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사회주의', 욕만해서는 안된다
        2011년 04월 08일 08: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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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미국의 아세아학회에서 저로서 가장 관심이 많이 갔던 부분은 북한초기사에 대한 발표들이었습니다. 그 발표들 중에서는 특히 미국 루트거스(Rutgers)대학의 수지 킴(Suzy Kim) 교수의 이야기는 재미있었습니다. 유명한 수정주의 사학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의 제자인 그녀는, 1945~1950년의 북한에서의 대중들의 조직활동상을 분석했습니다.

    어느 소작농의 자필 이력서

    주된 자료 중의 하나는, 미국의 국립문서보관서에 보관돼 있는 소위 ‘노획문서’, 즉 미군이 이북지역을 침공했을 때에 무단으로 약탈해간 북한 관공서의 문서들이었습니다. Suzy Kim교수는, 한 가지 예시로서 노획문서 중에서 그녀가 찾아낸 한 농민의 입당 신청서와 자필 이력서를 보여주면서 분석하셨습니다.

    문맹자이자 소작농이었던 그 농민은, 북한 초기의 토지개혁으로 우선 소농으로 그 지위가 향상됐고, 한글을 깨치고, 또 한글을 깨친 뒤에 농민조합련맹에 가입하여 그 열성자로서 적극적인 조직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일자무식의 소작농으로서 사회생활로부터 배제돼온 그는, 북한 초기의 몇 년 사이에 당당하게 공공영역에 발을 들여놓아, 작지만 큰 한 명의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농민의 운명은 나중에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미군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폭사를 당한 것인지, 6.25의 격전 속에서 비명횡사한 것인지, 아니면 수많은 친우와 피붙이들을 잃고 극적으로 생존한 것인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나 그와 같은 무수한 식민지시대의 주변분자들에게 북한의 ‘현실사회주의’가 공공영역으로의 관문을 열어주고 그들로 하여금 공공적 주체로서의 ‘개인’이 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이 공공영역은 어디까지나 당의 통제를 받는, 자율적이지 않는 공공영역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보잘것없는 착취대상자에서 일명의 작은 ‘나라 주인’으로 일약 탈바꿈한 수많은 민초들은, 사항별로 이해충돌은 있을 수 있어도 크게 봐서 당의 통제를 반대할 일은 없었습니다. 진정한 (그리고 초기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의미의 ‘합의 독재’가 가능해진 상황이었습니다.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두 가지 비판

    1960년대 초반 ‘주체사상’의 선포와 극단적 국수주의, 개인숭배의 만연 이전의 북한은 크게 봐서 동유럽형 ‘현실사회주의’의 한 갈래에 해당됐습니다. 이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극우파부터 온건 사민주의자들까지 ‘전체주의’라고 규정하는 현실사회주의 사회에서의 ‘개체성 말살, 전체성의 횡포, 국가의 견제되지 않는 폭력, 사회, 정치적 다양성의 부재’를 들어 대체로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추세가 있습니다.

    반면 국내에서 ‘다함께’ 등으로 대표되는 트로츠키주의자 등 급진좌파는 ‘스탈린주의'(현실사회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자 민주주의 부재나 평등성의 붕괴, 관료층의 독재, 그리고 혁명성의 쇠퇴를 들어 "사회주의의 관료주의적 왜곡"부터 아예 "국가 자본주의로의 전락"까지 이야기하여 "사회주의는 아니었다"고 잘라버리고 맙니다.

    재미있게도 이 두 가지 부정적 견해는 어떤 경우에는 하나로 통합되기도 합니다. 예컨대 미국 트로츠키주의의 원로 중의 한 명인 막스 샤크트만 (Max Shachtman, 1904~1972)은 소련을 "집체주의적 관료 국가"로 보는 관점부터 출발하여 머지 않아 자본주의보다 스탈린주의를 사회주의운동에 더 위험한 적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말년에 그는 우파사민주의자로 개조(?)되어 아예 베트남에서의 미군 철수를 반대할 정도로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웠습니다. 물론 트로츠키주의의 이론가 중에서는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사회주의적 본질을 인정해주는 에르네스트 만델(Ernest Mandel, 1923~1995) 같은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현실사회주의의 장점보다 그 ‘관료적 왜곡’에 더 중점을 두었습니다.

    열성과 공포의 체제

    이 모든 비판들은, 꼭 잘못된 것만은 아닙니다. 사회주의를 유토피아로 생각한다면 현실사회주의는 분명히 그런 사회주의와 사이가 멀었습니다. 일단 1917년 10월 혁명 이후에 트로츠키파 등 각종 급진파에 대한 관료적 보수파(스탈린파)의 승리를 기반으로 한 현실사회주의의 질서는 분명히 경직된 관료성을 특징으로 한 것은 사실입니다.

    노동자들의 소비에트가 레닌의 원래 계획대로 ‘밑에서부터’ 자율적으로 경제기획을 짜고 코뮨형의 ‘국가 아닌 국가’를 민주적으로 운영했다기보다는, 위계질서적 당 중심의 질서의 하부구조로 편입되고 말았죠. 또한, 세계혁명의 좌절에 따라 자본주의 세계와 군사대립할 수밖에 없는 현실사회주의는 국민(인민)국가 질서를 공고히 하고 상당한 수준의 군사화를 진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상비군 자체를 폐지시켜 노동자들의 자율적 민병대로 대체해야 한다는 유럽 사회주의 운동의 원래 이상에 비추어보면 엄청난 후퇴이었죠.

