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곳으로 들어가 살길을 찾으라"
    2011년 04월 05일 08: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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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재구성이 실패했다는 단정이 당내에서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렇게 말해 보자. 미래를 바라보는 지향적 관점이 아니라 현재의 상태에 대한 진단만 내린다면 진보의 재구성은 성공하지 못했다.

진보의 재구성의 실패

성공하지 못했다는 말과 실패했다는 말은 동전의 양면에 불과하지만, 당원들이 그 말에 그토록 반발했던 것은 우리는 한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다는 통렬한 문제의식 때문이지 이 사태를 당 대표와 완전히 다르게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조금 도식적으로 표현하자면 진보의 재구성은 가치의 재구성과 세력의 재구성으로 이해되었다. 가치의 재구성은 현대의 진보적 가치를 찾기 위한 과정이고 평등, 생태, 평화, 연대로 표현되었다. 세력의 재구성은 진보적 가치를 공유하고 하나의 정당으로 같이 할 수 있는 세력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당이 처한 모순적 상황은 재구성을 위한 노력은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급격하게 정치 일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증폭되었다. 이는 이른바 통합파건 독자파건 똑같이 처한 현실이다. 독자파라 해서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노력을 더 했던 것도 아니며 통합파라 불린다 해서 정치 일정만 쫓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기에 독자파와 통합파의 분열이 현재 당 위기의 원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먼저 세력의 재구성, 즉 구도적 접근의 방식으로 살펴보자. 이는 ‘도로민노당’이냐는 문제의식과 관련되어 있다.

현재 통합을 가장 강하게 요구받고 있는 정당은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총이 가장 절박하게, 어찌보면 위협이라 할 정도로 요구하고 있다. 이 두 정당의 통합에서 가장 문제로 꼽혔던 것이 신뢰의 문제다. 패권주의를 방지할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패권주의를 막을 수 있는 제도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신뢰의 회복이 당의 통합에 가장 핵심이다.

하지만 상호간에 신뢰가 회복되었다는 어떠한 신호도 없다. 신뢰를 회복할 만한 강한 경험도 공유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신뢰를 회복하기에 3년이란 기간은 너무 짧다. 신뢰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통합을 하려다 보니 패권주의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수준을 끌어올리자는 식으로 일을 진행하려 한다. 하지만 여전히 서로를 의심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하게 살펴야 할 문제는 이른바 지형의 문제다. 진보의 ‘재구성’을 통해 지형의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한 상태에서의 통합이란 낡은 지형으로 회귀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낡은 지형이란 80년대부터 질곡으로 작용했던 NL-PD라는 운동 지형인데, 또다시 한 정당으로 묶어 놓으면 낡은 노선투쟁은 여전히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진보의 재구성은 낡은 지형을 타파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지형이 무엇인지는 고사하고, 과연 낡은 이 지형이 타파될 수 있는지 아니면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는 도저히 타파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조차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진보의 재구성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이라는 구도를 뛰어넘어야 하는데, 새로운 지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논의는 두 당의 통합에 머물러 있다.

가치의 재구성, 즉 내용적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많은 사람들이 의도한 결과는 아닐지 모르지만 진보신당은 이념중심적 정당이 아니라 가치중심적 정당을 내걸었다. 진보신당은 평등, 생태, 평화, 연대의 정신을 내세웠다. 가치중심적 접근은 낡은 이념정당의 모습을 탈피하고 당을 현대화시킴과 동시에 함께 할 수 있는 세력을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이것이 당에 생기를 준 것은 사실이다. 상상력에 제한을 두지 않으려 했으므로 당원들에게서 여러 가지 활력 있는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당장 생존의 위기에 빠지지 않는다면 진보신당의 상상력은 진보정당 운동의 새로운 길을 열어나갈 수 있으리라는 즐거운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당은 곧 침체 상태에 접어들었는데 이것은 단지 경험 있는 활동가의 부재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당은 대안사회에 대한 전망과 집권 전략이 없이는 대중의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진보신당은 이를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겠다면서도 그 새로운 핵심 가치가 제시되지 않았다. 완곡하게 표현하자면 공감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도 민주노동당과 분당할 때의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물론 북한에 대한 문제가 새로운 진보정당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라고 주장할 수 있다. 태도의 문제인지 가치의 문제인지, 강령적 차원인지 정치적 입장의 차원인지 논의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는 진보의 재구성을 주도할 수 없다.

가치중심적 접근방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복지를 핵심 가치로 모든 정치세력을 묶어내자는 구상이 그것이다. 하지만 복지는 수준의 문제일 뿐 이념적 차별성을 가지기 쉽지 않다. 애초 발생의 측면에서 보자면 복지는 보수세력의 전략이었다.

현재 복지가 새로이 진보적으로 해석되고 접근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단말마적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대응책이 긴급하게 요청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는 제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가치이지 새로운 진보정당의 중심가치일 수 없다.

가치중심적 접근방식에 포함할 수 있는 또 다른 접근은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정치세력을 모두 묶는다는 전략인데, 새로운 진보정당의 메시지로서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정책 의제가 아니라 대안사회의 전망 및 집권전략과 연결시킬 수 있는 진보정당의 핵심 가치, 곧 이념화할 가치를 찾아야 한다. 진보의 재구성의 실패를 기분 나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진보의 재구성이 도달해 있는 현 단계의 진단일 뿐이다. 당대회가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나타낼 것을 요구한 것처럼, 우리의 한계 또한 정확하게 진단해야만 길을 찾을 수 있다.

이념정당과 가치정당

이념정당에서 가치정당으로의 전환은 발전인가 퇴보인가. 결론적인 의견을 먼저 말하자면 가치정당은 새로운 이념정당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이다.

