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소득, 체제 내부 전략이며 이행 전략"
        2011년 04월 19일 01: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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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소득: 신자유주의적 노동과정에 조응하는 노동계급의 체제 내부 전략이자 이행전략

    나는 앞서 보편적 복지론이 사실은 선별적 복지론과 함께 자본축적을 안정화하는 자본축적체제의 제도적 일부임을 비판했다. 또한 그것은 이행전략이 배제된 자본에 포섭된 그 체제의 일부이며, 노동계급의 당파성이 거세된 자본의 정치임을 지적했다.

    그리고 여기서 최근 당내 일각에서 보편적 복지론에 입각해 주장되고 있는 복지국가 단일정당론이 하다못해 왜 보수정치의 기획으로서도 지금의 신자유주의 축적체제에 대한 정치기획일 수 없는지를 조금 더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복지국가 단일정당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보편적 복지론은 일개 복지정책이 아닌 ‘복지국가’를 지향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복지는 일개 정책이 아니라 전체의 시스템으로써의 축적체제를 특징짓는 성격이다. 그것은 따라서 국가를 구성하는 수많은 심급들의 총체이다.

    그리고 그 총체의 중심은 임노동 관계이며 이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사각지역과 시장실패의 요인들을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통해 보완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축적체제에서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러한 국가 시스템의 중심이 되어야하는 임노동 관계가 노동과정의 변화 속에서 새롭게 바뀌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이전, 2차 세계대전에서 70년대 이전까지의 노동과정에 입각한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사회환경에 가장 적합한 체제 전략을 “새로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복지국가 단일정당론의 무지와 몰역사성

    이렇듯 ‘낡은 것’을 ‘새 것’으로 인식하는 그들의 착시는 지금의 자본과 축적체제를 분석할 수 없는 무지와 몰역사성에 기인한다. 그들은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실체’이며 따라서 그것은 실현 가능한 모델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북유럽 국가들은 ‘모델’일 뿐 과정과 역사가 아니다. 그 국가들이 지금의 시스템을 갖추기까지 맞닥뜨리고 투쟁했던 역사적 조건과 과정, 노동과정의 성격을 간과한다.

    따라서 지금 신자유주의의 폭압 속에 신음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역사적 조건 및 노동과정과 북유럽의 그것들 간의 차이점은 간단히 무시된다. 경로와 역사가 없는 사회는 없다. 이러한 역사적 조건과 환경, 노동과정의 특성이 무시된 ‘실체’는 건설을 위한 투쟁의 역사가 없는 천상의 이데아와 다르지 않다.

    반면 반자본의 복지로서 기본소득제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축적체제의 역사적 조건으로부터 요구된다. 우선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노동과정에 조응하는 축적체제의 일부일 수 있다. 지금 발생하고 있는 ‘청년 실업’과 같은 실업의 문제는 과거의 축적체제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던 상대적 과잉인구로써의 실업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과거 이러한 실업은 경제주기를 통해 발생하며, 불황국면에서 자본은 다시 실업이라는 상대적 과잉인구의 흡수로부터 축적을 재개하게 됨으로써 실업은 경기순환을 조절하던 메커니즘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실업은 자본이 임노동에 대한 의존성을 탈피하고, 노동과정을 임노동 관계를 넘어서 전 사회에서 조직하는, 착취를 임노동의 잉여노동의 착취를 넘어 사회적 노동의 착취로부터 획득하는 신자유주의의 항구적 특징이다.

    따라서 이 체제는 안정적인 자본축적 속에서 벌어지는 사회불안을 본질적 특징으로하며 모든 인민을 생존의 위협 속에 몰아넣는다. 과거 이러한 위협은 강제된 임노동을 부과하는 수단이었지만, 임노동의 의존을 탈피한 자본에 의한 지금의 생존의 위협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실질적인 생존에 대한 말살이다.

       
      ▲사진=사회당

    안정적 자본축적 속의 사회적 불안

    기본소득제는 사회적 불안 속에서도 자본의 안정적 착취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원천인 사회적 노동에 대한 착취를 방어하고, 사회적 노동의 정당한 대가로서 기본소득을 모든 인민에게 차별없이 지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제는 한편으로 신자유주의 축적체제의 착취 형태에 조응하여 체제 내적으로 노동의 권리를 옹호하는 체제 내부 전략이다.

