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도 ‘일본 탈출’하는데 걱정 없다는 MB
        2011년 03월 18일 08: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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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신화’가 되살아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최악의 상황’을 막고자 현장에 투입된 이들의 사투를 언론은 ‘영웅’으로 그려가고 있다. 그들의 노력과 땀방울은 평가받아야 한다. 주목할 것은 영웅신화 이면의 현실이다.

    특히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영웅으로 믿고 싶은 이들이 언제나 성공의 결과만을 안겨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일본 본토와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에서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상황은 심상치 않다. 일본 최대 우방국인 미국마저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심지어 미국이 일본을 떠나라는 대피령을 내렸다는 소식이 한국 주요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로 전해졌다.

    문제는 한국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 방사능이 넘어오는 것 아니냐 걱정하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일본 탈출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대통령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부가 방사능 우려와 관련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방사능 우려에 대해 “인터넷 유언비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고, 한국의 수사기관이 행동에 들어갔다.

    다음은 18일자 전국단위 아침신문 1면 기사다.

    경향신문 <미 "일본 떠나라" 자국민 대피령>
    국민일보 <바닷물 30t 쏟았지만…’원자로 냉각’ 실패>
    동아일보 <바닷물 퍼부었지만…원전냉각 1차작전 실패>
    서울신문 <48시간 일 운명이…320인 ‘후쿠시마 결전’>
    세계일보 <냉각수 투하·전력선 복구…일 원전사태 ‘중대 고비’>
    조선일보 <후쿠시마 원전 ‘실낱같은 희망’>
    중앙일보 <인간과 핵의 대결 운명의 작전 돌입>
    한겨레 <원전 냉각 최후의 사투…"48시간 중대고비">
    한국일보 <"핵 재앙 막아라" 181인 온몸 던지다>

    한국 국민의 버팀목은 ‘편서풍’인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있다. 전 세계에서 일본과 가장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이, 한국 정부만이 ‘안전하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일본 원전 방사능 유출을 둘러싼 우려와 관련해 ‘유언비어 수사’라는 위협과 으름장으로 대응하고 있다.

    국민은 궁금하다. 도대체 일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고, 한국은 어떤 대책을 내놓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겠는가. 갑자기 중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편서풍’이 어떻고를 학습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한국 정부가 최악의 상황에서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지, 국민은 사전에 어떤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는지, 그냥 손 놓고 가만있으면 되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겠는가.

    재난 상황에서 ‘유언비어’는 경계해야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무엇이 유언비어인지 따져봐야 한다. 합리적 의문마저 유언비어로 억누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정부는 설명해야 한다. 편서풍 때문에 한국이 안전하다는데 한국보다 더 서쪽에 있는 중국에서 일본 방사능 문제로 요오드 관련 제품 등의 ‘사재기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

    경향신문 "미국, 자국민 일본 대피령"

       
      ▲경향신문 3월 18일자 1면. 

    한국 국민이 사재기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편서풍이 한국의 피해를 막아준다면 중국은 왜 이토록 걱정하는지 그것이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정확한 정보’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대비’만이 국민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

    대통령이 ‘유언비어 차단’을 지시하고 경찰이 수사에 나선다고 국민 불안이 해소될 수 있다고 보는가. 주요 아침신문이 3월 18일자 지면에 전달한 내용은 이명박 대통령의 “일본의 방사능이 넘어오는 것은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다짐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경향신문은 1면 머리기사로 <미 "일본 떠나라" 자국민 대피령>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자극적인 기사제목일 수 있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주목해야 하지 않겠나. 경향신문은 “일본 대탈출이 본격화됐다. 쓰나미에 강타당한 후쿠시마 제1원전의 화재·폭발을 진정시키기 위해 다각도로 작전이 펼쳐지고 있지만 방사성 문질의 누출을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패트릭 케네디 국무부 관리담당 차관은 ‘전세기를 동원해 일본내 미국인들의 출국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혀 사실상 소개령임을 시사했다. ‘일본 당국의 지침을 따르라’던 방침을 하루 새 바꾼 것”이라고 전했다. 상황이 대단히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계일보 "영국 정부, 자국민 일본에서 홍콩으로 철수"

       
      ▲세계일보 3월 18일자 4면. 

    문제는 미국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향신문은 “러시아 외무부도 성명을 내고 18일부터 일본 내 자국 외교관·공관 직원들과 가족들을 일시 철수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러시아만의 선택일까. 그렇지가 않다. 한국일보는 5면 <피난가방 싸는 도쿄…정전·생필품 품귀에 동요 커졌다>라는 기사에서 “외국인들의 탈출러시는 각국 정부차원의 지원 아래 이뤄지고 있다.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주요 국가는 이날 각 대사관을 통해 자국민의 도쿄 철수를 적극 권유하면서 긴급 수송편을 마련해 남부도시 또는 해외로의 피난을 도왔다”고 설명했다.

    세계일보는 4면 <방사능 공포에…외국인들 ‘재팬 엑소더스’ 확산>이라는 기사에서 “영국 정부는 전세기를 이용, 일본내 자국민들을 일단 도쿄에서 홍콩으로 철수시킨다는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8면 <"즉시 일 떠나라"…각국, 자국민 구출 작전>이라는 기사에서 “일본 열도 전체가 방사능 오염 위험에 휩싸이면서 각국 정부가 자국민 빼내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진 발생 이후 처음으로 자국민들에게 일본 밖으로 대피할 것을 지시, 원전 사고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세계 각국 자국민 일본 철수 본격화"

       
      ▲조선일보 3월 18일자 5면. 

