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규직 방식으로 비정규직 조직 못한다"
        2011년 03월 21일 12: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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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중순 일본 오끼나와를 여행하면서 놀라운 장면을 봤다. 지역 TV방송국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앙케이트 조사 결과를 한 오락프로그램에서 발표했다. 초등학생 고학년들을 대상으로 장래 희망직업이 무엇인지 묻는 문항이 포함돼 있었다. 이들 과반수 이상이 희망직업을 ‘정규직’이라고 응답한 결과를 보고, 뒤통수에 망치를 맞는 느낌이었다.

    머릿속 한편으로 꿈을 잃은 일본사회 단면이 스쳐 지나갔다. 다른 한편으로 정규직이 되기 위해 이른바 좋은 학벌에 목을 매면서 학원으로 대표되는 사교육에 어릴 때부터 내몰리는 일본사회 모습은 우리와 너무나 닮아 있다는 사실에 흠칫 두려움이 스쳤다.

    일본은 한국의 미래일까?

    일본 노조운동이 왜 망했느냐는 질문을 여기저기서 받곤 한다. 그럴 때 마다 이미 상식처럼 돼버린 기업단위 복수노조 문제부터 지역조직 자율성이 강했던 일본 노조운동의 특수성에 이르기까지 아는 대로 답을 하곤 하다.

    하지만 일본과 우리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에 대해서만 주로 말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조직노동자의 조직화 문제에 이르러선 오히려 우리가 일본보다 못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해 입을 굳게 다물곤 한다.

    기업단위 복수노조 문제만 하더라도 일본은 3백인 미만 중소사업장에서 복수노조가 현실로 대두돼 노사관계가 홍역을 앓은 기업은 소수에 불과했고, 대기업에만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전근대적인 노사관계에 집착하는 경영인들 중 그들 스스로 나서 마치 제 무덤을 파는 행위와 다를 바 없는 ‘뻘짓’을 저지르고도 남을 사람들이 꽤있다. ‘노조’라고 하면 알레르기 반응과 괴이한 행태를 보이는 게 마치 정상인 것처럼 치부되는 한국사회의 비이성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일본 금속노조 지역지부들은 조합비 납부에서도 사실상 독자적인 권한을 가진 전통이 있다. 지역 사정에 따라 조합비 액수가 달랐다는 사실은 사업 집행구조에서 지역 자율성이 존중되는 일본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다.

    쉽게 말해 특정 ‘정파’가 절대 다수를 이루는 지역지부의 경우 자신들의 사업을 위해 필요 재원을 스스로 충당하는 방식을 택해 왔다는 점이다. 비록 노조의 조직 원리 중의 하나인 평등주의와 약간 어긋나긴 하지만, 사업의 필요성에 따라 지역마다 편차가 존재해 왔다는 뜻이다.

    다른 지역이나 중앙에 손을 벌리기보다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는 정신은 오히려 자주적 성격이 돋보이는 측면도 있다. 이것은 우리 금속노조에서 얼마 전 있었던 논란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한다. 조합비 2%를 지역사업비로 하여 지역사업 내용과 질을 높이려던 집행부 의도가 대공장의 반대로 여지없이 물거품이 된 경험을 곱씹어보면 일본이 반면교사 역할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은 한국일 뿐

    사회에 내재해 있는 가치와 지향에 따라 사회 구성방식은 달라진다. 한국과 일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닮은 듯하지만, 전혀 다른 사회다. 기업별 노조체계와 다수화 된 비정규 노동시장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하더라고 이를 해결하려는 방식과 대안도 다르다.

    우리의 경우 이미 노동시장에서 다수가 된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노동’이 안을 수 있는 구조는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금속노조에 ‘1사 1노조’ 방침이 존재하지 않느냐고 말은 하겠지만, ‘1사 1노조’ 성과와 내용이 무엇인지 반문하면 시기가 이르다는 말이나 비정규 노동자 및 정규 노동자의 의식문제로 귀결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의식문제도 입장을 바꾸어놓고 보면 생각할 게 너무 많다. 

    흔히 비정규 노동자 문제 해결책은 비정규 고용 불법화와 같은 완전 해소책과 차별완화를 목표로 둔 차별시정제도 도입으로 나누어진다. 노조운동을 한다는 사람에게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책은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 철폐로 요약된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화가 과연 가능한 이야기냐고 따지기도 하고, 차별 철폐는 언간생심 기대도 하지도 않으며 차별 완화만 돼도 좋지 않느냐고 말한다. 즉, 조직노동의 입장에서 말하는 건 비정규 노동자의 입장이 아닐 수도 있다.

    쉽게 말해 흩어진 비정규 노동자들을 모으고 교육해 조직하는 사업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대하는 사업과 근본적으로 다르고, 이를 위해 별도 기구나 논의구조가 존재해야 한다. 이를 인정한다면 조직노동이 주도하는 비정규 사업의 재정 배치는 기존 사업방식과 달라야 한다. 게다가 비정규 사업의 우선성이 지역마다 다른 현실까지 감안하면 조직노동 전체의 결의를 거쳐 이 사업을 진행하는 게 과연 현실적인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지금 필요한 건 운동의 회복

    노조 일상 활동에 비정규 사업을 결합시키는 건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조직노동이 하기 어려운 사업은 오히려 조직노동 밖에서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비정규 사업을 수행하는 당사자의 맘대로 하는 게 아니라면, 운동으로 해서 그 안에서 활동가들이 재생산되는 구조부터 갖추도록 유도해야 한다. 즉, 정규직 노조운동과 비정규 노동자 운동은 그 궤를 달리 할 수도 있지만, 이 둘이 만날 수 있는 가교를 조직노동이 만들어야 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일상적 노조활동을 운동이 아니라고 폄훼할 수는 없듯, 비정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초기 조직화사업이 비록 어린애 장난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엄연히 내용을 달리하는 운동이다. 정규직 조직노동에서 하는 사업방식으로는 비정규 노동자를 조직하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노조운동은 이 사실의 인정에서 출발할 수 있으며, 이것은 노조운동의 입장에서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래야 노조운동의 미래가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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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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