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모한 도전 '작은 기적'을 만들다
        2011년 04월 05일 11: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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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은 찬바람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쓸쓸한 단식농성장의 저녁. 허름한 농성 움막을 기분 좋은 기적의 장소로 바꾼 어느 하루 저녁 이야기를 할까합니다.

    "나는 비정규직이다 기적을 만드는 X2"는 단식 중인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 지원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3월 29일 첫날 한 명이 몽촌토성역 인근에서 인증샷을 찍었고, 매일 하루가 지날 때마다 곱하기 2, 그러니까 두 배씩 늘어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발칙, 무모한 도전

    사실 이거 엄청 어려운 일이죠. 다시 말하면 ‘기적 같은 일’일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쉽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했었죠. 셋째 날에 4명이 모였을 때도 넷째 날 8명이 모였을 때도 조금은 힘들었습니다. 이 ‘발칙하지만 무모한’ 도전을 준비한 사람들이 가족과 친지를 총동원해서 겨우 8명을 맞추는 수준이었습니다. 세상의 무관심보다 우리 안의 무관심이 단식중인 조합원들을 더 외롭게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죠.

    그리고 다섯 번째 날. 일부러 사람을 모으지 않고서는 힘들다고 생각했던 16명이 모여야 하는 날. 그런데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기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사진 찍는 사람까지 포함해서 16명.

    사실 그날 저녁7시쯤 농성장 앞에 도착했을 때 농성장에는 단식 중인 조합원과 비정규지부 간부님들 세 분이 쓸쓸하게 앉아 계셨었습니다. 학창시절 같이 노래패 활동을 했던 선배와 연락하여 농성장으로 오라하긴 했지만 그래봐야 6명.

    16명을 모으는 건 아무리 봐도 정말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는 힘들겠다 싶었습니다. 만약에 16명이 안되면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하나 고민도 들었고요. 여기저기 전화를 해봤지만 공공노조에서 오고 있는 두 사람 빼고는 다들 바쁜 일정이 있더군요. 두 명이 와도 8명.

    그런데 그때 처음 보는 중년 남자 한분이 “곱하기 2 안하나요?” 하시며 농성장 쪽으로 다가오시더군요. 조금은 어색하게 인사를 했지만 정말 이 프로젝트 때문에 도심과 멀리 떨어진 농성장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 분은 자신을 강동송파 지역 진보신당 당원이라며 <레디앙>에서 기사를 보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여수에서 온 고등학생들 참여하다 

    하지만 기쁨과 고마움도 사실 잠깐이었죠. 16명이 모이기에는 아직도 7명이 더 필요한 상황. 진보신당에서 오신 남성분이 전화를 해 가까이 계신 당원 한 분을 더 불렀지만 그래도 다 합쳐서 10명. 이미 시간은 7시 30분을 훌쩍 넘기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반쯤 포기하고 진보신당 당원께서 지역의 당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온 투쟁기금을 전달하는 전달식을 조촐하게 가진 후, 8명에서 두 명이 늘었으니 곱하기 2는 안되지만 더하기 2는 된 것 아니냐고 농담 섞인 마무리를 하려고 할 때 누군가가 문득 제안을 했습니다.

    6명이나 8명일 때는 모르지만 10명이 모였는데 16명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지나가는 시민들을 하나하나 설득해서라도 16명을 모아보자고.

    그러나 저녁8시가 넘어 황량한 올림픽공원 앞은 지나다니는 인적조차 거의 없는 장소.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우리는 건널목 저편에 우르르 지나가는 네댓 명의 고등학생을 보게 됩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 사정을 설명하고 비정규직들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처음엔 조금 경계하던 학생들은 이내 자신들은 여수에서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들이라며 이 프로젝트에 함께 해주겠다는 승낙을 받아냈습니다. 이 친구들의 설레는 서울의 밤에 그냥 사진 같이 찍어주는 것이 큰 대수는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비정규직이다 기적을 만드는 X2"는 여수의 고등학생들까지 참가해 전국적(?) 프로젝트가 되어 버린 것이죠.

    드디어 16명, 작은 기적

    학생들 5명이 참가해 이제 남은 사람은 단 1명. 그러나 늦은 퇴근길 귀가를 서두르는 동네 주민들에게 사진 한 장 같이 찍는 것도 쉬운 선택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학생들은 인솔 선생님이 기다린다며 시간이 없다고 재촉했지만 한 사람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 급기야 여수 학생들이 답답했던지 직접 나서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 한 명을 끌고 오다시피 데리고 왔습니다.

    드디어 16명. 그리고 사진을 찍어준 지나가는 시민 한분. 이렇게 어느 쌀쌀한 봄날 저녁의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160명도 아니고 16명에 호들갑이냐고 하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우리가 본 것은 그냥 16명이 모인 상황이 아니라 우리의 투쟁이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이길 수 있다는 어떤 희망이었습니다.

    그리고 32명이 실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성공할 수도 있겠죠. 다만 이 작은 기적이 조금 더 지속되어 주길 바랍니다. 아참, 16명이 모여 인증샷을 남긴 후 모여 마신 그 맥주는 정말 잊지 못할 맛이었습니다. 그 맥주 맛이 궁금하시다고요? 기적에 동참해 주세요.

    (단식 농성 중인데 왠 맥주냐고 눈을 흘기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단식 중인 분이 같이 얘기하고 싶다고 바로 옆에서 마시라고 하셔서 그렇게 했습니다.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면서요)

                                                      * * *

    "나는 비정규직이다 기적을 만드는 X2 참여하는 방법"

    1. 매일 오후 7시에서 8시 사이 8호선 몽촌토성역 인근에 있는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 움막 농성장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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