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의 기둥 20~30대 어린이 책임져라"
        2011년 05월 09일 07: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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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을 많이 마셨던 ‘어버이날’ 전날 밤. 새벽 1~2시가 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홍대와 신촌 근처에서는 카네이션을 팔고 있었다. 간만에 ‘홍대에 진출’한 면목동 친구들과 갈지자로 걸으면서 간신히 카네이션 바구니 하나씩을 샀다.

    어버이날 아침의 해장국

       
      ▲붉은 카네이션 꽃. 

    ‘떨이’라면서 6천 원에 5송이의 카네이션과 안개꽃 그리고 알 수 없는 꽃이 좀 들어있는 바구니를 손에 건넨다.

    친구 3명이서 택시비를 나눠서 집으로 돌아왔다. 계획상으로는 ‘어버이날’ 아침에 일어나 미역국을 끓이려 했지만, 여전히 숙취에 시달리다가 결국 엄마가 해주는 해장국을 먹게 되었다.

    아빠는 이미 출근하셨고 해장국을 놓고 엄마의 ‘잔소리 시간’이 시작되었다. 대학생인 동생은 나와 마찬가지로 밤새 술을 마시고 들어왔는데,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 게 괴로워서인지 따로 먹겠다며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나오질 않는다. 반면 나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관찰하는 습관이 생겨서인가 그냥 앉아서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엄마는 요 몇 년 동안 늘 하던 대로 전날 다녀온 ‘결혼식’ 이야기로 ‘잔소리’를 시작했다. 보통 엄마의 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람은 ‘딸’이다. 딸을 키워놨더니 ‘남자애’들처럼 군대 다녀오느라 2~3년을 까먹지도 않고 후딱 돈 벌어서 엄마 갖다 주고, 그 집 엄마는 그 돈을 몇 년 살림 밑천으로 요긴하게 쓰다가 잘 모아서 결혼식을 치러주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늘 앞뒤가 조금씩은 안 맞았다. 벌어서 엄마한테 돈을 ‘다’ 갖다 주었는데 결혼식은 또 애들이 ‘알아서’ 지들 모은 돈으로 치렀다는 이야기. 부모가 결혼식을 치러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곧 바로 애들이 알아서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는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하지만 내 엄마의 맥락에서 그 이야기는 앞뒤가 맞는다. 버는 대로 엄마한테 갖다 줌으로써 키워준 것에 대해 충분히 ‘효도’하고, 결혼할 때도 ‘자립’해서 스스로 결혼함으로써 ‘효도’한다는 그런 이야기니까 말이다. 거기에는 엄마의 ‘의지’가 강하게 개입되어 있었다. 어쨌거나 그 ‘딸’들은 모조리 ‘엄친딸’인 것 같았다.

    가이 없는 엄마의 노동

    물론 내 주위에도 또래의 ‘엄친아/엄친딸’들이 없는 건 아니다(보통은 대학도 못 간 게 내 동네 친구들이지만). ‘명문’ 대학을 다니는 중에 고시에 합격하고 연수원에 있다가 이미 ‘사무관’ 혹은 ‘검사’가 되어있는 아무개, 굴지의 5개 그룹 안에 들어가서 ‘월화수목금금금’의 격무를 수행하면서도 명함을 줄 때 으쓱거리는 아무개 등등.

    그런데 그들이 수적으로 그렇게 많지도 않을 뿐더러 그들 역시 ‘효도’하고는 좀 거리가 멀어 보이기 일쑤다. 부모들이 기대하듯이 집에다가 돈을 차곡차곡 갖다 주는 경우가 일단 드물고(이미 소비자본주의의 ‘엣지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차곡차곡 갖다 주면서 ‘자립적’인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다행히 2009년 이전에 취업을 하여 ‘임금 삭감’을 면하였거나, 고시에 합격해 벌이가 꽤 되기 시작한 경우에도 그리 잘 모으고 자립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결혼하려고 하면 부모집이 여러 채 있는 게 아닌 다음에야 천상 부모 집을 줄여서 세간을 내거나, 아니면 융자를 받는 수밖에 없다. ‘하우스 푸어’의 시대에 대부분은 후자를 선택한다.

    그나마 자리를 잡은 ‘엄친아’와 ‘엄친딸’들의 엄마들은 자식들의 돈을 받아다가 다시금 자녀들을 ‘키우고’ 있다. 거기에는 사회적인 ‘계급’도 큰 영향이 없다. 엄마가 돈이 좀 있으면 가장 높은 단계에서 계속 자녀의 경력 관리를 위해서 ‘투자’를 멈추지 않는 것이고, 엄마가 대줄 돈이 없으면 전전긍긍 앓으면서 자녀의 입신양명을 위해 기도를 하든지 물을 떠놓고 기도를 하든지, 뭐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서의 기본적인 ‘살림살이’는 역시 엄마들의 몫이 되고 늦게 들어온 아이들 밥 챙겨주는 것도 여전히 엄마의 몫이다. 그게 안 되면 엄마들은 ‘미안’하게 된다. 자녀들이 결혼하면 자녀들의 ‘새끼들’을 키우는 몫까지 부가될 따름이지, 자녀들이 ‘자립’을 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서도 자산의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거나 골머리를 앓으면서 좀 더 세련되거나 덜 세련된 방식으로 손주를 키워내는 건 할머니의 몫이 되어가고 있다.

