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 줄이는 합리적 시스템"
    2011년 04월 16일 03: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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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한 극작가가 죽었다. 병든 몸으로 이웃에게 밥과 김치를 꾸어야 할 정도로 가난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 일로 세상이 잠시 시끌벅적했다.

결식아동 수가 보도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낯빛으로 서로에게 묻는다. 지금도 굶는 애들이 있어? 빈곤이 그렇듯 굶주리는 사람들 역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시스템이 그들의 존재를 가리고 있어서다.

굶주림에 맞서는 한 방법

『한 끼의 권리』(오하라 에쓰코 지음, 최민순 옮김, 시대의 창, 13800원)는 굶주림을 줄이는 한 방법으로 푸드 뱅크를 제시한다. 푸드 뱅크는 상품 가치가 없어서, 다 먹을 수 없어서 등의 이유로 ‘버려질’ 운명에 처한 음식들을 기부받아 먹을 것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는 곳이다. 1967년 미국에서 처음 생겼고, 2008년 현재 미국에만 200여 개가 있다.

푸드 뱅크를 처음 창안한 ‘미국 푸드 뱅크의 아버지’ 존 헨겔은 우연히 한 싱글맘과 얘기를 나누다 경악한다. 사형수 남편을 둔 그녀는 아이가 여럿 있었는데, 가까운 슈퍼의 쓰레기통을 뒤져 아이들 먹을거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놀라는 헨겔에게 그녀는 말한다.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에요. 다만 쓰레기통에서 줍는다는 게 조금 그렇지만요. 쓰레기통에 버리지 말고 어디 다른 곳에 놓아 주면 좋을 텐데.” (본문 54쪽)

그 길로 달려가 그녀 말이 사실임을 확인한 헨겔은 매장 책임자를 찾아가 “먹을 수는 있지만 팔 순 없어 버려야 하는 식품이라면 차라리 기부를 해 달라”고 요청한다. 푸드 뱅크 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당장의 배고픔만 때우는 반창고?

그러나 최근 푸드 뱅크는 여러 문제에 봉착해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기부량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푸드 뱅크에 주로 기부해 주던 곳이 기업들인데, 기업들이 운송·포장 기술이 발달하면서 상품을 ‘덜’ 버리게 된 것이다.

즉, 이전에는 내용물은 성해도 캔이나 포장 박스가 우그러진 것들은 구매자들 성화로 어쩔 수 없이 버릴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것들을 모아 저가로 파는 할인점들이 생긴 것이다. 이런 할인점들에서는 유통 기한이 지난 것들도 취급한다. 유통 기한이 지나도 어느 선까지는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런 할인점을 찾는 소비자가 계속 늘고 있다.

푸드 뱅크는 당장의 배고픔만 때워 주는 ‘반창고’ 역할을 할 뿐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푸드 뱅크 활동이 국가나 사회적인 차원의 빈곤 문제 해결을 미루게 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푸드 뱅크는 굶주림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전해 주는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안전망(safety-net)이 되고는 있지만, 미국에서 굶주림이 만연하고 악화되어 가는 근원에 초점을 맞추지는 못한다. 오히려 푸드 뱅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위기적인 상황에 놓인 굶주림에 대한 지속적인 해결책을 애써 외면할 우려가 있다.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이런 지적에 대해 푸드 뱅크 관계자들은 ‘물에 빠진 아이’를 비유로 들면서 푸드 뱅크 역할을 강조한다. 강가를 거니는데 강에 한 아이가 떠내려온다. 강물에 뛰어들어 아이를 구해 냈는데 또 한 아이가 떠내려온다. 또 떠내려오고 또 떠내려오고….

사실은 강 상류에서 아이를 한 명씩 물에 빠뜨리는 악당이 있었다. 이 악당을 잡지 않는 한 아이를 구하는 일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악당을 잡을 때까지, 아이가 수영을 배워 스스로 헤엄쳐 나올 수 있을 때까지 누군가는 떠내려오는 아이를 구해 내야 한다.

기아 같은 문제에 장기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분명 필요하듯이, 눈앞의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그들을 구제하는 일 역시 누군가 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푸드 뱅크 쪽 사람들 이야기만 싣지 않았다. 푸드 뱅크에서 식료품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마음도 드러낸다. 미국 미시간 주의 푸드 뱅크가 발행한 매뉴얼에서 이들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남아도는 음식을 어려운 사람에게.’ 푸드 뱅크 이념은 아주 간단하다. 그러나 남은 거니까, 어려운 사람이니까 전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것을 받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끊임없이 상상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나눔’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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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오하라 에쓰코

저널리스트. 1958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쓰다주쿠 대학교 국제관계학과를 졸업했다. 1982년 《아사히신문》에 입사해 도쿄 본사 학예부 기자로 일하면서 문화 면 등을 담당했다. 재직 중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9년 프리랜서로 독립했다. 저서로 《로마의 평일 이탈리아의 휴일》이 있고, 번역서로 《소울 투 소울》 등이 있다.

역자 : 최민순

번역가이자 칼럼니스트이. 《C-Japan》 《일본어저널》 등에 일본 문화와 사회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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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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