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비아에 빠진 제국주의, 분열 & 위기
        2011년 03월 22일 10: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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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영국, 미국 등 서방이 주도한 리비아에 대한 공습이 전격적으로 단행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단행된 리비아 공습은 지난 2003년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침공과 같은 날에 벌어졌다. 이런 우연의 일치가 이번 리비아 공습의 최종 결과가 이라크 전쟁 때와 같은 음울한 결과를 낳지 않기를 바란다.

    제국주의 국가들 분열 가속화

    그런데, 이번에 벌어진 리비아에 대한 공습은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보다 한층 더 심각한 위기를 낳을 가능성이 많다. 우선,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분열의 가속화다. 이 측면은 단순히 미국, 영국, 프랑스 같은 전통적인 서방 국가들과 러시아, 중국 같은 국가들간의 해묵은 갈등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의 분열은 서방 국가들 내부의 갈등이 좀 더 분명하게 표면화되었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공습이 단행된 뒤, 서방은 각자 딴 소리들을 내고 있다. 일단,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군사 개입이 카다피 축출에 있는 것인지부터가 불분명하다.

    이번 공습에 참여한 각 국이 체계화된 지휘라인을 구축하지 않은 것도 예사롭지 않은데, 이는 리비아에 대한 군사행동의 목표나 개입 정도 등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특히 미국과 영국, 프랑스-을 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대체로 이번 기회에 카다피 정권을 완전히 몰아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아직 ‘카다피 축출’을 목표로 설정하는데 그다지 진지해보이지 않는다.

    리비아에 대한 공습이 가해진 직후인 지난 20일 마이크 멀린 미국 합참의장은 방송에 나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이 해군과 공군을 동원해 단행한 1차 공격은 카다피에 충성하는 군대의 진격을 중단시키고 병참지원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앞으로 다국적군이 취할 조치는 카다피의 대응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카다피 축출 목표 설정에 신중

    그러면서 그는 "유엔 안보리 결의가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벵가지와 민간인을 보호하는 것"이라면서 "현시점에서 카다피를 추적하거나 그를 공격하는 것은 군사개입의 목표가 아니다" 라고 강조했다.

    멀린 의장은 군사적 임무가 달성된 후에도 카다피 국가원수가 권력을 유지할 경우에 대한 질문에 "그것은 분명 하나의 가능한 결과"라며 카다피가 권력을 유지하면서 리비아 상황이 교착상태에 빠져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게이츠 미 국방장관도 "다국적군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의 목표에 충실해야 한다"며 "만약 새로운 것을 추가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그것은 현명하지 않은 행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 빌 고트니 해군 중장도 "카다피 국가원수가 ‘타겟 리스트(target list)’에 포함돼 있지 않다"며, 카다피 관저에 대한 미사일 공격도 해당 건물 내에 있는 지휘통제본부를 목표로 한 것일 뿐 카다피를 직접 노린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런 차이는 리비아에 대한 각국의 이해관계의 차이와 경쟁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먼저 리비아의 석유는 대부분이 영국과 프랑스가 위치한 유럽으로 보내지는데, 이 때문에 이들 국가들은 미국보다 리비아의 석유 문제에서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다.

       
      ▲미국 해군 군함에서 리비아를 향해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좀 다른데, 지난주에 베테랑 미국 협상가인 애론 데이빗 밀러는 리비아 문제에 대하여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에게 보내는 메모’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리비아, 미국 핵심 이해관계 없어"

    "미국의 야망을 줄이는 것이 좋을 수는 없지만, 미국 국내 경제가 심각한 상황이고, 이미 두 개의 전쟁을 치르는 마당에 그것은 현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리비아의 경우, 그곳에는 핵심적인 미국의 이해관계가 긴급하리만큼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지만, 역사와 미국이 현재 처한 한계가 제시하는 교훈적인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고 좀 더 영리해져야합니다."

