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무조건 통합 주장은 '폭력'
        2011년 05월 04일 07:42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1. 87년도에는 노조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한국노총에 가입했다.

    민주노총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복수노조가 인정되지 않아 합법적인 다른 노총을 만들 수도 없었다. 87년부터 민주화 열풍으로 노조들이 대거 설립되었고, 한국노총에 가입했던 민주노조 성향의 노조들은 한국노총에 의무금을 내지 않았으며 별도로 모이면서 전노협, 업종회의 등의 이름으로 연대했다. 한국노총이 아닌 다른 노총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엔 어느 사업장에 노조가 이미 존재하면 새로운 노조를 만들 수가 없었다. 신생 민주노조들은 이를 노동조합의 단결권을 가로막는 악법이라고 주장하며 투쟁하였다. 투쟁의 결과로 법이 개정되고 상급단체의 복수노조는 허용되고 단위사업장의 복수노조는 차후로 미루어 졌다. 그제서야 합법적인 연맹과 총연맹이 탄생될 수 있었다.

    복수노조 허용을 주장하는 것은 꼭 복수노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업장 단위로 하나의 노조만을 강요해서는 안 되고, 노동자들이 원한다면 사업장 내에 또 다른 노조가 만들어지는 것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2011년 7월부터는 단위사업장에도 복수노조가 허용된다.

    한국노총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민주노총인 것이다. 이것이 잘못된 것일까? 단위사업장에 복수의 노조가 존재할 때 어느 노조에 가입할지 선택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자유다. 해당 노조들이 어느 노총에 가입하든 그것도 자유롭게 보장된다.

    노동자들의 정치적 입장도, 정당 가입도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보장되는 것이 마땅하다. 한국노총의 조합원 중에도 진보정당의 당원들이 존재한다. 또 노동조합의 조합원 중에는 한나라당 또는 민주당 당원도 존재할 수 있다.

    하나의 정당을 지지하고 함께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렇다고 조합원들에게 어느 정당에 가입하라고 강요하거나 강제하는 것은 무리다.

    2. 민주노동당이 생겼다. 물론 사회당도 있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중심이 돼 당원에 가입도 하면서 만든 정당이었다. 초기에는 민주노동당 당원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은 다양한 진보정당에 가입해 있는 당원은 민주노총 조합원의 5% 수준으로 본다. 물론 선거 시기에는 당원은 아니지만 정치후원금 내주는 조합원들이 많았다.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침은 기본적으로 실패했다.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95%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하지 않고 있다. 그토록 민주노동당을 지지해 왔건만 왜 민주노동당의 당원들이 늘어나지 않는지를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민주노총 지도부, 대표자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책임이라고 본다.

    분당 이후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을 노골적으로 편애했고 반면에 진보신당은 탄압해 왔다. 제발 망하라고 빌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진보신당은 존재하고 있다. 아니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이지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사회당 등 진보정당이 여럿 존재해서 조합원들이 민주노동당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또한, 진보정당이 여럿 존재해서 민주노총이 무기력해진 것도 아니다. 마치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에서 분당하면서 진보정치가 어려워졌고, 민주노총이 맥을 못추고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다. 가까운 과거에 민주노총이 국민들에게, 조합원들에게 망신스런 짓거리들을 얼마나 했는지 스스로의 반성과 새로운 모습도 보이지 못하면서, 단결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나는 도리어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만 배타적 지지를 함으로써, 민주노동당 가입도 크게 늘지 않고, 다른 진보정당 가입도 꺼리고 있다고 본다. 조합원들은 어느 정당에 가입하려 할 경우 여러 가지 측면에서 민주노총 정치방침에 눈치를 보게 된다. 특별한 용기나 결단, 정치적 소신이 없으면 구태여 어느 정당에 가입하려 하지 않는다.

    탈당하고 관망하는 노조원들도 많다. 어느 정당의 눈치 볼 것도 없어 속편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또한 새로 입당하면 이당 저당의 눈치를 봐야하고, 노조 내 선거에서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에 고민하게 될 것이다.(반대로 선거에 도움이 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가 진보정치를 가로 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민주노총은 이미 사문화되고 실효성도 없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철회하고 자유로운 정당 가입을 보장하는 것이 미래를 볼 때 발전적이라고 본다.

    95%의 조합원이 진보정당 당원이 되도록 진보정당들이 선명성을 가지고 정책 경쟁을 벌이면서 조직화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조직화되지 않은 많은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당원 조직을 해나가면 된다. 민주노총 내 조합원들이 이당 저당으로 나뉘어 활동하는 것을 분열이라며 안타까워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어느 진보정당이든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는 정치방침이라면 도리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속도가 나고, 진보정당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그 이후 때가 되면 가장 세력이 커진 정당과 통합하든, 선거연합을 하든 힘을 키우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일구어나가고, 언젠가는 정말 큰 덩어리의 진보정당이 탄생될 것이다.

