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변부 노동의 규합을 꿈꾼다"
        2011년 04월 15일 12: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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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유니온이 창립된 지 1년을 넘어섰다. 정부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유니온을 노조로 인정치 않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청년 논객과 활동가’들은 청년유니온에 대한 평가와 제언이 담긴 글을 통해, 청년유니온의 정체성 논의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위한 일련의 기고를 하기로 했다.

    이들은 연속 기고 취지에 대해 "청년유니온은 2011년 사업으로 언론과 기성세대 논객들의 조명을 얻었다. 앞으로 청년유니온에게 필요한 것은 청년-노동에 대한 논의을 모으면서, 당사자들의 특징을 추진력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려면 조합원들의 개성을 살리고, 청년-노동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레디앙은 앞으로 이들 젊은 필자들의 청년유니온에 대한 다양하고, 입체적인 분석, 평가, 제안의 글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청년유니온, 무엇을 할 것인가?

    청년유니온이 만들어진 지 1년이 되었다 한다. 안 그래도 한 노동신문에서 전화를 걸어 청년유니온 탄생 1년에 대한 소회를 물었더랬다. 나름 열심히 대답했는데, 내 말이 기사화 되지는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한 말과 엇비슷했기 때문일 것이다. 방외인의 말이란 게 대개 그렇기 마련이니, 여기에 한 마디 더 보탠다는 게 큰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가 코멘트를 하고 싶은 이유는, 내가 그들의 활동영역 안에 있는 사람, 그들 조직의 가입 대상에 해당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청년’이란 말의 범위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는 모호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나 역시 그 범위 안에 있는 것 같다.

    더군다나 청년유니온의 ‘청년’ 기준(15~39세)은 꽤나 넉넉한지라 그걸 벗어나려면 아직 1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만일 청년유니온이 앞으로 10년 동안 존속할 수 있다면, 그 전 어느 시점에 내가 그 조합원이 될 가능성을 상상하는 건 전혀 낯설지 않다. 따라서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청년유니온의 가입대상 안에 있는, 한 청년이 지금껏 그것에 가입하지 않고 망설이는 이유와 그럼에도 가지고 있는 묘한 기대에 대한 짧은 고백이다.

       
      ▲지난 해 3월 청년유니온 창립총회 모습.(사진=청년유니온) 

    내가 청년유니온에 가입하지 않았던 이유

    자원과 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한 채 시작될 수밖에 없는 어떤 ‘운동’이란 것에 대해, 문제점을 늘어놓는 식의 훈수를 두는 것만큼 쉽고 무의미한 일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령 내가 한 달에 당비 2만원을 보태는 진보신당을 생각해보자.

    이 집단의 문제점을 늘어놓고자 한다면, A부터 Z까지 안 걸리는 게 없을 것이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늘어놓아도, 설령 그 조직에서 상대적으로 양호한 부문이라 해도 막상 말을 꺼내면서 생각하면 문제투성이다. 1년 전 청년유니온이 생겨날 당시 내가 그 조직에 가입하지 않은 건 그런 식의 ‘문제점’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은 제대로 형성되기도 전에 너무 보도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이건 청년유니온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담론지형도의 문제다. 우석훈, 박권일의 『88만원 세대』 이후 한국 사회는 20대가 뭔가 액션을 취하기를 간절하게 바라게 되었다.

    출판시장에서 ‘20대 논객’론이란 다소 나이브한 도식의 혜택을 일정 부분 받게 된 나도 사정은 비슷했지만, 그때부터 정작 ‘20대 당사자’들은 알지도 못하는(혹은 관심도 없는) 미약한 활동들이 뭔가 엄청난 일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도되는 일이 흔했다.

    희망청이란 곳에 잠깐 출입하며 그렇게 생겨나고 사라지는 활동들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지니게 된 나는, ‘20대 당사자 운동’으로 호명되는 활동들에 대해 내실을 알기 전까지는 함부로 판단내리지 말겠노라고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유니온’이란 조직의 탄생에 대해서는 다른 당사자 운동과는 구별되는 기대가 존재했다. 그것은 청년유니온을 구성하는 인적 역량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나는 청년유니온이나 기타 다른 운동들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알거나 판단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사람’이란 변수를 빼고 생각했을 때에도 청년유니온에 기대를 걸게 만들었던 지점은 결국 ‘컨셉’ 내지는 ‘지향’이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노동조합’이란 형식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

    노동조합이 아닌 것 같은, 그러나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이란 명칭부터가 사실 좀 아이러니하다. ‘노동조합’이란 명칭이 청년들에게 주는 고리타분함과 위화감을 극복하기 위해 ‘유니온’이란 말을 택한 것 같은데, 유니온이란 게 사실 노동조합이란 뜻이니 말이다.

    이런 미묘한 ‘선택’에는 구성원들이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그 자체로 한국 사회에 대한 두 가지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하나는 노동조합이 좀 더 폭넓은 계층의 사람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대변할 수 있다는 ‘당위’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노동운동이 협소한 영역에 갇혀 있으며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현실’일 것이다.

