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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5월 09일 07: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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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 특수부대의 급습으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반미 이슬람 테러리스트’로서 보여준 그의 정치적 우여곡절만큼이나 사망 뒤에도 여러가지 논란을 낳고 있다.

    당장 그가 사망할 당시의 정황과 관련해 미국 정부는 애초의 설명을 뒤집으면서 발표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고, 미군의 일방주의적 군사행동과 사실상의 빈 라덴 처형 역시 주권침해와 국제법 위반 논란을 낳았다. 또한, 사살 당시의 사진의 공개 여부를 둘러싸고도 논란이 벌어졌다.

    무엇보다도 (미국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그의 시신은 아라비아해에 비밀리에 수장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소위 ‘반역자’들 가운데 오사마 빈 라덴만큼 극적인 대접을 받은 인물도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 같다.(체 게바라조차도 이런 대접을 받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이 향후 세계에 던지는 파장은 무엇일까? 여기서 필자는 그가 실제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그가 정말로 9.11 테러의 진범인지 아닌지 여부에 대한 논란에는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겠다.

    그보다는 그의 죽음을 미국 정부와 세계가 정치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상, 그에 준하여 판단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섣부른 전망보다는 그의 죽음 후에 펼쳐질, 마치 안개가 자욱한 도로같은 향후 세계 정치에서 유념해야 할 몇가지 다른 가능성 정도를 지적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미국 FBI가 제시한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수배령

     

     

    먼저, 빈 라덴을 직접적으로 살해한 것은 미군 특수부대이지만, 실제로 그를 물리적 제거로 내 몬 것은 무언가 더 큰 국면변화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예컨데, 그러한 것들 가운데는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와 2001년 9.11테러 이후 일방주의적 군사 행동을 벌인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패권의 약화, 그리고 아랍 지역의 민주항쟁을 들 수 있다.

    이 세가지는 전후의 인과관계로, 혹은 서로 얽힌채 상호작용을 해왔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가 살해된 시점이 주는 의미가 꽤나 남다르기 때문인데, 빈 라덴은 이런 세가지 차원의 국면변화가 이루어진 뒤에야 물리적으로 사라졌다.

    금융위기는 전세계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와 파산을 알렸지만 무엇보다도 초강대국 미국 경제의 몰락을 가져왔다.

    이런 과정에 앞서, 2001년 9.11 테러를 시발점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어진 미국의 일방주의적 군사행동은 결국 미국의 군사적 패권의 약화와 국제 사회의 분열을 낳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전쟁이 가져다주는 부담으로부터 탈출해야할 강력한 필요가 있었는데, 빈 라덴이 제거된다면 그만한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든 국면 변화들을 총체적으로 반영하면서 등장한 아랍 지역의 민주항쟁의 물결은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결정적 주변화를 초래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향후 장기적으로 이 지역에서 펼쳐질 정치변화에 의해 빈 라덴같은 인물이 가지는 정치적 효과가 극적으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 정부의 외교적 관심도 지난 연초 이래 극적으로 이동한 것 같다.

    이런 이동을 초래한 것은 근본적으로 아랍 지역의 민주항쟁이다.

    이로써 미국의 동맹국인 이집트와 튀니지 독재정권이 붕괴했고, 이스라엘이 아랍 지역에서 극적으로 고립되었으며 팔레스타인 문제는 한층 더 꼬여버렸다.

    반면에 이란의 지정학적인 지위는 상승했으며, 무바라크 퇴진 이후에 이란은 이집트 정부와 외교관계를 회복하려하고 있다.

    아랍 지역에서 이란의 급격한 부상은 안그래도 이란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는 이라크에서의 철군과 이후 정치적 해법을 둘러싸고 미국을 더욱 더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더군다나 반테러 전쟁에서 또하나의 동맹국인 예멘의 정치적 위기 상태도 쉽게 사그러들지 않아서 여전히 아라비아 반도의 정치적 불안정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정말 의외의 지역에서 정치적 허를 찔린 셈인데, 이런 상황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문제를 해결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던 미국 정부에게 삼중의 정치적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전망에 전혀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집트나 사우디 아라비아가 포함된 아라비아 반도에서 급격한 정치적 변화라는 물결이 넘실거렸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기존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후퇴라는 정책은 새로운 차원에서 더욱 더 급박한 사안이 되버렸다.

