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도 아닌, 유니온도 아닌
        2011년 05월 04일 05: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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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유니온이 창립된 지 1년을 넘어섰다. 정부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유니온을 노조로 인정치 않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청년 논객과 활동가’들은 청년유니온에 대한 평가와 제언이 담긴 글을 통해, 청년유니온의 정체성 논의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위한 일련의 기고를 하기로 했다.

    이들은 연속 기고 취지에 대해 "청년유니온은 2011년 사업으로 언론과 기성세대 논객들의 조명을 얻었다. 앞으로 청년유니온에게 필요한 것은 청년-노동에 대한 논의을 모으면서, 당사자들의 특징을 추진력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려면 조합원들의 개성을 살리고, 청년-노동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레디앙은 앞으로 이들 젊은 필자들의 청년유니온에 대한 다양하고, 입체적인 분석, 평가, 제안의 글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나는 앞선 기고자들과 달리 청년유니온의 조합원이다. 조합원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어떤 사람들은 외부인으로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는 “일반조합원과 다른 ‘좌파’”로 낙인 찍기도 하지만 어찌 되었건 내가 조합원이라는 건 명확한 사실이다. 아직까지는. 물론 이런 처지에서 청년유니온에 대해 글을 쓰는 게 좀 섣부를 수도 있다만, 이 글을 쓰기로 약속한 건 아직 조합원이 되기 전의 일이니 양해를 바란다.

    앞선 세 기고가 청년유니온에 말을 걸면서도 청년유니온에 대해 사실상 진단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청년유니온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심지어 그 세 명의 기고자가 모두 남의 단체에 ‘지향’을 (비판이 아니라) 제시하는, 어찌 보면 결례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던 것도 그들이 예의를 몰라서가 아닐 것이다.

    아마 나 처럼 예의를 모르는 놈이었다면 대놓고 “도대체 청년유니온의 정체성이라는 게 있기는 있냐”고 물었을 것이다. 아니다. 다시 이야기하자. 정확히는 청년유니온의 모든 조합원 개인을 향해, “당신이 조합원인 이유는 뭔가”라고. 또 “우리들의 공통성은 무엇인가”라고.

    공통성의 전선

    나는 때때로 "염색체엔 좌우가 없다"는 말을 쓰고는 한다. 정치적 기준을 좌우로 나눌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개인의 정치적 지향과 욕구가 천차만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치사회에 좌우가 분명한 것처럼 보이는데는 이유가 있다.

    개인의 욕구를 압도적인 타인과 사회를 상대로 쟁취해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공통의 욕구를 가진 자들을 찾아나서고, 공통성을 기준으로 싸움을 해나간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청소년은 청소년 운동을, 평화운동가는 평화운동단체를 그런 식으로 만들어내고 명확한 전선 안에서 싸움을 시작한다.

    그리고 각 전선의 공통성으로부터 공동의 적에 대항하며 새로운 전선을 긋기도 한다. 모든 연합의 원칙은 공통성으로부터 기반하지만, 때때로 타자의 직관에 밀려(혹은 호응하여) 공통성이 없는 곳에서 연합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지금의 빅텐트니 진보대통합이니 하는 논의들이 그렇다. 이런 선택들은 요플레에 숙성시킨 빈대떡을 보드카 국물에 끓인 냄비요리 같은 괴이한 맛의 양 많은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나는 그런 걸 먹고 싶지도 먹이고 싶지도 않다.

    그런 요리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들도 “분열주의자”라는 상상 속의 적을 계속 강조하며 전선을 치고 분열하며 통합을 이루어낸다. 전선이 없이는 통합도 없다.

    우파들 역시 당연하게 이 방법을 사용한다. 다만 이들의 다른 점은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 즉 체제유지세력이라는 고지를 잘 이용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좌파’의 상대적 언어로 ‘우파’라는 말을 쓰지 않고 ‘일반시민’이라는 말을 쓴다.

    그들은 반체제세력을 사회에서 배제하자고 주장하지만, 실은 그들은 반체제세력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이다. 국가가 주적 없이 유지되지 못하는 것처럼. 명확하건 아니건 전선을 치지 않고 조직적 통합을 혹은 계급적 통합을 이루어냈던 사례는 없다.

    모든 계급은 염색체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때로 이 전술은 잘못된 전선치기로 인해 싸움 자체를 혼탁하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시민권을 가진 노동자가 국적이라는 전선을 통해 이주노동자를 착취자로 선언한다거나, 대기업의 노동자가 직장이라는 전선을 치고 조합주의를 고수하거나.

    전자에서 가장 떠올리기 쉬운 사례는 나치스가 될 것이고, 후자에서 떠올리기 쉬운 사례는 최근의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장기근속자 자녀 채용가산점 단협안일 것이다. 이 두 가지 사례 모두, 명확한 전선을 추구하지 않되 가시적으로 보이는 전선에 들어선 결과 일어난 일이다. 잘못된 전선은 있으되, 전선이 없는 운동은 없다. 그렇다면 청년유니온의 전선, 우리들 개개인의 공통성의 전선은 어디 있는가.

