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 지지하나 떨림도 설렘도 없다
    청년, 함께 가야 진보정당 미래 있어
        2011년 03월 23일 01: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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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수 년 전, 학교 정문 앞에서 취루탄 연기 속에서 한참을 ‘꽃병’을 던지다가 인천으로 가는 막차를 타려고 시위대 대열을 나와서 신촌거리를 걸으면, 이질감에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끼곤 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식민지’니 ‘혁명’이니 하는 단어들이 들어간 구호를 외치다가도, 자본과 소비의 천국처럼 보이는 신촌거리라는 ‘현실’로 돌아오면, 이곳이 식민지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 이질감의 이유는 필자가 이론으로 배웠던 것들과 한국사회의 현실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질감을 우리는 단순히 최루탄이 난무하는 시위와 소비문화의 대비 속에서만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노동하며 살아가는 구체적인 현실에서도 마주치게 되는 것이었다.

    당장에 구멍가게에서 입에 풀칠이나 하는지 모르겠는 친구의 부모는 이론에서 쁘띠부르주아로 돌변하고, 취업경쟁과 등록금 빚을 갚느라 절망 속에서 허덕이는 후배가 혁명의 주력군이자 선봉대로 포장된다. 돌아보니 선배들이 주입했던 수많은 이론들에는 과거 운동에 대한 추억과 경외는 있을지 몰라도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미래를 밝혀줄 대안은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토론회 모습. 

    이 글은 지난 19일 ‘소셜지성 청년포럼’이 개최한 기획토론회 두번째인 ‘한국사회성격 논의의 극복과 새로운 진보정당의 노선’에서 이장규 진보신당 통합창원당협 공동위원장과 민경우 청년포럼 기획위원, 그리고 김병권 새사연 부원장의 발제와 토론 내용에 기초한 글이다. 

    토론회에서 일정 정도 합의된 수준을 정리하는 글이지만 소위 자주파의 식민지반자본주의론에 대한 비판을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당의 다수를 이루었으며 때로 당 활동의 방향을 좌지우지했던 자주파 진영의 부족한 시대인식들을 허심탄회하게 토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분당 과정, 그리고 이후에 당원들, 국민 대중들에게 진보정당이 왜 새로운 희망과 대안을 주지 못했던가를 성찰하지 않는 한 지금 논의되는 진보정당의 통합논의가 결코 생산적일 수 없다는 고민에서다.

    먼저 자주파에게, 아직도 한국은 식민지인가? 

    80년대 한국 운동권들을 장악했던 것은 NL이나 PD나 ‘종속’ 문제이다.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이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 등은 모두 종속-저발전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제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한국자본주의를 설명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한-미 무역구조를 파악해 볼 때, 과거와 같이 한국을 식민지 하청경제 등으로 묘사할 수 없다. 한국의 재벌들은 90년대 이후 상당한 정도의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을 통해,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운동진영 일각, 그러니까 자주파 진영에서는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 최근에는 금융구조의 종속성을 한국의 대미종속성의 징표로 삼고 있지만, 솔직히 인정하자. 이 역시 부적절하다.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에 외국자본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투자수익을 위한 재무적 투자이지,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한 투자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은 자본의 부족으로 시달리기는커녕, 남는 자본을 사내 유보금 형태로 쌓아 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론스타 등 투기 자본 문제의 경우 현재가 논란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신자유주의 전성기에 발생한 파행들의 결과이다. 이 경우 한국 자본주의가 미국 자본에 특별히 취약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며, ‘불안정’한 금융시스템의 문제이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신자유주의 금융시스템의 근본적 문제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현대 한국자본주의의 문제들에 대해 반제-반미 식으로 대응할 수 없다. 당장의 한국자본주의의 문제들에 대해 "미국이 최종적으로 문제이니 반미투쟁에 나서자"는 식의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한마디로 허공에 발길질하는 것이다.

    한국은 ‘식민지’가 아니다. 이미 선진국 진입을 노리는 최신의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나서야 그 안에 살아가는 대중들의 구체적인 삶을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이 어떤 고통 속에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누가 한국자본주의를 지배하고 있는가? 미국? 삼성? 