    하지만, 말 그대로 미국이 아무런 전리품도 챙기지 못하고 그냥 후퇴하는 것은 튀니지와 이집트에서의 친미 정권의 붕괴에 이어 또다른 정치적 타격을 미 제국에 가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상징적으로나마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인물의 제거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제국은 그냥 탈출구만 확보하고 떠나는 법은 드물다.

    그들은 반드시 자신이 떠나간 자리 뒤에 자신이 겪을 손실을 최소화할 장치들을 마련해두는 법이다.

    소위 ‘데미지 컨트롤’이다.

    빈 라덴의 사망은 아랍 민중들에게 매우 복잡미묘한 문제를 덜질 수도 있다.

    즉, 일부는 그를 영웅으로 치켜세우며 그의 사망을 안타까워 하겠지만, 좀 더 세속주의적이고 현대적인 민주주의를 아랍 지역에서 구현하려는 세력들까지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서구 언론에서는 알-카에다의 보복 테러를 걱정하는데, 필자가 더 우려하는 것은 이로써 자칫 이미 정치적으로 약화된 알-카에다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재차 아랍 민주항쟁의 정치적 무대에서 한귀퉁이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런데, 빈 라덴의 죽음과 관련하여 지적하고 싶은 것 가운데 하나는 중동 지역에 아로새겨져있는 종파간의 분열과 관련한 것이다.

    빈 라덴의 죽음과 중동지역의 종파간의 대립이 무슨 관계냐고 물을 수도 있겠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제정치학적, 지정학적인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난 1987년, 파키스탄의 북서변경주의 반소 무자헤딘 훈련 캠프에서 모인 사람들 – 앞줄 맨 좌측이 당시 파키스탄 정보부(ISI) 하미드 굴 부장, 그 옆의 모자 쓴 이가 당시 미국 CIA 국장인 윌리엄 웹스터

     

     

    미국과 파키스탄의 향후 관계가 좋은 사례일 것 같다.

    서구 언론들은 대체로 이번 빈 라덴 사살과 관련하여 미국과 파키스탄의 관계가 악화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런 전망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가능성에도 다소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먼저, 이번에 빈 라덴의 은신처 소재지와 그에 대한 급습과 관련해서 여러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데, 파키스탄 정부(혹은 군부, 정보부)가 빈 라덴을 숨겨주었다는 미국 정부 일각의 주장을 들 수 있다.

    이런 주장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벌어진 이래로 미국측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주장이다.

    그런데, 실제로 빈 라덴이 은신해있던 지점(파키스탄의 군사도시)이나 그가 머물렀던 주택의 성격상 파키스탄 정부 혹은 그 일부가 이런 사실을 아예 몰랐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빈 라덴이 은신해있던 곳이 어쩌면 파키스탄 정보부(ISI)의 안가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두번째는 미군 특수부대가 어떻게 파키스탄에서 중요한 군사도시 상공을 비행하여 빈 라덴의 은신처에서 무려 40여분 동안을 작전을 펼치고 아프가니스탄으로 유유히 넘어갈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이 지역은 중국과 접경지역인 케라코롬으로 이어지는 전략적 요충지라 군사적으로 무척 예민한 지역이다.)

    이런 작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에 이런 도시에서 아무런 대응작전이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 지역은 현역, 퇴직 군장성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곳일 뿐 만 아니라, 빈 라덴의 은신처 코앞에는 사관학교도 있는 곳이다.

    이 점에서 이번 급습에 파키스탄 정부 혹은 일부의 묵인과 방조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주장이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종잡을 수 없는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우선 빈 라덴의 처리 여부에 대해 파키스탄 정부 혹은 군부나 정보부내에 의견불일치가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런 의견불일치는 어렵지 않게 추측해 볼 수 있는데, 그 근원은 다름 아닌 파키스탄의 향후 지정학적 입지를 둘러싼 전망과 관련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주지하다시피 그동안 파키스탄은 미국의 반테러 동맹으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알-카에다나 탈레반에 대한 전쟁을 공동으로 수행해왔다.

    그러나, 파키스탄이 전쟁 수행에서 항상 미국과 의견일치를 봤던 것은 아니었고, 많은 경우에 파키스탄 정부는 매우 선택적으로 이러한 군사적전을 수행해왔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그동안 파키스탄 정부가 반테러 전쟁에 진지한 관심이 없으며, 더 나아가 탈레반과 공모하고 있다고까지 의심해왔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먼저 아프가니스탄은 전통적으로 파키스탄의 ‘배후지’였다.

    지난 80년대에 옛 소련에 대항한 무자헤딘의 전쟁에서도-파키스탄 정보부(ISI)를 필두로-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을 군사적, 재정적으로 지원해 온 것은 파키스탄이었다.