    그렇다면 이런한 기본소득제는 과거 복지국가를 통해 자본을 위한 축적체제로써 작동했던 사민주의의 전략과는 무엇이 다른가? 기본소득제는 자본축적체제의 일부이자 체제이행 전략이 거세된 사민주의적 복지국가 전략과는 달리 노동계급이 자본주의를 지양하는 새로운 체제의 건설을 예비하는 이행 전략일 수 있는가? 난 단호히 그러하며 그렇게 조직될 수 있고, 그렇게 조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그러한가?

    첫째, 과거의 축적체제에서 사민주의의 복지국가는 그 자체로써 두 계급 모두에게 계급 간의 타협을 전제하는 것이었지만, 신자유주의에서 기본소득제는 적대적 두 계급이 동일한 하나의 제도를 둘러싸고 적대적 전략으로 대립하는 계급적대의 전선이다.

    기본소득제가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동계급의 체제이행 전략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기본소득제는 오히려 ‘완전경쟁시장’을 실현하려는 우익 경제학자들에 의해 오래 전 고안되었고 일부 우익들에게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주로 두 부류로 하나는 자본주의적 노동이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강요된 강제노동임을 부인하며, 이것을 개인의 이윤극대화를 위한 인간의 본성으로 이해함으로써 기본소득이 이러한 인간본성의 실현에 보다 적합하다고 이해한다.

    다른 하나는 임금보조금 형태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여전히 생존을 위해 노동해야 하는 강제노동의 조건을 유지하지만 자본의 입장에서 이러한 임금보조금 성격의 기본소득은 저임금과 ‘완전한 노동유연성’을 확보하는 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을 주목한다.

    우파가 기본소득제에 주목하는 이유

    완전경쟁시장을 이상적 자본주의로 믿는 이들은 임금의 하방 경직성이 없다면 완전고용과 완전경쟁시장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으며, 기본소득을 이러한 부르주아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조건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좌파는 기본소득제가 생존수준 이하로 책정됨으로써 콤보임금(기본소득+임노동에 의한 임금)의 형태로 저임금과 고용불안을 보다 보편화하는 도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반드시 적정한 사회적 삶이 유지될 수 있는 수준에서 시행될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한다. 이것이 기본소득제가 좌파적 전망과 노동계급의 체제이행 전략으로써 위치지워질 수 있는 최소 조건이다.

    즉, 기본소득제에서 두 계급은 공통의 요구로써 마주치지만 여기서 계급간 타협의 여지는 없으며 기본소득제는 두 적대적 계급의 적대적 전망과 전략이 부딪히는 치열한 전장이다.

    둘째, 신자유주의는 임금노동뿐 아니라 사회적 노동까지도 착취하는 극렬한 착취체제이지만 동시에 노동의 사회성이 상품관계로 분절되어있던 자본주의적 노동관계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노동관계와 사회관계를 잉태하고 있는 체제임도 분명하다.

    삶이 노동과 구분되지 않고 소비가 생산활동과 구분되지 않는 새로운 사회적 환경은 자본에 의해 오히려 삶 그 자체가 착취되고, 소비 그 자체가 ‘착취받는 생산노동’으로 조직된다. 기본소득제는 이러한 사회적 노동과 인간의 행위에 대한 정당한 권리로 지급됨으로써 강제된 임금노동이 아닌 인간적인 것으로서의 노동이 삶과 일치되도록 조직해 나갈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제공한다.

    자본주의는 인간본성의 자연스런 결과가 아니다

    이것은 제도의 효과가 아니라 제도 위에서 인간이 조직해 가야 하는 새로운 인간형을 향한 스스로의 운동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인간은 강제된 노동 속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위와 삶을 조직하도록 훈육된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인간의 본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회가 아니라, 이러한 체제로부터 인간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도록 강제적으로 훈육함으로써 유지되는 사회이다. 기본소득으로부터 획득된 삶의 시간을 개인의 물질적 이익을 위한 임금노동에 사용할 것인가, 인간으로써의 자기개발과 서로를 위한 사회적 행위를 만들어가는데 사용할 것인가는 제도 그 자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제도를 둘러싼 사회적 운동의 결과로써 형성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체제를 향한, 새로운 인간의 실현을 위한 체제이행으로써의 운동이다.

