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사태’와 불편한 진실
"진보는 외계인이 아니다…지금, 여기 현실에 구속받아"
    2012년 05월 17일 12: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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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야 일찌감치 “통합진보당”의 결성 과정 그 자체를 계급적 입장으로부터의 이탈의 과정으로 봤기 때문에 현금의 “통진당 사태”를 봐도 그다지 감정 동요는 없지만, 수많은 분들에게 “주먹질하는 진보”는 아주 불편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셈입니다.

진보의 한계들 

비록 급진 진보는 아니다 하더라도, 그래도 “운동권”을 모태로 하는 세력이 어찌 “태권도 실력”을 늘 과시하는 기존의 국회의원들을 이렇게도 빨리 닮아버리느냐는 한탄의 소리가 도처에서 들립니다.

그 한탄을 하는 마음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을 우리가 직시해야 합니다. 통합진보당은 이미 진보와 한참 멀어졌지만, 진보라 하더라도 화성에서 오는 외계인들은 아니라는 것이죠.

진보는 비록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만, 동시에 “지금 여기”의 한계를 다 안고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고 자라고, 학교 다니고, 군대 다녀오고, “위아래” 구조 안에서 “제자리”를 찾고 이런저런 타협을 해가면서 밥벌이하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은 “이 곳”, 이 시대의 한계를 넘어선다 해도, 몸은 “여기, 지금”에 속합니다.

그래서 그만큼은 “우리”의 일반적인 수준을 뛰어넘기가 힘들다는 것이죠. 통합진보당 같은 경우에는, 계급적 입장을 버리고 고학력 중산계층에 자기 자신들을 “파는” 과정에서 특히 기존의 도덕 수준마저도 급격 하락돼 남한의 일반 부르주아 정치 이하의 레벨을 만천하에 과시했지만, 이와 같은 “타락”의 극단적인 케이스가 아니더라도 진보에는 분명 시대적 한계가 있게 마련이죠. 우리가 진보에 스스로 속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그 한계를 직시해야 합니다.

오늘날 대중적인 진보의 모태는 제1차 대전 이전의 독일 사민당이라고 하겠습니다. 유럽에서 “사회주의”를 최초로 한 계급의 이데올로기로 만든 만큼 공훈이 많은 당이었습니다. 전쟁 이전에는 약 백만 명의 당원을 확보하고 있었던 독일사민당은 예컨대 주요 공업의 사회화를 요구하고 있었던 만큼 그때만 해도 분명 “사회주의적”이었습니다.

독일 사민당의 경우

하지만, 합법적으로 사업해온 당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독일노동자들이 받는 복지혜택 (초보적 형태의 실업수당 등등)만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면 갈수록 관료화돼가는 당은, 그 투쟁 대상인 “국가”를 닮아갔습니다.

카우츠키 등 “지도자님”들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태도는, 독일 소시민이 보통 “국가”에 대해서 느끼는 “존숭의 염(念)”과 그다지 다르지도 않았습니다. 사회주의적 원리원칙과 달리 국가의 민감한 부분 – 예컨대 국민개병제나 대러시아 전쟁 준비, 그리고 식민지 약탈 등 – 을 더 이상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던 당은,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한 반면, 1918~1919 독일혁명의 급진화만큼 너무나 잘 막아 유산층 지배의 보루 역할을 맡게 된 것입니다.

시대적인 한계를 벗고 싶어도 벗지 못하는 “합법적 사회주의 운동”에서 결국 그 시대적 한계를 대표한다 싶은 기존 체제의 “지킴이”가 된 것이죠. 역시 국가나 군대만큼 늘 우러러보는 조합, 당 관료의 보수성은 “사회주의적 신념”을 이기고 말았습니다.

가장 급진적인 혁명가에게도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레닌의 급진성을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지만, 말년의 레닌도 테일러주의(“과학적 경영” – 주로 노동시간 관리 합리화와 지속적인 노동생산성의 제고를 도모하는 것임)를 “사회주의의 기초”로 생각하고 “소비에트와 테일러주의의 결합”을 “사회주의”로 착각할 만큼 기슬-과학만능주의적인 환상에 빠진 적은 있었습니다.

