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명 조합원, 27개 노조 만들었다
    변방에서 유쾌한, 새 주체들 등장
        2011년 04월 25일 09: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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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14일은 언론들이 크게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청년유니온으로서는 역사적인 투쟁이 진행된 날이다. 3월 정기총회 이후 진행했던 청년유니온의 4차 노조설립 신고가 다시 고용노동부로부터 반려되자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조합원 54명이 총 27개의 청년유니온을, 그러니까 2인씩 노조를 설립하는 ‘청년유니온 2인노조 설립신고 투쟁’에 나선 것이다.

    중국집에서, 갈비집에서, 자취방에서

    200여명의 조합원 숫자에 불과한 노동조합에서 조합원 54명이 직접 각 지역에서 움직였다는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이 싸움이 노동조합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을 재고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청년유니온은 매우 성과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법에 의하면 2인 이상의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설립할 권리를 가진다. 청년유니온은 구직자 1인, 직장이 있는 청년 1인씩 각 지역에서 짝을 지어 노조설립신고를 제출했다.

    신고서류에 기재된 총회 장소부터 가관이다. 수원역앞 롯데리아, OO중국집, OO갈비, 심지어 자취방 등에서 2명씩 짝을 지어 총 27개의 청년유니온이 총회를 개최하였으며, 이에 근거하여 위원장과 회계감사를 선출했고 조합설립신고를 제출했다.

       
      ▲군포시청에 노조설립 신고서를 내고 ‘인증 샷’ 찰칵.(사진=청년유니온) 

    어느 지역에서는 10년만에 처음 제출된 노조설립 신고였다. 10년… OECD 가입이니, G20이니 뭐니 하며 부산을 떠는 이 나라 어떤 도시에서는 10년 동안 노조설립 신고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얘기다. 10년만에 처음 신고한 노조가 바로 청년유니온14(1부터 27까지 번호가 붙어있다)였다.

    다른 곳에서는 공무원들이 당황해서 행정이 장난인줄 아냐고 비아냥거리다가 법을 찾아보고는 꼬리를 내렸다. 이렇게 나눠서 설립하면 교섭력이 약해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한 조합원은 "그게 무슨 상관이죠?"라고 반문했다.

    어떤 조합원은 시청 직원이 "본인이 위원장이시죠?"라고 질문하자 덜컥 겁을 먹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22살의 한 청년이 언제 노동조합의 위원장 소리를 들어볼 기회가 있었을까?

    22세 알바청년, 노조위원장 되다

    서울, 고양, 군포, 수원, 대구, 부산, 청주 등 각지에서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설립은 노동자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당연한 권리라는 것을 몸소 느끼고 보여주었다. 누구가의 눈에는 단순한 퍼포먼스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싸움에 동참했던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이 느낀 바는 다르다. 자기 이름이 적혀있고 온전히 자기 손으로 기재한 노조설립 신고서를 제출하고 돌아온 조합원들의 얼굴에서 필자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큰 자부심과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청년노동자다. 우리는 노동조합이다.

    처음 청년유니온이 출범하면서부터 청년유니온을 노동조합으로 볼 것이냐 말 것이냐, 아니 더 나가서 일부에서는 ‘너희가 노동운동이 뭔지는 아느냐’는 비아냥에 시달렸다. 우리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우리는 노동조합이다.

    2010년 3월 18일 각계의 응원과 우려 속에 청년유니온은 첫 번째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 그리고 며칠 후 결국 반려 통보를 받았다.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유니온 위원장을 비롯해 조합원들이 명동거리에서 소복을 입고 신문고를 울리고 컵라면을 끓여먹고 길바닥에 앉아 토익책을 보는 플래시몹을 연출했고 이것이 집시법 위반으로 고발되어 아직까지 재판을 받고 있다.

       
      ▲명동에서.(사진=청년유니온)

    플래시몹을 진행하고 다시 재창립총회를 거쳐 4월 13일 2차 노조설립 신고서를 제출했다. 고용노동부는 보완 통보로 맞섰고 우리는 보완할 것은 보완하고 물러설 수 없는 지점은 사수를 택했다. 4월 19일 다시 최종반려 통보를 받았고 우리는 고용노동부 담당자 항의 면담을 진행했다.

    우리의 분투기와 저들의 ‘위헌적 고집’

    5월 우리는 다시 3차 노조설립 신고서를 제출했고 다시 3일후 또 반려 통보를 받았다. 포기할 수 없었다. 청년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임을 갓 20살이 넘은 청년들도 모두 알고 있다.