    또한 헤게모니의 문제가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영국과 특히 프랑스가 리비아에 대한 개입 문제에서 자신을 제치고 앞서 나갈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행동해야 할 압력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지난 1956년 수에즈 운하 위기 당시에 이 지역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영향력을 밀어낸 후 이들 국가들이 이 지역에 재차 진출하려 하는 것을 미국의 헤게모니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이미 지난 부시 시절의 일방주의적 전쟁 정책과 지난 2008년의 금융위기, 그리고 최근의 중동지역의 혁명으로 미국이 가지는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헤게모니는 상당히 약화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동맹국들로부터도 헤게모니의 도전을 받아야했던 미국으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는 그만큼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또다른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리비아를 둘러싼 이들간의 경쟁과 암투는 차후의 세계정치에 더 큰 파장을 불러 올 수 있다.

    최근 예멘에서는 살레 대통령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50여명의 반정부 시위대가 살해당하자, 그의 핵심 지지자들이 속속 이반하면서 정치적인 위기가 재연되고 있다. 군 일부와 경찰병력 일부가 시위대로 넘어가면서 자칫 살레 대통령을 지지하는 군경과의 충돌도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리비아에 대한 공습을 단행한 서방 국가들 내에 개입의 목표와 정도를 가지고 설전이 벌어지던 시점에 알랭 쥐페 프랑스 외무장관이 예멘의 살레 대통령은 물러나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는 사실상 미국이 ‘반테러 전쟁’의 핵심적인 중추인 살레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가 대놓고 미국의 등에 칼을 꽂은 것이다.(그렇다고 프랑스 정부가 정말로 예멘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미국 등에 칼 꽂은 프랑스

    리비아에서 시작된 제국주의 서방 국가들간의 앙금과 갈등이 조금씩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갈등은 당장 미국의 주도로 수행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전쟁(그외 국제적인 차원의 각종 경제문제)에서도 그 험악한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런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갈등과 분열은 국제 진보진영이 이용하기에 따라서는 매우 좋은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두번째는 ‘세계 최강국’ 미국의 지정학적 딜레마다. 미국의 영향력있는 외교 관계 전문가들 가운데 리비아에 대한 군사행동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있다. 리비아 사태에 대한 미국의 무대응은 중동의 지정학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즉, 카다피가 비행금지구역 같은 ‘선’을 함부로 넘는 것에 대해 미국 등의 서방이 적절하게 ‘벌’주지 않는다면, 이란 같은 국가들도 미국을 군사적으로 시험하려들지 모른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카다피의 행동에 대해서는 방관하면서도 이란 같은 국가에서 발생할지 모를 ‘유사한 사태’에 대해서만 압박을 가하는 것은 국제사회로부터 ‘이중잣대’라고 비난받을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마침 리비아에 대한 공습이 벌어진 지난 20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페르시아력으로 새해 첫날인 ‘누루즈’를 맞아 백악관 웹사이트에 올린 동영상에서 "이란의 미래는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할 젊은이들에게 달려있다"면서 "비록 시대상황이 어두워 보이겠지만 내가 여러분의 편임을 알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사우디나 예멘, 바레인 국민들에 대해서는 좀처럼 이렇게 노골적으로 얘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오바마가 처해 있는 어려움

