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를 비워서 대구를 흔들자"
        2011년 04월 29일 07: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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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7 재보선 결과는 ‘손학규의 약진과 유시민의 몰락’으로 규정되는 듯하다. 맞는 말이다. 대중은 보수와 진보라는 낡은 구분법을 용인하지 않고 상식에 따라 움직였다. 대중의 상식은 보수의 아성 분당에서 한나라당을 심판했고, 노무현의 고향 김해에서는 유시민을 심판했다.

    단일정당 불필요 증명돼

    그런데 4.27 재보선을 규정하는 이 대표적 요소 외에, 우리가 주목해보아야 할 측면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사상 최초로 등장한 민주당의 호남 포기 전술이다.

    민주당은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호남지역에 자당 후보를 공천하지 않았다. 명백한 기득권 포기 상황이다. 막판에는 당의 대표급 의원들이 민노당 후보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가 ‘야당 단일후보’라는 이유 였다. 이것은 몇 가지 의미가 있다.

       
      ▲순천 유세 장면(사진=민주노동당) 

    우선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야4당 간 선거연합이 충분히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일부에서는 2012년 총선에서 범야권의 선거연합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합당론자들은 2012년 총선에서 선거연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반한나라의 기치를 든 모든 야당이 합당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러나 2012년 총선은 8개월 뒤에 있을 대선의 전초전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런 이유로 2012년 총선 시점에서 당을 장악하고 있을 대선 예비권력은 반드시 선거연합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호남당이 호남 공천을 포기하면서까지 선거연합을 해야 할 강력한 유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호남뿐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노회찬, 심상정 같은 지역구는 어차피 민주당이 출마해도 당선이 불가능한 지역이다. 따라서 이런 지역 역시 선거연합이 가능하다.

    그리고 여기서 ‘선거연합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는 굳이 모든 야당이 다 합당해서 하나의 당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뜻이 된다.

    한나라 후보 없는 야권 단일후보라니?

    두 번째는 세력연합이 아닌, 가치연합을 중심으로 한 호남 포기전략이 실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에 호남민중들은 약간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어차피 한나라당 후보도 나오지 않은 마당에 야권 단일후보라니? 논리적으로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호남에서의 야권 단일후보라는 얼토당토 않는 이런 황당한 포장지 때문에 빚어진 비극이 하나 있다. 사실 민주당의 호남 포기전략은 정치권이 자신의 기득권을 스스로 포기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다. 이 부분의 의미를 확대하면 ‘민주당=호남당’이라는 규정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매우 강력한 ‘정치 쇼’였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처럼 좋은 소재를 개발해 놓고도 정치적 홍보를 극대화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워낙 분당과 강원도의 의미가 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나라당이 나오지도 않은 호남에서 야권 단일후보를 내세웠다는 논리적인 황당함 때문이다. 야권 단일후보라는 세력연합의 구호가 아니라 복지동맹이라는 가치연합을 내세웠다면 이런 황당함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다음에는 야권 단일후보라는 황당한 가치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라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민주당의 호남 공천 포기 전략은 ‘야권 단일후보’가 아니라 ‘복지동맹 후보’를 파트너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다른 야당과 함께 가칭 <복지동맹> 같은 상위의 선거연합체를 결성하고, 호남 전부 혹은 상징성이 높은 광주 같은 곳에서 공천권을 <복지동맹>에 일임한다면 한국정치사에 지각 변동이 일어난다.

    지역 구도 해체, 가치 중심 정치

    원래 지역 간 대립구도란 영남과 호남이 서로 의존하는 구조다. 이런 상호 의존적인 구조 속에서 민주당이 ‘보편적 복지’를 위해 호남공천을 포기하고, 복지동맹이라는 선거 연합체에 공천 기득권을 위탁하는 모습을 보이면, 대중들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렇게 되면 영남의 민중들이 상식적으로 한나라당을 찍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지역구도 자체가 흔들린다는 얘기다. 이것을 나는 민주당이 광주를 비워서 대구를 흔드는 전략이라고 부른다.

    만약 지금과 같은 지역분할 구도에서 세력연합의 기치를 내세운 통합당이 만들어지고, 이른바 야권 단일후보가 전 선거구에서 한나라당과 충돌하는 구도가 반복된다면, 한국정치는 단순히 영남에서는 한나라당을 찍고 호남에서는 민주당을 찍는 구태가 반복될 뿐이다.

    반대로 민주당이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호남 공천을 포기하고 <복지동맹>에 공천권을 위임할 수 있다면, 영남권에서도 <복지동맹>후보들이 크게 약진할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지역 구도의 지배력을 붕괴시켜야 우리 정치사는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다. 4.27 재보선에서 보여준 민주당의 호남 공천권 포기는 이런 차원에서 큰 뜻을 지니지만, 야권 단일후보라는 형식을 취하는 그 의미가 퇴색하고 말았다. 민주당의 호남 포기 전술은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가치동맹의 형태로 진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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