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리 1호기 없으면 봄날이 따사로울 텐데"
        2011년 04월 25일 08:08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수명이 지난 고리원전 1호기 전면폐쇄 및 고리원전 핵단지화 반대’ 단식 4일차인 오늘(24일), 저는 조금 있다가 장산 대천공원에서 1인 단식을 진보신당 당원들의 선전전과 함께 진행할 예정입니다. 평일에는 부산시청 앞에서 1인 단식을 하는데, 일요일에는 부산시청 앞에 시민들이 많이 없기 때문에 부득이 장소를 이곳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제 피켓이며 돗자리, 유인물 등을 챙겨서 시민들을 만나러 가야될 것 같네요.

       
      ▲단식 농성 중인 필자. 

    단식 중 시민들과의 대화

    고리원전 1호기 전면폐쇄 단식투쟁을 하면서 여러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응원을 하고 격려를 해주는 시민들, 왜 1호기를 폐쇄해야 되는지를 물어보는 시민들, 대안 없는 원전폐쇄에 반대한다는 시민들, 다양한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단식투쟁이라 힘이 없어서 그런지 제 성격과 다르게 조분조분 설득을 하였습니다.

    “어르신, 고리 1호기가 지난해 생산한 월 발전량은 지난 1월 총전력 판매량의 1% 미만으로 전력 수급에 영향을 전혀 주지 않습니다. 때문에 고리 1호기의 가동 중지 및 폐쇄는 전력수급과 경제성을 따져서 폐쇄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수명 연장 직후 발생했습니다. 핵발전소 사고가 나면 어떤 대응책도 소용이 없습니다. 폐쇄만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그런데, 구의원이 올바른 의견을 알리는 것도 좋지만, 꼭 단식과 같은 극단적인 투쟁을 해야 하냐고 묻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저 역시 누군가 출구전략도 없이 무기한 단식투쟁을 하겠다면 일단 먼저 말리고 볼 것입니다.

    다만 저는 이 나른한 평범한 봄날에 무릇 생명과 자연을 전멸시킬 가공할 만한 존재가 평범한 존재로 인식되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주변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1인 단식 투쟁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무모함이 합리적 실천보다 더 큰 울림을 주기를 기대하는 저는 여전히 제멋대로인 것 같습니다.

    25년 전, 1986년 체르노빌 원전폭발 사고 이후 반경 30km 내에는 지금도 여전히 인간의 거주가 불가능합니다. 죽음의 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고리원전을 기준으로 반지름 30km 내에 부산, 양산, 울산시민이 322만 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불감증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수명 연장 직후에 발생했습니다. 이 사실을 고려한다면, 30년 수명이 끝난 고리원전 1호기를 폐쇄하지 않고 재가동을 하는 것은 언제든지 이곳을 322만 명의 목숨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연을 파괴하는 죽음의 땅이 되어도 좋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런 역사적 현실을 망각했는지 녹색성장이라는 미명 하에 원전산업을 확대하려는 자본과 MB정부는 전 세계적인 탈핵 대안에너지 창출의 흐름에 역행하면서 ‘죽음의 땅’을 막으려는 반핵여론이 잠잠해 지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전하게 작동될 수 있는데도 사용 연한을 이유로 원전을 폐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원전마피아들의 확신은, 말 그대로 그들이 마피아라서 가능한 것 같습니다.

       
      ▲고리 1호기 폐쇄를 촉구하는 시민 집회. 

    저는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수많은 시민들이 후쿠오카 원전사고로 인해 방사능 비를 걱정하면서도, 인근의 고리원전의 위험에 대해서는 불감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위 정부와 전문가가 안전하다고 말하는데 믿고 따라야 되지 않겠냐는 일상적인 삶에서의 평범한 사고와 의심하지 않는 사고가 바로 불감증이겠지요.

    저는 원전에 대한 의심의 눈길을 커튼 뒤로 숨기고 평범함으로 치장하려는 위험과 폭력과 악의 징후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어리석게도 각성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위험과 폭력에 대해서는 감각적으로 반응하고 집단적 여론을 형성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비가시적(invisible)이고 추상화된 폭력이나 위험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거나 양비론으로 일관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사고의 핵심에는 수명 연장이 있다

    우리는 올해 최근의 두 개의 큰 사건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아랍민주화 운동이고 하나는 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입니다. 저는 이 두 개의 사건에서 징후적인 공통점을 읽었습니다.

