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승사자 된 경쟁 아이콘
        2011년 04월 11일 08: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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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식당일을 하던 소녀의 자살, 날품을 팔지 못해 장애아 자식을 키울 수 없었던 50대 가장의 자살, 11살짜리 아들을 마창대교에서 밀어 떨어뜨리고 자신도 투신한 대리운전기사의 자살, 대량정리해고 이후 생계의 벼랑 끝으로 가정파탄으로 내몰린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의 자살, 학자금 대출서류와 로또복권으로 남은 한 대학생의 자살에 이어 급기야 최고의 두뇌들만이 모인 카이스트에서조차 자살 행렬이 이어졌다.

    그랬다. 자살은 루저들만의 최종 탈출구가 아니었다. 먹이사슬의 말단에서 최상층부까지 경쟁체제의 피라미드 그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었던 것이다. 한국사회는 진작 최상위 포식자가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정글, 야만적인 동물의 왕국이 되어버렸다.

    경쟁에서 협력으로

    한국인 최초의 미국 MIT대학 교수, 레이건 정부 시절 미국 ‘국립과학재단’ 부총재까지 지낸 입지전적 인물 서남표는 경쟁 이데올로기의 아이콘이었다.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은 ‘징벌적 등록금제’라는 정글의 룰을 만들어 젊은 영재들을 서로 물어뜯게 만들었다.

    교정 잔디밭에서 웃음 소리는 사라졌고, 밤 11시까지 학습 중노동에 시달렸다. 수학 천재조차 영어 몰입 수업에 ‘멍 때리며’ 파리하게 시들어갔다. 자신의 모국어로 창조적 사고를 자극하던 유능한 교수들도 몰입되지 않는 영어 때문에 학생들과의 호흡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달성한 세계 대학 서열 67위, 대학의 서열은 누가, 어떻게 매기는가? 피카소와 스티브 잡스의 우열은 어떻게 가리는가? 수업 몰입을 방해하는 영어 몰입과 3.0이라는 학점 낭떠러지를 파두고 친구들을 적대시하도록 만드는 환경에서 창조적 사고가 설 자리를 잃는다. 창의적 사고만 말살한 게 아니라 젊은 생명까지 말살한 것이다.

    서남표는 한국사회의 경쟁압력 게이지가 어디까지 상승했는지를 보여주는 여러 지표 중 하나에 불과하다. 따라서 서남표를 다루는 방식은 단지 서남표의 추방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이미 우리 사회는 무한경쟁의 ‘무한도전’ 사회로 진입했다. 만인 대 만인의 경쟁을 다루는 숱한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창궐하고 있지 않은가?

    보수 성향이든 진보성향이든 모두가 사교육 경쟁 대열에 뛰어들었다. 어떤 이들에겐 승자가 되기 위한 경쟁이겠지만 대다수는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한 필사의 경주다. 그러니 이제 룰을 바꿔야 한다.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는 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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