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맨, 또 하나의 이집트 혹은 리비아?
        2011년 03월 23일 09: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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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멘 살레 대통령 퇴진 시위에서 한 예멘 청년이 예멘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예맨, 이집트로 가나, 리비아로 가나?

    예멘의 정국이 심상치 않다. 최근에는 군 장성들까지 등을 돌리는 등, 살레 정권 축출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18일, 살레 정부가 시위대에게 실탄을 사용해 50여명을 살해한 이후, 살레 정권의 유혈진압에 반발해 살레의 측근이던 군 장성 알리 모흐센 알 아흐마르가 반정부 시위에 동참하는 등, 군 지도부 5명 이상이 반 살레 진영으로 돌아선 것이다.

    또한, 폭력 진압에 반발해 유엔 주재 예멘 대사와 인권장관도 항의표시로 사직서를 냈고, 집권 국민의회당 의원 24명은 탈당을 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살레의 지지 기반이던 하셰드 부족조차 등을 돌렸고, 이슬람 지도자들은 "군은 시민들에 대한 발포명령을 거부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위기에 처한 살레 예멘 대통령 

    시위대가 장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사나대학 인근 광장에는 아흐마르의 이날 선언 이후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한 탱크와 장갑차들이 배치됐다.

    이에 대항하여 정부군도 대통령궁과 중앙은행, 국방부 등 주요 시설에 탱크들을 배치하고 있다. 이미 살레 대통령의 공화국수비대와 야당을 지지하는 군부대는 예멘의 동부지역에서 충돌했다.

    공화국수비대 전차들은 지난 22일 홍해 연안의 한 공군기지를 포위했는데, 살레 대통령의 혈족인 이 기지의 지휘관은 야당 지지로 선회했다. 

    같은 날 살레 대통령과 군 수뇌부들이 평화적 정권이양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상황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살레는 여전히 연말 총산과 내년 초 대선 및 연내 퇴진을 연계짓는 터라 야당은 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살레 역시 무바라크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치고 있지만, 예멘의 이후 사태 전개는 오히려 리비아를 닮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이미 권력 이양 논의를 하면서 양보를 하는 듯하던 살레 대통령도 예멘이 내전에 빠질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미국 역시 예멘의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반정부 시위대에게 지지를 표명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후 전개될 사태 전개가 리비아의 정국과 흡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맨의 위치 

    분단 -> 통일 -> 무장봉기 내전

    이를 위해 예멘의 과거를 잠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멘은 원래 남북으로 나뉘어 있었다. 북부에는 현 살레 대통령이 통치하던 친미적인 ‘예멘 아랍 공화국’이, 남부는 친소련 경향의 세속적이며 민족주의적 좌파가 주도한 ‘예멘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 존재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에 구 소련이 붕괴하자, 남부의 ‘예멘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은 북부 예멘과의 체제 경쟁에서 패배하여 북부에 통합(1990년)되었다. 하지만 1994년에 통합 예멘은 위기에 놓이게 되는데, 당시 남부의 무장 분파들이 북부의 살레 대통령이 주도하는 부패하고 파벌적인 독재통치에 저항하여 봉기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통일’ 이후 살레의 ‘통일’ 예멘 정부는 조직적으로 남부를 배제했고, 살레 대통령은 그 자신이 북예멘에서 집권한 1979년부터 그래왔듯이 ‘통일’ 예멘에서도 일인지배 체제를 강화했다.

    예맨 남부의 무장 봉기는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살레 대통령이 예멘 남부지역의 지하드주의자들과 보수적인 수니파 이슬람근본주의의 일파들(이들은 세속적, 좌파적 경향에 적대적이다)로 하여금 예멘 남부의 ‘예멘사회당’ 중심으로 뭉친 민족주의, 좌파들에 맞서 싸우게했기 때문이다.