    청년유니온이라는 말에서 도출할 수 있는 주체는 청년과 노동자의 교집합이다. 당연하게도 청년유니온은 시민권을 얻은-나는 언제나 소년계층은 시민권을 박탈당했다고 보고 있다-노동자 계층에서 가장 연령이 낮은 노동자의 조합이다. 그러면 그 전선의 건너편엔 뭐가 있을까.

    물론 그 전선은 내 머릿속에 있는 것과 당신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 서로 다를 수 있다. 내 머릿속에 쳐진 청년노동자의 전선을 이야기하기 전에, 바로 지금, 청년유니온이라는 ‘이름’이 놓여있는 전선을 이야기해보자.

    청년도 아닌 그렇게 유니온도 아닌

    최근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조합이 장기근속자 자녀의 가산점 부여를 요구하는 단체협약안을 확정했다. 임노동 세습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이 사건은 좌우를 막론한 사회 각층의 비판을 받았으며, 대체로 이 비판은 “이기주의”라는 도덕적 시각에 고정되어있다. 물론 노동·좌파진영은 이에 덧붙여 “자녀의 정규직 일자리를 위해 필요한 것은 세습이 아니라 비정규직 철폐”라는 계급전략을 미미하게나마 제시하고 있기는 하다. 청년유니온 역시 마찬가지다.

    “과연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본연의 목적으로만 합리화 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함께 겪고 있는 고통에서 더 아래에 있는 약자들을 고민하지 않고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본연의 모습이라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청년유니온 성명서 중

    현대차 사건에 대한 청년유니온의 성명은 분명 계급적 명분을 드러내고 있다. 이 성명은 조합주의를 비판하고, “더 아래”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이 비판은 사실상 좁은 풀을 더욱 좁히는 가산점에 대한 항의이며, 청년세대 ‘내부의’ 평등원칙에 입각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더 아래”와 “노동자는 하나”로 대변되는 이 명분은 명분 자체로는 분명 청년+노동자의 교집합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 전선은 이상하다.

    우선 청년유니온의 조합주의 비판이 조합주의 일반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청년유니온 스스로가 ‘청년할당제’라는 노골적인 조합주의 정책을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세습’이라는 부정적인 어감을 가진 말을 빼자면, 도대체 "우리에게 가산점을 달라"는 말과 "우리 자식에게 가산점을 달라"는 말이 대체 무엇이 다른가?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구호를 내세워 상대를 질타하고 스스로는 ‘청년’이라는 외투를 쓰는 것이 옳은가? 더군다나 “더 아래”라는 말은 명확하게 ‘청년’을 지목하고 그 이상 아래로 내려가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청년유니온이 과연 "우리가 더 아래"라는 말 이외에 "더 아래"를 향해 목소리를 낸 적이 있는가?

    "더 아래"에 연대하지 않은 것은 노동자로서뿐만이 아니다. ‘청년’으로서도 그렇다. 일전에 레디앙을 통해서도 지적했듯이 청년유니온은 소년계층에 대한 문제는 외면해왔다. 오히려 청년유니온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해 그들이 ‘어머님 아버님’임을 강조하며 기성 가족주의에 충실한 착한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지금 청년유니온의 전선은 청년도 아닌, 그렇다고 유니온도 아닌 곳에 놓여있다. 여기서만 멈추지 않는다.

    빨갱이는 국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합원이 되기 전과 된 이후 나는 몇 차례에 걸쳐 청년유니온 안에서 우파적 전선긋기의 존재를 확인하고 당혹했다. 급진적 그룹, 소위 진보와 ‘일반시민’인 조합원을 나누는 선 말이다. 그리고 이런 발언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혹은 항의하지 못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도.

    또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했다. 자신들이 정말로 저 우파들이 규정하는 ‘일반시민’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단 말인가? 노동조합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청년유니온의 구성원들 혹은 지지자들 스스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듯이, 이 체제는 털끝만큼도 청년유니온을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스스로 반체제적 개체임을 인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일반시민’을 자처하는 것은 공통성이 존재하지 않는 엉뚱한 곳에 전선을 치는 행위에 불과하다. 지금 청년유니온의 전선은 공통성의 전면에 있지 않고, 공통성을 가로지르고 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렇다. 이 전선을 ‘청년노동자’의 전선이라고 말하는 것은 허구다.

    나에게 공통성의 전선을 쳐야 할 지점은 명확하다. 기성체제가, 혹은 기성운동이 불러내는 건강하고 발랄한 ‘청년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 주체이며 사회 진입 문턱 앞에 버려진 청년주체로서, 체제를 향해 사회진입비용과 안정적 유지(그것이 노동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를 요구해야한다.

    전선의 확대를 위해 청년유니온 스스로가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모두가 함께 겪고 있는 고통에서 더 아래에 있는 약자들을 고민하지 않고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되새기고, 주류 운동으로의 편입보단 계급동맹의 상대를 찾아 헤매야 한다.

    나에게 그 동맹의 상대는 소년이고, 프레카리아트이며, 회의와 경계의 전선을 쳐야 할 상대는 발랄하고 쾌활한 청년을 찾아헤매고 패기와 발랄함을 요구하기에 바쁜 변태 지식인들과 기성운동이다. 그마저도 충분하지는 않다.

    그래서 말이다. 묻고 싶은게 있다. 청년유니온의 조합원들, 당신들의 "공통성"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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