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없는 통합논의는 '반동연합'
        2011년 03월 20일 05: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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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과 혁신이라는 일견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화두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논의가 시작된 지 꽤 오래다. 하지만 혁신은 언제나 어려운 일, 주로 통합을 중심으로 정치적 힘겨루기 양상이 벌어졌다. 통합 담론은 무성하지만, 실천적인 움직임은 지지부진하게 보인 것도 사실이다.

    "기존 정당 질서 밖에서 공론 만들 것"

    새로운 진보정당 연구모임(준)이 주최하고, ‘새로운 진보정당, 길을 열다’라는 주제로 19일에 열린 토론회에 요즘 보기 드물게 ‘무려’ 300여 명의 청중이 참석한 것은, 이런 사정과 진보정치 진영의 통합에 대한 뜨거운 관심의 반영일 것이다.

       
      ▲사진=조영권

    본격 토론회 앞서 ‘연구모임’을 대표해 금민 사회당 상임고문은 “기존의 정당 질서 밖에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대한 사회적 공론을 만들어 진보정치 혁신과 통합에 기여하는 것" 이 모임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무엇을 혁신해야 하고, 무엇이 우리의 미래인지에 대한 대안 없이 통합 논의만 지속한다면, 새로운 진보정당의 전망은 밝지 않을 것”이라며 ‘혁신과 통합 진보의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 사회를 맡은 홍세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도 “오늘 토론회 제목이 ‘새로운 진보정당, 길을 열다’인데, 사실상 ‘길을 묻다’에 가깝다”라며 “이 토론회를 계기로 어떤 내용과 알맹이로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어갈지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해 ‘내용 있는 통합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첫 번째 토론자 나선 투기자본감시센터 허영구 공동대표는 “노동자 국회의원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시작된 진보정당이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할 만큼 성장했지만 여전히 민중의 희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는 미래의 희망을 보며 초석을 다져야 할 진보정당이 소영웅주의와 출세주의에 눈이 멀어 집권논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라며 그 동안의 진보정치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허 대표는 또 “오늘날 진보정치라는 게 투쟁의 현장에서 대중의 열망과 헌신이 쌓여 이룩된 것인데, 이른바 ‘스타 정치인’을 중심으로 한 선거공학이 이를 가볍게 여기고 그 성과를 곶감 빼먹듯 하고 있다”라며 거듭 고강도 비판을 이어갔다.  

    "대중운동 성과 스타 정치인이 빼먹어"

    그는 “IMF 구조조정, 비정규직 확산, 한미FTA 등 이명박 정부의 많은 정책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연장선에 있다. 그런데 이런 신자유주의 정치세력도 야당이면 연합의 대상이 되는 게 진보정치의 현실이다”라며 ‘묻지마 반MB’를 비판했다.

    허 대표는 “최근 울산동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단일화하기로 했는데 왜 고춧가루 뿌리냐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반MB를 위해서는 개인의 피선거권까지 제한해야 한다는 이런 오만함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이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허 대표는 진보정당 통합 문제에 대해도 “갈라선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통합을 논의하느냐”라며 “선거를 앞둔 이합집산은 보수진영의 패거리정치와 다를 게 하나 없다”고 비판했다. 허 대표는 “개인의 정치적 야망을 억제하면서 대중과 함께 장기적이고 끈질기게 진보적 과제를 안고 가자”고 말했다. 

    두 번째 토론자로 나선 진보신당 이재영 정책위 의장은 “진보정치가 분열되어 어려우니 통합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다”라며 통합론의 핵심적인 기본 전제를 부정했다. 

    이 의장은 “노무현 정부 초기까지 민주노동당 지지율은 민주당-열린우리당 지지율과 상반 관계를 보였으나, 2004년 하반기 민주노동당 내 당권의 변화가 생겼고 참여정부의 4대개혁 입법에 매몰되어 스스로 열린우리당 이중대 역할을 자임한 결과 열린우리당과 동반하락하는 관계를 보이게 됐다”고 진단했다.

