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는 참 좋겠구나
        2011년 03월 26일 10: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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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들은 좋겠구나
    이젠 5.18 광주에서처럼
    총으로 곤봉으로 대검으로 때려죽이고 찔러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죽어가니

    좋겠구나
    이젠 한진중공업 박창수처럼 YH무역 김경숙처럼
    굳이 끌고 가 떠밀어 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떨어져 죽어가니

    너희는 참 좋겠구나
    이젠 용산에처럼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망루에 가둬두고
    짓밟고 태워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피 말라 죽어가니

    너희는 정말 정말 좋겠구나
    이런 만고강산 이런 태평천하
    이런 누워서 떡먹기 이런 부라보
    이런 룰루랄라 이런 땅 짚고 헤엄치기
    시간만 가면 돈이 벌리는 이런 희안한 세상이
    배 터지게 입 찢어지게
    환장하게 좋겠구나

    노동자들만 눈물바다구나
    평생을 뼈빠지게 일하며 눈물바다
    평생을 생존권에 쫓겨다니며 눈물바다
    평생을 길거리에서 싸워가며 눈물바다
    급기야 저절로 목숨까지 반납하며 눈물바다
    짜디짠 눈물 바다 뿐인
    노동자 세상이 참 좋겠구나

    이 더러운 세상을 어떻게 사나
    이 서러운 세상을 어떻게 사나
    더 이상 물량과 생산성에 쫓기지 않고
    더 이상 구사대 경찰에게 쫓기지 않고
    더 이상 실업과 생활고에 쫓기지 않고
    먼저 가서 자네는 좋겠네 라고 얘기해야 하나
    차라리 먼저 가서 자네는 행복하겠네 라고 말해야 하나

    무한 경쟁 무한 생산 무한 소비로
    벼랑에 도달한 것은 자본인데
    왜 등 떠밀려 묻혀야 하는 것은 착한 우리들만인가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민중들이 살처분당해야
    너희의 위기는 해소되는가

    돌려 말하지 마라
    이것은 계획된 살인
    이것은 준비된 학살
    이것은 우리 시대 모두를 향한 자본의 테러다
    우리는 더 이상 묻힐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서야 하는 것은 너희다
    이 참혹한 땅에 매몰되어야 하는 것은 이 열 네명이 아니라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해고노동자들과 비정규직들이 아니라
    이 시대의 가장 악독한 산재이며 구제역인
    자본과 권력 너희다

    너희를 묻지 않고
    우린 이 열 네분의 참혹한 시신을 묻을 수 없다
    너희들을 단죄하지 않고
    우린 어미 아비를 잃은 이 아이들의 슬픈 눈망울을 쳐다볼 수 없다
    더 이상 이런 아픈 추모시를 쓸 수 없으며
    더 이상 이런 뼈아픈 추도사를 읊을 수 없다

    그러니 우리 일어서자
    더 이상 죽지 말고
    일어서자. 엄마, 아빠 제발
    죽지 말고 일어서자
    여보, 제발 쓰러지지 말고
    죽지 말고 일어나 싸우자
    이 시대의 악성종양
    이 시대의 흡혈귀
    저 자본과 권력을 죽이기 위해
    우리 모두 함께 일어서자
    일어서자 일어서자

    * 이 시는 25일 정리해고철회 및 정리해고희생자 범국민 추모위원회(정리해고희생자 추모위원회) 주최로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정리해고 철회 및 희생자 범국민 추모제’에서 낭송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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