    셋째, 기본소득제는 사회적 노동의 핵심이 되는 지식과 정보에 대한 배타적 사적 소유권을 폐지하고 그것을 사회화함으로써 상품과 상품의 관계로 분절되어 있는 사회적 생산의 총체성을 형성해가는 ‘사회화 전략’과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지식정보 산업에서의 지적소유권의 폐지는 매우 과격한 주장처럼 보이지만 실제 지금과 같은 형태의 배타적 지적 소유권이 형성된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해도 음악파일의 다운로드는 화폐의 지불없이 자유롭게 이루어졌고, 소프트웨어 개발환경을 저해하는 카피라이트도 도입 초기에 어떠한 좌파적 정치마인드도 지니고 있지 않은 개발자들 스스로에 의해 격렬히 저항받았다.

    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조차 (심지어 독점소스의 대명사 MS조차도) 최근들어 카피라이트가 아닌 오픈소스에 의한 개발환경을 도입하고 있거나 하려하는가. 그것은 지식과 정보는 배타적 소유권에 의해 사용과 변형에 제한을 두지않고 보다 많은 이들이 제한없이 접근하고 이용하며 변형할 때만이 그 자신의 네트워크 효과에 의한 최상의 효율을 갖추기 때문이다. 지식과 정보는 그 어떤 것들보다도 그 생산활동과 소비활동이 구분되지 않는다. 즉, 그것은 상품으로 생산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사회적 관계이며 삶의 내용이다.

    지적소유권을 폐지해야

    지적 재산권의 폐지(혹은 지적 공산권의 확립)를 통해 모든 지식과 정보는 공공에 의해 생산되고 향유되는 공산재(혹은 꼬뮨재)로써 인민 모두를 위한 사회적 인프라로 자리잡게 된다. 흔히 우리가 알고있는 공공재는 생산이 아닌 그 소비에서 그 공공성을 발견하는 반면, 공산재는 그 생산과 소비 모두에서, 오히려 그것의 구분없이, 소비되어 사라지는 재화로서가 아니라 공유됨로써 복제되고 강화되는 사회성 속에서 그 공산성을 발견한다.

    이러한 사회적 인프라로서의 지식과 정보는 국가에 의해 개인이 배타적으로 그 접근을 제한하지 못하도록 관리하며,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변경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호한다. 또한 이것이 기업에 의한 이윤활동에 이용될 수 있도록 하되, 이를 통해 창출된 이윤의 대부분은 사회의 공산재를 이용하여 얻어진 소득이므로 과세를 통해 국가에 귀속될 수 있도록 법제화하여야 한다.

    아주 단순한 예를 들면, 이러한 방식을 통해 현재 기업이 카피라이트로 인해 소프트웨어 구입을 위해 사용하는 모든 자본이 지적 공산권의 환경 하에서 모두 세금으로 환수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지적 공산권의 확립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세원의 아주 작은 일부의 예제에 불과하다.

    기본소득은 지금의 조세수입으로부터 그 재원을 모두 충당하려 해선 안되며, 사회적 노동이 사적소유권에 의해 자본에 의해 무상으로 수취되는 부분들이 사회로 환수될 수 있도록 제도화함으로써 기본소득의 재원을 확보하여야 한다. 점점 더 많은 기업, 결국은 모든 기업들이 이러한 사회적 인프라에 기반하게 해야하며 이러한 방식을 통해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점차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넷째, 공장별 혹은 부문별로 분할되어 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단절되어 있는 계급투쟁을 기본소득의 인상을 위한 단일한 경제적, 정치적 투쟁으로 조직함으로써 새로운 진보정당은 총자본과 총노동의 확연한 계급전선을 구획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실질적 해법

    이것은 지금까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실질적인 해법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현재 비정규직 노동운동은 고용안정성 확보와 동일노동-동일임금의 두 원칙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방향은 기본소득제 도입을 통해 고용안정성을 포기하고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중심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고용안정성을 포기하는 것은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위해 자본에게 양보하는 협상의 내용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에 대한 양보가 아니다. 기본소득제를 통해 확보한 삶의 시간에서 하루 8시간이 임금노동으로 소비되도록 조직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한다. 기본소득제 하에서 노동은 더 이상 더 많은 화폐의 취득을 위해 소비되는 임노동에 종속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노동계급의 자기가치화와 사회적 삶을 위해 이용되고 강화되어야한다.