    자본주의 세계에 괴멸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아주 급격히 공업화 진행해야 했던 현실사회주의는 특히 초고속 공업화 과정(소련의 1930년대 초반~1950년대 초반)에서 자원동원을 위해 상당한 국가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졌습니다.

    사실, 그 누명이 높은 스탈린의 대숙청은 대체로 국가 중심의 초고속 공업화 과정의 정치적인 파생물로 봐야 할 듯합니다. 열성과 공포가 뒤섞인 분위기가 아니라면 10년간 파쇼독일과의 대전쟁에서 지지 않을 만큼 공업기반을 닦기 어려웠다는 것이죠.

    초기 중국의 노동자들

    급진파(트로츠키파 등)가 승리했다면 아마도 공포보다 열성의 비율은 더 높았겠지만, 우리는 유토피아 아닌 현실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극도로 보수적인 농민의 국가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를 거의 ‘종교화’시킨 스탈린파의 승리는 훨씬 쉽고 자연스러웠습니다.

    우파가 이야기하는 현실사회주의의 ‘집단주의적’ 측면들도, 사실 대체로 이와 같은 농민사회의 전통적 보수성에 기인하는 것이죠. 하여간, 혁명은 뜬 구름 위에서 하는 게 아니고 불완전하고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하는 만큼 후퇴, 굴곡, 자기 배반이 없는 혁명은 없을 것입니다. 현실사회주의도 예외일 순 없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 역사적 경험을 무조건 ‘전체주의’ 내지 ‘국가자본주의’, ‘집체주의적 관료 국가’라고 하여 배격만 해야 합니까? 역사 속의 (상당 부분 불가피했던) 왜곡들을 당연히 지적하고 비판해야 하지만, 현실사회주의의 역사를 ‘왜곡’으로만 보기는 힘듭니다.

    예컨대 노동자들이 ‘밑으로부터의 민주주의’를 통해서 국가를 통치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들의 상대적 지위가 높아지고 고등교육부터 휴양소 등 휴양시설까지의 접근이 쉬워져 노동에 대한 소외를 훨씬 덜 느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1950~60년대를 회상하는 중국 노동자들의 목소리 (백승욱 편, 『중국 노동자의 기억의 정치』, 폴레테이아, 2007)를 들어보면 그 당시에 활짝 웃으면서 밝은 표정으로 출근하고, 공장을 자기 집처럼 여기는 일은 거의 당연했습니다. ‘국가로부터의 노동해방’은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적어도 공장 단위의 차원에서 이윤추구, 개인 자본가의 소유로부터의 해방이 이루어져 노동자의 상황이 크게 개선됐다는 것입니다.

    내 학창시절의 기억

    현실사회주의 학교들이 권위주의나 군사주의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한 건 사실입니다. 사실, 문화혁명 때의 홍위병의 교사, 교장 린치 사건의 상당 부분은 교권주의적 태도에 대한 ‘복수’와 같은 성격을 지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체벌과 같은 폐습은 일단 완전히 사라지고, 또 노골적인 성적 경쟁보다 상호협력이 우선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공부 못하는 노동자 출신’들이 적어도 한국과 같은 ‘초자본주의적’ 사회에 비해 훨씬 상처를 덜 입었습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필자가 다녔던 학급에서는 필자를 포함한 ‘모범생’들은 공부가 어려운 아이들에게 가서 숙제를 도아주고 보살피는 것은 관례이었습니다. 뭐, 성적에 대한 은근한 의식부터 간헐적으로 (아동 사이의) 폭력까지 있었던 것은 필자가 기억하는 소련 말기의 학교 현실이었지만, 체벌부터 수능지옥까지 멀쩡한 구석이 하나 없는 동시대의 남한 학교와는 비교나 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현실사회주의란 분명히 유토피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인간이 나름대로의 존엄과 긍지를 지키면서 생산적으로, 비교적으로 평등한 환경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사회이었음에는 틀림없습니다.

    북한은 ‘정통 현실사회주의’보다 아주 경직된, 훨씬 더 유교적이고 군사화된 사회로 나아간 반면, 쿠바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현실사회주의는 자본화를 추구하는 내부 관료세력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동유럽 노동자들이 현실사회주의의 자멸을 막지 못했다고 해서 그 장점까지 우리가 과연 망각만 해야 할까요?

    현실사회주의 긍정적 측면 부활돼야

    어떤 왜곡들이 있어도 적어도 인간이 자기 미소까지 팔아가면서, 윗사람에게 부단히 아부하면서 생존을 도모할 필요까지 없었던 사회, 즉 개인의 소외가 오늘날 자본제에 비해 훨씬 적었던 사회를 우리가 부지런히 기억하고, 그 모습을 자꾸 복원하고 이야기해야 우리 투쟁에 힘이 보태질 것입니다.

    왜곡된 면까지는 반복할 필요야 없지만, ‘현실사회주의’의 긍정적 측면들의 부활은 앞으로는 전세계 사회주의자들의 투쟁의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그래서 앞으로 시간이 나는대로 북한초기사의 공부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한반도의 20세기에서 가장 기억 잘 해야 할, 그리고 동시에 가장 많이 망각된 시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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