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란인가, 새로운 소통방식인가?
    그들은 회피를 선택하지 않았다
        2011년 04월 03일 10: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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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27일 열렸던 진보신당 당 대회 결과를 두고 안팎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당 대회 직후에는 나 역시 그러한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러나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찬찬히 복기하며 돌이켜 보았다. 내가 당 대회에서 읽지 못했거나 오해했던 부분이 없는가?

    그 결과 나는 많은 사람들이 당 대회가 보낸 신호를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판단하게 되었고, 그 왜곡을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 생각은 아직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같은 프로토콜로 당 대회를 해석할 수 있다면, 언뜻 보기에 우리에게 불가능한 임무를 지우는 것처럼 보이는 당 대회 결정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독자파와 통합파라는 서로 따로 노는 신호체계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신호체계를 찾아내는 것은 당 바깥과의 소통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미션 임파서블

    “진보정당 통합 빨간불!”, “독자파의 완승”, “지도력 손상”이라는 언론들의 반응.
    솔직히 고백한다. 당대회가 진행되는 내내 나는 웃는 얼굴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대단히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전국위원회에서 팽팽한 논의를 거쳐 만들어졌던 안이 이제 와서 모조리 수정되는 상황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눈 앞에서 벌어지는 대의원들의 열띤 토론은 매순간 나 자신의 판단이 왔다갔다 할 정도로 생동감 있고 매력적이었다.

    수정안이 대거 올라오게 된 당대회까지의 과정은 납득하기 힘들었지만, 그 과정을 잊어버리고 당 대회만 본다면 더없이 즐거운 토론장이었다. 그러나 거듭 고백하자면, 역시 그 즐거움보다는 당 대회의 결정 후 진보신당이 도대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인가 하는 우려가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당 대회가 끝나고 당 게시판에는 자발적으로 당비를 인상한다는 글들이 연이어 올라왔다. 얼굴을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연속되는 글들 속에서 아주 유쾌한 웃음이 느껴진다. 그런데 또 한쪽에서 날린 목소리. 정당이 “좌익 보이스카웃 캠핑”, “틴에이저 소셜리스트 카페”냐라는 조롱도 나왔다.

    사람들은 사물을 이해하는 자기 나름의 공식이 있다. 기나긴 세월을 스스로 활동가로 살아왔다고 하는 사람들 역시 그 공식에 익숙해져 있다. 오랜 활동 경험 속에서 공식은 서로 닮아간다. 그리고 그에 맞는 해법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곧잘 사용되는 용어가 있는데 바로 ‘선수’라는 말이다.

    “선수끼리 왜 그래.” 한번쯤은 들어보거나 사용해 본 말일 터이다. 공식에 따른 과정과 결과를 잘 알고 있으면서 괜히 어깃장 놓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을 때 이 말을 쓴다. 이 말을 사용하면 신기하게도 적어도 80% 정도는 ‘정상 궤도’로 돌아간다. 이른바 코드를 맞추게 되는 것이다. 세상 살아가는 훌륭한 지혜가 아닌가!

       
      ▲진보신당 당 대회 모습 

    그런데 때때로 이 공식이 안 통할 때가 있다. 그러면 어떤 태도를 보이게 되는가. 대부분의 경우 적대적으로 된다. 오랜 경험을 가진 노련한 사람이더라도,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공식과 어긋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부정적 태도를 취하고 그것을 잘못된 것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하여 자신의 공식에 오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대규모의 집단현상이었던 촛불 시위와 같은 강렬한 경험을 할 경우이다. 그때는 저 이명박조차 청와대 뒷산에 올랐다고 하지 않는가!

    다수가 옳다 한다고 해서 다 옳은 것일 수는 없다. 소수가 이야기한다고 해서 틀렸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규모와 강도가 사람들의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치곤 한다. 하지만 사물과 현상을 이해하는 공식이란 언제 어디서든, 다수가 요구하든 소수가 요구하든, 요란하게 계속되든 외마디 절규로 그치든 끊임없이 수정되고 다듬어져야 함을 나는 확신한다. 당 대회를 통해 배워 얻은 선물이다.

    당 대회가 끝난 후 스스로 당비를 인상하며 즐거워하는 당원들의 모습이 과연 독자파들이 승리를 자축하는 모습으로 보이는가. 진중권은 이를 조롱했는데 그는 필리핀에 너무 오래 있은 것 같다. 통상적으로는 표정을 관리해야 할 판에 즐거워하고 있으니 ‘독자파’는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은 집단인가.

