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비정규직과 함께 노조 안 하나?
        2011년 03월 25일 08: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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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앗긴 공장에도 봄은 왔습니다. 그러나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습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입니다. 재주와 미모가 출중했던 한나라 궁녀 왕소군은 뇌물을 주지 않아 흉노족에게 보내집니다. 따뜻한 봄날이 왔지만 그녀의 마음은 겨울입니다.

    법 밖의 노동자, 법 위의 재벌

    “오랑캐 땅인들 화초가 없으랴만,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라며 읊은 시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공장에서 쫓겨나 거리를 헤매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입니다.

    23일 밤 끌려가는 비정규직을 보셨나요? 3월 23일 밤 울산공장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경찰에 의해 처참하게 끌려가던 장면을 보셨습니까? 잔업 없는 날, 주간조 노동자는 모두 퇴근하고, 야간조는 공장 안에서 라인을 돌리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고 외치던, 정규직 동지들의 동생이고, 사촌이자, 후배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렇게 또 다시 차디찬 유치장에 갇혀야 했습니다. 이들이 한 일이라곤 용역경비가 공장 앞을 장악하고 천막을 철거해 어쩔 수 없이 차도로 밀려났고, 돗자리를 깐 일 뿐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렇지요. 현대차 공장은 치외법권 지대입니다. 공장 안에서 관리자와 용역깡패들이 밥을 먹고 있는 조합원을 끌고 가 스타렉스에 태워 집단폭력을 가해도, 용역경비대가 3공장 평촌 정문 앞에 숨어있다가 비정규직 조끼를 입고 나오는 비정규직을 짓밟아도, 잡혀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현대공화국은 용역경비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스타렉스에 실어 경찰서에 넘기면, 경찰은 이 노동자들을 현행범이라며 구속시키는 곳이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만인에 평등하다’는 법의 보호 바깥에 있있고, 현대공화국은 법 위에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현대차라는 절대 기준

    지금 현대차지부는 회사에서 4월부터 200여명의 노조 간부들 임금을 주지 않겠다는 공문을 보내 발칵 뒤집혀져 있습니다. 현대차지부에서 노조 전임자가 어떻게 합의될지 노사 관계자를 넘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현대차는 우리 사회의 기준이 되기 때문일 겁니다.

    현대차 노동조합은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항상 기준이 되어 왔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1998년 현대차에서 정리해고를 강행하고, 이에 맞선 총파업이 벌어졌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현대차에서 정리해고를 했는데 어느 사업장에서 정리해고를 쉽게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2006년 현대차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하겠다고 결정하자, 기아차, GM대우차와 계열사, 부품사 노조들도 모두 그 뒤를 따랐습니다. 치사하게도 일부 노조는 동시투표를 하지 않고 현대차가 가결된 이후에 투표를 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어느 해에는 현대차보다 임금을 많이 올린 울산의 부품사가 박살난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현대차의 힘이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입니다.

    비정규직 나쁜 기준을 만든 현대차

    사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는 기아차가 모범이고 표준이었습니다. 2005년부터 3년간 화성공장에서 벌어진 비정규직의 파업에 정규직은 ‘아름다운 연대’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었습니다. 이어 대공장에서 가장 먼저 비정규직을 정규직노조의 조합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비정규직의 투쟁과 파업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지금 기아차에는 사내하청 노동자뿐만 아니라 청소, 식당노동자들도 모두 기아차지부의 조합원입니다.

    그러나 현대차는 나쁜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정규직노조가 사내하청 노동자를 16.9% 사용할 수 있도록 합의해 비정규직 양산의 물꼬를 터주었습니다. 비정규직 남용을 제한하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현대차는 10년 넘게 사내하청 노동자 1만명을 쓰다 버리는 일회용 컵으로 사용해왔습니다.

    지난 해 7월 22일 대법원 판결과 11월 12일 아산공장, 올해 2월 10일 울산공장의 고등법원 판결은 누가 진짜 사장인지를 확인해주었습니다. ‘친사장 확인소송’이라고 할까요. 현대차는 자기 직원이 아니라고 우겼고,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바지사장들이 자기 직원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현대차 정몽구의 직원이라고 판결한 것입니다.

    1사1조직 부결의 역사와 결자해지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했습니다. 생산공장에 비정규직 사용을 묵인했고, 힘든 공정을 사내하청에게 떠넘겼으며, 비정규직을 고용의 방패막이로 썼던 잘못된 매듭을 이제 현대차 정규직이 풀어야 합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4월 18일 대의원대회에서 지부 규정을 개정해 1사1조직,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를 통합하는 것입니다.

    현대차에서 1사1조직 규정 개정이 세 차례 부결된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2007년 1월 3일 94차 임시대의원대회는 2/3에서 3표가 모자랐고, 6월 21일 95차 대회에서는 과반에서 1표 넘었지만 2/3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2008년 10월 15일 101차 대회에서는 반대가 10표 더 많아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입대상에 공장 안에서 같이 일하는 노동자만이 아니라 대리점 딜러, 그린서비스(블루핸즈) 노동자 2만여명이 포함되어 있었고, 회사는 3만 5천명이 가입 대상이라며 난리를 쳤기 때문입니다.

    이후 104차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정규직과 비정규직노조 통합에 대해 선거구는 별도편제를 하고, 가입 대상은 같은 공장안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며, 가입 범위는 지부운영위에 위임한다는 안이 제출되었습니다. 대의원 설명회까지 마쳤고 통과를 앞두고 있었으나 당시 윤해모 지부장의 사퇴로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현대차지부는 2009년 6월 17일 원하청연대회의를 열어 “현대차지부 104차 임시대대에서 상정키로 했던 1사1조직 규정개정건은 현대차지부 정상화시까지 유보하고, 정상화시 연대회의를 소집, 추진 일정을 확정해 재추진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4.18 대의원대회 1사1조직 통과시켜야

    현대차지부는 정상화되었습니다. 3차례 부결되었을 때와 지금은 다릅니다. 대법원까지 정규직이라고 판결했고, 정규직 조합원들의 정서도 좋아졌습니다. 비정규직은 선거구를 별도로 만들기 때문에 대의원들이 반대할 명분도 없어졌습니다.

    이제 결단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현대차지부에서는 이 안건을 상정할 계획이 없는 듯합니다. 설마, 정규직과 비정규직노조가 통합해 2천여명의 비정규직이 가입하면, 올해 9월 현대차지부장 선거에서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현대차지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대의원들이 나서야 합니다. 대법원도 정규직이라고 판결했는데 어떤 이유도 핑계에 불과합니다. 두 집 살림을 청산하고, 연대와 정의가 넘치는 아름다운 집을 지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연대의 시작은 정규직노조의 문을 열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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