    그러나, 이런 미국의 속내는 상호 충돌하는 또다른 모순적 결과를 낳기도 한다. 카다피에 대해 ‘정권교체’-암살이든 폭사든- 등의 초강경 입장을 고집할 경우, 다른 친미 중동 독재 국가들의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폭압적인 대처에 대해서도 리비아와 똑같은 대응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국적군의 리비아 공습이 있고나서 바레인 최대 시아파 정당인 이슬람국가협의회 소속 의원 18명은 수도 마나마의 유엔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열고 국제사회가 바레인 사태에 개입해 줄 것으로 촉구했다. 정부의 시위 강경진압에 반발해 이미 의원직을 집단 사퇴한 이들은 바레인 당국이 시위대에 대한 폭력을 중단토록 유엔이 개입하고, 야권과 정부 간 대화를 중재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들은 아울러 시위 진압 지원을 위해 바레인에 주둔 중인 사우디 아라비아군 등 다른 나라 군대가 철수하도록 미국이 압력을 행사해 달라고도 촉구했다. 결국, 카다피에 대해 미국이 필요 이상의 강경한 입장을 내보이게 되면 바레인(혹은 예멘) 같은 국가들에서도 동일한 요구에 직면해야하는 ‘딜레마’적인 상황인 것이다.(바레인에 군 기지가 없는 영국이나 프랑스로서는 미국만큼 절실하지는 않다)

    결국, 중동 지역의 사태 전개에 대해 정권교체와 수수방관,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가다서다’를 반복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이미지’ 자본과 함께 미국의 지역 내 위상도 점차 끌어내릴 수 있는 것이다. 

       
      ▲서방이 주도한 공습의 민간인 피해자 

    중동 지역 민심, 반서방 조짐

    세번째, 리비아 내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중동 지역 전체를 다시금 격동시키며 혁명이 발생한 국가들(튀니지, 이집트 등)에서조차 미국과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실제로 리비아에 대한 다국적군의 군사작전이 개시된 이후, 오히려 중동 각국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다시 격화되고 있다.

    20일 예멘에서는 장관과 외국 주재대사들의 사임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의 소속 부족마저도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했다. 시리아에서는 48년째 지속되고 있는 긴급조치법 철폐를 촉구하는 시위가 확산됐고, 모로코에서도 국왕의 개헌 약속에도 불구하고 총리 직선제 등 더욱 큰 폭의 민주화 조치를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더군다나 서방이 이번 공습의 국제적 정당성을 강변하는데 이용한 아랍연맹조차도 이번 공습의 결과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물론 미국은 과거 이 기구가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결의를 만들었을 때는 완전히 무시했다) 이번 공습으로 중동 지역의 민심이 서방에 비판적인 방향으로 돌아설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아랍권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의 아므르 무사 사무총장-그는 차기 이집트 대통령으로 출마가 유력시되는 인물이다-이 카이로에서 기자들과 만나 "리비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은 비행금지구역 설정의 목표와 다른 것"이라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시민들을 보호하는 것이지, 시민들에게 폭탄을 안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미국 등 서방의 군사 개입에 반대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향후 이집트에서 그가 집권할 경우, 미국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할 수 있다. 또한, 이집트와 튀니지는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공격에 반대했는데, 이는 필시 군사 개입에 대한 대중적 반대 압력과 인접국이 군사적 불안정에 빠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이들 국가들에서의 미국과의 거리두기는 향후 제국주의의 의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운동을 한층 더 급진화하는 좋은 토양이 될 것이다. 

    서방의 모호한 태도가 변한 이유

    다음은 리비아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애초 서방은 반카다피 혁명군이 카다피를 몰락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부터 재차 카다피가 반카다피 혁명군을 수세로 밀어붙일 때까지 리비아 내전에 대해 계속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이런 태도는 미국이 아주 현저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리비아 내전에서 서로 대립하는 당사자들에 대한 미국의 이해 득실이 간단치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그동안 미국은 카다피와 여러 방면으로 협력을 해왔는데, 중동 혁명만 없었다면 이런 관계는 별탈없이 앞으로도 지속될 형국이었다.

