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독일 노동정책 밀도 있는 분석
        2011년 05월 01일 02: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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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1월에 출간된 『복지국가 스웨덴』이 북유럽 사민주의를 바탕으로 한 복지 정책의 사례를 제공해 관련 논의를 풍부하게 했다면, 이번에 새로 나온 『통일독일의 사회정책과 복지국가』(황규성 지음, 후마니탓, 20000원)은 통일과 사회·경제적 평등을 실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유사한 독일의 사례를 통해, 복지 정책(연금 정책)은 물론 ‘사회정책 이전의 사회정책’이라고 불리는 노동정책(노동시장 정책과 단체협약 정책)에 대해 밀도 있는 분석을 제공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책 표지. 

    독일의 ‘사회국가성’에 대한 담론의 변화를 반영해 구분된 시기들은, 정책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 행위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바탕으로 서술된다.

    노동시장 정책과 연금 정책 영역에서는 연방의회에 제출된 법률안과 의사 회의록을 중심으로, 단체협약 정책 영역에서는 노동조합(노동)과 사용자단체(자본)의 성명서나 입장 발표, 언론 보도 등을 중심으로 담론을 분석했다.

    권력관계를 파악하는 중요한 지표인 의회의 의석 배분 상태와 노동과 자본의 조직률, 그 밖에 다양한 통계자료가 1백여 개의 표와 그림으로 제시되어 이해를 돕는다.

    실현되지 않은 통일 합의

    1990년에 형성된 통일 합의의 본질적 내용인 생활수준의 균등화를 임금 및 연금 소득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통일 합의는 실현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독일의 전통적 복지국가는 축소되었고 사회성은 약화되었다.

    독일의 계층 간 격차는 커졌고, 동서독 지역 간의 사회경제적 ‘분단’도 해소되지 못했다. 통일 독일이 맞이한 심각한 사회문제였던 실업 문제의 해법은 저임금의 비정규 일자리 확충과 자영업 창업 지원이었다. 실업 기간에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실업 부조는 기간이 단축되거나 지급액이 감축되었다. 연대성이 옅어진 대신 자기 책임성이 강조된 셈이다.

    통일 이후 시장성을 강화하는 정책 방향이 자리를 잡으며 이에 대항할 여지는 축소되었다. 최근 들어 열악해진 상황을 타개하라는 독일 국민의 요구가 커졌는데, 2009년 9월 사회적 시장경제를 위해 필요한 것을 묻는 설문에 독일 국민의 61% ‘사회보장 강화’라고 답한 것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375쪽).

    하지만 해법은 여전히 미흡하다. 합의가 아닌 (의석수를 반영한)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된 사안은 의회 다수당이 바뀌었을 때 번복될 수 있다고 기대되었으나, 실제 그렇게 되었을 때의 변화 폭은 크지 않았다. 게다가 ‘준비되지 않은’ 통일과 세계화 담론이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긴박하게 전개된 거대한 통일 담론에서 다양한 논의는 질식했다. 가령 동독 지역에서 사회보험 체제, 단체협약 체제, 재정 행정 체계가 수립된 뒤 양독 마르크의 태환을 고려해야 한다는 라퐁텐의 주장은 ‘반통일적’이라고 매도되었고, 사민당은 통화 통합 과정에서 일관된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동독 주민의 요구에 편승한 콜의 주도권에 끌려 다녔다. 결국 강력한 경제 담론 속에서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정치 영역이 온전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런 독일의 풍경이, 성장 우선주의, 사업장의 해외 이전, 그에 따른 정리 해고 및 비정규직화, 사회정책과 복지 확대에 대해 머뭇거리는 정치적 역량과 리더십의 결여로 나타나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을, ‘결과적으로’ 동일하다며 정당화할 준거로 활용될 수는 없다.

    저자가 강조하는 ‘맥락의 차이’에 주목한다면, 독일 사례는 이제 ‘일자리 없는 복지’와 ‘복지 없는 (열악한) 일자리’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사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고 구성원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균형감 있는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독일의 통일 이후 20년의 궤적을 그린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강한 제약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책임 있는’ 정치가 발휘되어야 할 필요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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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황규성

    충북 청주에서 자랐고, 1987년에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 2010년 같은 곳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2011년 2월까지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노동시장과 노사 관계 등 노동문제에 대해 공부했으며, 2006년과 2007년에는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노동연구원지부 지부장을 맡기도 했다. 사회정책 연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성숙한 복지국가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데 힘을 보태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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