    예멘이 통일된 1990년 이전에도 미국(및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은 북예멘의 살레 대통령이 좌파적인 남부를 제어하고자 추진한 북예멘의 이슬람화 정책을 지지했는데, 남부의 좌파들이 패배한 이후에 살레 대통령은 일인 통치를 유지하기 위하여 수니파 근본주의자들과 지하드주의자들에 더욱 더 의존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살레 대통령의 독재 정치는 최근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예멘의 빈곤은 굉장히 심각한 수준인데, 인구의 약 45%가 하루에 2달러에도 못미치는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에 반해 집권층의 부는 엄청나게 늘어났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중동지역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마 팔레스탄인을 제외하면 중동지역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에 대한 불만을 억압하기 위하여 가혹한 경찰 통치가 자행되었다. 더군다나 예멘의 경제상황은 세계 금융위기가 강타한 2008년부터 급격히 나빠졌다.

    특히 예멘 국가 재정의 약 70%는 석유 수출로 충당하고 있었는데, 지난 2008년부터 석유 가격이 하락한 것이다. 게다가 예맨의 석유도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었다. 예멘의 석유 매장량은 현재 생산하고 있는 곳의 경우, 10년이 지나면 전부 고갈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로 인해 예맨의 핵심적인 외화 수입원인 석유 수출은 지난 2003년 하루 45만 배럴에서 2009년 초에는 28만 배럴로 떨어졌다. 

       
      ▲지난 3월 17일, 예멘 수도에서 벌어진 살레 대통령 퇴진 요구 시위에서 기도하고 있는 예멘 여성들

    그동안 예멘 정부는 다양한 정치, 사회적 분파들에게 석유 수입을 차등적으로 분배함으로써 정권의 안정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석유 수입의 감소는 예멘 중앙정부의 이러한 능력을 엄청나게 축소시켰다. 이러한 상황은 예멘 중앙정부가 북부에 기반을 가진 반면에 예멘 석유의 대부분은 남부에 집중되있다는 점 때문에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남부 지역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나오는 이익이 자신에게 충분히 돌아오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어왔고, 이는 분리주의적 정서를 확산시켰다. 결국 2009년 4월부터 예멘 남부에서는 대중적 지지를 받는 반정부 운동인 ‘남부 운동(Southern Movement:SM)’ 동맹의 주도로 대중시위가 폭발적으로 전개된다.

    전세계에서 가장 불안한 정권

    당시 대중적 반대 압력하에 놓인 살레 정부의 위기가 얼나마 컸는지는 다름 아닌 살레의 옛 동맹자가 잘 보여주었다.

    2009년 4월, 예멘 남부에 근거를 둔 지하드 조직의 옛 지도자인 타리크 알-파드흘리가 15년에 걸친 예멘 정부와의 동맹관계를 중단하고, 광범위한 기초를 가진 야당동맹인 예멘 남부의 ‘남부 운동’과 함께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알-파드흘리는 지난 1980년대 후반에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으로 활동했고, 지난 1994년 남부 예멘의 무장 봉기 당시에는 살레 대통령을 도와 예멘 남부의 민족주의, 세속적인 좌파들과 싸운 인물이다. 알-파드흘리가 살레 대통령에 등을 돌린 것은 살레 대통령에 대한 민심의 이반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더구나 예멘에서는 각 부족들이나 가문들의 힘이 막강한데다가 총기 소지가 광범위해 부족들 가운데는 중무장한 곳도 많아 살레의 통제력은 더더욱 한계에 부딪혔다.

    당시 이러한 예멘 정부의 곤경에 대하여 오바마 정부에 아프가니스탄 증파와 관련된 정책 조언을 제공했던, 30여년 경력의 미 중앙정보국 베테랑 부르스 리델은 “알리 압둘라 살레가 이끄는 취약한 예멘 정부는 국가를 완전하게 통제하지 못하고 있고, 지금 일련의 문제들에 직면해있다."고 우려했었다. 뉴욕 소재 신미국재단의 윌리엄 하퉁도 예멘 정부를 ‘전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정권’이라고 평가했다. 

