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조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2011년 05월 11일 08: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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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유니온이 창립된 지 1년을 넘어섰다. 정부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유니온을 노조로 인정치 않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청년 논객과 활동가’들은 청년유니온에 대한 평가와 제언이 담긴 글을 통해, 청년유니온의 정체성 논의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위한 일련의 기고를 하기로 했다.

    이들은 연속 기고 취지에 대해 "청년유니온은 2011년 사업으로 언론과 기성세대 논객들의 조명을 얻었다. 앞으로 청년유니온에게 필요한 것은 청년-노동에 대한 논의을 모으면서, 당사자들의 특징을 추진력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려면 조합원들의 개성을 살리고, 청년-노동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레디앙은 앞으로 이들 젊은 필자들의 청년유니온에 대한 다양하고, 입체적인 분석, 평가, 제안의 글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사진=청년유니온.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레디앙>, <프레시안> 등의 독자들과 먼저 글을 써주신 필자들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최근에 올라온 김슷캇님의 글과 관련하여 일부 조합원을 중심으로 <레디앙> 댓글게시판에서 격한 설전이 일어나 많은 독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점에 대해서 청년유니온의 공식사업의 하나로 진행되는 릴레이 기고의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죄송하다.

    또 하나는 좀 다른 이야기인데, 청년유니온과 관련한 기고글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세밀하지 못했던 점에 대한 것이다. 주로 청년유니온 내부에서 오래동안 함께 활동한 필자들이 아닌 외부 필자들이 섭외가 되다보니 생각지 못했던 지점들이 발생한 것 같다.

    오히려 청년유니온 쪽에서 지난 1년간 청년유니온을 만들어오고 활동해오면서 들었던 고민 지점과 향후 방향에 대한 다양한 전망들을 먼저 제출하고 이를 기본으로 외부 필자들이 다양한 분석과 그에 근거한 비판을 통해 이야기를 끌고 나갔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바쁘기 그지없는 젊은 활동가들에게 다짜고짜 청년유니온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청탁을 하면서 정작 청년유니온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를 명료하게 드러내지 않음으로 인해 필자들이 글을 쓰기에 어렵게 만들었고, 또 나아가 본의 아니게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가능성을 조성했다는 측면에서 그러니까 기획의 부실함에 대해서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점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따라서 이 글은 기획단계의 부실했던 부분을 보충하고자 조금 늦었지만 앞선 필자들이 지적했던 부분들을 기초로 지난 1년 여의 시간동안 청년유니온이 가지고 있었던 고민들에 대해서 토로하고 향후 논의의 방향에 도움을 주기위해 작성되었다.

    청년유니온의 공식 입장이라고 이해하기 보다는 청년유니온의 기획단계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핵심적으로 참여했던 집행부의 1인으로서 앞선 글들을 보며 드는 고민들과 토론거리들을 꺼내놓는 글이라고 보아주었으면 한다.

    따라서 이 글은 앞서 좋은 글들을 기고해주셨던 필자들의 논의에서 토론해볼 거리를 도출하고 또 다소 오해의 여지가 있는 지점들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물론 이 글이 주최측인 청년유니온에서 앞선 필자들을 갑자기 요즘 말로 ‘디스’시켜버리는 무례를 범하지 않으려 조심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조합원의 권익이냐 의미 있는 사회운동이냐

    먼저 한윤형님이 청년유니온이 조합원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아예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을 것인가라고 질문하며 지적했던 부분은 매우 정확한 지적이었고 청년유니온 스스로도 기획단계에서부터 깊이 고민했던 문제이다.

    물론 지금도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완전히 해소하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노동조합이, 그리고 어떤 단체가 해당 조합원들, 회원들에게 명확한 이익(그것이 꼭 물질적인 것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노동조합은 물질적 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을 주지 못한다면 그 조직이 성장하는데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청년유니온은 기획단계에서부터 고민이 많았다. 청년실업이나 청년노동문제를 사회이슈화 시켜내는 전략은 유효하지만 실제 조합원들에게 어떤 구체적인 이득을 줄 수 있을 것인가의 부분에서는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는 일본 수도권 청년유니온처럼 노사간의 교섭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나름 고용안정 또는 노동조건 향상 등으로 앞선 고민들이 해소 가능하겠지만 노조설립신고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참 먼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청년유니온이 나름 고민했던 것은 현재 2기까지 진행된 ‘취업코칭 프로그램’과 더불어 ‘무료 노동상담’, ‘심리상담’과 같은 다양한 조합원교육프로그램이 있었다. 사실 조금 더 여력을 내서 유럽의 노동조합들처럼 ‘직업 알선’까지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다른 것은 일본의 사례를 참조해서 한국에서도 일본의 ‘반빈곤네트워크’처럼 청년층의 자체 상호부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수도권청년유니온과 다른 청년단체들이 주축이 돼서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소정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청년유니온은 올해 주요 사업으로 청년자체상조프로그램 개발과 실행을 고민하고 있다. 먼저 조합원부터 시작해서 알바나 일이 갑자기 끊겼을 때 당장 핸드폰비, 교통비 등이 부족할 때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려고 하는 것도 한윤형님이 지적하신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 노조설립신고 반려에 대한 행정소송 과정에서 청년유니온이 법원으로부터 이끌어낸 채용조건을 가지고 단체교섭도 가능하다는 판례를 적극 활용해서 청년구직자들의 채용조건 향상 등을 두고 교섭을 하는 모델을 만들려 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여전히 부족하고 느리지만 하나씩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기에 한윤형님의 지적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깊이 고민해 나가려 한다.