    이로써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에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다양한 무자헤딘들을 구축했고, 이들을 지정학적인 ‘말판’으로 사용해왔다.

    그러나, 미국의 반테러 전쟁으로 인해 자신의 영향권안에 있는 탈레반이 공격목표에 포함되자 파키스탄은 이에 대해 고심해왔다.

    설상가상으로 ‘불구대천’의 적성국가인 인도마저 혼란을 틈타 아프가니스탄에 자신의 영향력을 확산시키려하자 파키스탄 정부는 더욱 더 예민해져 있었다.

    (인도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의 카르자이 정권이나 일부 군벌들과 여러가지 종류의 밀월관계에 있었다.)

    이 때문에 파키스탄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군사적 패배를 내심 바라지 않았다.

    이것이 그동안 파키스탄과 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의 반테러 전쟁을 둘러싸고 벌인 복잡하고 수수께끼같은 암투의 배경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근의 중국정부와 한층 더 밀착하는 외교정책을 구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가망이 없자, 어떤 식으로든 물러나야 할 상황에 처했고, 이를 위해서는 나름대로 탈레반과의 정치적 협상도 시도해야했다.

    이런 상황은 파키스탄에게도 해 될 것이 없었고, 여기에서 ‘딜’이 이루어질 상황이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미국은 명예롭게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기 위해서는 탈레반까지는 아니어도 빈 라덴의 목은 필요했다.

    일단 그의 목을 가져갈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런 점에 있어서 파키스탄이 협력할 의사가 있다면, 아프가니스탄에서 파키스탄이 주도하는 정치적 협상을 용인할 수도 있다.

    반대로 파키스탄으로서는 다급해진 미국의 약점을 노려 빈 라덴이라는 미끼를 던진 셈이다.

    미국이 아랍지역에서 놓인 곤경을 알아차린 파키스탄 통치자들 사이에서 이제는 재차 균형을 이동하여 미국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선사해주어 향후 이 지역에서 파키스탄의 역할과 위상을 상승시키는데 이용해보고자하는 움직임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중국과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기도 한데, 이는 마치 혁명 이후 이집트가 기존의 미국에서 이란쪽으로도 관계를 수립하여 균형을 맞추려는 것과-방향은 다소 반대이지만-비슷한 이치다.)

    결국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을 도로 가져가고, 미국은 빈 라덴의 목을 가져감으로써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군에 그럴싸한 명분을 부여할 수가 있는 셈이다.

     

     

     

     

    *아랍 지역의 종교 분포 지도-녹색부분이 시아파 밀집지역

     

     

    이런 거래 가능성은 최근의 아랍 지역에 불어닥친 정치 변화로 한층 더 촉발된 측면이 있다.

    즉, 미국은 아랍 지역에서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의 동맹자를 잃게되었다.

    더 나아가 바레인에서는 현 왕정을 위협에 떨게 만든 대중시위가 벌어졌으며, 예멘조차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있다.

    요는, 미국이 아랍 지역에서 점차로 자신의 동맹자들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이 지역에서 자신의 옛 동맹자들과 더이상의 불편한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사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이런 사태 전개는 진행되어왔는데, 중동 지역 정치 변화에 대해 미국 정부가 취하는 태도에 대해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의 연이은 압력과 경고에 이어 미국 정부가 바레인의 민주개혁을 외면(심지어 사우디 아라비아의 군사 침공조차 묵인)한 것이 그것이다.

    이런 구체적인 정치지형 변화에서 아프가니스탄-탈레반-알 카에다 문제를 둘러싸고 옛 동맹국인 파키스탄과 더이상 관계가 악화되봐야 미국으로서는 이득될 것이 없는 셈이다.

    오히려 미국의 입장에서는 과거 파키스탄이 반테러 전쟁과 알 카에다, 탈레반과 어떠한 관계를 맺었든, 일정한 마찰을 겪은 이후 나름대로 관계를 일정하게 회복하면서-아마도 파키스탄 정보부장의 사임이 그 희생양이 될 지도 모르겠다-파키스탄이 향후 아랍 지역에서 지금보다 한층 더 중심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실제 알 카에다나 탈레반과의 관계 문제로 들어가면 미국도 파키스탄과 마찬가지로 깨끗하지 않기는 마찬가진데, 이 점에서는 빈 라덴의 입을 다물게 하는게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파키스탄은 이미 아랍 지역에서 미국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예컨데, 사우디 아라비아 등 인근 왕정국가들의 군대의 힘을 이용하여 민주화 시위를 무력으로 분쇄한 바레인 왕정은 약 3만 명에 이르는 파키스탄 용병들을 고용해왔다.