       
      ▲예멘 지도: 북서쪽 사다(Sa’dah)는 소수 시아파들의 근거지, 그 아래는 예멘 중앙 정부가 자리한 사나(Sanaa)

    살레를 위협한 것은 이뿐 만이 아니었다. 이번엔 예멘 북부에서 ‘자이디’ 시아파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들은 초기 이슬람 시아파의 한 분파로 시작한 ‘자이디야’의 후신으로, 이들은 보통 ‘하쉬미’로 알려져 있고, 중심지는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국경선을 따라 예맨 북서쪽 산악 지역에 위치한 사다(Sa’dah)다. (예멘의 중앙정부가 위치한 곳은 ‘사나’이다)

    예멘 북부는 이들 하쉬미 자이디가 천 년 이상 통치하다가 지난 1962년 수립된 북부의 ‘예맨 아랍공화국’에 전복당했다.(자이디들은 예멘 인구의 약 1/4 정도를 점하고 있다)

    이란, 외부의 적으로 만들기

    그러나 수니파 중심의 북예멘 정부와 연이은 ‘통일’ 예멘 정부는 이들에 대해 차별과 시민적 권리의 제약을 강요했고, 더 나아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기원하여 예멘의 주류 이슬람 이데올로기가 된 보수적인 근본주의 교리를 이들에게 강요했다.

    이 봉기는 처음에 성직자인 후세인 바드르 알-딘 알-후티(Hussein Badr al-Din al-Houthi)와 그가 이끄는 샤밥 알- 모미넨(Shabab al-Momineen:’젊은 신도들’이라는 뜻) 운동이 예멘 중앙정부에 맞서면서 시작되었다.(이 때문에 이들은 지도자의 이름을 따 ‘후티’족이라고 불리워졌다)

    후세인 알 후티는 결국 지난 2004년 9월 예멘군에 붙잡혀 사살당했고, 그의 형제가 저항운동을 대신 이끌게 되었다. 그 후 카타르가 중재를 하여 지난 2007년 휴전에 돌입, 2008년 2월에는 공식적인 평화협정까지 작성했지만, 이 협정의 이행을 둘러싼 상호 비난과 함께 2009년 8월, 다시금 전투가 시작되었다.

    예멘 정부는 현재 이 전투에 대한 외국의 보도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는데, 자이디어로 발간되는 한 주간지의 편집장에 따르면, 예멘에서는 후티족의 중심지인 서북부 사다에 간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사형선고를 받을 수 있다. 그는 사다 지역의 후티족 반란을 다루면서 이 당시 파괴된 마을들의 사진을 출판했었는데, 예멘 정부는 그에 대해 ‘치안 방해와 무장세력 형성 죄목’ 혐의로 6년의 중노동형을 선고했다.

    살레 예멘 대통령은 이들이 가진 시아파라는 정체성을 이용하여 이란 정부가 반란을 사주했다며 이들이 가진 불만을 왜곡하려고 했다. 지난 2009년 9월, 살레 대통령은 중동 위성방송 <알 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시아파 지도자인 무크타다 알-사드르(Muqtada al-Sadr)와 이란이 이들의 반란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예멘군에 의해 사살당한 알-후티

    이 인터뷰에서 살레 대통령이 이라크 시아파와 이란에게 책임을 돌리며 전개한 논리는 다음과 같다. “이란인들은 우리와 접촉하여 자신들이 예멘 정부와 후티인들 사이에서 중재를 해보겠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란인들이 북부의 후티인들과 접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라크의 무크타다 알-사드르도 자신이 중재자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고 있는데, 이것도 이들이 후티족과 연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살레 대통령의 논리대로라면, 애초 후티족과 예멘 정부를 중재했던 카타르도 이런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급기야 2009년 10월, 예멘 정부는 후티족으로 향하는 무기를 실은 이란 선박을 나포했다고 밝히면서 자세한 수사 결과를 이후에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이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나 무너지면 아라비아 반도 전체 파국"

    오히려 이란 정부는 자국 선박이 예멘 해역에서 나포된 바가 없다며, 예멘 정부의 발표는 예멘 정부와 서방언론이 합작하여 만든 "언론 조작"이라고 항의했다. 또한, 예멘 정부는 당시에 후티족 근거지에 있는 한 창고에서 이란에서 제조된 무기들을 압수했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후티족에게서 발견되었다던 ‘이란제 무기’들은 사실은 대부분이 후티족과 싸우는 것을 거부하고 진지를 떠난 다수의 자이디족 출신 예멘군들에게서 나온 것들로 밝혀졌다.

