분과 발언권을 더해줄 사회당을 끌어들여서 세력 재편을 하는 최선의(그러나 필경은 불가능할) 결과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누군가 이야기하듯 무엇을 하려면 힘이 필요하지만, 이 힘이 커진 당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정파 간에 평화 상태를 유지하더라도 지역 조직을 장악하려는 당직 선거에 상당한 역량을 쏟는 일이 없어질 것도 아니고, 배타적 지지를 털고 민주노총의 대공장 중심 운동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도 여전히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 가상의 당 역시 ‘87년 체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민주노동당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만들어낸 지연된 결과였다. 단적으로 말해서 민중당은 실패했는데 민주노동당이 성공한 것은 두 가지, 즉 정파연합당과 대중조직 기반의 당 건설 노선을 받아들이고 이끌어냈다는 이유에 있었다.

    이는 민주노동당의 성공 이유였지만 동시에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 데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었다. 세계관과 만들고자 하는 사회가 다른 정파끼리 당을 안 깨고 이룰 수 있는 진전이 거기까지였고, 민주노총 등 대중조직이 대변할 수 있는 사회적 촉수와 운동 동력이 거기서 멈추었기 때문이다. 2004년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이래 민주노동당 내에서 벌어졌던 갖가지 퇴행은, 구조적으로만 해석하자면 이런 연유였다.

    좌파가 살고, 한국 운동에 기여하는 길

    작금의 통합 논의를 지배하는 정치공학은 이 당연한 이유를 흐리고 기억을 지운다. 현재와 미래의 생존을 과거의 틀거리로 보장하자는 것이 ‘도로민노당파’다. 계급 구성과 현장이 바뀐 것은 도외시한 채, 혹은 빈칸으로 남겨둔 채, 단지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되뇌는 것 역시 87년 체제에 대한 성찰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당분간 배고파 죽지 않을지는 몰라도, 과거의 틀을 붙들고 과거의 운동을 계속하는 길이다.

    더 큰 집을 짓자는, 즉 복지국가 노선으로 대통합 주장은 이와는 궤를 달리한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의 깃발 속에도 우리의 존재는 부재하다는 점, 그리고 가상의 주체와 변수들을 가지고 관념 속의 정치공학을 펼치고 있다는 점만은 지적해야 하겠다. 어떤 복지국가인가라는 논점은 그 다음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정당하게도 독자파의 전략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혹자는 정당의 존재 이유는 ‘집권’이 아니냐고 이야기하지만, 부르주아 사회교과서에 나오는 이 규정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질문은 정당하다.

    간단히 말해서 두 가지다. 87년 체제 이후의 한국 정치와 대중운동을 진전시키는 데 기여할 바가 무엇이냐는 참으로 한가한 ‘이상’과, 지금부터 2012년 혹은 그 이후에 어떤 조직으로 살아남아 역할을 할 것이냐는 냉혹한 ‘현실’이 모두 필요하다. 그리고 이 이상과 현실은 지금 횡행하는 근시안적 정치공학을 헤쳐 나갈 빛을 비춰줄 등대로 결합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누가 뭐래도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잠정적으로 ‘등대정당’이다.

    과거의 자원과 표를 당장 주위로 모을 수 없는 것이 등대의 운명임은 당연하다. 그러나 몇 퍼센트를 얻든, 의원을 몇 명 배출하든, 이 등대를 지키고 높이 쌓는 일이 당분간, 특히 어렵기 짝이 없을 2012년을 헤치면서 좌파가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그게 좌파가 사는 길이고 한국 운동에 기여하는 길이다.

    녹색사회당 – 이미 제출되었지만 한 차례 저지된 대안

    지금이라도 진보대통합 추진위원장 인선 문제나 통합 합의 문구에 매몰되기보다 우리의 비전을 다시 제안하고 미아들을 둥지로 불러 모으는 게 우선이다. 통합 여부를 결정하는 당 대회가 열린다 하더라도, 거기서 통합 논의 과정의 룰이 지켜졌는지 또는 논의 결과가 최선인지 여부가 결정의 근거가 되어선 안 된다.

