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를 이기는 방법
        2011년 04월 18일 04: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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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각 언론사의 신년특집은 박근혜 대세론으로 도배되었다. 이 때문에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패배주의가 만연되기도 했다. 역사가 뒤로 흐르지 않는다는 신념을 깨고 박정희의 적통이 다시 대권을 잇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나올까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너무 일찍 실망할 필요는 없다. 2011년 연초에 등장한 박근혜 지지율은 수년간 계속되었던 그의 고정 지지율에 약간의 확장성이 더해진 정도다.

    호남당 확장인가, 신세력 등장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반 박근혜 진영이 박근혜를 이기려면, ‘가치 중심’의 정치연합을 이루어야 한다. ‘세력 중심’의 연합론은 가치에 관한 ‘묻지마 연합’이기 때문에 적절치 못하다. 세력 연합론은 그때 그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이합집산을 중시할 뿐, 연합 파트너의 정치적 속성과 본질을 전혀 묻지 않는다. 따라서 묻지마 연합은 풀뿌리 민중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박근혜를 이기기 위한 야권 정치연합의 성공 여부는 대중이 그 연합을 ‘호남당의 확장으로 인식할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인 신세력의 등장으로 볼 것인지?’에 달려있다. 야권의 정치연합이 단순히 호남당의 확장으로 인식된다면, 그것은 박근혜에 대한 정치적 위협이 될 수 없다.

    야권연합이 호남당의 확장으로 인식되지 않으려면, 새로운 가치를 중심으로 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묻지마 연합은 단순히 권력 간의 충돌 양상을 반복할 뿐이라서, 대중들에게 기존 호남당의 확장과 무엇이 다른지 설명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것은 잔존하고 있는 영-호남 대립구도를 전혀 위협할 수 없다.

    박근혜를 이기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박근혜를 탄생시킨 낡은 정치지형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새로운 가치를 내세워서 정치연합을 실현하게 되면 그 자체로 기존의 낡은 정치지형을 위협하게 된다. 지역 간 대결구도란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한쪽이 무너지면 반대쪽도 같이 무너지는 구조다. 만약 민주당이 자기 몸을 던져 대립구도의 한 축을 스스로 붕괴시키면 박근혜에 대한 대구경북 등 영남의 철통같은 지지도 흔들린다는 얘기다.

    기존의 낡은 영남과 호남의 대립구도를 ‘신자유주의 시장만능국가 세력’과 ‘복지국가 세력’ 사이의 대립으로 바꿔야 한다. 이렇게 해서 지역주의 투표 성향이라는 근본적 조건을 흔들면 한국의 정치지형에 리히터 지진계로 측정이 불가능한 대규모의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

    20세기형 전략 vs 21세기형 전략

    일부에서는 복지국가 논쟁으로 박근혜와의 차별성을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를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복지의 확충’이라는 관점에서는 박근혜와의 구분이 힘들지 모르지만,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담론을 분명히 세우고 널리 확산하게 되면, 박근혜와 보수진영은 매우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복지국가는 지난 대선 시기 박근혜의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는 세운다는 신자유주의 정책묶음)와 정확하게 반대 측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또, 작년부터 우리사회에서 정치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운동 같은 경우에서도 박근혜는 이를 찬성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반대하기도 어렵다. 이것을 찬성하는 것은 기존의 보수적 지지기반과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되고, 이것을 대놓고 반대하는 것은 ‘복지 확충 또는 복지국가 담론’을 내세운 박근혜의 정치적 이미지를 손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복지국가’라는 단일한 ‘가치 중심’의 정치연합은 박근혜가 뽑은 복지국가라는 칼을 박근혜에게 휘두르는 전략이 된다. 범야권의 복지국가 정치동맹은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가치 연합’을 통해 박근혜를 상대로 보다 현실적인 복지국가 논쟁을 전개하기에 좋다. 증세의 불가피성을 주장해서 박근혜와 대립각을 분명히 하고, 의료, 교육, 보육 등 당장 실현가능하고 구체적인 복지의 각론을 제시해서 미시 이슈를 장악해야 한다.

    이를 통해 좀 더 ‘구체적인 복지국가 논쟁’을 대중적으로 실현해 나가야 박근혜의 전략을 좌절시킬 수 있다. 박근혜의 ‘복지담론 또는 복지국가 전략’을 야당의 ‘반 MB 묻지마 세력 연합’으로 맞선다는 것은 완벽한 패배의 길로 가는 짓이다. 복지국가는 21세기형 전략이고, 묻지마 세력 연합은 1987년 민주화 운동 시절에나 적용할 수 있는 20세기형 전략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세력 간 연합’은 국민에게 연합의 취지를 제대로 설명할 수도 없고 감동을 줄 수도 없다는 점이다. 풀뿌리 민중들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야권의 반MB 정치연합은 장기적으로 역사발전에 기여할 수도 없다. 지금 이 시기에 우리가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가치를 부여잡고 높이 세워야 하는 이유이다. 정치적 승리와 함께 시대적 사명에 제대로 부응하는 길은 ‘복지국가’의 가치를 중심으로 범야권의 정치질서를 재편하는 것이다.

    진화하는 것은 세력 아니라 가치

    단순히 기술적으로 한나라당을 이기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보다는 뭔가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치 논쟁을 배제한 세력 연합은 정치적 야합 또는 정치공학에 불과하지만, 명백한 가치 추구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정치의 재구성과 일련의 세력관계 변동은 대립과 투쟁을 통해 패러다임 자체를 교체해 나가는 역사의 발전과정이다.

    따라서 우리는 철저히 ‘가치 중심’의 정치연합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추구할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가치와 배치되는 진보개혁 진영의 낡거나 시대착오적인 가치들은 극복되어야 한다. 이러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연대를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을 생략한 ‘묻지마 세력 연합’은 아무런 감동을 줄 수 없다. 모든 세력은 늙으면 죽는다. 결국 살아남아 계속 진화하는 것은 세력이 아니라 가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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