    그러나 중동 혁명의 확산 속에서 두려움을 느낀 카다피 정권측이 반정부 시위대에 대해 보인 무자비한 면모는 엄청난 국제적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한창 중동 혁명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리비아 혁명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 하여금 카다피에게 좀 더 단호한 태도를 견지하게끔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카다피를 밀어붙이는 반카다피 혁명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미국은 우려를 표시했다. 반카다피 혁명군 내에 다양한 이질적인 세력들이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기존 카다피 정부로부터 시위대측으로 입장을 바꾼 ‘구체제’ 세력들이 있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카다피 정부 하에서 진행되던 각종 민중탄압과 서방과의 타협 및 거래에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충실히 수행했던 인물들이었다. 이 점에서 이들은 근본적인 측면에서 카다피가 서방에 대해 취했던 접근에 반대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리비아 상황의 포괄적 성격

    이런 면에서 리비아의 상황은 다른 중동 국가들-이를테면, 튀니지나 이집트 등-과 차이가 있는데, 반정부 세력의 구성이 다른 중동 지역의 민주화 시위보다 더 포괄적이라는 점이다.(이 점은 사태 전개와 관련하여 명확한 목적과 전략, 전술, 그리고 민중의 지지를 확보하고 있는 정치세력들이 부재하거나 약할 경우,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일단, ‘구체제’ 세력들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상황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처리케 해줄 ‘안전판’의 기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반카다피 혁명군 내에는 미국에게 위협이 되는 요소도 있었다. 반카다피 혁명군 내에는 민주적 사회 개혁을 원하는 세력들-그러나 꼭 서방에 우호적이지는 않다-과 지식인, 부족주의 세력들, 이슬람주의 세력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민주적 개혁을 요구하는 세력들 가운데 대표적인 세력은 ‘2월 17일 혁명 청년’으로, 이들은 리비아에서 법치, 정치적 자유, 자유 선거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이슬람주의자들을 주목하고 있는데, 이는 이집트 혁명 과정에서 미국이 ‘무슬림 형제단’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것과 동일선상에 있다. 만약 이들이 주도하여 반카다피 혁명군이 내전에서 최종 승리한다면, 향후 구성될 정부나 사회 형태, 이데올로기적 지향, 대외 정책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강화될 것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러 미국의 의도를 간파했는지, 카다피의 아들인 세이프 알-이슬람은 공습 직후인 지난 20일 미국은 군사개입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며 "왜냐면 어느날 그들은 잘못된 세력을 지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카다피가 맹렬하게 반카다피 혁명군을 수세에 몰아붙일 때, 미국의 정보관계 최고 당국자들이 연이어 카다피의 승리를 대세로 인정하며 이를 추인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키기까지 했다.

    제국주의의 위신과 영향력

    미 국가정보국장인 제임스 클래퍼는 지난 3월 11일, 미 상원 청문회에서 "잘 무장된 카다피군이 장기적으로는 승리할 것"이라며 "카다피 친위부대는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잘 무장됐을 뿐 아니라 풍부한 병참 지원을 받고 있어 장기적으로 볼 때 반정부 시위대보다 우세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날드 버지스 미 국방정보국장 역시 대세가 반군측에서 카다피측으로 이동했다며, "현재는 양측 사이에 균형상태에 다다랐는데, 주도권은 카다피 정부측에 있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반카다피 혁명군이 벵가지까지 몰린 다음에야 미국을 위시로 한 서방은 비행금지 구역을 결의했는데, 이 과정에서 반카다피 혁명군은 군사적으로 상당히 약화되어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러나, 세계를 패권적으로 지배하는 미국 등 서방의 입장에서 자신의 패권적 권위를 이용하여 부과한 일종의 ‘한계선'(비행금지구역)이 공공연하게 무시당한다는 것은 석유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지정학적, 국제정치학적 차원에서도 그냥 묵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는 제국주의의 위신과 영향력에 관계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좋았던 때의 카다피와 사르코지 

    그러나, 리비아에 대한 전면적인 군사 개입은 여러가지 난관도 있다. 특히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도 정리해야하는 상황에다 국내 경제의 상황 악화로 인한 전비 문제, 국내의 개입 반대 여론도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부담이다.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20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 리비아 군사작전에서 미국의 역할을 제한해야 한다는 생각하고 있으며 이 문제가 군부에 가하는 스트레스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미군은 이번 군사작전의 선두에서 우리의 특수한 역량을 제공하기로 합의했으며, 그 다음에는 수일 이내에 작전의 주요 책임을 다른 나라들에게 이관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탄핵 주장도 나와

    민주당 내부의 진보성향의 의원들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국내적 입지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의 사전승인은 물론, 충분한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군사개입을 결정한 것에 대해 강력히 비판했다.