낡은 이념을 대신할 새로운 이념은 무엇인가. 민족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니라면 진보정당의 이념은 무엇인가. 국가사회주의의 오류를 극복하면서도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계승하는 이념은 어떤 것인가. 진보신당은 그 이념을 찾기 위한 오디세우스의 항해를 떠났다.

물론 우리가 들러야 할 몇몇 항구는 이미 정해져 있다. 평등에서 출발해서 평화와 만나고 생태와 조우하고 연대의 바다를 건넌다. 우리의 항해는 어디까지 왔는가. 아직은 도착을 알리는 신호기를 올릴 때가 되지 않았다.

위험이 있다. 항해를 마치기 전에 사이렌의 노랫소리에 빠져들 수 있는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벌써 그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복지라는 가치다. 자유주의 정당에서도 진보의 나팔이 울려대고, 보수정당에서도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국가 대안으로 복지사회를 들먹이고 있다. 마치 세상이 갑자기 급변한 듯하다. 하지만 풍랑을 보지 못하고 노랫가락에 귀기울이다가는 곧바로 좌초할 운명에 떨어진다.

복지도 우리가 만나야 할 중요한 가치의 하나다. 나는 내년 선거를 염두에 둔다면 복지라는 화두를 중심에 놓고 복지동맹이라도 맺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했다. 이 고민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는 매순간 정세를 살피면서 가장 적정한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할 것인가 판단하는 전략적 수준의 고민이지, 복지가 진보정당의 이념적 정체성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치 복지라는 가치가 구원의 밧줄인 양 선전하는 세력이 나타났다. 가치 중심적 접근에서 나타날 수 있는 위험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양상이다. 논리의 함정에 빠졌다고 일단 판단하지만, 미국식 양당구조를 만들기 위한 의도적 접근은 아닌가라는 혐의도 있다.

가치정당은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 불가피하게 겪어야 할 과정이지만, 그러기에 그 한계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가치정당은 언젠가는 이념정당이 되어야 한다. 오디세우스의 항해를 마칠 때 우리는 나라를 운영할 이념을 가져야 하며, 이것이 우리가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에 나섰던 이유이다.

동행인가 조우인가

이념의 동아리를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아직은 답을 내릴 때가 아니다. 이념의 동아리는 참으로 편하다. 거기에는 소파에 앉아 자기가 보고 싶은 채널만 틀어놓는 행복감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밖으로 나와 정당이라고 하는 배, 파도와 싸우는 조각배를 선택한 것은 결국 이 바다를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섣불리 답을 내릴 생각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항해가 끝나지 않았다고 해서 항해 뒤에 우리가 얻을 보물을 상상해 보는 자유까지 없는 건 아니다. 나는 노동을, 진보신당의 가치용어로 표현하자면 평등을 핵심가치로 생각한다.

국민의 정부가 네덜란드의 폴더 모형을 제시하였을 때 그건 비정규직을 인정하고 차별을 구조화하는 것이라 우리는 비판했다. 민주노총과 당 일각에서 사회연대전략을 제시하였을 때 이는 노동자의 양보를 전제한 것이라고 노동계 내부로부터 비판받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냐 비정규직 차별철폐냐의 논쟁도 아직 답을 내지 못했다. 지금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에서 가장 중심으로 등장한 것은 비정규직 사유제한이다. 하지만 이는 정책과제로 제시되어 있을 뿐이다. 비정규 노동의 문제를 정책의 문제를 뛰어넘어 대안사회의 전망 및 집권전략과 연결시키는 구상은 아직 뚜렷이 제시되지 않았다.

아니면 생태사회로의 전환을 상상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제시하고 있는 가치가 하나의 이념 속에 녹아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큰 전략은 비판받기 쉽다. 당연하다. 큰 것은 그만큼 잘 보이고, 그러기에 때릴 곳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진보의 가치, 이념으로 국민적 동의를 얻어낼 수 있는 전략이 아니라면 구태여 정당이라는 이 길을 택할 이유가 없다.

아직 우리가 그 답을 찾지 못했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함께 할 사람이나 세력을 찾을 수 있는가.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오디세우스의 항해를 함께 하는 데 동의하는가, 나는 이것이 기준이라고 본다. 진보신당이 내걸고 있는 가치의 기준이 온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충분히 대화하고 토론해야 한다. 당연하다. 진보신당이 답을 던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께 배에 오른다는 것은 분명 낡은 과거와 절연한다는 뜻이다. 당 대회는 이를 덮어두거나 회피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면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쓸데없는 말을 하나 덧붙이자면 진보신당 역시 과거와 절연할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한다.

키가 두 개인 배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누가 키를 잡는가에 따라 항로가 달라지겠지만, 서로 다른 키를 잡고서는 배를 운항할 수조차 없다. 가는 길에 만나 한동안 방향을 같이 가거나, 아니면 하선할 곳을 명확히 정한 채 잠시 같이 배를 탈 수는 있다. 하지만 끝까지 배를 타고 갈 이들이 누구인지는 분명해야 한다.

못다 한 이야기는 따로 시간을 내어야겠다. 나의 어조가 누군가에게 불편할지는 모르나 많은 것을 열어두고 사고하자는 내 생각은 확고하다. 많은 제안에 혐의를 두는 이유는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고, 냉소를 보내는 것은 왜 우리랑은 이야기하지 않느냐는 항변이다. 무조건 신뢰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신뢰의 부족이 더 큰 신뢰의 부족으로 악순환되는 과정은 막아야 한다.

대중을 믿어라. 함께 한 결정을 믿어라. 의심하지 말고 가라.
죽을 곳으로 들어가 살 길을 찾으라.
그렇다. 이것이 당 대회가 내린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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