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화, 살인범 기소장이 되다
        2011년 04월 02일 02:33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책 표지 

    삐에로 델라 프란체스까의 ‘채찍질’은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다. 이 그림은 지금까지 여러 각도에서 해석되어왔지만, 그림의 주제는 여전히 신비에 둘러싸여 있다. 『살인자, 화가, 그리고 후원자』(베른트 쾨크, 최용찬, 창비,  25000원)는 이 명작에 담긴 비밀스러운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낸다.

    저자는 이 그림이 15세기 이딸리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암시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림의 암호를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이제껏 주목받지 못했던 사료들을 활용해 그림의 미세한 디테일까지 꼼꼼하게 파헤쳐가는 저자의 추리를 따라가는 동안, 독자들은 이딸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매혹적인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한 예술문화 뒤에 감춰진 정치적 음모와 암살, 그리고 피의 복수…… 이 잔혹한 드라마의 한가운데에는 당대인들이 ‘회화의 군주’라 칭송했던 화가 삐에로 델라 프란체스까가 있다.

    1444년 7월 22일 밤, 우르비노의 젊은 공작 오단또니오 다 몬떼펠뜨로는 그의 최측근 고문관 두 명과 함께 자신의 궁정에서 처절하게 살해당한다. 공작으로 임명받은 지 겨우 1년이 지난 때였다. 그리고 암살이 일어난 바로 다음 날, 그의 이복동생인 페데리꼬 다 몬떼펠뜨로가 공작의 지위를 이어받아 우르비노의 새로운 통치자가 된다.

    어떤 저항도 없이 신속하고 매끄럽게 진행된 이 권력승계의 이면에는 그러나 권력을 둘러싼 정치적 암투와 ‘형제 살인’이 숨겨져 있었다. 저자는 프란체스까의 ‘채찍질’이 바로 이 살인사건을 고발하는 살인기소장이며, 피고는 다름아닌 우르비노의 새 공작 페데리꼬 다 몬떼펠뜨로라고 주장한다.

    누군가로부터 이 그림을 의뢰받은 삐에로 델라 프란체스까가 그림의 오른쪽 전경에 서 있는 세 남자와 왼쪽 후경에서 채찍질당하는 그리스도를 함께 배치함으로써 오단또니오 공작의 죽음을 암시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저자의 해석은 이전의 연구가 전혀 제시하지 못했던 색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엄정한 사료 분석과 흥미진진한 추리과정은 움베르또 에꼬의 『장미의 이름』, 댄 브라운의 『다빈치코드』 같은 추리역사소설을 읽을 때의 감흥과 더불어, 그림을 새롭게 바라보는 통찰력과 15세기 이딸리아의 역사적 정보를 함께 제공해줄 것이다.

                                                      * * *

    저자 – 베른트 뢰크(Bernd Roeck) 

    1953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출생. 1999년부터 스위스 쮜리히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독일 근대 초기의 도시사 연구에서 출발한 그는 이딸리아 베네찌아에 있는 독일학생쎈터 담당자로 일하면서 이딸리아 르네쌍스시대의 그림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역사학의 ‘도상학적 전환’에 몰두하며 현재까지 연구성과를 쌓아왔다. 2001년 필립 모리스가 수여하는 역사학 분야 학술상을 받으면서 역사학의 새로운 분야를 이끌어가는 학자로 주목받고 있다.

    역자 – 최용찬

    연세대학교 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기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공간 속의 시간’(공저), ‘21세기 역사학 길잡이’(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독일 제3제국의 선전정책’, ‘역사인류학이란 무엇인가’, ‘홀로코스트’, ‘독일 역사학의 신화 깨뜨리기’(공역) 등이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