    기본소득제 하에서 공장별로 부문별로 분할되어 있던 노동계급은 보다 많은 기본소득을 쟁취하기위한 단일한 정치투쟁으로 집중되고 자본에 의해 분할된 노동계급의 단일한 전선을 확보하여야 한다.

    8. 마치며: 기본소득제를 축으로한 당내외 좌파의 재결집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까지 3회에 걸쳐 첫째, 진보신당 당내 논쟁이 통합/독자의 구도에서 전환해 복지담론을 중심으로 진보진영의 새로운 내부전선을 구획할 것, 그리고 그것이 당 내부의 전선만이 아니라 전체 진보진영이 재분할-집결하는 기준점이 되도록 노선논쟁을 확대 조직할 것을 제안했다.

    둘째로는 신자유주의 축적체제의 특징과 왜 이러한 체제에서 진보진영의 복지담론으로써 보편적 복지가 좌파적 전망이 되어선 안되는지 밝혔으며, 셋째 체제이행 전략으로서 기본소득제가 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좌파적 전망이어야 하는지를 서술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진보진영을 포위, 압박해오고 있는 ‘통합’ 논의는 애초에 진보정당 간의 분할을 초래했던 원인들을 유지한 채 세력 간 재편에 의한 통합을 강요하고 있다. 진보정당들이 복수의 당들로 분할되어 있는 원인은 단순히 진보신당 내에서 논의 되어왔듯이 ‘자주파의 패권주의와 종북주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특정 한 정파의 노선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정파조직, 분할된 진보정당들이 다함께 구성하고 있는 낡은 정파정치 지형 그 자체의 문제이다. 따라서 지금 진보정치의 낡은 내부전선을 전환할 어떠한 기획도 없이 진보정당들을 강제하고 있는 ‘세력 간 통합의 논의’는 다시 분당 이전의 낡은 정파지형으로 진보정치 전체를 후퇴시킬 위험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노선투쟁

    이 글은 이러한 통합 논의의 위험 속에서 진보정치를 혁신하고,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기위해 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노선 투쟁’을 제안하는 시론적 성격의 글이다.

    이 글은 진보신당 당원으로써 당내 논쟁을 촉구하기 위해 쓴 글이지만, 이 글이 대상으로 논쟁을 요구하는 이들은 진보신당뿐 아니라 민노당과 사회당 혹은 더 넓게는 진보정치의 재구성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관심이 있는 국민참여당 내의 당원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글이 촉구하는 것은 ‘새로운 노선투쟁’이라는 점에서 이념정당을 추구해야할 새로운 진보정당의 노선과 내부전선은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이에 대한 진보정치의 전략적 방향과 계급정치의 전망이 무엇인지로부터 지금의 정세를 돌파할 정치노선을 도출하고, 그러한 차이로부터 노선투쟁이 주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 논쟁은 각 진보정당의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진보적 연구자들 역시도 새로운 진보적 전망을 생산하기위해 이 논의에 함께 참여하여야 한다.

    이 세편의 연재 중 1편이 진보정당의 활동가들, 특히 진보신당의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2편과 3편은 연구자들의 참여를 요구하는 논쟁의 시론 성격의 글이었다.

    지난 3.27 당대회의 결정을 통해 진보신당은 지금 당이 진행해 나가야할 노선투쟁의 성격을 명확히했다. 그것은 진보의 재구성은 세력의 재구성일 수 없으며 따라서 그 논의는 ‘통합’에 관한 논의일 수 없다. 진보의 재구성은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며 따라서 이것은 당 건설 투쟁이다.

    진보신당 내의 사회주의자와 좌파들은 지금의 통합/독자의 구도를 넘어 새롭게 집결해야 한다. 그리고 당 밖의 사회주의자들 및 좌파들과 만나 함께 테이블을 구성하고 우리의 원칙과 전망을 합의하며 진보진영 내부의 내부전선에 가장 먼저 자리잡이야 한다. (끝)

    필자소개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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