    후티족 역시 자신들의 투쟁은 예멘 정부의 자이디 공동체에 대한 제도화된 차별과 반시아파적, 근본주의적 이슬람 이데올로기의 강요, 예멘 정부의 미국과의 유착에 저항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며 이란 지원설을 일축했다.(실제로 예멘의 시아파는 생각만큼 이란의 시아파와 동질적이지 않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2009년 11월 <크리스챤 사이언스 모니터>지에 실린 한 기사에서 미국 워싱턴시 소재 국제 위기그룹의 중동 프로그램 부국장인 주스트 힐터맨도 “(예멘 문제와 관련해서) 이란의 개입이 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런 주장을 입증할 증거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이런 ‘이란 끌어들이기’는 위기에 놓인 살레 대통령이 중동에서 이란과 경쟁관계에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란의 숙적인 미국의 경계심을 이용하여 정권에 대한 지원을 얻어내려는 목적에서 취해진 성격이 강하다.(주로 수니파로 구성된 걸프만 국가들은 그동안 시아파 이란의 지역적 영향력과 핵무기 추구에 대해 경계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이미 살레 대통령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다른 걸프협력기구(GCC)국가들에게 자신의 몰락은 아라비아 반도 전체의 파국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그동안 이들로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받아왔다. 오히려 후티족에 대한 사우디 아라비아와 미국의 개입이 진정한 문제였다.

    이슬람 내부의 치열한 전쟁

    후티족은 사우디 아리비아가 국경을 넘어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다며, 예멘 정부가 사우디 아라비아의 대리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사우디 아라비아는 후티족과 예멘 중앙정부간의 전투가 재개된 2009년 8월 이래로 이미 자국의 F-15 전투기들로 예멘 북부의 자이디 반란군 진지들을 공습했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후티족이 레바논의 시아파 헤즈볼라 같은 그룹으로 변화될지 모른다며 이들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데,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를 위해 예멘쪽 국경선 안 10km에 이르는 완충지대를 형성했으며, 이 완충지대의 북쪽 지대 해안을 따라 해상봉쇄를 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사우디 아라비아군은 살상력이 치명적인 각종 무기들-제트 전투기, 공격용 헬리콥터, 미사일 등-을 후티족들을 향해 사용했다. 심지어 후티족은 사우디 아라비아군이 사용이 금지된 백린(白燐, White phosphorus)탄을 후티족 민간인 지대에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백린탄은 인으로 만든 폭탄으로 발화성이 무척 강하여 사람 살에 묻으면 전부 연소될 때까지 뼈까지 파고들어 태우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지난 팔레스타인 가자 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이 폭탄을 사용해서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지난 팔레스타인 가자 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투하한 백린탄

    이러한 사우디 아라비아와 예멘 정부군의 공격으로 예멘 북부 후티족 근거지에는 인도주의적 위기는 심화되었다. 유니세프(UNICEF)에 따르면, 사우디 아라비아 쪽 국경안에 있던 240개의 마을들이 강제로 소개되어 난민캠프에 수용되었다고 한다.

    예멘 국경쪽 마을에서 이런 식으로 쫓겨난 사람들은 충돌이 시작된 이래로 약 2만5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예멘 정부의 언론 통제 때문에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지는 알 수 없다. 후투족과 남부운동들은 그동안 예멘 살레 대통령에 반대하는 반정부 운동의 촛점 구실을 했는데, 현재는 그러한 분노가 부족과 지역을 가로질러 예멘 전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알 카에다는 봉이다?

