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미국의 다문화주의 그리고 자본
        2011년 04월 01일 01: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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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지금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미국 아세아학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원래 거의 상업적으로 운영된다 싶은 이러한 대형 학회에서 참석하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지만, 일단 어쩔 수 없다 싶어 이번에 왔습니다.

    오바마 언급 때 박수, 역겨웠다

    이와 같은 기회가 아니면, 만나서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싶은 북미주 거주의 친우, 동료들을 거의 만날 수가 없기 때문이죠. 노르웨이 인민들한테 거둔 세금, 즉 학교 교내 연구비로 온 것이기에, 인민에 대한 복무 차원에서 들을 만한 분과 발표를 열심히 듣고, 그 개요를 나중에 수업시에 학생들한테 적절하게 공개하고 교육 내용으로도 이용할까 합니다.

    또, 한글로 공유할만한 내용이다 싶으면 그 개요를 적어 이 블로그에다가 공개하렵니다. 호텔 등 이쪽 시설들을 이용하면서 궁극적으로 저로서 적개심밖에 느낄 수 없는 미 제국에 돈을 바치는 데에 대한 미안함을 그렇게라도 덜어야 하겠습니다.

    방금 개회기념식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기념식에서 하와이주립대의 여러 당로자들이 축하연설을 했는데, 그 내용은 대체로 "우리 고장 자랑" 정도였습니다. 인구 구성이 매우 다양하다, 학교에서 80여개국의 학생들이 재적한다, 50여국 출신의 연구자들이 적을 둔다, 아세아에 있는 유일의 미국 주(州)다 등등, 대체로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본주(本州)가 미국에서 요즘 국시 격인 "다문화주의"의 권화라는 요지의 연설이었습니다. 거기에다 더해, 당해 대학의 소위 공자학원이라는 기관의 기관장이란 분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바로 우리 하와이 출신, 여기에서 출생하고 학교에 다녔다"고 자랑스럽게 덧붙였습니다.

    위대한 대통령 각하의 함자가 나오자마자 애국심에 불타서인지 (아마도 주로 미국인인) 참석자 다수가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저는 역겨워서 먹고 있는 음식물을 뱉어낼 뻔했어요. 참, 하바롭스크에서 국제학회를 열 적에 하바롭스크 국립대의 당국자가 자랑스럽게 "우리 도시 근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출생했다"고 자기 광고해버리면, 우리는 이런 당국자를 아마도 조금 비정상적이라고 여기지 않겠습니까?

    오바마와 김정일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마바의 손에 묻은 남의 피는 김정일의 손에 묻은 피보다 훨씬 짙은 것입니다. 김정일이 직접 관여했다고 믿을 수 있는 대남 공작이나, 대남 무력 충돌로 (북한의 소행인지 아닌지 극도로 불분명한 대한한국 858편 실종 사건까지 억지로 포함한다 하더라도) 희생된 사람들은 양쪽에서 수백명이 된다 해도, 오바마가 책임져야 할 아프간, 파키스탄, 리비아에서의 미국 침략, 포격, 폭격, 납치, 감금, 고문, 암살의 희생자들은 지난 3년간 분명히 수천 명 이상이 될 것입니다.

    무기 생산과 판매를 통한 간접 살인까지 이야기한다면, 아예 "게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오바마의 살인적 실적(?)은 좋아보입니다. 그런데도 그 이름의 언급이 이렇게 환성을 자아내는 걸 보니 인간은 정말 아주 괴상한 동물입니다. "우리 정부는 살인범들의 도당"이라는 생각을 안고 살기가 그렇게까지 버겁고 어려운가요? 글쎄, 저는 지금 리비아 공습까지 참여한다는 노르웨이 정부에 대해서 대체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미국 동료들에게도 용기를 내서 그렇게 해보기를 바라는 것이죠.

    오바마에 대한 곡학아세 수준의 아부성은 그렇다 치고, 다문화주의에 대한 하와이 대학 당로자들의 긍정적 확신도 저로서 받아들이기가 좀 어렵습니다. 물론 타자의 인종적 차이부터 언어, 종교까지 폭넓게 환영하는 것이야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낫죠.

    그런 면에서는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고 공언하는 독일 수상 메르켈 류의 구주 우파 정객들은 분명히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죠. 그런 발언들은, 유럽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타자들에게 불안만 자아내고, 그들과 토착민 사이의 "벽" 쌓기에만 기여하는 것뿐이죠.

