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선은 아이유가 아니다"
    2011년 05월 02일 03:21 오후

Print Friendly

1.

청년실업에 대한 소식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니다. 실업률과 고용률을 위시한 각종 데이터를 기억하진 못한다 하더라도 한국의 고용상황이 OECD 국가 중 최악이라는 사실이나, 고용이 되어있다 하더라도 대부분이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으며 임금 불평등 정도가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쯤은 누구나 아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마저도 청년실업 극복을 당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공언할 정도니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통합이 이루어진 셈이다. 실업에 대한 대책에 대해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대책으로 입을 모은다. 일자리 나누기와 같은 진화한 대책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어떻게든 만들겠다는 말뿐이다.

설사 일자리가 늘어난다 해도 노동환경이 지금처럼 열악하다면 문제의 해결이라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조차 아쉬운 청년들이 있다. 바로 현재의 임금노동 구조에 포함되지 않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인데, 아직까지도 이들에 대한 논의는 비어있는 상황이다.

2.

   
  ▲월디페 포스터. 

며칠 전, 음악가와 레이블, 음악평론가와 문화공간 운영자가 참석한 토론회를 진행자로 참여했다. 이 토론의 주제는 이른바 ‘월디페 사건’으로 촉발된 빅페스티벌의 문제와 음악가의 권리.

‘월디페 사건’이란 올해로 3회를 맞은 월드디제이페스티벌(이하 ‘월디페’) 측이 국내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에게 개런티 없이 팀당 10만원의 교통비만 지급하고 참가 섭외를 한 것에 대해 일부 음악가들이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촉발된 사태를 말하는데, 이 사태에서 논란의 중심이 된 빅페스티벌의 기능과 음악가에게 지급되어야 할 대가에 대한 논의를 해보자는 자리였다.

월디페 담당자가 토론에 참석하지 않아 빅 페스티벌의 평가에 대해서는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이를 필두로 음악가의 ‘정당한 대가’, 혹은 ‘생존의 권리’에 대해서는 넓은 범위의 의견들이 오갔다. 특히, 기획 단계에서부터 기대했던 주제인 ‘음악가(문화생산자)의 노동자성’을 둘러싼 내용은 흥미로웠다.

우리가 노동의 대가를 이야기할 때, 노동이란 전통적으로 고용 관계가 분명한 사업장에서 이루어지는 재화와 용역의 생산, 그리고 그 대가는 이에 대한 임금을 말한다. 이 기준에 의하면, 음악가는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한데, 실제로 성공한 예술가들은 행정과 법적 관리를 도맡아 하는 변호사와 창작물의 유통망을 책임지는 회사와 계약하는 1인기업으로 활동한다.

스타시스템이 자리잡은 음악계에서는 슈퍼스타급 아이돌 그룹에 대한 노동착취가 이따금 보도되기는 하지만, 시장에서 성공할 만한 컨텐츠를 가진 문화생산자들은 대체로 생계와 창작환경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즉, 생계 문제를 호소하는 건 한 해 활동 수입만 수십억 원에 달한다는 ‘아이유’ 같은 슈퍼스타가 아니라, 소규모 클럽이나 행사장에서 가끔 공연을 하고, 우클렐레 레슨 아르바이트를 하는 돈으로 살아가는 ‘단편선’ 같은 음악가다.

토론 패널로 나온 단편선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음악가들이 음악활동을 통해 인간적인 생활을 지탱하고, 최소한의 창작행위를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달빛요정의 죽음이 더욱 아프고, 시나리오 작가 고 최고은 씨가 외로움 속에 죽어간 것이라며, ‘월디페 사건’의 핵심 역시 음악가의 생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태임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3.

