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파, 한솥밥 식구 챙기기 수단 전락
    우린 아직 패권주의 극복 준비 안돼
        2011년 04월 15일 02: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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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마디’만 해보라구?

    마지막 현장투표 직전 후보자 연설 때 내가 소위 자주파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한마디’ 만이라도 했으면 생각을 달리 할 수도 있었다고 했다. 2006년 민주노동당 전국학생위원회 위원장 선거가 끝나고 낙선한 후보였던 나에게 건넸던 말이었다.

    당시 자주파와 평등파의 전면 대결 양상으로 치러진 당직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전국학생위원장 선거 막바지에서 나는 자주파가 ‘세팅’해 놓은 당직 후보를 찍지 않을 거라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지지하기로 되어있었던 자주파 학생운동 그룹들이 마지막에 지지를 철회했던 이유였다.

    정작 가장 우스웠던 것은 정작 누구도 나에게 내가 지지하는 후보는 누구인지, 나는 왜 그 후보들을 지지하는지 묻지 않았다. 사실 비밀투표로 되어있는 당직선거에서 누구를 찍을지 미리 공개해야만 표를 주겠다는 발상 자체가 전형적인 패권주의이기도 하다.

    이제 와서 밝히는 이야기지만 사실 나는 이미 그들이 의심한 것과는 또 전혀 다르게 내 소신에 따라 선호하는 후보를 염두해 두고 있었고, 그대로 당직선거에 투표했다. 그러나 어쩌랴. 묻지 않으니 답할 필요가 없는 것을. 어찌 보면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이미 상대와의 정치적인 토론, 논쟁을 통해 노선을 확인하기보다 상대가 어느 학교 출신인지, 그가 어떤 인맥관계에 있는지를 가지고 그의 정치적 신념과 노선을 규정짓기 때문이다. 소위 정파주의, 패권주의라는 것은 가끔 이런 코미디를 연출한다. 물론 당하는 입장에서는 썩 유쾌하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토론회 모습. 왼쪽부터 김인식, 조성주, 이정미, 박용진. 

    이 글은 지난 4일 ‘소셜지성 청년포럼’이 개최한 세 번째 기획토론회 ‘새로운 진보정당, 정파문제, 패권주의 극복 가능한가?’에서 토론되었던 내용들을 정리하고 필자의 고민을 피력하기 위해 작성된 글이다.

    다소 감상적인 이야기로 시작되었지만 진보정당, 또는 그 언저리에서 활동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패권주의, 정파문제에 대한 나름의 추억(?)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진보정당이 논의되는 지금 시점에서 어쩌면 ‘종북주의’ 문제보다 더 사람들이 우려하는 지점이 바로 ‘패권주의’의 문제인 것도 현실이다.

    분당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토론회에 참석한 발제자들은 분당에 대해서도 각각 다른 평가와 원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진보신당의 박용진 부대표는 정파문제가 분당의 주요 원인이었다고 언급했다. 레프트21 발행인이기도 한 김인식 민주노동당 중구 위원장은 우경화 노선과 좌경화 노선의 대립이었다고 말한다. 이정미 민주노동당 영등포구 위원장은 대중적으로 검증받지 못한 리더십들의 문제를 지적했다.

    제 각각 분당 과정의 주요한 지점들을 시사하고 있다. 당내 각 정치세력들이 최소 합의할 수 있는 노선의 부재와 당원, 국민들에게 검증받지 못한 채 밀실에서만 위력을 발휘하는 리더십, 그리고 그것이 외화되어 나타나는 극단적인 정파 갈등은 모두 분당의 주요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바로 앞서 지적한 문제들이 종합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바로 패권주의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정파들의 노선과 정치방침의 근거들은 당원,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검증받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따라서 가능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극단적인 비방과 흑색선전이고 그것을 가능케 하기위해서 자파 조직원들에 대한 종교적인 맹신을 유도하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사실 패권주의는 무능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충분히 설득하고 동의를 얻어내지 못하는 ‘능력의 부재’가 결국 쪽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패권주의에 대한 반성과 극복은 상대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든지 ‘합의제 정신’을 존중하겠다는 식의 ‘자세 교정’의 문제로만 해결될 수 있는 측면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더 깊이 고민해보아야 하는 지점은 패권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제도개선, 그리고 각 정파들의 무능한 리더십과 노선이 대중적으로 검증받고 수정되는 것이 가능한가의 여부이다.

