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을 수 없는 역사의 답답함"
        2011년 03월 25일 01: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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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직업상 역사쟁이입니다. 과거의 사실을 체계화, 언어화해, ‘집단기억’으로 만들어 유포시키는 것은 제 직업입니다. 저 같이 100년 전의 신문들을 애독하는 비정상인들이 없어져버리면 그 속의 사랑과 증오, 열정과 배신, 지배자의 이기심과 민중의 고통, 저항이 다 그저 어디론가 증발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저는 제 직업을 나름대로 애호합니다.

    100년 전 신문을 애독하는 것

    하지만, 그러면서도 역사에 대해서 한 가지 아주 불편한 느낌은 늘 있습니다. ‘역사의 교훈’이라는 말은 거의 관용구처럼 돼 있지만, 사실 특히 지배자들이 이 교훈에 대한 별 관심이 없어 역사는 – 약간 바뀐 형태긴 하지만 – 계속해서 반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냥 ‘반복된다’기보다도, 이미 고정돼버린 어떤 형태들, 어떤 패턴들은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계속해서 무서운 ‘생명력’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진보’가 전혀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는 우리의 기대에 비해서 너무 미미해 보이고, 그 대가는 너무 비싸고, 또 기존 패턴들의 반복성은 훨씬 더 돋보입니다. 그러기에 매천 선생의 말을 약간 바꾸어서 쓰자면 "역사를 아는 사람으로서 세상 살기가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아(我)해동에서 일어나는 괴사(怪事)들을 예로 듭니다. 예컨대 며칠 전에 일어난 ‘자본주의 연구회’ 사건을 한 번 보시지요. 주체사상도 아니고 이 대한민국의 국시 격인 자본주의를 연구한다는 일군의 재야 인물들과 청년들은, 졸지에 ‘북한을 찬양하는 이적 단체’로 둔갑되고, 바로 영어의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본주의가 국시인 나라에서 자본주의 연구를 하면 바로 이적, 즉 적을 돕는 범인이 된다 – 아, 이 정도면 우리는 벌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거의 따라잡고 능가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국가보안법 덕분에 그쪽에 자유로이 갈 수조차 없는 소생(小生)은 자세히 모르지만, 듣는 바로는 그쪽에서도 주체사상연구회나 사회주의연구회를 함부로 만들어서 국시를 함부로 ‘잘못'(?) 해석했다가는 사회의 관리자들에게 혼날 확률이 좀 높은 편이랍니다.

    남북 사회정치 체제의 동질화?

    참, 이번 정권은 아주 고차원적인 통일 의지가 있어서 그런지 남북한 사회정치 체제의 동질화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쪽 토건/수출제일주의자들은 저쪽 조선민족제일주의자들을 일부러 베낄 수고까지 하지 않아도 될 셈입니다.

    전자는 일제라는 모태에서 미군이라는 산파의 도움으로 태어난 것이고, 후자의 계보는 훨씬 더 복잡다단하지만 일제와 사투를 벌이면서 일제를 배운 부분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쪽이든 저쪽이든 근본적으로 1925년 5월 12일부터 일본열도와 대만, 한반도 전역에서 처음 시행돼 그때부터 실제로 한반도에서 계속해서 그 마력(魔力)을 발휘해온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의 그늘에서 아직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체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결사나 조직’이라면 애당초부터 ‘비(非)국민’, 무조건 잡아서 옥(獄)에 집어넣어도 될 사람 아닌 사람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남한 같으면 국체의 요체는 일제시절과 마찬가지로 ‘사유재산제’이기에, 치안유지법의 말대로 "사유재산제를 부정하는 행위"는 무조건 처벌 대상이 됩니다.

    이번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굳이 ‘부정’하지 않고 ‘부정을 목적으로 하는 듯한 연구’만 해도 벌써 처벌 대상입니다. 뭐, 총독부 경무국 사람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보안기관들이 하는 일들을 저승에서 보고 있다면 아마도 박수를 치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국적(國敵)을 취체(取締)하는 법"이라고 하면서요.

    치안유지법과 같이 지배자들에게 긴요한 도구들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싶었다가 곧바로 바람과 함께 다시 돌아옵니다. 너무나 입체적인 모습으로요. 물론 약간의 ‘진보’는 없지 않아 있습니다. 자본주의를 연구했다가 대한민국 보안기관의 현황을 현지 조사(?)하게 된 불우한 ‘국적'(國敵) 들은, 아마도 경무국 시절에 비해서 약간 더 나아진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지배자들의 직업병

    적어도 고문을 당해서 미쳐버리거나 죽을 확률은 많이 낮아졌습니다. 답답해서 정신병이 발병될 확률이야 그대로 있지만요. 또한 공산주의자의 구금 소식을 전했던 1920년대의 <조선일보>보다는(못믿으시겠지만, 그 때만 해도 <조선.>은 <동아>보다 좌파적이었습니다!)

    오늘날 <경향신문>은 이번 ‘국적 취체 사건’ 을 조금 더 대담하게 다룰 자유까지 얻었습니다. 1929년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문사를 당한 차금봉 동지(車今奉)와 같은 불굴의 공산 투사부터 김남주 시인, 박종철 열사까지 무수한 지사들이 그 생명과 건강을 바친 대가는 바로 이것입니다. 고문은 거의 없어졌다시피하고, 그나마 얼마 안되는 신문다운 신문들이 보도다운 보도를 할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그러면, 치안유지법 그 자체를 역사의 쓰레기통에 완전히 버리자면 과연 역사의 잔혹한 여신에게 얼마나 많은 인신제사들을 바쳐야 할까요? 얼마나 긴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시위하고 살수차, 물대포를 맞고 곤봉 밑에서 쓰러지고 경찰 장화에 밟혀야 할까요? 참으로 답답하지 않습니까?

    지배자들의 직업병이라는 게 있습니다. 망각증세입니다. 웬만하면 역사가 이미 진보됐다는 사실을, 그들이 잊으려고 하고 늘 ‘하기 편한’ 옛 방식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맥락에서 나온 말이지만, 미르차 엘리아데의 표현을 빌려서 ‘영구적 귀한’으로의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19세기 말 군함외교의 수준으로 다시 전락돼 리비아를 공습하는 서방 열강의 퇴보적 행태를 보셔도 무슨 뜻인지 아마도 아실 것입니다. ‘그 시절’과의 차이라면 함포 대신 폭격기를 사용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 ‘영구적 귀환’, 지속적인 옛 패턴의 반복을 막자면, 들고 일어나고 외치고 반대하고, 밟힐 때 밟히고, 그러나 그러고 나서 계속 일어나서 다시 외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아주 답답하지만, 이건 역사에서 꺼낼 수 있는 제알 중요한 교훈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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