젊은 문화생산자들의 불안정한 삶이 우리의 가슴을 찌르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국민이 고개를 끄덕이는 ‘일자리 만들기’에 뾰족한 방책을 말하기 힘든 것처럼, 생존과 창작에 대한 음악가의 권리를 보장할 방법도 쉽사리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회적인 생산물을 내어놓는 것이며, 이러한 사회적 생산에 대해 사회가 음악가에게 분배할 책임이 있다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음악가(특정 분야의 문화생산자)의 임금을 결정하는 것이 여전히 음악시장(특정 시장)이라는 사실에 부딪친다.

시나리오를 쓰거나 음악을 만드는 것은 물론 ‘일’이다. 그러나 문화/예술 분야의 일에 대한 대가는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지급되지 않고, 최종 완성물을 기준으로 지급된다. (그나마도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이 때문에 고액 개런티를 받지 않는 문화생산자의 대다수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창작활동에 매진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병행하거나 본업을 포기하기도 한다.

시장근본주의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창작에 들인 시간과 노력을 모두 포함해 최종 완성물이 팔리는 시장가격과 빈도를 고려해 수지가 맞지 않으면 과잉공급이므로 시장에서 퇴장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장근본사회에서 수지를 계산하는 것은 시장에서 판매되는 상품으로 환산된 노동의 생산성이다. 따라서 상품화할 수 있는 생산물을 만드는 노동에 대한 권리는 즉각적으로 산출 가능하지만, 상품화하기 힘들거나 극히 일부만을 상품화할 수 있는 문화생산자의 창작 활동은 여전히 사회적 ‘생산성’을 인정받는 ‘노동’인지 아닌지 모호한 상황 위에 있는 셈이다.

4.

생각해 보자. 현재, 우리사회가 향유할 문화/예술 창작물은 과도하게 많은가 혹은 부족한가. 또, 만약 문화생산자가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다른 임노동을 하겠다고 할 때, 우리 사회는 ‘생산력’이 높은 임노동을 제공할 능력이 과연 있는가?

백여 개의 채널이 시시각각 송출하는 컨텐츠를 보면서 한국의 문화산업이 충분히 융성하고 있지 않느냐고 대답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에 걸맞지 않게 한국에서 발행되는 책이나 발매되는 음반, 개봉되는 영화 편수는 절대적으로 적은 데다가 그나마 해외에서 수입된 작품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데이터를 보고 나면 문화/예술 분야, 특히 순수창작은 기근을 면치 못하는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서두에서 말했듯 현재의 임노동 구조에서 일자리가 늘어날 뾰족한 방법은 없다. 그 까닭은 전지구적 경기침체가 고용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완전고용’이란 목표가 사회 전반의 구조변화를 전제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목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호황이었던 80년대와 지금의 고용률이 백분율의 수치상 큰 차이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시장의 메커니즘으로 보더라도 가난한 문화생산자들에게 ‘돈 되는 다른 일을 하라’고 충고하는 것은 무책임할 뿐 아니라 문화예술에 대한 사회적인 욕구에도 반하는 행동이 된다. 오히려 이들이 문화생산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인간적인 생존과 창작환경을 보장하는 것이 ‘일자리 창출’ 효과도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문화예술에 대한 사회적인 갈증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4.

젊은 문화생산자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적합한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생존의 문제를 호소할 지경에 도달했다는 것은 사회의 분배시스템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회가 필요로 하는 노동이면서도 시장에서 교환되지 않는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노동의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하는 그림자노동의 신세가 가난한 문화생산자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젊은 문화생산자들은 ‘비어 있는 노동’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 분배의 문제에 참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가려진 노동이 노동의 그림자로 밀려나는 이유는 이러한 노동의 가치에 대한 정확한 대가를 산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생산자들이 자신의 일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때는 ‘정당한 대가’라는 산출 불가능한 기준 대신 보편적 복지나 기본소득의 지급 등을 요구하는 것이 적절한 방식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노동운동 진영도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임금투쟁의 메커니즘을 진화시켜야 한다.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 ‘일’이었던 작가에게 피자배달 ‘일’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는 동문서답을 계속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