    인적 구성과 상관없이 청년유니온이란 기획이 의미를 지니고 기대를 걸게 만드는 지점은 거기에서 탄생한다. 세대담론에 근거한 여타 당사자 운동과 달리 청년유니온은, 기획 자체로 세대의 문제를 노동문제와 결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원론적’인 것이고, 실현되려면 당장 현실세계의 제약조건에 부딪힌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볼 때 나는 청년유니온이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원칙 혹은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이를테면 대표적으로 민주노총과의 관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청년유니온이 가장 안락하게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은 민주노총 산하에 들어가는 것일 게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이나 청년세대 문제에 대해 적극적이지 못하다는 사회의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에, 청년유니온과 같은 운동을 그 내부에 품는 것은 민주노총 입장에서도 환영할 만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의 지형도를 생각해 볼 때, 청년유니온이 민주노총 안에 포섭되는 것이 긍정적인 일인 것 같지는 않다. 민주노총의 개혁 지향이 ‘산별노조’ 수립에 있다고 한다면, (물론 그것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일이다.) ‘아르바이트생, 인턴, 청년실업자, 취업준비생’을 포괄한다는 청년유니온의 기획이 그것과 일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마 청년유니온이 민주노총에 포섭된다면 그것은 민주노총에게도 청년유니온에게도 하나의 알리바이가 될 것이다. 민주노총에게는 청년세대를 대변하고 있다는 알리바이, 청년유니온에게도 세대의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는 그런 알리바이 말이다.

    물론 고용노동부에 노조설립 신고서를 제출하는 중인 청년유니온은 그러한 포섭의 길은 거부했다고 봐야 할 게다. 하지만 ‘독자노선의 길’에도 기존 노조와의 관계 설정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입장이 가능할 텐데, 이 문제에 대해 청년유니온의 고민이 있는지 궁금하다. 한편 이 고민은 그 자체로 청년유니온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와도 연결되는 것이 아닐는지?

    구성원을 위한 활동? 사회를 위한 운동?

    최근 청년유니온과 관련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뉴스는 “고용노동부, 청년유니온 노조설립 신고 반려”다. ‘노동조합’이 되기 위한 청년유니온의 노력 그 자체에 나름의 사회적 의미는 있지만, 설립시도 자체가 가장 큰 뉴스가 되는 현실은 청년유니온의 활동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청년유니온의 지향이 아무리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청년들에게 청년유니온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이 단체가 기삿거리를 만들어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위해선 그 자체로 존속이 가능한 방식을 찾아야 한다.

    생성소멸하는 수많은 운동 속에서 청년유니온이란 단체가 1년이란 시간을 견뎌냈다는 것은 장한 일이다. 하나의 사이클을 견뎌냈다는 것은 다음 사이클도 견뎌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준다. 마치 군대 보낸 남친을 둔 여성이 1년을 견뎌냈을 때 다음 1년도 참아낼 거라고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첫 1년이 컨셉과 지향만으로 가능했다면 다음 1년은 조금 더 구체적인 메리트가 가능할 것이다.

    투박하지만 이렇게 묻는 것이 가능하다. “구성원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법을 찾을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 운동을 구상할 것인가?” 그런데 사실 단체가 잘 돌아가기 위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전자다.

    구성원들이 청년유니온에 들어와서 무언가 도움을 받는 것이 있어야 계속 소속감을 느끼며 활동할 수 있을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 조직 가입 권유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게 해서 구성원들이 확장될 수 있다면 사회적으로도 의미를 지니게 될 터이다.

    그런데 문제는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그렇게 많지가 않다는 거다. 청년유니온과 비교해볼만한 조직으로 미국의 프리랜서 노조의 사례가 있다. 프리랜서 노조가 조합원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식은 노조에서 단체로 민간의료보험을 가입하면서 보험료를 낮추는 협상을 한다는 식이다.

    이게 한국 사회에서 가능한 방식일지는 모르겠다. 이런 식의 직접적 도움이 힘들 때, 청년유니온은 구성원들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선전해야 할까.

    몇몇 부분에서는 일종의 생활공동체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다른 곳에서는 만나기 힘든 구성원들과 함께 부대끼고 학습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법도 하다. 어떤 식으로든 청년유니온이 구성원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지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거둘 수 있는 성과가 한계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사회운동의 영역에서 청년유니온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흔히 노동자가 아니라고 인지되는 구직자나 알바 같은 사람들을 노동자로 인식시키는 게 청년유니온의 역할일까? 만일 그렇다면 그때 추구하고 쟁취하려는 노동자의 권리로 우선순위에 놓이는 것은 무엇인가? 쉬운 일을 추구할 수도, 어려운 일을 추구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는 드러나 있거나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주변부 노동의 규합을 꿈꾸며

    개인적으로 청년유니온에 기대를 거는 지점은 이 조직이 노동운동에서 말하는 ‘핵심노동’ 이외의 부분들, 주변부 노동을 규합하고 조직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전면적으로 고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가령 같은 청년세대라 하더라도, 얼마 전에 파업을 일으킨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청년유니온이 대변할 수 있는 층과는 결이 다르다.

    물론 그 사람들이 청년유니온에 가입할 수 있고 청년유니온이 그걸 막지도 않겠지만, 사실 그 사람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자동차산업에 대한 산별노조이지 청년유니온은 아니다. 이는 청년유니온의 기획이 세대론에만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발전에 따라 변화된 노동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것일 수 있음을 뜻한다.

    청년유니온이 이 지점을 공략할 수 있다면, 기존의 노동운동의 협소함을 비판하면서도 이것이 세대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 노동의 문제, 노동조합이 필요한 사회문제라는 것을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청년유니온의 존재 의의도 자연스럽게 확실해질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청년유니온은 이름만으로도 아이러니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아이러니를 제대로 사유하지 못한다면, 청년유니온은 청년운동도 아니고 노동운동도 아닌 정체성 속에서 이중의 알리바이를 내세우며 초기 구성원들만의 게토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나는 청년유니온이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들의 활동이 모종의 의미를 지니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활동이 좀 더 오래 존속하려면, 그 내부에서도 지금까지 얘기했던 몇몇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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