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보, 김석준
        2011년 04월 04일 07: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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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을 걷고 또 걷는 이가 있다. 부산학 박사 김석준이다. 서울대 ‘한국사회연구회’ 시절 그도 학생운동권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구속과 제적될 위기를 넘겼고 진보적 학술운동이라는 도구를 쥐고 20대 후반에 국립 부산대 교수가 되었다.

    부산지역에서의 계급분석을 비롯해 부산이라는 지역을 무대로 한 연구와 저술을 쏟아내면서 진보적 지역사회운동의 이론적 기초를 다졌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현장 노동운동가들과 함께 영남노동운동연구소를 창립해 이론과 실천을 결합시켰으며 한국에서 산별노조의 이론적 산실을 부산지역에서 꾸려나가기도 했다.

    ‘부산학 박사’ 김석준은 필연적으로 진보정당운동에 몸을 담게 되었고, 시당 위원장직을 회피하지도 않았다. 한나라당의 일당 독점이 공고한 부산에서 국립대 교수가 진보정당의 대표를 맡는다는 것은 시지프스의 도로(徒勞)처럼 무모해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에겐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최초로 민주노동당 부산시장 후보를 수락하는 자리에서 "빚을 갚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구속되고 제적된 동지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고 싶다는 동기가 그를 무모하지만 의미있는 도전으로 몰아븥인 것이다.

    그러나 최초의 도전에서 보여준 16.9%의 지지라는 놀라운 성적이 보여주듯 그는 무모하지만은 않았다. 공성하는 입장에서는 농성하는 것보다 세배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고, 집권세력보다 세 배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을 주변 동료들에게 끊임없이 역설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자신의 별명을 ‘우공이산’이라고 붙인다. 불가능해 보이는 데도 지치지 않고, 쉽게 좌절하지 않고 부지런히 부딪혀 나가는 바보가 결국 산을 옮긴다. 바보 김석준은 편히 갈 수 있는 길을 두고 바보 동료들과 함께 스스로 진보정당운동이라는 가시밭길을 걸었다.

    가시밭길 걷는 컬트적 취향 때문에? 천만에! 그 길이 이 땅 서러운 이들의 눈물에 동참하는 길이고, 그 눈물을 제대로 닦아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 2010 지방선거에서는 그동안 쌓아 온 모든 것을 던지며 야권 단일화의 거름으로 자신을 바쳤다. 그는 변화하는 민심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고, 그것이 가까운 동료들에게 공유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진보정당운동이 쉽게 얻기 힘든 인물, 진보정당운동에 함께 해 줘서 고마웠던 그가 떠난 지 열 달이 지났다. 햇살처럼 환히 웃는 그가 보고싶다. 바보 김석준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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