    다음으로 홍명교님이 예리하게 지적해 주셨듯이 청년유니온이 조합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우리도 생각하고 있다. 또한 자본과 권력이 음습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분할-통치 이데올로기에 침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며 적절한 조언에 고마움을 느낀다.

    다만 홍명교님이 지난 청년유니온의 발언에서 ‘임금피크제’를 비판한 것을 인용해 청년유니온도 위태로운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오해가 있지 않은가 해서 부족한 말을 덧붙이고자 한다.

    사실 청년유니온은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는 데에 있어서 자본의 논리도 있지만 척박한 한국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고뇌도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임금피크제가 도입이 되는 과정에서 청년고용을 확대하겠다고 노사간에 협의하고 선언할 때 이를 적극적으로 비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입장이다.

    오히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이(사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진보측 언론들도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생각한다) 청년들을 외면하는 노조의 이기주의라고 공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이미 판단하고 있다.

    실제 전문연구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임금피크제의 대상이 되는 장년층 노동자들과 청년구직자들의 일자리가 경합관계에 있지는 않다. 공공부문의 경우 인원조정 등이 원활치 않기 때문에 약간의 경합관계가 있지만 다른 부문의 경우 그렇지 않다.

    따라서 임금피크제가 청년실업을 악화시킨다는 일부의 주장은 적절치 않다. 청년유니온은 이런 입장을 명확히 하고 언론인터뷰 등에 응했음에도 언론들이 청년과 기성 노동자들을 대비시키는 구도를 좋아하는 관계로 진의가 전달되지 않음에 조합원들, 집행부들도 분노했던 적이 많다.

    따라서 홍명교님이 지적했던 분할-통치 이데올로기에 말려들지 않도록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겠지만 언론들의 선정성 쫓기로 인해 다소 오해가 발생했던 것에 대해서는 이해를 구하고 싶다.

       
      ▲청년유니온 기자회견 모습. 

    산별노조, 청소년운동과 구체적이고 건설적인 관계를 지향해야

    이상한 모자님도 매우 중요한 부분을 지적해주었다. 청년유니온이 산별노조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하며 기존 노동운동과의 관계를 잘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백번 공감한다. 실제 청년유니온이 작년에 노조설립 투쟁을 전개하면서 주요하게 고민했던 전술 중 하나가 산별노조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합법성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다만 당시에는 구직자의 노조설립의 권리를 좀 더 이슈화시켜내는 것이 당장의 합법성 쟁취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 우회전술(?)을 차용하지 않았다. 이미 이상한 모자님이 더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지만 산별노조에 대한 고민은 단순히 노조설립을 위한 우회전술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는 "청년유니온을 통해 구체적으로 각기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는 청년들을 어떻게 조직화 할 수 있는가?"라는 청년노동운동의 핵심전략과도 연결된 문제다. 여기서 고민해야 하는 것은 그렇다면 기존의 산별노조들이 왜 청년조직화에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가일 것이다.

    역시 아직 한국에서 산별노조가 명실상부 해당 산업 전체를 치밀하게 포괄하고 있지 못한 점이 지적될 수 있지만 청년층의 특성, 또는 기존 산별노조들이 청년조직화 과정에서 소위 주변부노동에서 부유하고 있는 청년층에 대한 접근의 어려움 등도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청년유니온은 이상한 모자님이 지적했듯이 기존 산별노조들과 더 긴밀한 관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는 올해 보건의료노조와 진행하기로 기획하고 있는 보건의료산업의 다양한 실습생들의 노동조건 개선사업을 통해 산별노조로의 청년조직화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

    이것이 성과를 낼 수 있다면 금속, 건설, 운수 등 다양한 산업에서 청년유니온과 산별노조가 함께 청년노동자 조직화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를 열 수도 있지 않을까?

    조금 더 덧붙이자면 사실 청년유니온은 청년노동자들이 청년유니온 산하에 대규모로 조직되는 것이 꼭 가능하다고, 나아가 바람직하다고 단정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기존 산별노조들이 청년조직화를 통해 산업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향, 그리고 산별들이 포괄하기 힘든 영역에서 청년유니온의 독자적인 역할과 같은 식으로 함께 공존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조심스레 고민해본다.

