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주의 망령에 몸 던진 '수도원 좌파'
    유럽식 사회국가, 진보통합 최소 기준
        2011년 04월 14일 03: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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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11일 저녁, 진보신당의 청년활동가모임 <작당>이 주최한 진중권의 강연회가 철거농성장 두리반의 3층 공간에서 열렸다. 40~50여명의 관객이 참여하여 열띤 대화를 나눴다. 강의의 의도는 좌파 쪽 ‘기획자’들에게 스스로의 활동을 되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강연회 모습. 

    이날 강연에서는 지식정보사회로 이행된 현대 사회에서 관찰되는 좌파의 위기에서부터 대안적 미래의 상으로서 유럽식 사회국가를 제안하는 등의 폭 넓은 이야기가 오고갔다.

    맑스의 공산주의는 당대 최신 project

    이날 진중권 강연을 포괄하는 하나의 개념은 프로젝트(project)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roject는 라틴어에서 미래를 뜻하는 pro와 던진다는 의미를 가진 ject의 결합어로, 미래를 향해 현재를 던지는 행위를 뜻한다. 기획은 ‘현재’나 ‘과거’를 구상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구상하여 던지는 행위를 뜻한다.

    맑스 시대의 자본가들이 ‘공산주의의 유령이 떠돈다’라고 말하며 공포에 떨었던 그 공산주의는 당대의 가장 최신 이론이었다. 19세기 당시에는 도래하지 않았지만, 미래 언젠가 도래할 노동자의 세계를 그들은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기획한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유럽사회의 담론계는 이념의 세계를 포기하였다.

    진중권은 이념의 세계가 종식된 가장 큰 이유로, 지식정보사회의 도래를 들었다.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동일한 시/공간에서 노동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존재하였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산업노동의 규모가 축소되고, 지식노동의 숫자가 광범위하게 늘어나는데 이 과정에서 신념과 이념 등이 다원화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라는 하나의 이념과 강령으로 요약된 좌파나 정당의 운동은 앞으로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는 “현실사회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몽상가’일 수밖에 없다. 맑스도 공산주의에 대해 제시한 것이 거의 없다. 유토피아적 레토릭이어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이후 레닌이 당황했다. 맑스도 하지 못한 것을,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몇 사람 머릿속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볼 수 없다. 하나의 이념에 의해 모든 사람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 다원성에 대한 인정을 기반으로 함께 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즉, 다원주의를 통해 실현하는 프로젝트를 길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회주의 주장하는 사람은 몽상가일 뿐

    이날 진중권이 날카롭게 지적한 것은, 오늘날의 좌파가 미래를 향해 스스로를 던지는 것(project)이 아니라, 과거에 실험이 끝난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망령’에 몸을 던지는 퇴행(retroject)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 사회에 발생한 다양한 사회문제에 좌파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하고 스스로의 활동영역을 점차 축소시켜 바야흐로 수도원의 좌파가 되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중권은 현실적 수준에서 논의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였다. 그는 광범위한 소비자운동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촛불 집회 때 조선일보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은 조선일보에 광고를 주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과거에는 노동자들의 조합이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보여주었지만 오늘날 자본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는 소비자운동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는 수많은 테크노크라트(technocrat)가 결합된 ‘싱크탱크’를 제안했다. 대학생들이 고통받는 가장 큰 이유가 등록금인데, 등록금이 높은 이유는 교육에 대한 과잉투자 때문이다. 고졸자의 80% 이상이 대학을 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데, 이와 같이 하나의 사회현상은 주변의 수 많은 문제와 복합적으로 관계되어 발생한다.

    이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야별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 대거 결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전문가들 집단이 싱크탱크를 만들어, 어떤 정권이 집권하다라도 지속적으로 보다 나은 사회 구상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연회 모습. 

    유럽식 사회국가로 진보정당 집결을

    진중권은 이날 강연회에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진보정당 통합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밝혔다. “현대 사회에서 진보정당운동은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되,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 아래에 보다 많은 세력들이 결집하여야 한다”며, 이때의 기준은 가능한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소 기준으로 유럽식 사회국가를 제시하였다. “유럽의 사회국가는 현실사회에서 일어난 좌파의 다양한 실험 중 유일하게 성공한 모델로서, 현재 한국 사회의 좌파 중에 사회국가 건설에 반대할 세력은 하나도 없다”며, 이 같은 기준은 정당 형성의 최소한의 조건이 될 만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 최소한의 합의선 안에서, 다양한 이념과 신념이 각자의 정치적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정당활동을 구성하는 것이 오늘날 좌파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정당간 통합 과정에서 “이미 현실정치에서 증명된 각 세력이 가진 단점들, 즉 민주노동당의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진보신당의 고립주의와 순혈주의, 국민참여당의 우편향 성향을 견제할 수 있는 ‘객관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시스템을 갖추는데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당 간 통합 시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2012년 대선 이전은 절대로 불가능하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날 강연에는 ‘진중권’ 팬덤에서부터, 최근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관심/불만이 있는 좌파 활동가, 그리고 문화/시민사회 영역에서 현역기획자로 활동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참여하였다. 진중권이 가진 폭넓은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질의 응답이 하나의 주제로 집중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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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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