    당연하게도, 우리가 원하는 조직과 노선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선택의 최우선 근거가 되어야 하며 그것으로 우리의 깃발을(누구와 함께 하든) 결정해야 한다. 때문에 우리의 지향과 바람을 그 이전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려 했는가? 분당과 창당 과정에서 이미 깃발의 대강은 나왔다.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의 구호가 대표적이다. 세액공제도 안 되고 당장의 성과를 거두기도 어렵지만 비정규 미조직의 현장으로 내려가자는 호소였고, 생산과 분배 투쟁을 넘어 인간과 환경이 상생하는 반자본주의 정치를 펼치자는 제안이었다.

    그것이 공감(과 자부심!)을 불러왔던 것은 단지 몇몇 활동가들의 머리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포함하는 십수 년의 운동 속에서 느낀 바들을 모아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재정리하여 세력 재편까지 하자는 것이 소위 ‘제2창당’이었지만, 당시의 지도부는 그 과제를 거부했고 가설정당으로 주저앉았다. 그러한 등대는 ‘너무 작고 불안하다’는 실존적 판단이었을 것이다. 물론 당 내의 좌파 활동가들은 이 과정을 무기력하게 흘려보내고 말았다. 이 역시 인물 중심의 현실론에 휘둘린 결과다.

    진보신당은 이미 녹색사회당이었다

    그러나 더 자세히 돌이켜보면, 당명으로 보아도 진보신당은 이미 ‘녹색사회당’이었다. 총선 이후 첫 당 대회를 앞두고 당명을 새로이 정하자고 당 게시판 등에서 의견이 취합될 때 가장 다수의 동의를 얻은 개별 당명이 ‘녹색(초록)사회당’이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무지개 사회주의자 한석호도 초록사회당을 주장했고, 정태인(필명 모지리)조차 ‘녹색혁명당 선언’을 게재했다. 그러나 녹색사회당은 지도부에 의해 체계적으로 저지되었다. 당 대회에서 아무런 선택지 없이 “당명을 결정해달라”라는 4차원 안건은 실은 당의 깃발을 정립하지 않고 정치공학적 과정을 모색하겠다는 의지 표명이기도 했다. 당명이 전부는 아니지만, 지방선거와 현재에 이르는 이후의 과정은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때가 기회였다는 점이다. 분당 이후의 동력과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고, 진보신당의 색깔과 행보를 지켜보며 합류를 고려하는 이들이 유의미하게 존재했다. 심지어 사회당 내에서도 녹색사회당이 선점되는 것을 우려하는 반응까지 있었다.

    안타깝다거나 누가 나빴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지난 일을 복기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름을 붙이자면 ‘녹색사회당 노선’이 나올 만한 이유와 공감이 있었다는 것, 진보신당의 공약수에 가장 근접했을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깃발이었다는 것, 그러나 당 정체성 확립 시도가 지금의 통합 논의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저지당했다는 것을 상기하는 일이 적지 않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세력과 조건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지금의 진보대통합 논의에서 녹색사회당 비전은 낄 자리가 없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무엇을 하는 당 조직을 만들 것이냐가 이번 6월 또는 9월 당대회를 전후하는 정치 과정에서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종북과 패권 대신 예컨대 녹색사회당에서 우리의 논의를 시작하는 게 ‘포지티브’한 것이며 미래를 위해서도 생산적이다.

    녹색사회당은 ‘플랜B’인가

    녹색사회당 노선은 ‘공시대적으로’ 어느 깃발보다 적절하다. 석유정점과 핵 등 에너지, 국제적 관심이 되고 있는 기후변화, 그리고 이와 결합되는 금융과 고용 위기의 트릴레마(trilemma, 3자 택일의 궁지)는 과거의 일국 중심 제도정치나 심지어 사민주의 국가와도 다른 해법을 필요로 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는 기술적 문화적 사회 전환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또한 사용자조차 찾기 어렵고 공장에 모여 있지도 않은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고용 집단, 직장과 가족의 해체 현상은 새로운 노동 조직, 새로운 대중운동의 발굴을 요청한다.