    김슷캇님이 주로 지적하신 소년운동(필자는 아직 이 개념이 익숙치가 않지만)과의 연대, 그러니까 ‘더 아래’로의 연대에 소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점에 대해서 먼저 반성한다. 실제 청년유니온에는 탈학교 청소년 조합원들이 몇 명 있으며 실제 가입조건에서 만 15세부터라고 명시했듯이 청소년들의 노동문제를 고민하고자 했다.

    아직 많이 활성화되지는 않았지만 10대팀을 따로 구성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또한 성과나 실천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다양한 대안학교,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이미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했고 대안학교 청소년들이 청년유니온에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참여하는 과정도 있었다. 또한 내년에는 전교조, 청소년운동단체들과 연대해서 실업계고와 같은 곳들에 노동인권교육을 청년유니온이 담당하는 전망을 초벌논의하고 고민하고 있다.

    다만 그간의 활동이 청소년 노동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전략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 향후 방향에도 아직 구체적인 전략과 프로그램이 수립되어 있지 못한 점, 청소년운동에 대한 수동적인 태도 등은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년고용할당제가 정말 조합이기주의인가?

    마지막으로 김슷캇님이 ‘청년유니온’이 조합이기주의에 빠져있다는 근거로 사용했던 ‘청년고용할당제’와 관련해서는 조금 이견이 있음을 밝힌다.

    김슷캇님은 청년유니온이 현대차노조의 고용세습과 관련해서 비판하면서 정작 본인들도 ‘청년고용할당제’라는 조합이기주의적 정책을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청년고용할당제’가 정말 ‘조합이기주의’, 그러니까 ‘청년층 이기주의’인지는 조금 더 진지하게 토론하고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년고용할당제의 제도에 대한 이해가 달라서 일까? 기본적으로 청년고용할당제를 한국에서 시행 가능하게 설계할 때는 공공과 민간을 모두 포괄해서 추가고용을 강제함으로써 총고용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설계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는 기간 대기업, 공공부문이 계속해서 고용을 줄여온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실제 벨기에 등에서 이 제도가 먼저 시행될 때에도 기존 노동자에 대한 해고금지, 그리고 총고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시행되었다.

    또한 현재 청년고용할당제를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단계에서는 한국사회 전체의 고용률 목표, 그리고 청년고용률의 도달 목표를 설정하고 기업들이 이를 달성할 때까지 추가고용을 계속해서 강제하는 방향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오히려 정책적 차원의 검토라면 실제 이것이 청년실업 해소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실질적 또는 근본적 대안이라 할 수 있는가, 또는 기업들에 대한 인센티브, 패널티 제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등의 여부를 토론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를 포함해 사실은 청년고용할당제를 주장하는 대부분의 연구자들도 단기적, 중기적 처방이라고 보고 있다. 로제타 플랜이라는 이름으로 이 제도를 시행했던 벨기에 역시 정책시행 몇 년간은 청년실업률이 급락했지만 이후 다시 상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년유니온이 ‘청년고용할당제’를 주장한다고 ‘조합이기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조금 섣부른 비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오히려 청년고용할당제에 대한 정책적 차원의 별도 토론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청년유니온이 준비가 되는대로 먼저 나서서 토론해볼 용의도 있다.

    글을 마치며

    글을 마치며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필자의 생각에 청년유니온이 청년운동, 청년노동운동의 전부를 대표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한 대표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청년유니온이 더 활발한 활동을 통해 발전하면 청년운동, 청년노동운동을 대표하는 하나의 조직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곧 엄청나게 다양한 청년들의 활동과 유쾌한 실험들까지 포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청년유니온 역시 청년운동과의 교집합이 상당히 큰 것이 현실이지만 그 교집합에 포함되지 않는 더 다양한 청년운동이 어쩌면 오히려 우리 진보운동의 미래를 열어나가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청년유니온이 깊이 고민해야 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다양한 청년운동, 진보운동과 청년유니온이 어디서 어떻게 만나고 접점을 만들어나갈 것인가이다. 환경, 생태, 여성주의, 에너지, 문화 등 너무나도 중요하고 긴박한 문제들과 청년유니온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또 그것이 노동운동이 어떻게 다른 운동들과 조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실험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

    결국 청년유니온은 노동조합이며 어쨌든 노동운동의 영역에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노동조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세의 특수성으로 인해 오히려 실천한 만큼보다 과도한 주목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긍정적 측면이 있을 수 있겠으나 결국 거품은 꺼지게 되어 있다. 모르지 않는다. 이미 많은 것들이 그렇게 눈부시게 조명되고 주목받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갔으니.

    청년유니온의 집행부들이 사업 하나하나마다 필사적인 이유가 어쩌면 거기에 있고 어떻게든 청년들 속에 그리고 노동의 현장에 튼튼하게 뿌리내려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러다보니 진중한 성찰과 넓은 시야보다 당장의 사업에 매몰되는 경향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청년유니온에 대한 이번 릴레이 기고가 청년유니온의 향후 발전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믿고 싶다. 뒤에 이어질 글들이 무척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애정어린 비판과 과분한 관심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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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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