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태지는 공인이 아니다"
        2011년 05월 09일 09: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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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지 사태’가 일단락되면서 관련 논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생활 궁금증으로 나라가 발칵 뒤집힌 사태가 끝나는 건 바람직한 일이나, 관련 논의까지 흐지부지 사라지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관련 논의라는 건 이번 사태로 인해 촉발된 공인 관련 논란을 말한다. 이 논란이 잠시 끓어올랐다가 답도 내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터지면 이 주제는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똑같은 논란을 반복하며 우리 사회의 에너지를 낭비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말이 나왔을 때 확실히 끝을 봐야 한다.

    연예인이 공인이라는 것은 그전에도 우리 사회에서 상식처럼 통용됐었는데, 이번 서태지 사태 이후에도 여전하다. 최근 정준호 관련 스캔들에서도 정준호가 스스로 ‘공인’이라는 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했고, 서태지 사태를 마무리하는 방송보도들도 대체로 지나친 사생활 침해는 문제지만 서태지에게도 공인으로서 의무가 있다는 식의 내용들이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다음에 다시 연예인의 사적인 문제에 대한 호기심이 공론장을 마비시켜도, 연예인이 공인이라는 생각이 그것을 정당화할 것이다. 연예인에 대한 마구잡이식 파헤치기도 그들이 공인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것이다.

    연예인 공인론의 작용

    공인이나 공적인 기구에 대한 감시는 대단히 귀찮고 힘든 일이다. 시간도 에너지도 많이 든다. 조금만 방심하면 이 감시의 칼날이 무뎌진다. 그러면 공적 영역은 ‘개판’이 된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그런 감시에 쓸 수 있는 시간이나 에너지는 정해져 있다. 모두가 먹고 살기 바쁘다. 하루에 잠시 짬을 내어 공적 감시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언론매체의 지면이나 방송보도 프로그램의 편성시간도 정해져 있다. 무언가가 부각되면 반드시 다른 소식이 빠진다.

    이렇게 한정된 자원을 연예인에 대한 호기심에 써버리면 공적 감시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게 문제다. 공적 감시는 대단히 따분하고 힘든 일이기 때문에, 조금만 방심하면 재밌고 자극적인 쪽으로 우리의 관심이 이동하게 된다. 바로 그럴 때 연예인 공인론이 이런 관심 이동을 정당화해준다.

    연예인도 공인이니까 9시뉴스나 일반 보도매체까지 다 나서서 연예인 사생활의 투명성을 추궁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네티즌도 사회적 정의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울 수 있게 된다. 사실은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 충족이라는 ‘선데이서울’적 욕망에 탐닉하는 것이면서 모두를 당당하게 해주는 알리바이, 그것이 바로 ‘연예인 공인론’인 것이다.

    서태지 공인론 왜 심각했나

    서태지 공인론이 특히 심각했던 것은 해당 이슈로 인해 한국사회 공론장이 완전히 마비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증거가 바로 음모론이다. 만약 공적 감시가 여전히 작동했다면 음모론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연예인 사생활 폭탄으로 공론장이 마비되자 사람들은 이것이 계획된 음모 아니냐고 했다.

    음모의 존재 여부는 어차피 확실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사회가 ‘멍청하다’는 사실이다. 정말로 누군가가 일부러 연예인 사생활 떡밥을 던졌어도 우리사회가 그것을 덥썩 물지 않고 가십 정도로 여겼다면 공론장은 마비되지 않았을 것이다.

    진지하게 관심을 갖고 추적해야 할 공적인 이슈와 가벼운 흥밋거리 정도로 넘겨야 할 연예인 사생활 가십을 구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공인론’의 마력이고, 이번에 서태지 공인론이 특히 그 파괴력의 극단을 보여줬다.

    이런 일의 재발을 막으려면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한다.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다. 연예인 사생활은 결코 공적인 영역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대중과 언론이 그에 대한 알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인터넷 청문회를 열 필요도 없다. 연예인 사생활의 투명성 여부는 우리 사회의 건전성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연예인 사생활 소식이 연예전문매체나 연예정보프로그램의 가십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우리사회는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연예인의 특수한 위치

    그렇다고 연예인이 완전히 우리 일반 개인과 같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특수한 존재다. 바로 그런 특수성 때문에 공인론이 창궐하는 것인데, 특수한 건 맞지만 공인론은 오버다. 그들은 단지 특수한 개인, 즉 유명한 사람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므로 보통 사람보다 더 큰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것은 맞다. 음주운전, 뺑소니, 마약, 도박, 병역비리, 폭행 사건 등을 저질렀을 때 일반인보다 큰 사회적 질타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남녀관계 같은 사생활까지 추궁당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생활을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다. 사생활을 드러내든 감추든 온전히 그들의 자유다. 엿장수 마음대로 하면 된다. 우리는 그들의 사생활 문제를 그저 가벼운 가십 정도로만 여기면 그만이다. 그러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요즘 <짝패>가 방영되고 있다. 여기에선 속속들이 썩은 조선후기 시대상이 그려진다. 공적 감시나 견제가 없었기 때문에 공인들이 모두 사적인 이익을 탐하는 ‘개판 5분전’ 사회다. 판서도, 참의도, 포도대장도, 종사관도, 포교도, 현감도, 감사도 몽땅 다 썩었다.

    이때 만약 언론이라는 게 있었는데, 그 언론이 스타 광대가 유명하니까 공인이라며 그 광대의 사생활 투명성에 무슨 시민적 정의라도 달려있는 듯이 난리를 친다면 ‘개판 5분전’인 공적인 영역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천만에. 썩어버린 판서, 참의, 포도대장은 오히려 더 좋아할 것이고, 사회는 ‘개판의 끝장’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런 끝장을 보지 않으려면, 연예인 사생활을 공적인 영역으로 만들고 연예인 가십을 공적인 이슈로 만드는 ‘연예인 공인론’이라는 황당한 망상을 끝장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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