    권력자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기가 훨씬 더 힘든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에서의 분위기가 타자가 틈입해서 살기에 더 좋다는 것도 수많은 한국인 이민자, 유학생들도 경험적으로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유럽 우파식의 거의 노골적으로 인종주의적인 "유럽적 가치"나 동화를 방불케 하는 "통합"에의 강조보다 미국, 호주, 캐나다 식의 다문화주의가 진일보한 부분은 있다 해도, 그 저의가 무엇인지 조금 더 깊이 파고들어봐야 합니다.

    북미 이주자의 경제적 가치

    북미주로 틈입하는 타자들은 대체로 육체노동 솜씨(이는 특히 중남미계 이민자들에게 해당됨)나 금전 자본 내지 학력 자본(인도, 동아시아계 이민자들은 대표적임) 등을 갖고 들어오는데, 이 모든 요소들은 자본의 입장에서는 이용가치가 높은 것입니다.

    유럽과의 차이라면, 이미 동유럽을 잠식해 유럽연합에 포함시킨, 즉 폴란드 등지의 육체노동자부터 의사까지 폭넓게 이용하고, 러시아 등으로부터 도피해오는 자본을 유입시키고 있는 서유럽으로서는 유럽 바깥으로부터의 "틈입"이 그렇게까지 절실하게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유럽연합의 총인구(약 5억명)는 미국과 캐나다의 총인구(약 3억5천만 명)보다 훨씬 많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본은 유입 인구에 대한 착취를 지향하지 "틈입자"들에 대한 동등 대우를 전혀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문화주의는 아무리 국시가 돼도 프랑스나 스페인, 포르투갈과 달리 미국은 보통 소위 "불법 이민자"들을 대량으로 사면해주지 않습니다. 천만 명을 넘는 그들을 "불법"으로 계속 묶어두어야 거의 노예처럼 착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케냐와 미국 중산층 부모의 자손인 오바마에게야 다문화주의는 적용되지만, 오바마가 다녔던 고등학교 (푸나후 학교) 밑동네 근방의 식당에서 "불법"으로 일하는 중남미나 한국 등지의 출신들은 다문화주의와 무관하게 평생 단속을 겁내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외국계 거주자들의 비율은 유럽연합의 평균치보다 약 3배 낮은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다문화주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여러 측면들은 있지만, 그 중에서의 하나는 분리통치 정책으로서의 다문화주의의 한국적 역할입니다.

    대한민국 다문화주의 평가

    단기취업비자로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대다수가 다문화주의 정책 수혜자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돼 있는 반면 결혼 이민자들이나 고학력 이민자 등은 수혜자로 돼 있기에, 이 두 그룹 사이에 한국 권력자들이 담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나 인도계 기술자, 필리핀계 아주머니, 방글라데시계 노동자가 같이 손을 잡고 그들을 착취하고 사실상 계속 따돌리는 대한민국 지배자들과 연대해서 싸울 가능성을 미리미리 차단시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의 측면은, 다문화주의와 연계돼 있는 민족주의 이념 포기 정책이 반북주의 광풍 조장에 나름대로 도움이 된다는 부분입니다.

    "민족"보다 (결혼이민자들까지 하위 배치돼 편입될 수 있는) "국민" 내지 "시민"이 우선시되는 상황에서는 탈북하지 않는 이상 "국민화"될 수 없는 북한인들에 대한 이질감은 더욱더 강화되기가 쉽고, 반대로 "국익에 도움된다"는 이념 주입 하에서 외국자본의 유입 등을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 통치자들이 이북 영토에 대한 지배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고, 그 만큼 또 이북 영토의 식민화를 합리화할 민족주의적 이념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당장에서는 그들에게 "무한경쟁" 표어 하에서 이루어지는 월남, 중국, 인도네시아 등지에서의 착취 행각이 훨씬 더 이득이 되는 것이고, 또 증시에 외국계 자금을 끌어들여 주식가격을 높여 이득을 챙기는 일도 재미가 되니 멋져보이는 "탈민족주의"를 약간 더 후원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원색적인 민족주의보다 훨씬 더 뉘앙스가 많고 융통성이 있는 탈민족주의 내지 다문화주의는 "우리 속의 타자"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민족주의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단, 자본과 권력의 손에서는 민족주의든 탈민족주의든 다문화주의든 그 어떤 이념도 결국 약탈, 착취, 이용, 분리통치의 도구가 되어 악용될 점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일 뿐이죠.

    우리가 풀어야 할 궁극적 모순은, 한국인과 비한국인 사이의 모순은 절대 아닙니다. 삼성 이씨 왕조와 백혈병으로 죽어나가는 노동자들 사이의 모순이야말로 이 사회, 이 세계의 기본 모순입니다. 이 모순만이 풀리면 여성문제든 종족적 타자 문제든 나머지의 이차적 모순들은 다 스스로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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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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