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왜 ‘방사능 뉴스’ 외면했을까
    2011년 03월 30일 09: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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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사성 물질이 한국에 상륙했다. 전국 12개 지방측정소 모든 곳에서 검출됐다. 편서풍 때문에 한국에 넘어올 일이 없다던 전문가, 심지어 바람 방향과 관계없이 한국으로 넘어오지 않을 것이라던 이명박 대통령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와 전문가, 언론의 호언장담이 무너졌다. 불안과 공포는 신뢰와 믿음이 무너질 때 심화되는 법이다. ‘유언비어’라고 일축했던 그 상황이 현실이 되면서 국민 걱정은 커지고 있다. 정부와 언론이 정확한 내용을 충실하게 알려야 불안과 공포도 잠재울 수 있다.

문제는 정부는 벌써부터 책임회피와 변명의 모습을 보이고 있고, 이를 감시 견제해야 할 언론마저 일부는 쉬쉬하고 있다. 조선일보 3월 30일자 지면 구성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신문의 얼굴이라고 할 1면에서 한국의 대규모 사업 수주 소식을 강조한 반면, 한국에 방사성 물질이 검출된 것을 전하는 자세한 기사는 없다. 종합면도 그렇고 사설도 마찬가지다. 정부 해명을 담은 기사만 있을 뿐이다.

다음은 30일자 전국단위 주요 아침신문 1면 기사다.

경향신문 <성난 민심에 불 지른 희한한 ‘신공항 실사’>
국민일보 <‘죽음의 재’보다 무서운 ‘악마의 재’ 공포 현실화>
동아일보 <국내 측정소 12곳 모두 방사성 물질 검출 인체영향 없다지만…>
서울신문 <방사능 공포 ‘양치기 정부’가 더 불안>
세계일보 <5월 동풍 불면 국내 직접 유입될 수도>
조선일보 <‘강남 노른자’ 정보사 부지에 군인아파트 추진>
중앙일보 <“과거 기준 집착말고 최악 가정해 대비를”>
한겨레 <MB ‘원칙없는’ 국책사업…갈등만 키운다>
한국일보 <서울 주요 사립대 특별전형 ‘부정 입시’ 최소 70건 적발>

조선일보 3월 30일자 지면을 지켜보면 방사능 문제는 남의 나라 얘기로 인식된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판단한 것일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조선일보 1면 사진기사 제목은 <방사성 물질 검출 “한국 괜찮나요” 빗발치는 전화>라는 내용이다.

국민이 그만큼 불안해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것을 조선일보도 알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조선일보 1면에는 한국 방사능 검출과 그 의미를 담은 기사가 없다. 방사능 관련 기사가 있기는 했지만, 한국이 아닌 미국 얘기였다.

조선일보는 1면 <미국 15개주에서 방사성 물질 검출>이라는 기사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여파로 미국 15개 주에서도 극소량의 방사성 물질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T50 세일즈, 국정원 악재 뚫고 일단 ‘9부 능선’"

   
  ▲조선일보 3월 30일자 3면. 

미국에서 방사성물질이 검출된 것도 중요하겠지만, 조선일보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한국의 현실, 한국의 상황 아니겠는가. 조선일보가 1면에 의미 부여를 한 기사들은 한국 정부의 치적을 홍보하는 내용이다.

조선일보는 1면에 <"T-50 수출 곧 성사" 청와대 관계자 밝혀> <인니 철도 수주도 눈앞에>라는 기사를 각각 실었다. 조선일보는 3면에도 <T50 세일즈, 국정원 악재 뚫고 일단 ‘9부 능선’>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 기사를 읽으면서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잘하고 있군”이라고 얘기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한국 방사능 검출의 의미와 그 위험성, 대처 등에 대한 심층분석 기사를 기대한 독자들이 더 많지 않겠는가. 그것이 신문시장 1위를 자처하는 언론에 대한 기본적인 기대 아니겠는가.

조선일보는 한국 방사능 검출 관련 사설을 싣지 않았다. 종합면에서도 관련기사를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일보는 10면 하단 <한국에 날아든 방사성 물질 ‘요오드·세슘’ 농도는?>라는 기사에서 “이제 우리나라에서 일본처럼 수돗물과 식품의 방사능 오염을 걱정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반MB진영 ‘2차 광우병 대책’ 벼른다"

   
  ▲조선일보 3월 30일자 34면.

정부 해명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다. 조선일보가 한국 방사능 우려를 둘러싼 문제에 아예 관심을 닫은 것도 아닌 모양이다. 김창균 논설위원은 34면 <원전에 어른거리는 광우병 그림자>라는 칼럼에서 “불안 심리를 지렛대 삼아 반MB 진영은 ‘2차 광우병 대첩’을 벼르고 있다. 정부가 ‘전문가 말 믿으라니까’라는 식으로 뻗대다가는 광화문 거리가 또 촛불로 뒤덮일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명박 정부에게 미칠 정치적 부담과 위험을 걱정하는 것도 좋지만, 한국 국민의 방사능 걱정에 대한 상세한 정보전달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조선일보의 보도태도는 동아일보 중앙일보와도 분명 차이가 있다.

중앙일보는 30일자 1면 머리기사로 <“과거 기준 집착말고 최악 가정해 대비를”>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는 1면 <국내 측정소 12곳 모두 방사성 물질 검출 인체영향 없다지만…>이라는 기사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누출된 방사성 물질이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전국적으로 방사성 요오드와 세슘이 검출됐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 "최악 가정해 대비를"

   
  ▲중앙일보 3월 30일자 1면.