    특히 일부 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결정이 헌법을 위반했다며 탄핵까지 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우파들은 개입이 늦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런 상충하는 압력과 모순 때문에 미국은 리비아의 내전에 개입 안 할 수도, 그렇다고 깊숙이 발을 담그기도 곤란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번의 공습(혹은 이후에 이어질 추가적인 군사 행동도)은 목표와 수단간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상충하는 압력들을 절충한 ‘반쯤 설익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지상군이 투입된다면, 그 과정은 더욱 더 지지부진하고 고통스러운 국제적 논의 과정을 수반하는데다가, 설사 이루어진다해도 자칫 군사적 재앙으로 가는 ‘지옥문’이 될 가능성도 있다.

    필시 카다피 측은 아프리카에서 그들이 지원한 다양한 내전에서 보여준 것처럼, 다양한 게릴라 투쟁을 선보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실제 카다피는 공습 이후 국영 TV에서 자신은 "장기전을 할 준비가 되 있고, 리비아는 끝없이 길고 지루한 전쟁을 약속"할 것이며, "서방은 리비아에서의 긴 전쟁에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엄포를 놨다.

    또 하나의 문제는 카다피에 대한 군사적 대응방안을 두고 서방이 항상적으로 단결을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다는 점이다.

    나토 내부의 이견

    나토의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20일 리비아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이행 계획에 대해 회원국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 것도 그러한 예이다. 나토의 일부 회원국인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은 지난 주말 리비아에 대한 공습에 참가했지만, 나토 자체가 참가할지는 회원국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는 나토가 리비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프랑스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결과로 아랍권 국가들에서 나토의 평판이 좋지 않고, 나토가 개입하면 미국이 주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고 한다.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도 나토의 군사적 개입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그는 "리비아 군사작전의 주도권이 며칠 안에 미국에서 동맹군으로 넘어갈 것이고, 영국·프랑스가 작전을 이끄는 방법과 나토가 주도하는 방법이 있다"면서도 "아랍연맹 쪽에서는 나토의 우산 아래 작전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는 데 대해 민감하게 느끼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나토도 안되고 미국도 한 발 빼는 상황이라면, 미국, 영국 같은 국가들은 아무런 합법적 틀없이 군사 개입을 해야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어찌보면 카다피와 서방은 상대가 먼저 차에서 뛰어내리도록 압박하는 ‘술래잡기’같은 상황을 지속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카다피측이 설사 계속 서방의 공중 폭격을 당한다 해도 이를 통해 어느 정도 자신을 제국주의의 희생양으로 포장할 수 있다면 나쁠 것이 없다. 더구나 이런 공습은 오히려 독재자 주위로 단결을 고취하는 경향이 있다.

    리비아 식민지화 경계 목소리

    그리고 이를 통해 반카다피 혁명군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고 아랍 세계의 동정-내키지 않는-을 다시금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 리비아의 반정부 시위가 ‘이슬람적 자각’의 일환이라며 지지를 표명-카다피에 가장 비판적이었던-했던 이란 정부조차도 공습이 단행된 뒤에는 입장을 다소 바꿨다.