    패권주의 극복 방안과 원칙

    또 한편 패권주의 극복은 제도적 대안만큼이나 당의 체질과 관련된 문제이다.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의 정파들은 공존의 원칙보다는 이정미 위원장이 지적했듯이 자파의 노선을 당에 그대로 투여하는 데에 급급했다.

    만약 특정 정파가 진보정당의 노선과 정책, 운영까지 모든 것을 일거에 해결할 이론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이것이 성공했을지도 모르나 결과는 참혹했다. 어떤 정파들도 자기 사람을 주요 당직에 심는 것 외에 진보정당이 국민들 속에 뿌리내리고 인정받고 성장하는 데 기여할만한 노선과 정책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각 정파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함께 공존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공존의 원칙’을 지킬 수 있는 당의 기풍 만들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분당, 그리고 분당이후의 결과들은 오히려 각 정파들이 공존하지 않은 채 자신들만의 실력으로 무언가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 않았을까?

    따라서 토론회 자리에서 김인식 위원장이 제기한 공동전선식으로 당을 운영하는 것도 일리는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의 노선으로 일색화시켜 놓으면, 반발이 생기고 이탈이 생길 우려가 상존한다. 오히려, 최소 정치 노선을 합의할 때까지는 비판의 자유를 갖되, 이후의 행동의 통일 추구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과적으로 패권주의 극복의 과제는 1인1표제 도입과 같은 것 이전에 이러한 공존의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다. 정파등록제건, 1인 1표제건, 정책명부 비례대표제건 정파간 합종연횡을 통해 제도를 악용할 소지는 언제든지 있다.

    정파는 양성화시켜야 할 것

    이런 식으로 하려면, 정파간 경쟁이 건전한 방식으로 양성화되어야 한다. 박용진 부대표가 제기한 정파등록제나 정책명부 비례대표제 등은 가능한 제도로 검토할 수 있다. 물론 정파등록제가 소수 정파를 관리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할 우려는 있다. 이에 대한 보완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민주노동당의 정파 구도는 극히 비밀주의적이다. 분명히 하나의 정치적 입장으로 행위하는 그룹이 있는데, 정작 자신들은 그 실체를 쉽게 밝히는 것을 거부한다. 이는 상이하고 다양한 노선들에 대한 대중의 평가도, 정치행위에 대한 평가도 어렵게 한다.

    이런 식의 정파 정치는 당과 대중을 그리고 당원들과 당 지도부 사이의 일치를 어렵게 한다. 반드시 정파등록제라는 형태를 지닐 필요는 없지만, 현재의 낡은 정파정치에서 당원과 대중에게 책임을 지는 정파정치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공개적이고 검증가능한 정파정치를 통해서 이제 그동안 물 밑에서 실력 행사해왔던 정파 리더들은 이제 정치무대에서 대중에게 실력으로 검증받아야 한다. 생각해보면 우습지 않은가? 유령처럼 언급되는 무슨무슨 연합들에는 도대체 어떻게 가입이 가능하고 만약 해당 정파의 노선과 방침이 마음에 안들면 어떻게 탈퇴할 수 있나? 누구도 답해주지 않는다.

    대중 정치인들의 리더십 인정해야

    한편 정파 양성화의 한 방향으로 대중정치인들의 리더십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필자의 생각을 밝히면 진보정당에 권영길파, 노회찬파, 심상정파가 있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노선과 지향이 분명한 정치 리더들을 중심으로 대중이 모이는 것은 더 대중정당다운 모습일 수 있다.

    그에 비하면 현재 민주노동당의 각종 00연합들은 아무런 차이를 알 수 없는 집단들이 아닐까? 사실 자기들도 차이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오히려 대중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노선과 지향을 좀 더 명확히 밝히고 그에 따라 당원들과 국민들이 함께 논의하고 고민해나가는 것이 더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민주노동당 당원인 필자는 사실 최근 진보신당 내에서 있는 각종 노선논쟁들을 보면서 오히려 부러울 때가 있다. 노회찬 전 대표가 발언하고 심상정 전 의원이 주장한다. 그리고 진보신당 내 유력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피력하고 당원들이 갑론을박을 벌인다.