동아일보는 3면 <"서울 요오드 검출"-"확인된 사실 아니다"-"맞다" 오락가락>이라는 기사에서 “일본 원전에서 날아온 방사성 물질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국민에게 알려줘야 할 정부기관들이 우왕좌왕하면서 국민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조선일보가 취한 보도태도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방사성 물질 검출 소식과 그 의미, 앞으로의 전망 등에 대한 소식은 한국 언론이 외면하면 어떤 언론이 그 역할을 대신하겠는가.

동아일보, 중앙일보도 1면 머리기사를 통해 관련 소식을 전하는 상황과 조선일보의 ‘외면’은 주목할 대목이다. 국민이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것은 정부 발표를 믿을 수 없게 된 현실이다.

서울신문 "방사능 공포 양치기 정부가 더 불안하다"

   
  ▲서울신문 3월 30일자 1면.

서울신문은 1면 <방사능 공포 ‘양치기 정부’가 더 불안>이라는 기사에서 “(정부는) 안일하게 대응. 오히려 미래의 공포를 키우고 있다. 지구를 한 바퀴 도는 편서풍 외에 다른 이동루트는 상상할 수도 없다던 기상청은 ‘KINS가 발표한 진로는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고 고집을 꺾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도 4면 <편서풍 불어 괜찮다더니…불신 키운 정부>라는 기사에서 “정부의 ‘호언장담’이 하나둘씩 무너지고 있다. ‘지구가 거꾸로 자전하지 않는 한 편서풍 외의 다른 경로는 있을 수 없다’던 기상청 주장과 달리 방사성 물질은 편서풍이 지구를 한 바퀴 채 돌기도 전에 다른 경로로 한반도에 유입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 정작 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태 수습이 불가능하다. 지나치게 불안감을 조장하는 보도나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는 경계해야 하겠지만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식의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최악 상황까지 가정해 상황 점검해야"

   
  ▲한겨레 3월 30일자 사설.

한국의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숨을 죽인 채 ‘안전하다’는 돌림노래를 부르게 됐는지 그 이유도 궁금하다. 주목할 대목은 이명박 대통령의 3월 21일 라디오연설 내용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일본의 방사성 물질은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바람의 방향과 상관없이, 우리나라까지 날아올 수는 없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방사능 낙진에 관한 근거 없는 소문이나 비과학적인 억측에,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겨레는 <일본 방사성 물질 국내 유입, 최악 상황 대비해야>라는 사설에서 “원전당국이나 기상청이나 ‘바람의 방향과 상관없이 방사능 물질이 우리나라까지 날아올 수 없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갇혀 있었던 것 아닌가 돌아볼 일”이라며 “정부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해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그 실상을 정확하게 바로 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일보 "’악마의 재’ 공포 현실화"

   
  ▲국민일보 3월 30일자 1면.

정부나 언론이 두 눈을 부릅뜨고 이번 사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상황이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일보는 1면 <‘죽음의 재’보다 무서운 ‘악마의 재’ 공포 현실화>라는 기사에서 “’악마의 재’로 불리는 플루토늄에 대한 공포가 현실화 되고 있다. 일본인들에겐 1945년 나가사키시에 투하됐던 플루토늄 원자폭탄 ‘패트맨(Fatman.뚱보)’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고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3면 <"안전지대" 장담하던 정부, 이젠 대책이 급해졌다>라는 기사에서 “일본 원전에서 플루토늄이 검출됨에 따라 해수 등을 통해 이 물질의 한반도 유입 가능성에도 주목해야 할 상황이다. 플루토늄은 요오드, 세슘 등 다른 방사성 물질과 달리 알파선을 방출하기 때문에 인체에 치명적”이라면서 “현재 전국 방사능측정소에는 플루토늄 검출 장비가 설치돼 있지 않다”고 우려했다.

세계일보도 1면 <5월 동풍 불면 국내 직접 유입될 수도>라는 기사에서 “사태가 장기화되면 한반도가 방사성 물질의 직접 영향권에 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편서풍의 큰 흐름은 변화가 없지만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주변 바람은 우리나라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 "5월이면 동남품 타고 한반도에 유입될 가능성"

   
  ▲동아일보 3월 30일자 사설.

‘편서풍 방어막’이 이렇게 일찍 무너질 줄 예상한 이들은 얼마나 될까. “그래도 정부가, 전문가들이 주장한 내용인데”라면서 믿음을 보냈던 이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다. 방사능에 대한 과도한 공포를 부추기는 것은 분명 경계해야 할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사재기’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차분하면서도 냉정하게 대처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부터 솔직해져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게 미칠 정치적 악영향을 걱정해서 쉬쉬하거나 엉뚱한 주장을 펼치면 국민 불안과 공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또 일본 방사능 유출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한국이 어떤 대비를 해야 하는지 국민들에게 충분히 알리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 치적 홍보에 언론이 관심을 기울일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동아일보는 이날 <방사성 물질, 과민반응 말되 투명성은 높여야>라는 사설에서 “5월 말이면 바람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그때까지도 수습되지 않을 경우 더 많은 양의 방사성 물질이 동남풍을 타고 한반도에 유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킬 만반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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