    (이들 대부분은 전직 파키스탄 군 출신들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변화된 중동 지역의 정치적, 지정학적 변화에 비추어 파키스탄이 가지는 중요성은 이란에 대한 견제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미 이란의 서부 국경에 위치한 이라크에는 이란의 영향력이 커져왔고, 동부 국경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도 이란 정부는 나름의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하고 있다.

    이를 견제할 세력으로 미국 입장에서는 파키스탄만한 국가가 없다.

    파키스탄은 이란과 달리 수니파 국가인데다가 지난 반소 무자헤딘 전쟁 당시에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제공해준 탓에 사우디 아라비아와도 매우 가까운 나라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란과는 매우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있다.)

    순전히 이란문제만 놓고 보면, 미국은 이란 서부에서 상실한 미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이라크, 예멘, 이집트, 튀니지 등-를 이란 동부지역에서라도 만회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지금처럼 미국과 파키스탄이 반테러 전쟁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갈등하면서 파키스탄 정국도 불안정에 빠지면 파키스탄에서마저 이란의 영향력이 확산될 여지도 있다.

    이 점에서 파키스탄과 미국의 일정한 화해는 아랍 지역 전체에 걸쳐 매우 미묘한 정치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우선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의 후견하에 수니파 중심의 탈레반이 재집권한다는 사실은 시아파를 중심으로 한 중동 지역의 질서 한 축(레바논의 헤즈볼라-시리아-이란)에 대한 견제와 도전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란 정부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부의 집권을 바라지 않는데, 이는 중동 질서에 미묘한 종파간 갈등을 낳을 수도 있다.

    탈레반의 집권은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지정학적 위치를 다시금 상승시킬 여지가 큰데, 이미 사우디 아라비아는 동부지역에서 시위를 벌인 소수 시아파를 이란 선동에 의한 것이라며 진압(바레인도)한 바도 있다.

    게다가 현재 시리아의 민주 항쟁에 대한 탄압은 묘하게도 시아파의 소수분파인 알라위파 정권이 대다수가 수니파인 시위대들을 대상으로 저지르고 있다.

    사실, 현 시리아 대통령의 아버지는 지난 1980년대 초, 수니파인 무슬림 형제단의 주도로 벌어진 시위대들을 대량학살했는데, 현재 이스라엘을 사이에 두고 이집트에서는 주되게 수니파인 무슬림 형제단이 강력한 야당세력으로 등장하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만약 미국이 이런 상황을 종파간의 분열이라는 구도로 확대 재생산하려 한다면, 현재 아랍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 항쟁을 왜곡시킬 여지가 존재한다.

    사실 과거에도 이런 비슷한 사례들은 있어왔다.

    이를테면 미국이 베트남에서 최종적으로 손을 뗀 후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벌어진 일들이 그렇다.

    옛 소련에 대항하여 미국과 사실상의 동맹을 맺은 ‘시회주의’ 중국 정부는 당시 ‘사회주의’ 통일 베트남 정부를 대상으로 전쟁을 벌였고, ‘사회주의’ 캄보디아 크메르 루즈 정권은 베트남 정부의 침공을 받았다.

    이런 일이 향후 아랍 지역에서도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이 점에서 이번 아랍 지역의 민주항쟁에서 주목해야할 것 가운데 하나는 이스라엘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행보를 보인 반면, 이미 정치적으로 악화된 이라크는 밀할 것도 없고, 아랍의 ‘큰 형’인 이집트를 대신하여 사우디 아라비아가 직접 군대를 동원하여 아랍 지역 정치에 개입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향후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됨과 동시에 해당 지역에서 야심을 가진 국가들이 자기 나름으로 독자적인 군사행동을 할 여지를 열어준 선례로 작용할 수도 있기에 매우 우려스러운 사태 전개이다.

    (이미 사우디 아라비아는 아랍 민주 항쟁 이래 여러차례 이란과의 정치적 충돌을 일으켰다.)

    결국 필자는 빈 라덴의 제거가 어떤 측면에서는 아랍지역에서 미국의 반혁명 전략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는 셈인데, 이런 것들이 한낱 기우이거나 사태의 오독으로 끝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아랍 지역의 민주항쟁이 얼마나 더 큰 시야에서 자신들의 운동을 전개시키느냐에 따라 달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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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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