    87년 체제의 자원투입형 산업자본주의도, 대공장 조직노동 중심의 대중운동과 정치체제도 한계에 도달한 한국에서 역시 녹색사회당 노선은 ‘통시대적’ 적절성을 갖는다. 녹색사회당은 유럽식 녹색당의 단순 재판일 수는 없다.

    계급대중 기반의 전통적인 사민당 바깥에서 환경 이슈를 중심으로 성공한 녹색당들과 상당 부분을 공유하겠지만, 그것으로 국한될 수는 없다. 녹색사회당은 새로운 계급대중을 지역과 현장에서 평등과 생태의 가치 속에 만나야 한다. 여성주의, 사회적 소수자, 평화와 연대의 가치를 담아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녹색사회당은 매력적인 당이다. 집권은 고사하고 소선거구 승자독식 체제에서 의회 진출조차 당분간 쉽지 않겠지만, 해볼 만한 당이다. 잘만 하면 몇 퍼센트 득표를 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약속은 불가능하지만, 우선 이 당의 불씨를 살리고 봐야 한다. 진보대통합의 물결 속에 유실되지 않도록 누구라도 지금 호소를 시작해야 한다.

    가장 적절한 플랜B 맞다

    이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녹색사회당을 같이 할 유의미한 규모의 세력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환경 단체나 생태운동가들, 사회운동 세력을 거론하는 것이라면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진보신당 외에 존재하는 세력과 집단에게 최대한 겸손하게 다가가야 하며, ‘녹색’과 ‘사회(주의)’ 모두 우리가 자임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정치는 깃발과 호소가 먼저다. 게다가 녹색사회당 같은 독자적 깃발마저 없을 경우 2012년 총선과 대선에는 ‘반MB’ 말고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둘째는 녹색사회당은 진보대통합이 실패할 경우에 대한 ‘플랜B’인가 하는 물음이다. 그리고 당 대회를 통해 통합의 기준과 조건을 정해 놓았는데 녹색사회당을 제안하는 것은 이를 위배하는 반조직적 행위가 아니냐는 물음도 이어질 수 있다.

    우선 플랜B를 구상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며, 게다가 플랜A의 실패에 대해 아무 대비도 안하는 것이야말로 멍청한 짓이거나, 계파 정치에 매달리는 잘못된 태도다. 녹색사회당은 가장 그럼직하고 적절한 플랜B가 맞다. 진보대통합이 안되면 가능한 선에서 당명과 조직 재편을 정리하고 가는 게 당연하다.

    다음으로, 진보대통합이 성사되어 통과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어떤 당을 바란다는 의견을 모으고 세력을 형성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마저도 안하면 또한 계파 정치에의 함몰에 다름 아니다. 녹색사회당의 깃발이 당 내외에서 일정한 호응을 획득한다면, 진보대통합 논의 과정 이후의 행보는 그 이후 집단의 지혜로 결정해가면 된다.

    셋째, 녹색사회당이 건설되더라도 인물과 힘이 부족하다면 총선과 대선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역량과 상황을 고려해서, 이상과 현실을 접합해서 논의하면 된다. 조금 쉬어가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다. 당선을 염두에 두고 선거를 준비하는 이들이든,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바라는 이들이든, 각자 고민할 몫이 있는데 이 부분을 모두 담보하라고 할 필요는 없다.

    이제 녹색사회당 선언을 위해 공공연히 의견을 모아가고자 한다. 피리를 불어 모든 아이들을 몰아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등대를 만들고 지키겠다는 것인데, 오도된 전위의식이라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민폐를 끼칠 일은 적을 것이다. 진보신당을 만들며 했던 얼어 죽을 각오가 비록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현실의 두려움으로 인한 종속성을 깨트리지 않으면 아무 것도 풀 수 없다.

    하여 이른바 진보신당내 독자파 그리고 우리가 만나야 할 더 큰 독자파들에게 말씀드린다. 이제 녹색사회당으로 가자고.

    * 이 글은 5월 18일에 발간될 <좌파저널>(leftjournal.tistory.com) 창간준비3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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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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