    이제 명실상부하게 한국자본주의의 새로운 오너는 개발국가나 미제국주의가 아니며, 삼성 LG 현대 SK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다.

    이들은 90년대 막대한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을 통해, IMF 이후에는 구조조정과 IT 부분에 대한 기민한 대응을 통해 글로벌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글로벌 대기업들은 정계는 물론 행정관료와 법률전문가 집단 등을 철저히 통합해 말 그대로의 자본의 왕국을 만들어 냈다. 

    물론 이들의 성장과정이 한국 사회 전체의 성장일 수 없다. 이 성장은 명백히 파행적 성장이었다. 종래 대기업-하청기업의 수탈관계는 더욱 강화되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전 개발국가와는 다른 형태로 한국 국가와의 ‘발전연합’을 형성하고, 국가로부터 재정효과, 환율정책, 감세 등 갖은 특혜를 받았지만, 국민경제에 대한 책임(예컨대 고용)을 전혀 수행하지 않았다. 경제 주체의 균등한 발전을 억누르는 성장, 소수 엘리트에 의해 한국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성장, 즉 글로벌 대기업의 성장은 양극화를 강화시킨 성장이었다. 

    여하튼 한국사회의 실질적 오너는 미국이 아니다. 이런 인식을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은 운동의 주된 대상을 누구로 할 것인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가 이들과 싸울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민주주의와 평등의 가치가 온전히 구현되는 대안사회를 지향하는 진보정당에게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 집단은 가장 먼저 싸울 대상이다. 그러나 이들과 싸우기 위한 전략은 아직도 낡았고, 이들과 싸울 동력은 미흡하다.

    과거 반독점 민주화나 재벌 해체 등의 강령은 선명하고 선정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대중을 설득하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재벌 해체 등이 실제 실현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올지 진보진영은 예측하지도 못한다. 이에 대해서 진보진영은 이제 책임있는 정책과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동력 문제이다. 민주노조운동이 대표하는 노동계급은 불행히도, 90년대 이후 글로벌 대기업의 성장과정에서 상대적인 혜택을 일정 정도 받은 집단에 속한다. 매우 긴 노동시간을 감내해야 하지만, 민주노총 사업장 특히 금속 제조업 부문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하청, 협력업체 노동자들보다 적지 않게 많은 임금을 받고 있다. 학비 지원, 주거 지원, 병원비 지원 등 사내 복지 혜택까지 합치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진다. 

    이 격차가 지속되자, 오히려 노동현장에서는 하청-협력 업체 사용자와 노동자가 한편이고, 원청업체 사용자와 노동자가 한편으로 인식되고 있다. 중소기업 노동자가 중소기업 사용자보다, 원청업체의 정규직 노동자들을 더 미워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이제 이들 정규직 노동자들조차 점점 노령화하고 있다. 금속 제조업 사업장 노동자들의 평균 나이는 43세가 되고 있다. 20~30대 조합원들은 찾기 어려우며, 그나마 대기업의 하청업체에 취업한 20~30대는 전체 노동계급의 구성에서 그 비율이 높지도 않다. 이는 민주노조운동의 재생산의 위기를 초래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새로운 지지기반이 필요하다 

    그럼 점에서 과거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결과였던 분당 전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바로 이러한 주체의 위기에서 찾아야 한다. 분당의 원인으로 부각되었던 종북주의나 패권주의와 같은 쟁점은 여기에 비하면 오히려 주변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그런 측면에서 통합파로 분류되는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노동 중심의 새로운 진보통합정당 건설’은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한국 진보(정당)운동의 위기에 대한 극복 방안이라고 보기에는 힘든 것이다. 물론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적 성과와 지금도 민주노조운동이 벌이고 있는 진지한 투쟁들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진보정당이 단지 민주노조운동만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되거나, 새로운 진보정당이 강조하는 노동이 민주노총 사업장의 제조업 노동자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진보정당 운동 또한 대표성의 위기와 재생산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런 방식이라면 사실 진보정당이 통합되어도 새로운 비전을 국민대중에게 제시할 수 있으리라 보기에 힘들다. 