    아랍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독재정권에 의한 구체적 폭력으로 그 나라 인민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학살이라고 일컫는다면, 일본 지진과 쓰나미에 의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일본인들이 사망하는 것 역시 원전이라는 살인기계에 의한 학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 예멘, 리비아 정부의 국가공무원인 군인에 의한 시위대 진압을 위한 발포도 따지고 보면 상부명령에 따른 공직자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며, 미국의 드리마일, 러시아의 체르노빌,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역시도 공직을 수행하는 원전 공무원들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직자의 역할 수행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가라는 사건에 대한 맥락(Context)의 차이는 있지만 국가에 의해 사람이 죽었다는 사태의 본질(Essence)은 같습니다.

    우리는 십 년을 간격으로 발생하는 대형 원전사고를 목도했고, 그 사고의 핵심이 수명연장이 다 된 원전의 가동에 의해 발생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측가능한 미래의 대량학살 기계가 고리원전 1호기일 수도 있는데, 이것을 지극히 평범한 것으로 사물화하고 국가와 기술관료의 판단에 맡기는 것은, 커튼 뒤에 숨어서 우리 스스로 파멸해도 좋다는 부정의 의지를 주억거리는 것 외에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되겠습니까.

    "엄마, 아빠 세대는 모두 꺼져버리라고 해"

    최근에 구드룬 파우제방의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독일 전역(통일 전)이 핵 폭발로 인해 화상이나 원자병, 티푸스와 같은 전염병 속에서 사람들은 죽어가고 이후 굶주림과 약탈로 인해 존재하는 모든 것이 파멸되는 과정을 작가는 섬뜩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핵 폭발 이후 팔다리를 잃고, 귀와 코, 눈이 없어지고 진물이 흐르는 아이들은 부모세대에 대한 증오가 너무 커서 벽에다 ‘천벌 받을 부모들’이라는 글을 쓸 정도입니다.

    “난 더 이상 그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아. 엄마 아빠 그리고 엄마 아빠 세대는 모두 꺼져 버리라고 해. 그 사람들은 모든 것을 막을 수도 있었어.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예상했다고.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바라보기만 했어. 수렁에서 우리를 보호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어. 우리한테 이렇게 조금밖에 남겨 주지 않을 거면서 도대체 왜 우리를 낳은 거야?”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177쪽에서)

    소설이지만, 너무도 생생한 글들을 읽으며 만약 고리원전에 이와 같은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이제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었다라고 더 이상은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다.”라는 파우제방의 경고는, 지금 고리원전을 위태롭게 바라보는 우리의 참혹한 미래상에 대한 예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습니다.

    때문에 고리원전에서 직경 15km 내에 있는 해운대구의 의원인 저에게 봄날의 여유로움 속에서 행복한 일상을 꿈꾸기에는 제 마음은 이미 혹한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평등·생태·평화·연대’를 강령으로 하는 진보신당 소속의 의원이기에, 미래의 대량학살 기계인 고리원전 문제에 대해서는 적어도 일상적 투쟁의 문제로만 사유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일상 평화의 위협

    음, 벌써 시간이 다 되었네요. 당원들과 이제 우리의 내용을 알리기 위해 밖으로 나갈 때가 되었습니다. 오전에 저 홀로 사무실에서 물끄러미 창밖을 한참 내다보았습니다. 도로변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이 바람결에 따라 잔잔히 흔들리고 있더군요.

    가로수 뒤쪽으로는 장산으로 향하는 숲속 등산길이 있습니다. 드문드문 몇 분의 시민들이 봄 햇살을 이고 숲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마 계속 길을 가시다보면 메타쉐콰이어 나무 숲길을 만날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등산하는 분들에게 괜히 시샘이 났습니다.

    창밖의 풍경은 봄날의 일상이고, 그 초록빛의 일상은 여유롭고 한가로워서 어떤 사태도 제 머리 속에는 지금 떠오르지 않습니다. 새소리가 들리는 지금 봄날의 나른함이 제 몸으로 들어와 저에게 소풍가자고 재잘거리는 듯한 환상에, 순간, 저의 삶이 좀 더 풍요로웠으면 하는 막연함만 언뜻 떠오릅니다.

    플라타너스 가로수 너무 해운대 장산 메타쉐콰이어 나무 숲길을 행복하게 걸을 수 있는 언젠가를 생각하며, 우리 일상의 평화를 위협하는 고리원전 1호기 전면 폐쇄와 핵단지화 중단을 위한 투쟁을 위해 이제 서둘러 나갈렵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