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민주노동당이 답할 차례다"
    2011년 03월 29일 09: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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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에 있었던 진보신당 정기 당 대회 결과를 놓고 누군가 분석하길, 독자파가 60이고 통합파가 40인데, 통합파 40중에 20이 대통합파(즉 민주당과 국참당도 포함하는 통합)이고 20은 도로민노당파(즉 민노당과의 통합)라고 해석했다. 통합파도 통합이 안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진보신당 대의원들의 존재적 특성

이런 분석이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독자파니 통합파니 하는 실체가 애매한 구분 이전에 근본적으로 진보신당 대의원이라는 사람들이 갖는 존재적인 특성을 먼저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진보신당은 선수들이 만든 당이 아니라 평당원 중심 정당이다. 진보신당 대의원들은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다들 별도의 직업이 있고 하루 종일 생업에 바쁘다. 그 와중에 틈틈이 시간 내서 정치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다. 보수정당처럼 당협위원장 팬클럽 회원들도 아니다. 이 들은 주로 평소의 신념이나 언론을 통해 접한 상식으로 판단한다.

이들은 또 현실정치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려있지도 않다. 물론 정치를 통해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만, 정치판과 개인적 이해가 직결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에 대개 소신이나 이념에 의해 움직인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 분들은 진보대통합이 되건 말건 개인의 진로와는 큰 관계가 없는 분들이다. 만약 이들이 직업적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전략적 사고에 무게를 두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현실의 불리함을 털어내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뭔가 다른 세력과 손을 잡고 싶은 조급한 충동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판의 변동과 별 이해 관계가 없고, 어떤 정치적 가치를 위해 당원이 된 사람들이라면 언제부턴가 형성된 평소의 신념을 더 중시 여긴다. 평당원에게는 당이 의회 진출한다고 딱히 떡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의회진출을 못한다고 무슨 불이익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당이 대중성을 갖춰나간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설사 그렇지 못한다 해도 참을 수는 있다. 이런 전제를 갖고 이번 당 대회를 다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대중은 사전에 충분히 숙지되고, 이해되어 자기 내면에 충분히 정착한 사안에 대해 판단한다. 갑자기 던져진 사안에 대해서는 일단 거부감부터 느낀다. 그래서 대중적인 설득과정은 반드시 잘 짜여진 순서와 명분의 배치를 요구받는다.

북한 문제 확실한 입장 표명 요구는 당연한 일

이렇게 볼 때 다수의 진보신당 대의원들이 북한 핵과 3대 세습에 대해 더 확실한 입장 표명을 요구한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진보신당은 친북노선에 반대해서 민노당으로 부터 뛰쳐나온 당이지 않는가. 바로 이 친북노선에 대한 반대가 좋건 싫건 진보신당의 본질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문제 외에 다른 문제는 민노당과 형식상 차별성을 찾기 어렵다. 비정규직? 민노당은 반대 안하나? FTA? 민노당은 반대 안하나?

그런데 평범한 대의원 입장에서 볼 때, 이렇게 2008년 분당 당시에 수립된 세력 정체성에 뭔가 변화를 일으킬 만한 아무런 정치적 계기가 없었다. 오히려 이 정체성이 강화될만한 계기가 더 많았다. 연평도 포격이 있었고,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민노당 대표의 발언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뭔가 합치려면 일단 서로의 차이가 무엇이고, 서로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작업이 최초로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작업을 건너뛰고, 어떤 정치적 계기나 설명도 없이 묻지마 재결합을 요구하는 것은 상식 차원에서 원천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당대회는 ‘세력 정체성’, 즉 당의 본질을 재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설사 통합을 하더라도 일단 여기서 출발해야 하고 이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 대중의 집단 지성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당 대회의 의미는 크다. 창당 후 최초로 민노당과 구별되는 실질적인 차별성을 당 대회가 채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진보신당은 창당 이후 한 번도 제대로 민노당과의 차별성을 확인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진보신당이 외부의 연합 압박에 크게 흔들린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직업 정치인들의 자충수

이런 맥락에서 이번 대회는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자충수 같은 성격도 갖는다.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다가 일을 그르쳤다는 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

사전에 충분한 조건을 만들어 놓고 통합의 의미를 설명했다면, 얘기가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 연합정치 활성화를 위한 각 정치세력들의 다양한 반성문이 유행인데, 민노당이 친북노선에 대한 반성문을 먼저 제출하고 그 다음에 통합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면 상황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그토록 서둘렀을까? 시간은 없는데 향후 남은 과정은 무척 많았기 때문이었다. 도로민노당 구상을 실현하려면 한 고비 한 고비 넘기도 어려운 당 해산과 합당을 계속 반복해야 되는데 이는 실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결국 시간에 쫓긴 직업적 정치인들은 무리수를 두게 되었고, 그 결과 자기가 항상 그리던 머릿속의 그림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현실만 확인하고 말았다.

자기 맘대로 정당을 짤랐다 붙였다 하는 제왕적 총재 시절을 너무 오래 겪었기 때문일까? 평당원 체제의 해산과 합당이 과정이 얼마나 복잡한 과정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나는 이 과정에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사수대 10명만 있어도 진보신당 해산 결의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는데,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게 가능하다고 본 사람들의 무한도전식 정세분석은 3월 27일 당대회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국 교수는 얼마 전에 진보신당이 깨지지 않기 위해서 비상 당 대회를 다시 열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평당원 체제에서 당 대회 한 번하기란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쉬운 일이 아니다. 당 대회 안건을 전국적으로 공유하는데만 두 달 걸린다.

세력 정체성 분명히 한 당 대회

진보신당이 작기는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동질성이 강한 균질적인 세력이다. 이 세력이 어떤 문제의식을 정확히 공유해서 이견을 조정하고 결론을 맺기까지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을 마구 생략하고 건너뛰는 것은 대중에 대한 모독이다.

진보신당은 창당 3년 만에 ‘북한체제에 반대하는 진보’로 세력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향후 논쟁이 어디로 흘러가건 상관없이 이제 이것은 모든 토론의 기본 전제가 된다. 다음은 민주노동당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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