    청년유니온은 이후 국가인권위에 이 문제를 진정하게 되었고 민변과 함께 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처분 취소 소송을 진행했다. 2010년 10월 만신창이가 된 국가인권위조차도 고용노동부장관에게 구직자들의 권리가 제한되고 있는 현행 노동조합의 설립과 관련한 법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권고안을 냈다.

    그리고 11월 행정법원은 비록 청년유니온의 노조설립신고의 절차상 문제로 최종 반려가 적법했다고 판결하기는 했지만(사실 아직도 이 결정에 승복할 수 없다) 구직자가 다수이든, 소수이든 구직자들도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으며 심지어 채용조건을 가지고 경영자단체들과 단체교섭도 진행할 수 있다는 역사적인 판례를 이끌어냈다.

    해를 넘겨 2011년 청년유니온은 정기총회를 다시 노조창립 총회로 규정하고 4번째 노조설립 신고서를 3월 7일에 제출했다. 고용노동부는 보완 통보로 다시 한번 시간끌기를 하고 유니온은 보완에 응할 수 없음을 천명했다. 결국 4번째 반려. 그리고 지난 4월 14일 27개의 청년유니온이 노조설립 신고서를 다시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누군가는 말한다. 청년유니온이 지나치게 법내 노조 지위에 목을 매는 것이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청년유니온의 활동에서 법내 노조가 아니기 때문에 무언가를 못해온 것이 아니다. 30분 배달제를 폐지시켜내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의 노동조건 문제를 제기하고 청년들의 가계부를 수집하고 공개하는 활동을 해왔던 것이 법내 노조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노조설립 신고? 대단한 거 전혀 아냐

    어쩌면 앞으로 몇 년 동안 청년유니온은 법내 노조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 우리가 노조설립신고 투쟁을 하는 이유는 현행 법제도의 불합리성과 청년노동자, 구직자들의 권리를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싸우지 않으면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는다. 그리고 싸우지 않고서 얻어지는 것은 온전히 우리가 얻어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에 제출한 총 27개의 청년유니온들 모두 반려 통보가 왔다. 이유는 하나같이 일관된다. 노동조합에 구직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명확해졌다. 고용노동부가 청년유니온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절차상의 문제도 아니고 장관의 말대로 간부가 백수여서도 아니고 무엇도 아니다. 구직자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법원이 판결해도 인권위가 권고해도 안된다는 것이다.

    2인 노조설립신고 27개가 반려되어서 우리의 싸움이 끝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27개의 노조설립신고 반려에 대해서 다시 행정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법에 근거한 절차도 내용도 적법한 이 27개의 노조설립신고를 반려한 고용노동부의 행정에 대해서 행정법원은 다시 어떤 판결을 할까?

    한 조합원의 말대로 이제 청년들에게 노조설립 신고는 무슨 대단한 일이 아니다. 조합원들이 심심할 때마다 시청에 가서 제출하면 되는 것이고, 심지어 아침 출근길에 들러서 제출하고 올 수도 있는 일이다. 일부 조합원들에서는 신규조합원이 들어오면 노조설립 신고서를 직접 작성해서 제출하고 오는 것을 의무화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노동조합 설립이 반드시 비장한 각오 속에서 진행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청년유니온에게 노조설립신고는 즐거운 연례행사와 같은 것이고 조합원들을 단련시키는 실천이며 유쾌한 퍼포먼스이기도 하다. 그럼 또 어떤가? 우리가 스스로를 노동조합이라고 생각하고 이미 활동하고 투쟁하고 있는데.

    유쾌한 투쟁으로 무장한 새로운 주체들

    지난 수십 년 동안 노동운동의 상징과도 같았던 한 대기업노조에서 조합원 자녀들에게 채용시 가산점을 주는 단협요구안을 대의원대회에서 공식적으로 통과시킨 것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노동운동의 종식을 말한다.

    너무 성급하게 말하지 말자. 노동운동의 한 노선이 저물어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한 노선이 저물어가는 와중에 또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노선이 새로운 노동운동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운동의 변방 한 구석에서 유쾌한 투쟁으로 무장한 ‘새로운 운동주체’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혹시 너무 느린 것이 아니냐고? 정말 미안하게도 우리는 그런 걱정을 하는 이들과는 다르게 아직 생물학적 나이가 너무나 젊다. 우리는 아직 노동조합을, 그리고 노동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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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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