    "혁명은 엄마의 돈으로"

    다른 한편 ‘의식 수준’ 혹은 ‘주체화 수준’도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좌파 이론’ 혹은 ‘좌파 운동’ 근처에 있는 친구들도 결국에 ‘자립’ 자체는 커다란 도전이다. 공동체를 꾸려서 꾸역꾸역 살고 있는 몇몇을 제외하면 ‘엄마 찬스’(엄마한테 손 벌리기)라는 말로 마지막 보루를 만든 경우는 허다하다.

    혼자 살다가 투항해서 들어간 경우는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나 역시 혼자 좀 살아보다가 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작년 이맘 때 “혁명은 엄마 돈으로”라고 말했던 <밤섬 해적단>의 권용만의 이야기를 결코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이유다. 엄마를 더 이상 뜯어먹을 수 없으면 ‘러시 앤 캐시’를 뜯어먹어야 살 수 있다고 김슷캇이 말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보루는 결국 엄마다. 결국 ‘애들’이 안정적으로 사회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책임 모두가 엄마에게 전가되고 있다. 90년대의 정서를 이적은 <단도직입>이라는 노래에서 “네가 어른이면 나는 아이가 될래”라면서 적극적으로 ‘반항하는 아이’의 이미지로 띄웠지만, 지금 20~30대는 자립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이’로 호출된다.

    프랑스의 학자 미셸 푸코는 강의록에서 결국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면 애를 ‘인적 자본’으로 키워내는 엄마의 노력이 강조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가 서구에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주장일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별로 신통찮은 이야기로 들린다.

    600년 전부터 한국의 상류 계급의 엄마들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고, 1950년대를 경유하자 그건 모든 계급의 엄마들의 미션이 되었다. 그나마 대량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던 시기에야 아이들이 ‘사람 구실’을 얼렁얼렁 하면서 독립하고, 1990년대에는 “난 엄마같이 안 살 테야”하며 소리 지르던 ‘신세대’들이 혼자 살겠다고 했던 시기에 잠시나마 ‘독립’과 ‘자립’의 서사가 성립했을 따름이다. 결국 지천에 엄마한테 ‘빌어먹는 자식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엄마 바깥에서 살 수 있을까?

    ‘가족’ 정확히는 ‘엄마’ 바깥에서 살 수 있는 존재들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점점 팍팍해지는 상황들이 도래하고 있다. 게다가 부모 세대인 40~60대가 누렸던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노동경험 자체가 없기 때문에 ‘엄친아’와 ‘엄친딸’들조차 표류를 멈추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불안정고용으로 노동을 경험하는 ‘면목동 양아치’들이 해고나 월급을 떼이는 것을 통해서 표류를 경험하고 다시금 불안해할 때, ‘엄친아’와 ‘엄친딸’들은 자신의 경력 관리를 위해 끊임없이 표류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중심을 잡아주는 유일한 힘이 ‘엄마’인 것이다.

    예전에 20살이 넘어간 사람을 ‘총각’, 혹은 ‘처녀’로 불렸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학생’으로 통칭되기 시작했다. 30살이 넘어도 보통 ‘학생’이라고 부르기 일쑤다. 사회적으로 ‘한 몫’의 사람노릇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엄마들에게는 30대들도 ‘애’가 될 수밖에 없다. 20~30대는 양육의 대상이 된다. 게다가 ‘애’들의 ‘애’도 엄마들이 돌봐주고 있지 않나. 예전 세대보다 건강 상태와 피부 노화 정도가 더 개선되는 속도보다 ‘사회적 나이’ 자체의 흐름이 더 빠르다.

    이러니 ‘어린이’ 혹은 ‘소년’의 기준을 30대까지 묶자는 김슷캇을 비롯한 ‘혁명적 육식주의자 동맹’의 이야기도 당연하게 들릴 정도다. 실제로 전사회적으로 ‘애 취급’을 받고 있는 것 아닌가. “요즘 애들은 아무 것도 할 줄 모른다”는 푸념을 양산하는 것은 바로 국가이다.

    20~30대 어린이들

    그런데 이러한 ‘애 취급’은 다른 한 편에서는 여러 가지 상상력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애’니까 어떠한 사회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따라서 모든 문제에 대해서 ‘개인적 책임’으로 각각에게 돌리는 방식은 모두 무효가 되어야 한다. ‘어린이’는 나라의 기둥이므로 국가는 어떻게든 ‘20~30대 어린이’들을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아동 노동’에 대해서는 UN 등에서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국의 ‘20~30대 어린이’들에 대해서도 엄격한 노동권 보장을 해주어야 한다. ‘소년’들의 취업을 보장해주어야 하고, 알바노동에 대한 착취를 엄격하게 단속해야 한다. 게다가 20~30살이 넘는 ‘애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보호받아야 한다.

    ‘어린이’의 맥락은 기묘한 ‘가족주의’가 신자유주의와 엉켜 만들어낸 한국의 교착 상태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또한 국가가 할 주요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드러내준다. 그리고 동시에 ‘어린이’의 사회적 위상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한다. 이제는 ‘어린이’로서 20~30대가 연대하고, ‘독립’하지 못하는 ‘애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들이 파업을 할 때이다. ‘어린이’는 국가의 기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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