    굳이 보이스카웃이니 틴에이저니 하는 단어를 고른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현장에 있었던 나의 눈에는 오히려 성향상 분명히 진중권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독자파’에 더 많이 합류한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나에게는 연이은 당비 인상의 결의가 승리의 팡파레라기보다는 절박함의 표현처럼 비친다.

    3.27 당 대회는 하나의 시선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외부적 시선과 내부적 시선을 교차시켜야 한다. 당대회가 내린 ‘미션 임파서블’을 성사시켜 내기 위해서는 좀더 복잡한 시선, 복잡한 방정식이 필요하다. 9월까지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 그리고 도저히 협상 상대에게 먹히지 않을 것 같은 입장의 선언이 동시에 있었다.

    단순한 접근으로는 불가능한 임무다. 하지만 이 임무를 성공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길이 가능하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물론 나 역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의 한 명이기에 완벽한 시야를 가질 수 없고 한계가 있다. 앞으로 할 나의 이야기는 아직 암중모색하는 사람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대의원들의 반란인가, 새로운 소통 방식인가

    이번 당 대회에서 나타난 대의원들의 판단 기준은 정파도 세대도 아니었다. 관악의 한 젊은 청년 대의원은 당 대회에 수정안이 대거 올라온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렇지 않겠는가. 작년 임시 당 대회의 결정에 따라 당 대회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준비위원회는 다양한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준비위원회가 토론을 거쳐 만든 안을 가지고 각지에서 당원들을 모아 안건 설명회까지 마쳤다. 더군다나 실무책임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민감한 안건에 대해 전국위원회 직전에 다른 입장의 준비위원들이 모여 조정까지 거쳤다. 전국위원회에서 열띤 토론이 있었고 표결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당 대회 안건이다. 미리 공지된 수정안은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3월 27 당일에 무더기로 수정안이 제출되었고 그 수정안들은 하나도 부결되지 않고 다 관철되었다. 미리 공지된 수정안은 압도적으로 표차로 부결되었다. 그럴려면 뭣하러 준비위원회를 만들어 그토록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토론하고 조정했는가 하는 문제 제기가 나올 만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 제기는 아무런 힘을 받지 못했다. 전통적인 관행이 부정당하였다. 조직적 결정 과정의 절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정상적이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이러한 일이 이루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전국위원회 결정에 대한 명시적 거부인가. 당 지도부에 대한 대의원들의 반란인가. 그렇지만 수정안에 동의했던 대의원들은 지도력을 훼손시키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언가?

    “입장을 떠나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토론은 활기찼고, 이 정도의 토론은 경험하기 쉽지 않아요.” 함께 당 대회에 참가했던 지역의 한 남성 대의원의 말이다. 그는 이런 토론이 가능한 정당이 없어진다면 정말 아까울 것 같다는 말도 한다.

    그의 옆에는 같은 지역의 여성 대의원이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 여성 대의원은 수정안이 나올 때마다 손을 들더라고 했다. 그 여성 대의원은 입당한 뒤로 당 활동이 처음이다. 남성 대의원은 자신은 굳이 분류하자면 독자파적 성향일 수 있는데 그래도 수정안을 다 찬성하진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오히려 당 활동이 처음인 그 여성 대의원이 수정안에 계속 손을 들어 표결이 자꾸 엇갈렸다고 한다. 그래서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며 즐거운 듯 말을 한다. 앞으로 당이 헤쳐나가야 할 일이 상당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것과 별개로 당대회의 경험은 즐거웠다고 했다.

    지역마다 사정이 다 달랐을 테니 일반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당 대회의 결정이 어떤 정파의 승리 또는 패배, 또는 당 대표의 편지가 불러온 역풍 등등 주요 언론들이 좋아하는 몇몇 관점으로만 해석될 수 없음을 당대회 현장에 있었던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전국위원회의 출석률, 당 대회의 출석률을 보면 당의 진로에 대한 당원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로 큰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결정에 반영하겠다는 생각이 없다면 그토록 출석률이 높을 수 없다. 발언을 하건 하지 않건 간에 보고 듣고 판단하겠다는 모습이다.

    그러니 전국위원회의 결정이라고 해서 대의원들이 무조건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겠는가. 과정과 절차에 대한 비판은 당대회 준비위원이나 전국위원들의 책임성, 윤리성에 대한 문제제기일 수는 있겠지만, 당 대의원들은 그 책임에 얽매일 이유가 없었다.