    다른 한편으로, 예멘 하면 알-카에다를 빼놓을 수 없다. 서방 언론들은 예멘이 오사마 빈 라덴 조상의 고향이라는 점을 주요하게 제기한다.

    물론, 지난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한 것에 대하여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이 이라크와 전쟁을 벌인 제1차 걸프전 당시, 예멘 정부가 이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게 만들 만큼 예멘 국민들의 반서방 경향은 매우 강하다.

    당시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근무하던 85만 명의 예멘 노동자들을 예맨으로 쫓아버렸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들 조직의 규모와 영향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타임>지는 지난 2009년 말, 한 기사에서 ‘미국 정보 보고서’를 인용, 남부 예멘에 존재하는 알-카에다 규모가 대략 200여명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로스엔젤레스 타임즈>지는 한 ‘예멘 대테러 전문가’를 인용하여, 예멘에 약 2000명의 알-카에다 대원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규모 자체에 대한 평가가 천양지차라 이 평가를 곧이 곧대로 믿을 순 없는데, 후자의 경우, 이는 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 존재한다고 발표한 알-카에다 숫자의 무려 20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살레 대통령이 미국 정부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얻어내기 위하여 알-카에다의 규모를 과장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 미국은 크리스마스 항공기 테러 미수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지난 2009년 말에 예멘의 ‘알-카에다’를 공격하여 세 명의 핵심적인 알-카에다 지도자들을 살해했다고 밝혔지만, 이것을 증명할 증거가 분명히 제시된 적은 없다. 

       
      ▲지난 2009년 10월 예멘 남부 라혜 지방의 라드판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시위

    이들은 지난 몇년 동안 예멘에서 벌어지는 반정부 운동에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살레 대통령과 미국 정부는 지속적으로 이들 알-카에다와 예멘 남부에서 벌어지는 대중적인 반정부운동을 동일시하며 정치적 탄압의 구실로 삼아왔다.(남부의 대중 운동의 경우, 민족주의, 좌파인 예멘사회당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데도 그렇게 비난한다)

    그러나 한 때 살레 대통령을 지지하여 내전 당시 남부 좌파들과 싸웠던 알-파흐들리조차 지난 2009년 5월의 한 인터뷰에서 "나는 남부와 북부의 지하드주의자들과는 강력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알-카에다와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그는 다른 인터뷰에서는 "우리 남부는 지난 15년 동안 침략과 사악한 점령을 겪어왔습니다. 따라서 우리 남부의 대의를 위해 싸우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태라 세계의 다른 대의에 눈을 돌릴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독립을 원하며 이 점령을 끝내고 싶습니다."라고 언급하면서 알-카에다와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예맨의 전략적 가치

    그렇다면 미국에게 예멘은 어떤 전략적 가치가 있을까? 예멘이 비록 현재는 석유 매장량이 고갈되고 있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잠재적인 매장지의 경우는 다르다. 국제 석유회사들은 예멘 남부의 마실라-샤뱌 분지에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 매장지가 존재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들 지역에 묻혀있을 석유량이 전세계가 향후 50여년 동안 소비할 수 있을 만큼의 양이라고 추산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석유회사인 토탈과 이보다 작은 몇몇 국제 석유 회사들도 예멘의 석유를 개발하려고 부심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이런 곳에서 민족주의적이며 반서방적인 정부가 수립된다면 서방 정부와 석유업계에게는 큰 타격이 될 것이다. 