    라민 메흐만파라스트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카다피에 대한 제동은 지지하지만, 공습으로 리비아를 초토화하고 있는 서방의 의도는 의심스럽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서방 국가들은 거의 항상 민중을 지지한다는 구호를 내세우고 특정국가에 들어가서는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며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를 추구해 왔다"며 "리비아 역시 서방이 보호라는 명목으로 리비아를 결국 식민지화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카다피가 갑자기 반제국주의자로 돌변했다고 보는 것도 오산이다. 그는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되자마자 리비아 내의 ‘외국인’의 재산은 안전하게 보호될 것이라고 선언했는데, 이는 실상 다시금 서방에 추파를 보낸 것이다.

    리비아 석유 장관인 수크리 가넴은 리비아의 석유 매장지는 여전히 서방에 열려 있으니 거대 석유회사들은 서둘러 기술자들과 행정인력을 리비아로 보내라고 요구했다. 그는 공공연한 전쟁에도 불구하고 리비아는 외국 회사들과 맺은 모든 의무-여기에는 BP와 계약한 9억 달러 짜리 계약도 포함-를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다피의 이런 타협적인 면모가 가장 ‘엽기적으로’ 드러난 것은, 공습이 있고나서 카다피가 오바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타난다. 그는 이 편지에서 "전에도 말했듯이 리비아와 미국이 전쟁을 하더라도, 당신은 언제나 내 아들로 남을 것이며, 나는 아들로서의 당신을 사랑한다. 나로 인해 당신의 이미지가 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카다피의 초상화를 찟는 반카다피 혁명군.

    반카다피 혁명군의 미래

    그렇다면 반카다피 혁명군의 향후 미래는 어떨까? 일단 이들이 서방에 대해 보이는 태도에 대해 살펴봐야겠다. 서방의 공습을 요청했다고 해서 이들이 바로 서방이 놓는 장기판의 ‘졸’이 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예컨데, 지난 80년 광주항쟁 당시에도 광주시민들은 미국 항공모함이 인근 해역으로 이동하자, 이러한 움직임을 자신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하고 환영한 바 있다.(미국의 의도는 전혀 그것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당시 계엄군의 군사적 포위공격과 고립에 처한 광주시민들의 불안과 절망, 다급함에 비추어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서방의 공습에 대한 리비아 반카다피 혁명군의 태도도 이런 절망감과 압박감에서 나온 성격이 강하다. 더구나, 이들 반카다피 혁명군은 혁명 초기에 카다피를 압박하며 승승장구했을 당시에는 외국군의 지상군 투입은 물론, 서방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대해서도 대다수가 거리를 두는 태도를 보였다.

    즉, 광주 항쟁 당시와는 달리 이들 반카다피 혁명군 대다수는 서방에 기대나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는 그럴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리비아 반카다피 혁명군 대다수는 여전히 외국군의 진주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21일, 아흐메드 엘 하시 ‘2월17일 야당연합’ 대변인은 동부 도시 뱅가지에서 리비아 반카다피 혁명군은 카다피군에 대한 외국군의 추가 공습을 환영하고 있지만, 이들의 지상군 투입은 원하지 않는다며, "자신들의 목표는 트리폴리를 장악하는 것이고 이것을 외국군의 행동 없이 달성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공습 환영하나, 지상군 투입은 안돼