    이에 비해 현재 민주노동당은 분명 각 정파들을 대표하는 소위 ‘선수’들이 최고위원 등으로 존재하지만 어떤 차별성 있는 노선에 대한 언급도 주장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식이라면 사실 새로운 진보정당이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비밀리에 합의하고 세팅하는 구태가 없어지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유력 정치인에 흔들리는 진보정당이 아니라 유력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노선과 방향을 가지고 당원, 국민들에게 검증받는 진보정당을 꿈꿔야 하지 않을까?

    누구도 지도적 지위를 자처할 수 없다

    이제 솔직하게 인정하자. 80년대 이후 형성된 이른바 ‘비합법 전위주의’는 혁명이나 개혁을 지도하기는커녕 내부 조직원들을 밀교적으로 단속하는 내부 정치의 수단에 불과하게 됐다. ‘전위’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고 그런 것을 자처하는 이들이 있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무능한지 이미 만천하에 증명되었다.

    자기 정파의 방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기 위해 사업에 대한 대중적인 평가도 토론도 거부한 채 ‘승리적 평가’ 운운하는 것이 벌써 수십 년이 되었다. 패배한 적도, 오류도 없는 정파들이 난무한다. 우리가 무슨 혁명소설의 환상 속에 살고 있는 것일까?

    가장 슬픈 것은 이 과정에서 유망한 젊은 활동가들, 진보정치의 미래들이 무기력하고 비주체적인 ‘앵무새’로 전락해가는 것이다. 백보 양보해서 각 정파들이 수십 년간 조직원을 두 배, 세 배로 늘렸다고 자부할지는 모르지만 그보다 열 배가 넘는 인재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제 정파주의는 심하게 말하면 같은 지역에서 한솥밥 먹었던 사람들은 챙겨주는 수단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게 과연 동지애인가? 의리인가? 해당 분야에 능력도 의지도 없는 사람들에게 주요 당직을 하사하고 그를 통해 오로지 자파의 조직원 확대에만 골몰하는 정파들이 당원들과 대중들에게 얼마나 큰 불행인가.

    ‘패권주의’는 모두를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전락시킨다

    토론회가 끝난지 10여일이 지났음에도 필자가 정리된 글을 내놓지 못한 것에 대해 변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괴로웠다. 글의 서두에서 마치 스스로가 패권주의의 피해자인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사실 필자 역시 패권주의의 가해자에 다름 아니었다. 그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전제되지 않고 패권주의 극복을 입에 담는 것이 무용하다고 생각한다.

    필자 역시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에 예민한 쟁점과 정책에 대해서 정확한 평가와 토론은 회피한 채 침묵으로 일관한 적도 많았다. 때로 당원으로의 정체성보다 ‘자주파’에 친화적이라는 정체성을 더 드러낸 적도 많았다. 그 와중에 수많은 당원들과 동지들의 신뢰를 무너뜨렸다고 생각한다.

       
      

    2008년 분당이 결정된 대의원대회 이후 필자를 찾아와 울면서 한탄하며 당을 떠나갔던 수많은 후배들에게 부끄러워 이제 그만 운동을 접어야지 하는 생각도 수없이 했다.

    그렇게 당을 떠나간 후배들에게, 동지들에게 내가 바로 패권주의의 가해자였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패권주의는 당원들 전체를 피해자와 가해자로 만들어버린다. ‘패권’에 대항하는 방법 역시 ‘패권’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의 유력인사가 말했다. "이제 민주노동당은 패권주의를 해소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그렇지 않다. 패권주의는 해소되지 않는다.

    우리의 끊임없는 반성과 성찰이 멈추는 순간, 패권주의는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성찰과 반성이 공개적이고 대중적으로 멈추지 않는 그런 정당이 되어야만 한다.

    * 이 글은 진보정당대통합 또는 새로운 진보정당의 노선에 대해서 다양한 토론을 기획, 진행하고 있는 ‘소셜지성 청년포럼’의 조성주 대표의 연속 기고입니다. ‘소셜지성 청년포럼’은 새로운 진보정당의 운영원리와 노선에 대한 6번의 토론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레디앙>은 앞으로 매 토론회가 끝날 때마다 토론 내용을 요약하고, 필자의 의견이 들어간 글을 연속 게재할 예정입니다. 네 번째 토론 주제는 ‘진보정당의 원내정치와 지역정치’이며 날짜와 장소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페이스북 페이지(http://facebook.com/socialforum)를 통해서도 다양한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주최 측은 진보정당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고뇌하는 젊은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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