    두번째로 예멘과 소말리아 사이에 위치한 국제적 물류 운송의 중요성이다. 이곳은 미국 정부가 전세계에 존재하는7개의 석유 수송 관문 중 하나라고 지정한 밥 엘-만답 해협이 있는 곳이다.(위 예멘 지도상의 예멘 남서부 지역와 아프리카 사이)

    밥 엘-만답 해협은 예멘 남부와 미군 기지가 있는 지부티, 에리트리아 사이에 위치해 있으면서 홍해와 아덴만, 아라비아해를 연결하기 때문에 걸프만에서 생산되는 석유나 기타 다른 수출품들이 수에즈 운하로 들어오려면 반드시 이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국제적 물류 운송로

    지난 2006년, 미국 에너지부 발표에 따르면, 이 해협을 통해 하루 3백만 배럴에 달하는 석유가 유럽과 미국, 아시아로 향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미국 에너지정보국은 “이곳이 폐쇄되면 걸프만으로부터 출발한 탱커들이 수에즈 운하와 수메드 파이프 라인에 접근할 수 없게 되어 아프리카 남단을 우회해야 할 것이다. 이 해협은 ‘아프리카의 뿔'(소말리아가 위치한 곳)과 중동 사이의 관문이며 지중해와 인도양을 잇는 전략적 연결 지점이다"라고 평했다.

    만약 미국과 서방이 이 지역을 군사적으로 통제할 수 없거나 통제력이 약화되면,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국가들로 들어가는 석유의 수송을 차단할 수 있는 막대한 전략적 잇점을 잃어버리는 것이다.(이미 거대한 미군과 나토군 함대가 소말리아 해적 소탕을 명분으로 이들 지역을 순찰하고 있다)

    이런 지역이 예멘 남부의 석유 매장지와 함께 미국과 서방에 친화적이지 않은 정부의 통제에 들어간다는 것은 지정학적으로 막대한 손실이다. 게다가 지금은 홍해의 수에즈 운하를 관리하는 이집트 정부의 무바라크 정부가 축출된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한 미국 고위 관리는 "미국 정부가 예멘 북부의 후티족 반란과 남부 부족지대의 분리주의적 활동에 대해 무척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우디 아라비아의 석유 가운데 상당한 양도 이 지역을 통과한다. 

       
      ▲지도에서 적색원은 중국의 아프리카 석유 수송 출발 지 가운데 하나인 수단 항구, 청색원은 미군 기지가 있는 지부티, 갈색원은 밥 엘-만답 해협
       
      ▲밥 엘-만답(Bab el-Mandab)해협 지역을 확대한 지도

    미국, 소말리아 해적이 고마워?

    마침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소말리아의 해적은 미국을 위시한 서방이 이 해역을 군사화하는 데 좋은 명분을 제공해주고 있다.

    살레 예멘 대통령은 셰이크 아흐메드 소말리아 대통령과 예멘 및 인근 지역을 대상으로 한 소말리아발 테러 활동에 대해 긴밀한 정보도 공유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예멘은 소말리아 및 아프리카에 대한 미군 작전의 배후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이미 인근 해역인 지부티에는 미군기지가 존재하고 있다)

    CNN에 따르면, 오바마 미 행정부와 예멘의 살레 대통령은 미국이 예멘 영공에서 원거리 암살에 사용되는 크루즈 미사일 발사와 전투기 비행, 무장 무인 공격기의 활동을 보장하는 협정에 합의했다고 보도했고, 미 공군기지를 예멘에 건설하는 방침도 고려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예멘은 파키스탄에 이어 미국으로부터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대테러 지원을 받고 있을 정도로 미국 등 서방의 반테러 전쟁의 무대가 되어 가고 있다. 살레 대통령은 알-카에다 세력을 억제하기 위한 미국의 대 테러정책에서 중요한 조력자였다.

    알-카에다가 최근 몇 년간 예멘을 거점으로 삼아 세력을 키워왔다고 보는 미국으로서는 살레의 퇴진은 대 테러 관점에서만 보면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상원은 올해 국방예산 중 예멘의 대테러 방지사업에만 한화로 약 850억원을 투입하는 예산안을 승인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미국은 예멘 내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며 인명피해가 확산될 때도 살레 정권을 적극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다.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우리는 예멘의 불안정한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미국 정부가 여전히 살레를 지지하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예멘 내정에 관한 문제"라며 즉답을 회피했다.

