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진정책-부문 총파업으로 총선 맞자"
        2011년 03월 24일 08:0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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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보대통합논의의 마지막 주자 등장

    지난 토요일(3월 19일), 새로운 진보정당 연구모임(준)의 공개토론으로 진보통합 논의의 마지막 주자가 등장했다. 이로써 내년 총선-대선이란 오픈맵에 주요 거점 구도를 채우게 되었는데, 덕분에 그간 독자파라는 좀 어색한 옷을 입고 있던 사람들이 이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 내용에서도 환영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2. 금민의 반신자유주의 정치동맹과 프레카레아트 중심 정당

    발제자 중 금민(사회당 상임고문, 아래 사진)은 복지논쟁의 준별점으로 박근혜, 유시민은 물론, 민주당과도 확실한 차이를 긋는 과감한 증세를 주장했다. 친환경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 등록금 등 ‘3무1반’을 위한 민주당의 20조 증세로는 ‘보편복지’는 커녕 신자유주의의 보완재 역할에 불과할 것이라는 것.

    따라서 증세를 통한 GDP 대비 40~50% 수준의 조세부담률 확보(OECD 평균 35%, 한국은 25% 수준)와 금융자본주의를 제어하고 극복하기 위한 고율의 금융과세, 5% 이상의 고율 토지세, 투기불로소득 중과세 등의 방식을 통해 의료, 교육, 주거, 보육, 노후에서의 기본 복지와 기본소득 도입, 이를 통해 장시간 과로노동체계의 해소와 노동시간의 혁명적 단축, 현행 최저임금의 두 배 인상의 세 과제를 연동적으로 추진하는 반신자유주의 정치동맹을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3. ‘새로운’ 진보정당의 조건

    이러한 수위의 주장은 도발적인가? 급진적이고, 이상적인가? 사실, 실제로 금민의 주장에 동조할 수 있는 진보세력이 과연 얼마나 될지, 정치행위를 통해 가까운 미래에 이 정도를 쟁취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처럼 총체적이고 과감한 제안은 실제 각 부문의 운동 아젠다를 형성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당락의 결과만 남은 지자체장 선거와 달리 지난 지방선거의 주인공은 무상급식이었다. 이를 통해 ‘보편복지’ 아젠다는 더 이상 진보의 내부 논의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S급 논의가 되었으며 무상의료, 무상주거, 기본소득 등 이후 논의를 차례로 불러들이고 있다.

    물론, 화끈한 정책이라고 해서 항상 정치적으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이 딜레마 때문에 진보는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진보의 필승카드라는 것은 애당초 존재론적으로 성립불가능하다. 여기서 중요한 태도는 ‘이 주장이 현재 먹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 2012년에 고정된 정당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새로운 진보정당’은 진보운동의 시작인 좌파의 상상력을 갖추게 된다.

    4. 새로운 정치주체와 급진적 부문운동의 필요

    금민은 이를 위해 ‘신자유주의가 생산한 새로운 사회계급인 프레카리아트(불안정노동자)를 정치 주체로 세우고, 이를 근본으로 하여 전체 노동자계급을 재형성하는 새로운 계급정당’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순환을 다 한 낡은 진보를 무대에서 내려오게 하고, 비정규직, 청년세대, 빈곤 자영업자, 빈곤여성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민의 주장이 특이한 것은 새로운 진보운동의 주체가 과거처럼 ‘노동계급’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귀착되는 것이 아니라 각 부문의 특이성을 지닌 프레카리아트의 합으로 도출된다는 것을 내걸었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금민의 말처럼 현대사회의 새로운 정치주체는 새로운 부문운동과 별개로 등장하지 않는다.

    과거, 부문운동은 시민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해석되었다. 그 시선은 대체로 타당하다. 시민운동이 자꾸 놓쳐왔던 계급성은 신자유주의라는 현재의 정세에서 고초를 겪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부문운동의 활동가들 전부가 진화하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진화하려는 입장과 이에 반대하는 입장은 모든 부문운동 내에서 언제나 존재하는 대립점이다.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와 녹색위원회를 두고 신자유주의에 포섭된 반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중요한 것은 구태한 운동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진화하는 사람들이다.

    풀뿌리 지역운동으로 시작했던 초기 YMCA와 같은 1세대 시민단체나 환경/평화운동과 생협으로 익숙한 생태주의운동은 수십년 지속된 운동이다. 이들이 여전히 주목받을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일부의 활동가들이 운동을 억압하는 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며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 진화란 금융세계화와 불안노동의 현실, 끝없는 개발에 의한 생태계의 위기, 기업국가 체제가 낳은 민주주의의 위협과 전쟁, 그리고 이러한 과도한 경쟁집중체제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에 대한 억압이라는 현재의 정세와 무관하지 않다.

    신생 부문운동단체는 말할 것도 없다. 현재의 사회정세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평가하고, 생산(창조)하지 않고, 한시적인 정치지형에 좌우된다면 필승카드가 없는 진보운동이라는 마을에 입주할 수 없다. 즉, 신생 부문운동의 존재 요건은 언제나 현재 시점에서 가장 급진적인 테제를 내 놓는 것이었다.