그 망상 그 자체야 그 당시 일반 서구 지식인의 보편적인 “통념”에 가까웠지만, 그 통념이 혁명가의 의식 속으로 흘러 들어가면 이는 참 위험한 일입니다. 과연 레닌만 20세기 초의 보편적인 기술만능주의에 감염돼 있었던가요?

레닌의 한계 

중산층 지식인 출신의 대부분 “올드 볼셰비키”들은 그랬고, (멘셰비키들은 실은 오히려 더 하면 더 했죠) 또 노동자 출신의 당원이라 해도 생활수준 향상 등에 대한 기대로 이에 부합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스딸린의 반동화 이후에는 “스타카노프주의”라는 미명하에 쏘련에서도 노동자에 대한 과잉 착취, 실적 경쟁 유도의 분위기가 되살아나고 말았습니다. 진보가 이렇게 보수적으로 되면 너무나 슬픈 일이 아닌가요?

확언컨대, 우리가 목전에 관찰하고 있는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한계는 카우츠키나 레닌보다 심하면 아주 심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또 최근의 자유주의자들과의 무원칙한 타협으로는 과연 한계밖에 무엇이 남았는가, 라고 자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 한계를 분석해보면 문화적 한계와 사회-정치적 의식의 한계로 분리해서 분석해볼 수도 있습니다.

폭력 사용에 대한 “너그러운 태도”(?) 같은 경우에는 분명 한국 사회의 군사주의적 분위기, 군사 문화와 유관합니다. 권인숙 선생 등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많이 지적했듯이 남성우월주의적 군사 문화는 80년대 운동권 안으로 흘러들어갔고, 운동권을 모태로 하여 조직을 꾸려나가고 군대를 방불케 하는 “조직사회”에서 살아온 좌파민족주의자들에게는 폭력적 습관이 많이 체질화된 건 사실인 듯합니다.

문화적 한계와 사회정치적 한계 

“문화적 한계”라고 하는 건 바로 이와 같은 체질화된 아비투스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죠. 그런데 여성주의자 등 여러 “새로운 진보 세력”들의 성찰과 개선 요구로 그나마 나아질 수 있는 “문화적 한계”보다 훨씬 더 위험한 한계는 바로 “사회-정치적 한계”입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전혀 볼 줄 모르는, 기껏해 봐야 장하준 식의 “박정희 시대와 같은 자본에 대한 국가통제” 정도를 이야기하는 한국 사회의 “일반”과 마찬가지로 통합진보당 등 자유주의화된 과거 운동권 멤버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 제시를 포기한 채 자본주의에 대한 “수정”의 판타지에 그대로 매달리고 있습니다.

이미 4년이나 걸려온 세계공황은 그 어떤 자본주의적 방식으로도 – 예산 삭감 위주의 신자유주의적 방식으로도, 국가 위주의 시설, 공업 투자 식의 신케인스주의적 방식으로도 – 제대로 극복되지 못한 채 악화일로 진행돼가고, 인제 어쩌면 세계 자본주의의 하나의 핵심 지역이자 수정 자본주의의 쇼 윈도우인 유럽연합이 붕괴될 수 있음에도, 한국의 “진보”는 무계획한 이윤추구 식의, 개인 투자자 소유의 재벌경제야말로 청산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한국 자본주의 “성공 스토리”를 믿어 이 “성공”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고 사유하는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적 미몽에 옭매여 있다는 것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유럽의 가장 급진적인 대중들도 아직은 “자본주의 문제”를 본격적인 화두로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고, 단지 “1%의 탐욕”이니 “강도 같은 금융자본”이니 하는 비과학적이고 도덕주의적인 수사의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최근 선거 결과를 봐도 그리스의 총선에서 유일한 진정한 반자본주의적 세력인 공산당은 8,5% 정도만 얻었고, 프랑스의 대선에서 급진적인/자본주의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색채의 좌파연합/신반자본주의당/노동자 투쟁당 후보들은 다 합쳐도 13% 정도만 얻었습니다.

사민주의적인, 수정자본주의에 대한 각종 환상으로부터의 해방에 시간이 걸립니다. 문제는, 위기 진행의 속도로 봐서는 우리에게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아직 약물치료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상황이 더욱더 나빠지면 수술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악화될 수 있단 말씀이죠. 그러니까 진보로서 “자본주의 긍정”이라는 시대적 한계를 스스로 깨닫는 것은 정말 급선무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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