    미국의 고민

    미국은 살레의 퇴진으로 인해 예멘에서 대테러 작전의 연속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말고도 살레를 대체할만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도 고민이 있다. 예멘에서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유력 정당 중 하나인 `이슬라(Islah)’의 지도자인 셰이크 압델-마지드 알-진다니 같은 인물은 미국 테러리스트 명단에 포함돼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미 의회 조사국은 이달 초 보고서를 통해 "현재로서는 살레를 대체할 만한 합의된 인물이 없다"며 "살레의 친인척들이 보안당국을 장악하고 있어 그들 중 일부를 (권력에서) 분리할 경우 내전 등 분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상의 상황을 살펴보면, 현재의 예멘은 이번에 중동 혁명이 발생한 이집트나 튀니지만큼이나 리비아와도 비슷한 정치 지형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족 사회, 지역적 차별과 소수 종교분파에 대한 억압, 이슬람주의자들의 강력한 영향 등등에서 그렇다.(물론 세속적인 좌파정당의 대중운동도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는 점은 리비아와 큰 차이다)

    문제는 이런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예맨의 살레 대통령이 무너질 경우, 그 정치적 공백을 급진적인 세력-이를테면, 미국과 예멘 정부가 알-카에다로 딱지붙이는 이슬람주의자들과 좌파, 분리주의운동가들-이 메꾸는 상황이 가져올 정치적 파장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예멘의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지지 의사를 삼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리비아 동부 지역의 반카다피 혁명군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와 비슷하다.

    미국, 반정부 시위 지지하나?

    예컨데, 일부 사람들은 반카다피 혁명군측이 이집트 측으로부터 받는 무기 지원(미국이 요청)이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집트 군부가 리비아 동부 반카다피 혁명군 측에 제공한 무기의 대부분은 중화기가 아닌 주로 소총과 탄약에 그치고 있다.

    이에 대해 리비아 동부 반카다피 혁명군 측은 이집트의 지원이 ‘너무 굼뜨게, 그것도 너무 적게’ 온다고 불만이다. 이집트 군부는 이런 지원 사실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집트 군부가 향후 사태 전개에서 카다피가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은 리비아 반카다피 혁명군이 카다피를 압도할 정도의 화력을 가지게 되는 것을 제어하고 있는 셈인데, 반카다피 혁명군 측이 언론 인터뷰에서 지속적으로 무기를 달라고 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실제,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개입이 본격화되자, 반카다피 혁명군측의 이슬람주의자들 가운데 일부는 서방이 개입할 경우, 자신들은 차라리 카다피와 연합하여 외세와 싸울 것이라고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고 한다.(이런 압력 때문에 반카다피 혁명군측이 외국군의 진입을 반대한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의 입장에서 이런 급진적인 세력들의 손에 ‘고급’ 무기를 들려주고 카다피를 향한 이들의 진군을 지원하는 것은 장차 화근이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은 이번 리비아 공습에 참여한 미군 아프리카 사령부 사령관의 말에서도 확인된다.

    사우디 아라비아 태도도 주목돼

    미군 아프리카 사령부의 카터 햄 사령관은 공습이 한창 진행되고, 반카다피 혁명군이 재차 반격에 나서는 시점에서도 "반군의 지상전을 지원하는 임무를 부여받지 않았다"며 화력 면에서 카다피 부대에 열세인 반군을 미군이 직접적으로 도와줄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리비아의 사례를 잠시 언급한 이유는 이런 상황 전개와 역학관계가 가장 유사하게 진행될 수 있는 국가가 바로 예멘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예멘 군부 내 살레 반대파들은 살레 대통령의 강경진압이 지속될 경우, 자칫 사태가 리비아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어쨌든, 예멘에서의 친서방 정권의 붕괴는 현재 아라비아 반도에서 부는 민주화 운동을 자극하고 종국적으로는 중요한 석유 생산지대이자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사우디 아라비아도 정치적으로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바레인에 무력 개입을 한 사우디 아라비아가 예멘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보일지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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