       
      ▲사진=조영권

    "분열돼 어렵다는 주장은 거짓말"

    이 의장은 이어 “진보정치운동의 하락은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정치운동의 자기 실패의 결과이며, 주도 세력의 변화 없는 통합은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하자는 것일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의장은 또 “분당 이전부터 민주노동당 내부는 지역 분점 형식으로 이미 갈라져 있었기 때문에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통합의 시너지는 굉장히 미미할 것이고, 긴 안목에서도 좋을 것은 없다"며 "현재 민주노동당은 대선에 대해 후보조정, 연립정부를 이야기할 뿐, 아무도 완주를 주장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실제 노리는 것은 한나라당 경선을 통해 떨어져 나온 세력과의 연합"이라며 "이렇게 되면 손학규 대표는 ‘도로 한나라당’ 후보가 되는 것인데, 이것을 우리 당원들에게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연립정부론에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선거연합을 위해서는 노동유연성, 한미FTA 등의 문제도 미뤄둘 수 있다는 이정희 대표의 태도도 그렇다”라며 “자신의 실패에 대해 혁신하지 않고 분열을 탓하는 것은 혁신의 기회를 봉쇄하고 위기를 더욱 심화하는 ‘반동연합’이다”라고 밝혔다.

    이 의장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당장 정치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최적 연합을 도출해야 한다. 진보신당, 사회당, 좌파 정치세력 일부 등이 연합하는 방식이 무리가 없다. 이를 통해 내년 총선에서 원내 정당을 유지하고 대선을 돌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

    세 번째로 토론자로 나선 사회당 금민 상임고문은 “정치는 시대의 문제에 대한 대답이고, 그 출발점은 항상 시대 규정이다. 통합 논의가 당대의 위기를 외면해선 곤란하다”라며 “새로운 진보정당은 신자유주의 사회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편복지동맹을 통합정당의 준거로 보자는 주장이 있는데, 재원마련 문제와 증세 문제가 빠지면 복지동맹은 허구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같은 증세라 하더라도 20조 증세론과 260조 증세론은 각기 다른 사회경제적 대안을 내장하고 있는 것이기에 누구에게 어떻게 걷느냐에 따라 다른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증세동맹도 정치적 통합이나 연합의 틀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어 ‘새로운 진보정당’의 독자성을 강조하며 "민주연립정부론과 분명히 준별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진보정당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하고 "진보대통합이 민주연립정부로 가는 트로이의 목마라면 새로운 진보정당 추진세력은 대통합세력과 분리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새로운 진보정당의 내용을 기획, 주체, 조직의 재구성으로 구분해 설명했다. 기획의 재구성에 대해 그는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은 금융적, 지대적, 강압적, 재정적 수탈 체제를 없앰으로써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대안경제 수립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반수탈 강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주체의 재구성과 관련해 그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비정규직, 청년실업자, 돌봄노동자, 빈곤자영업자, 빈곤여성 등 프레카리아트(불안정노동자)를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세워내고, 이를 통해 전체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으로 재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직의 재구성에 대해서 그는 소통과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 개혁를 통해 ‘동심원형 정당’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진보정당? 새로울 게 없다"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자신은 “‘새로운 진보정당 연구모임’ 참가자가 아니라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이사장으로 왔다”고 전제하고 “새로운 진보정당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하지만 3년 전 진보신당 강령을 쓸 때보다 새로운 것은 지금 없다”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지금 진보신당 강령은 신자유주의가 아닌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통일에 관한 상이 필요하다, 국가를 극복해야 한다는 등의 가장 급진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우리가 세계 진보의 프런티어라는 가장 주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타자성을 용인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그래서 진보신당 강령은 아직 가장 새로운 강령”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데 선거 때마다 강령의 정신은 훼손되어 왔고, 지금은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통합을 추진하고 있으니, 다시 최초에 우리가 물었던 ‘새로운 진보란 무엇인가’의 질문을 시대의 십자가로 짊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지 않으면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정치세력에서 이물질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며 “아직은 (진보신당의) 이 강령보다 새로운 강령을 보지 않았으니, 당원들과 함께 이 강령을 책임지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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