    5. 부문과 계급의 결합이 낳은 제3노조 <청년유니온>

    청년유니온은 작년에 형성된 단체답게, 노동문제와 청년부문이 결합한 ‘제3노조’의 형태로 출현했다. 청년이라는 부문이 계급구조의 하단에 자리잡게 된 것은 신자유주의 10년이 축적한 결과지만, 이에 대응하는 단체는 겨우 첫돌을 보낸 갓난아이인 셈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청년유니온이 급진적인 태도를 정립할 수 있는 정책소스는 풍부하다.

    청년유니온이 조합원으로 조직하고자 하는 청년은 노동기간이 극도로 짧고, 이직기간이 긴 젊은 프레카리아트(불안정노동자)들이다. 이들에게는 대기업 조직노동자에 세팅된 과거의 기업별 교섭 체제는 잘 맞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오히려 실업급여 수혜조건을 완화하고 구직급여나 기본소득의 지급하라는 요구가 훨씬 현실적이고 절박하다.

    100만 청년실업자의 시대를 해결하기 위해 구직자를 조합원에 포함시키겠다는 청년유니온 창립의 정체성 역시 순탄하게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다. 구직자에 대한 노동자성은 행정소송 판결문을 통해 일부 인정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고용노동부는 여전히 불가판정을 내리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상황이 청년유니온과 청년유니온이 안고 있는 청년부문에게 주어진 현재의 정세다. 그렇다면 청년유니온의 기조와 조직전략은 어떻게 정해야 하겠는가. 나는 ‘새로운 진보정당’ 논의의 과감함이 ‘새로운 청년(부문)운동’에도 자연스럽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프레카리아트에게 적합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예컨대 나는 청년유니온이 <청년기본소득>과 <청년앙떼르미땅(청년에게 실업급여 수급 기준을 완화하는 정책)+구직급여 지급>을 동시에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과 앙떼르미땅은 결과적으로는 배치될 수 있지만, 운동으로 만나는 경우는 서로를 증폭시키는 동반관계에 있다. 이러한 정책을 통해 불안정노동의 대안을 제시하고, 조직되지 않은 프레카리아트를 모으는 것이 청년유니온의 우선 과제다.

    이에 발맞추어 <청년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하는 것도 타당한 전략이라고 본다. 이미 2010년 최저임금연대가 5410원을 2011년 요구안으로 결정하고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는데, 청년유니온이 이에 동행해 현행 최저임금의 문제를 사회에 폭로하면서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을 벌인다면, 전체노동에 대한 최저임금의 인상과 더불어 최저임금의 본래적인 의미에 대한 아젠다를 주도해나갈 수도 있다.

    오늘날, 과감한 주장이 단체행동을 분열한다는 시각은 비현실적이다. 청년기본소득, 청년앙떼르미땅, 청년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3가지 정책이 노동자 일반의 몫을 빼앗는가? 오히려 ‘청년은 존귀하므로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정언명제가 만드는 할당형 정책보다 이같은 급진적인 요구가 진보의 몫을 늘리는 주장일 뿐 아니라, 다른 부문의 과감한 주장을 촉진하는 선동이다.

    6. 급진정책의 선제안, 선거 직전 부문운동 총파업-총시위로

    이러한 급진 테제는 부문에 특화된 형태로 개별적으로 주장하되, 연대의 시점에서는 그 주장을 하향평준화시키지 않고 연대하는 작업이 물론 필요하다. 더욱이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연대의 원칙은 무게감을 갖는다.

    정당들은 각 부문의 의제를 흡수하고, 부문을 관통하는 의제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부문운동의 입장에서는 정당에 흡수되지 않고 자기 부문의 문제의식을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독립과 연대의 균형은 진보정당과 부문운동이 서로 진화하고, 진보의 가치를 창출해낼 때 만들어진다.

    반MB 대동단결부터 진보독자후보론까지 2012년을 둘러싼 정치를 지켜보면서 전부터 종종 상상해오던 모습이 있다. 우선, 각 정당으로부터 선거를 겨냥한 정책공약이 아직 제출되지 않은 시점에서 부문운동들이 따로 또 같이 각자의 주요 요구사항을 내걸고 가장 ‘급진적인 테제’를 주장하는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다.

    급진의 원 뜻은 여러 방향으로 갈라져 땅 속으로 뻗어나 있는 뿌리이다. ‘급진’을 정치의 테제로 만드는 것이 바로 풀뿌리적인 민(民)과 호흡을 같이 하는 부문운동의 오랜 숙원이었다. 나는 이런 부문운동의 급진 정책을 요구하는 것이 지금 필요한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공동행동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2012년 총선 직전에 거리 시위를 하겠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실업자와 구직자, 불안정노동자의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이라면 이를 ‘프레카리아트 총파업’이라고 명명해도 좋겠다.

    앞서 요구한 급진적 정책들을 공약으로 내걸지 않는 정당들을 이 자리에서 규탄하고 선거에서 표심으로 보여주겠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그 앞에서 요구조건을 묵살할 간 큰 정치조직이 있겠는가? 이상적인 봄꿈인가? 하지만 이런 꿈을 꾸고 있을 또 누군가를 위해 혼자서만 상상하던 이야기를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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