    리비아 국민과도위원회 알리 제이단 유럽특사도 지난 21일,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랑스와 영국, 미국의 공습이 반군을 도왔다… 하지만, 반군은 더 많은 무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는 카다피가 살아서 국제재판소 또는 리비아 법원에서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는 것을 바라며 그를 죽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반군은 다국적군이 리비아를 침략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자력으로 카다피 군을 대적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반군은 다국적군이 가능한 한 빨리 임무를 마치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그래야 시위자들이 다시 거리로 나가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슬람 정부가 아닌 민주주의 토대 위에서 새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원한다"고도 말했다.(참고로, 이런 인터뷰는 대체로 서방언론을 중심으로 보도된 것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서방 언론에 보도되도 크게 문제가 없는 주장만을 취사 선택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뉴욕 타임즈>지에 따르면 "연합군 공습 직전까지 근거지인 벵가지마저 빼앗길 뻔했던 반군 세력이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으며, 반군은 카다피 정부군을 벵가지에서 서남쪽으로 60여㎞까지 몰아냈고 현재 교통의 요충인 아즈다비야를 되찾기 위해 진군 중"이라고 보도했다. 즉, 반카다피 혁명군은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서방의 공습을 받아들였지만, 리비아 혁명의 주도권까지 서방에 내줄 생각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런 이들의 태도는 서방과 일정한 긴장을 자아낼 소지가 있다. 서방의 입장에서는 어찌보면, ‘호랑이 새끼’를 키우고 있는 격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 이라크에서도 후세인이 몰락한 후에 일부 이라크인들이 미군을 해방자로 환영하기도 했지만, 미국이 점령자로서의 본색을 드러내자, 이내 이라크에서는 대대적인 저항의 물결이 발생했다.

    후세인이라는 철권통치가 사라진 정치적 진공상태에서 그동안의 억압에서 해방된 민중들의 정치적 진출이 폭발한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은 이라크 침공전의 후세인이 통치하던 시절보다 더 다루기 어렵고 전투적인 이라크인들의 결사적인 저항을 받았고, 그 결과는 이라크에서 철수 움직임으로 가시화되었다.

    그러나 분명 정치적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일단 서방의 공습이 지속되고 향후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할(했을) 경우다. 카다피는 향후 발생할 민간인 희생의 책임을 서방과 반카다피 혁명군측에 돌릴 가능성이 높다.

    카다피 인정하고, 동서 분할?

    이런 상황에서 반카다피 혁명군측의 엘 하시 대변인의 말처럼, "트리폴리에서 시민들이 공습으로 사망하거나 죽었다는 카다피 측의 주장은 거짓이며 TV 속의 사상자들은 꾸며낸 것"이라고만 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곤란한 처지에 내몰릴 수 있다.

    향후 실제로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면(했다면) 리비아 민중들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의 희생을 단순히 카다피를 제거하기 위해 치러야할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더구나, 이미 패주를 거듭하면서 약화된 상황에서 서방의 군사력이 매우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기에 서방에 대한 비난을 삼가고 그들의 의제를 일정 부분 수용하라는 압력이 거세질 것이다.

    이 점은 애초의 ‘비행금지구역 반대’라는 입장에서 수용으로, 단순한 비행금지를 넘어서 트리폴리 같은 지상에 대한 공습까지도 수용하는 방향으로 반카다피 혁명군의 입장이 계속 변화되어온 지라 더욱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 점에서 튀니지 일간 ‘아코룩’이 지난 20일 "외국 개입은 부패한 정권에 맞서는 리비아인들의 싸움을 손상할 것"이라고 비판한 것은 일리가 있다. 더군다나 카다피는 여전히 서부지역을 비교적 단단히 통제하고 있고, 가장 인구가 많은 부족집단인 와르팔라, 메가리하, 타르후나족이 카다피를 여전히 지지하고 있다.

    만에 하나 지지부진한 사태 해결을 위하여 국제사회의 합의로 리비아가 동서로 분할-공습을 통해 서방이 카다피를 살려주는 대신 분할을 강제한 경우-되었을 경우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서부에 카다피 혹은 그 추종세력들이 건재한 상황에서 동부 지역은 여전히 서부에 대해 긴장을 할 수 밖에 없고, 이는 이 지역에서 서방의 후견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동부지역에서 향후 진행될 사회 개혁을 왜곡시키게 될 것이다.

    서방으로서는 서부에 대해서는 카다피의 철권통치를 용인해주면서 이를 이용하여 서부와 동부의 민중 혁명 모두를 통제할 수도 있는 셈이다. 향후 반카다피 혁명군의 미래는 위에서 설명한 두가지 상반된 압력이 어떤 균형 상태를 보이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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