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직과 공동투쟁 약속 어디로 갔나?
        2011년 03월 22일 01: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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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 혹독했던 추위도 물러가고, 이제 공장은 완연한 봄입니다. 저희들은 공장에서 쫓겨나 거리를 헤매고 있지만, 공장 안팎은 봄기운을 받아 생기가 넘칩니다. 2010년 11월 15일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투쟁을 25일간 공장점거 투쟁을 벌였고,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야4당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12월 9일 점거농성을 해제한 지 이제 정확히 100일이 지났습니다.

    당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정규직화에 대한 성과있는 합의’가 있기 전까지 농성을 풀지 않겠다고 결정했고, 마지막 남은 249명의 조합원 중에서 상당수가 "여기서 싸우다 죽겠다"고 결의했습니다. 조합원들은 3시간이 넘는 치열한 토론을 벌였고,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 2차 투쟁을 벌여야 한다며 만장일치로 농성을 중단하였습니다.

    농성 중단 후 회사는 정문 앞 농성장과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앞 농성장도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저희는 동성기업 조합원들의 복직이라는 농성 중단의 선결 조건도 이뤄지지 않았지만 격론을 거쳐 대승적 차원에서 전체 농성을 중단하였습니다.

    25일 점거파업 해제 100일

    회사는 교섭을 차일피일 미루고, 성의없는 교섭과 비공개 실무교섭을 진행한 후 △고소고발 및 징계(30명 해고) △정규직화 대책․손해배상 추후 논의 △공정, 직무별 대표소송 진행 △신규채용시 사내하청 일부 발탁 채용 등을 최종안이라고 제시했습니다.

    즉, 가장 핵심인 대법원과 고등법원 확정 판결에 따른 정규직화 방안과 손해배상 취하는 나중에 천천히 논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대신 비정규직지회 간부를 대량 해고하고, 1941명 집단소송을 취하한 후 대표 소송을 진행하며, 신규 채용시 극소수 인원을 발탁 채용하겠다는 내용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을 제시하였고, 현대차지부는 최종안을 받으라고 강요하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교섭 결렬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간부 대량해고 기약없는 정규직화’를 받으라고요?
    정규직노조와 야 4당의 중재, ‘공동투쟁본부’ 구성 약속을 믿고 점거농성을 중단했고, 함께 교섭에 참여한 후 다시 2차 투쟁에 나섰지만 우리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거대한 현대차 자본에 맞서 처절하게 외롭게 싸워야 했습니다.

    교섭 결렬과 2차 투쟁에 대한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주요 간부들이 50명이 넘게 해고되고, 500여명 이상이 3개월 정직 등 징계를 받아 공장 밖으로 쫓겨나야 했습니다. 비정규직지회 이상수 전 지회장을 비롯해 5명이 차가운 감옥에 갇혀 있으며, 수백 명이 경찰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투쟁을 약속했던 정규직노조는 그저 지켜만 보았습니다. 양재동 4박 5일 상경투쟁에 금속노조와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했지만, 공장 안에서 저희들은 철저히 고립되어 처참하게 탄압받아야 했습니다. 극소수 활동가들을 제외한 현대차지부는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이었습니다.

       
      ▲ 2월 26일 서울역 광장서 열린 현대차 비정규투쟁 승리 결의대회에 참석한 비정규직 3지회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강정주)

    비정규직 탄압 ‘강 건너 불구경’

    현대차지부는 3월 11일 지부 소식지를 통해 “지금까지 진행된 특별교섭은 현대차지부가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던 것이 사실이나, 이렇게 마련된 노사 실무협의안이 비정규직 지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과정이 있었기에 앞으로 현대차지부가 특별교섭의 중심이 되기는 어려운 조건이다”며 “비정규직 지회가 원칙을 고수하는 입장이라면 교섭 중재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비정규직 지회가 원칙을 고수한다니요?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에 이어 11월 12일 현대차 아산공장 4명, 2011년 2월 10일 현대차 울산공장 최병승 조합원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이 ‘불법파견이므로 현대차 정규직’이라고 또 다시 판정했습니다. 회사가 상식과 양심이 있다면 당장 정규직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5명에 국한된 판단이라고요? 현대차는 3월 18일 미국에서 ‘엘란트라(한국명 아반떼)’ 18만8000대의 리콜을 실시한다고 했습니다. 아반떼 앞좌석 에어백에서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는 센서 결함 2건이 발생해 리콜을 실시하며, 대상은 2007년∼2009년형 엘란트라 18만8000대였습니다. 현대차는 아반떼 2대에 국한된 결함이라고 하지 않고, 그 많은 차량에 수많은 돈을 들여 리콜을 합니까?

    아반떼 2대에 ‘결함’이 발견돼 같은 시기 제작된 차량 모두를 ‘수리’하는 것처럼, 현대차 사내하청 5명에 대해 대법원과 고등법원까지 ‘불법’임을 확인했으니, 모든 불법파견 사내하청을 ‘시정’해 정규직화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가 아닙니까?

    지금 당장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고, 모든 체불임금을 지급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정규직화 방안을 제출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신의성실에 따라 교섭에 나서는 것이 원칙을 고수하는 일인가요?

    공동투쟁본부 구성 약속 어디로 갔나?

    지금으로부터 100일 전인 지난 해 12월 9일 금속노조 박유기 위원장, 현대차지부 이경훈 지부장, 비정규직지회 이상수 지회장은 점거농성을 해제하면서 기자회견을 통해 “불법 파견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투쟁 승리를 위해, ‘공동투쟁본부’를 꾸려 책임 있게 대응하기로 했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동투쟁본부는 구성되지도 않았고, 어떤 공동투쟁도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외롭고 고립된 투쟁을 해야 했고, 처절한 탄압 속에 쓰러져가고 있습니다.

    현대차지부와 정규직 동지들, 회사는 3월 15일 정규직노조에게 타임오프에 따라 24명의 인원에 대해서만 전임자를 인정할 수 있다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24명을 뺀 200여명의 노조 간부들의 임금을 주지 않겠다고 도발한 것입니다.

    현대차지부는 3월 17일 노조신문을 통해 “4만 5천 조합원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가장 강력한 투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노사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투쟁을 외면하고 정규직 간부들의 임금을 위해 파업을 했을 때 여론의 비난과 보수언론의 십자포화가 집중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회사, 비정규직투쟁 무력화 이후 타임오프로 정규직노조 공격

    바로 이것입니다. 현대차지부가 노리는 것은 비정규직의 투쟁을 무력화시키고, 정규직노조의 조직력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현대중공업처럼 말입니다.

    현대차지부와 정규직 동지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비정규직 3지회가 회의를 통해 회사의 최종 제시안을 거부하고, 전향적인 안을 제출할 것을 요구해야 합니다. 대법원과 고등법원 판결에 따라 ‘정규직화에 대한 성과있는 안’을 제출하지 않는다면, 4월대의원대회에서 투쟁을 결의하고, 공동투쟁에 나서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정규직노조에 대한 회사의 도발을 막아내고, 현대차지부를 지킬 수 있는 길입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정규직 동지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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