    이번 당대회에서는 젊은 대의원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고참 활동가의 의견을 따라가는 신참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당당했고, 논리가 있었고, 책임감이 있었다. 그 결과가 정치적으로 현명했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 대의원들은 최선을 다했다. 노동조합 활동이나 그간 당의 조직활동을 통해서 습득된 매뉴얼의 지침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선수’끼리 통하는 규칙은 다 무시되었다. 심지어 지도력이 손상될 수 있다는 호소도 난데없는 소리로 취급당했다.

    선수의 감각으로 판단한다면 이번 당대회는 반칙이었다. 선수들이 암묵적인 룰을 어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통의 규칙이 바뀌었다. 당 대의원들은 직접 소통의 방식을 원했다. 사전 조율은 큰 의미가 없다. 의미가 없다기보다는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직접 소통의 방식이 다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소통 방식은 때로는 대단히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작용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야말로 앞으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이라고 본다.

    대의원들은 회피라는 문제해결 방식을 부정했다

    ‘선수’들끼리 협상할 때 가장 잘 쓰는 방식은 무엇인가. 흔히 조정과 절충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핵심은 예민한 문제를 비켜가는 것이다. 이는 아주 일반적인 방식이고 이 기술을 익히지 못하면 협상가가 될 수 없다. 회피라는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이루어진 협상의 사례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당 대회 준비위원회에서 마련한 안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그 안은 앞으로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당 외 세력과의 협상에서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이건 기본이다.

    그런데 대의원들은 핵심적인 문제를 회피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핵 개발과 부자 3대 세습이 잘못이면 명확히 반대한다고 표명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연립정부 구성도 잘못이라고 아예 못을 박았다. 당 대회는 당내 최고 기관이니 그 결정을 어기는 어떠한 협상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당 대회가 여지를 주지 않았다. 협상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퇴로가 끊어진 상태에서 협상 카드 한 장 없이 서 있는 꼴이 되었다. 이처럼 난감한 일이 어디 있나.

    일반적으로 이 난감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다시 당 대회나 그 이상의 권위를 가진 방법을 통해 3월 27일 결정을 수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당 대회를 보면 그런 방법을 찾는 것은 당을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뜨릴 가능성이 높다.

    당 대회가 그 수정을 쉬 용납할지도 의문이고, 그렇다고 당원 총투표를 허용할지도 의문이다. 당 대회 반대파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갈등은 더욱 가중될 수 있다.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자칫 더 큰 절망감을 느끼는 당원들이 생겨, 당이 분열될 수 있는 위기가 올 수도 있다.

    그런 위기를 맞이하지 않으려면 정면으로 현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 출구는 정면밖에 없다. 마주 달리는 두 대의 기차를 연상해서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태도와 입장이 명확해야 진정한 소통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로 읽어야 한다.

    미래에 당을 함께 할 동지가 누구인지 결정하는 문제인데 서로 숨김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주문이다. 이건 나와 입장이 똑같아야 같이 할 수 있다는 완고한 자의 태도가 아니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알아야 동행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고 같이 길을 가다가 문득 뒤통수를 맞지 않을까 걱정할 일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번 당 대회는 그러한 확인이 가능하다면 언제든 새로운 태도를 가질 수 있다는 신호도 함께 보냈다고 해석한다.

    당 대회의 결정을 두고 새로운 진보정당의 건설을 사회당과의 통합만으로 마무리지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일고 있다. 이번 당 대회에서 통과된 수정안을 두고 미루어 짐작하면 충분히 그런 ‘혐의’가 가능하다.

    사회당과의 소통합이 정세에 미칠 영향과 정치적 파장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의하지 말자. 그러나 선수의 감각으로 너무나 뻔히 읽히는 그 전술은 내가 해석한 이번 당 대회의 정신과 어긋난다. 그 안도 함께 통과되었으므로 소통합도 당 대회 결정의 진정한 의미 중의 하나라고 한다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과제는 완성될 수없다.

    왜냐하면 그건 정면에서 출구를 찾는 것이 아니라 미리 후퇴할 곳을 보아놓고 트릭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 역시 회피의 문제해결 방식이며, 추진위원들이 할 일은 시간을 벌기 위한 허수아비의 역할뿐이다.

    나아가 만약 3대 세습반대를 어느 누구라도 절대 풀 수 없는 잠금장치라 전제하고 그 해결을 요구한 것이라면 이 역시 회피의 의도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닌지 질문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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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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