    통합되는 새로운 진보정당은 한국 자본주의의 광범위한 피해대중을 대변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새로운’ 진보정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에서 강조하는 노동은, 하나의 작업장에서 집합적인 노동을 수행하는 ‘전형적인 노동자’가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임금노동을 제공하는 ‘여럿’을 지칭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이 주목해야할 집단 

    따라서 새로운 진보정당은 세대, 젠더, 산업구조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고려해서 새로운 계급(운동)을 형성하고 이를 자신의 지지 기반으로 만들 필요성이 있다. 

    거칠게나마 정리하면, 우선 거의 아귀다툼 수준의 취업 경쟁에서 극소수만이 살아 남고, 절대다수는 배제되고 있는 청년세대들을 조직해야 한다. 90년대 한국 자본주의의 고도 성장의 수혜자인 부모세대에 기댈 수 있는 일부와 혹은 부모세대에게 기댈 수 없어 방치된 절대 다수의 청년 세대는 현대 한국자본주의 최대 피해대중이다.

    미래세대인 이들을 조직할 수 없다면 진보정당의 미래도 없다. 그런 면에서 진보양당이 청년세대 조직화나 청년문제를 의제화하는데 실패한 것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청년 집단에서 여성의 피해는 더욱 크다. 결혼을 전후로 청년세대 여성은 임금과 고용수준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한다. 이들 ‘청년세대 여성들의 경력 단절’은 한국 사회의 젠더적 차별이, 청년세대의 기회의 양극화와 만나는 지점이다. 

    전통적으로 쁘띠 부르주아로 계급분석이 이뤄지던, 중소기업-자영업자에 대한 태도 또한 바뀌어야 한다. 단적으로 최근 재벌대기업과 가장 극적인 싸움을 벌여 냈던 집단은 SSM 입점 저지를 위해 싸웠던 중소상인들이었다.

    정규직 노동자들보다도 소득이 낮고, 경제활동의 안정성은 더더욱 떨어지는 이들 자영업자들을 단순히 쁘띠 부르주아라고 폄하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국민대중의 현실과 괴리되었는지 증명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산업구조의 변동을 통해 발생한 새로운 노동문제 또한 주목해야 한다. 저임금-장시간-불안정 노동에 시달리지만 노동권 사각지대에 있는, IT 노동자, 사회서비스 종사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인 사교육 종사 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이들은 결론적으로 다르지 않은 집단이다. 현실은 여성이자 청년세대이며 또한 간접고용 노동자일 것이다. 

    다시 우리의 가슴을 뛰게하는 그런 이야기가 필요하다 

    필자는 무슨 운동권 이론논쟁을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럴만한 실력도 수준도 되지 못한다. 또는 자주파를 비난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누구를 비난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진심으로, 그리고 말 그대로 우리한테 새로운 진보정당이 만들어지더라도 정말 신념을 가지고 활동할 비전이 있는가를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정말로 지금 논의되는 진보정당 통합논의가 정말로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가?

    안타깝게도 필자는 그렇지 않다. 그 과정에 이것을 하지 않으면 다 무너지겠구나하는 절박함은 있을지라도 다음세대 활동가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 않을까? 처음 2002년 대선에서 권영길 대선후보가 ‘국민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를 이야기하고 ‘부유세’와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자신있게 이야기하던, 국민들에게 우리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그때만큼 가슴이 떨리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토론회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타칭(?) 강경독자파로 분류된다는 이장규 선배가 했던 말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우리가 이렇게 진지하게 진보정당의 미래와 노선에 대해서 토론하고 공유할 수 있다면 통합이 아니라 통합의 할배가 와도 찬성하겠다.”

    그렇다. 왜 진보정당 통합 논의가 수많은 동지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지 못하는지 통합을 주장하고 있는 필자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필자를 비롯한 젊은 활동가들 일부의 반성문이기도 하다. 이제 정말 가슴 떨리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 * * 

    * ‘소셜지성 청년포럼’은 새로운 진보정당의 운영원리와 노선에 대한 6번의 토론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토론회는 오는 4월 3일(일) 오후 3시 “패권주의 넘어서, 진보정당다운 민주적 당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을 주제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장소는 아직 미정입니다. 페이스북 페이지(http://facebook.com/socialforum)를 통해서 토론회 내용과 다양한 토론, 장소, 일정 등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고뇌하는 젊은 활동가들의 관심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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