    3. 진보정당들의 무조건적 통합은 있을 수 없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에 대해 분당 원인인 북한에 대한 태도 변화(북의 핵개발 반대, 3대 세습 반대)와 패권주의 청산에 대해 신속히 답하라고 주장해야 할 입장이지, 무조건적 통합을 압박하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방해가 될 뿐이다.

    민주노총 내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당원들에게 설득하면서 통합선언을 조직한다면 모를까 당원도 아닌 조합원들에게 두 당이 선통합하라고 선언, 서명을 받으면 뭐하겠나? 차라리 민주노동당에 가입하라고 권고해서 진보신당을 제압해 버리는 것이 옳을 것이다.

    얼마 전 그간 참신하게 보아왔던 조국 교수는 이것 저것해도 안 먹히니 당원들에게 당비 내지 않기 운동을 해 압박하라고 했다. 이 논리는 어려움이 있는 북에 지원 끊어 압박하는 이명박 정권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고 본다.

    자본가들이 무자비하게 부당해고해서 몇 년을 고생시키는 것과 무엇이 다르며, 대기업들이 마음에 안 드는 언론사에 광고 안줘서 압박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진보신당 당원들이 볼 때는 조국 교수나 민주노총이나 같은 모습이다.

    민주노총이 얘기하는 대중들은 민주노동당이 제대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런 과정에서 진보신당이 흔쾌히 동의하면서 함께 하길 바랄 것이다. 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대안은 도리어 민주노동당이 먼저 제시해야 할 문제이다.

    이혼했던 부부가 다시 합칠 때에도, 말다툼으로 결별했던 옛 친구도 다시 마음을 합치려고 할 때에도 과거에 대한 반성과 화해가 기본이다. 하물며 정치적 입장이 틀린 정당들이 합치자고 하면서 무조건적인 통합이 정말 가능하다고 본단 말인가!

    민주노총이 진보신당에 호소하고 권고할 수는 있지만, 무력적으로 압박하고 탄압을 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 진보신당 당원들에 대한 모욕이며 반발만 살 뿐이다. 도리어 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방해하는 것이다.

    4. 민주노총에는 민주노동당 당원과 진보신당 당원, 사회당 당원이 모두 공존한다.

    선거 때 진보신당 후보가 사업장에 들어가 선거운동을 하려고 할 때 노조가 막아 못 들어갔다는 기사를 보았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배타적 지지라면서 공식적으로 민주노동당만 후원금 거두어줬다. 이러한 모습은 민주노총 내 진보신당 당원들을 차별하는 것이고, 탄압하는 행위이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가 방침이라면서 사실상 결과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진보신당에 대해서는 너무도 엄격했다. 민주노총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조합원들을 차별하고 탄압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시 인천의 경우 민주노총 인천본부와 산하 노조의 자문변호사, 지역 내 여러 시민사회단체의 자문변호사를 하던 사람이 진보신당 이름으로 인천시장 후보로 나왔는데,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지지 후보로 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철회했다.

    그 이후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 민주당 출신 인천시장 밑에서 노동특보를 하고 있다. 이런 민주노총을 보면서 너무도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으로서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내가 보기엔 중심도 없고, 자존심도 없는 민주노총임이 명백하다.

    민주노총 지도부들이 노조원들에 대한 정치의 자유를 막고, 강제하는 것은 민주노총 정신에 위배된다. 그간 두 당은 선거연합도 제대로 못해봤는데 통합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사실상 현재 상태에선 두 당이 선거연합만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차분히 신뢰를 쌓아가면서 하나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함께 가는 한걸음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할 때이다. 그런데 조건없이 통합하라는 것은 강요를 넘어 탄압이다.

    최근에도 민주노총 내 큰 조직이 민주노총을 빠져 나가려고 한다. 민주노총은 있는 조직 빠져나가는 것이나 막았으면 좋겠다. 갈라진 정당들을 무리하게 합치게 하려는 노력보다 우선은 자기 조직을 추스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함께하지 못하고 방치하거나 탄압까지 하는 민주노총 산하 여러 노조들의 망측한 모습을 고치려 노력하는 것이 더 급한 사업임을 망각하고 무조건적인 양당 통합을 외쳐대면 정말 국민들로부터 점점 더 인정받지 못하고 고립될 것이다.

    노동자들끼리도 단결하고 힘을 모으지 못하면서, 정당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고 압박할 능력과 위상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민주노총은 즉각 무조건 한국노총과 통합하라! 국민의 요구이고, 민중의 요구이고,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이다.’ 이해할 수 없고,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리는가? 이 말은 지금 민주노총이 진보신당에게 무조건 통합하라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명심하길 바란다.

    * 이 글의 필자는 민주노총 소속 보건의료노조 부천 세종병원 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