    신문의 ‘정치 성향’ 때문에 청와대와 기류가 다른 이런 보도가 나왔다고 봐야 할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조선일보는 5면 <방사선 두려움에 탈 일본 본격화…8개국 대사관 폐쇄>라는 기사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성 물질 누출 우려가 커지면서 세계 각국은 자국민의 일본 철수를 본격화하고 있다. 17일 나리타․하네다공항은 일본을 떠나려는 외국인으로 북새통을 이뤄 ‘탈 일본 러시’를 실감케 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5면 <400km 떨어진 곳서 방사설 물질…대사관도 도쿄 떠나>라는 기사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원자로 폭발에 따른 ‘방사능 공포’가 날로 확산되는 가운데 세계 각국이 일본 거주 자국민들을 서둘러 대피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대사관까지 옮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청와대에 정치적 타격을 주고자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가 않다. 언론은 진보와 보수 성향 할 것 없이 일본의 현실을 전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일본 거주 자국민들을 서둘러 대피시킨다는 데 그렇다면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 정부는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되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동아일보 "세계 각국 일본 거주 자국민 서둘러 대피"

       
      ▲동아일보 3월 18일자 5면. 

    이명박 대통령은 3월 17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와의 청와대 정례 회동에서 “일부 국민들이 일본의 방사능이 넘어오는 것 아니냐 걱정하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인터넷에 이상한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정말 우려스러운 일이다. 이런 유언비어는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주장은 빈말이 아니다. 수사기관이 이미 행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6면 <편서풍 때문에 무조건 괜찮다?>라는 기사에서 “정부가 사전예방적 차원에서 나온 상식적 수준의 경고까지 문제 삼는 것은 과민반응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5일 ‘방사성 물질 한반도 상륙설’이 트위터에서 떠돌다가 몇 시간 만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돼 ‘자체 정화’됐지만, 수사기관이 나서 최초 유포자를 찾아낸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의 모습은 세계 각국의 일본 탈출 러시와 대조적이다. 세계 각국은 ‘유언비어’를 믿어서 일본 탈출을 선택하고 있다고 보는가. 원전 강국이라는 프랑스의 판단이 선진국인 미국과 영국의 판단이 그렇게 경솔하지는 않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한겨레 "정부 상식적 수준의 경고까지 문제 삼아"

    경향신문은 4면 <미·불 "이미…" 일 "아직은…" 원전 위험 평가 딴판>이라는 기사에서 “프랑스의 사고 등급 격상 움직임에 대해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아직 방사성 물질이 대량으로 유출됐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으며, 등급을 올려 불안을 가중시킬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원전 폭발 가능성을 우려해 수일 내 도쿄 지역을 떠날 것을 권고하는 동시에 에어프랑스 측에 귀국편 임시 비행기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보는 4면 <미 "원자로 냉각 거의 불가능" 제기에 일 자신감 없는 해명>이라는 기사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주변의 방사선 수치는 단기간 노출로도 치명적인 만큼 높은 상태에서 향후 원자로 냉각작업을 행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그레고리 야즈코 위원장 얘기를 전했다.

    국민일보는 2면 <‘최후 보루’ 압력용기 폭발땐 격납용기-건물 연쇄 붕괴>라는 기사에서 “전문가들은 이번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미국 스리마일 아일랜드 사고와 달리 문제를 일으킨 원자로가 3개 이상이고, 격납용기가 일부 파손된 데다 4호기의 사용후핵연료통의 핵분열 연쇄반응 문제까지 더해져 사고의 심각성 면에서 스리마일 아일랜드 사고를 한참 뛰어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 "미 ‘원자로 냉각 거의 불가능’ 제기에 일 자신감 없는 해명"

       
      ▲한국일보 3월 18일자 4면.

    미국 정부가 유언비어 때문에 일본 탈출을 결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 정부의 시급하면서도 냉정한 대처가 요구되는 이유이다. 중요한 것은 일본 정부의 발표에 대해 일본 국민마저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근거도 있다.

    일본의 발표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경계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6면 <원전 회사는 ‘조작’ 당국은 ‘은폐’ 부끄러운 일 원전사>라는 기사에서 “도쿄전력은 또 1977~2002년 사이 발생한 200여건의 조작 사실을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정부의 역할 중 하나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국민은 한국에 거주하는 이들만 대상이 아니다. 외국에 나가 있는, 일본에 있는 우리 국민도 정부가 챙겨야 할 대상이다. 정부는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가. 후쿠시마 원전에서 80km 이상 멀리 대피하라는 게 대책의 전부인가. 다른 나라는 “일본을 떠나라”는 권고를 하고 있다는 데 그러한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방사성 물질보다 공포감 주는 건 ‘안전하다’라는 말만 되뇌는…"

       
      ▲경향신문 3월 18일자 31면.

    대통령의 자신감이 국민 안전의 보증수표가 되지는 않는다. 정확한 사실을 전하고, 국민에게 대비토록 하는 게 정부의 보다 중요한 역할이다. 그래야 생필품 사재기나 요오드 남용 같은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 국민이 정부 발표를 믿게 해야 정부 주장에 힘이 실리는 법이다.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안병욱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은 경향신문 31면 <방사능 공포와 정부의 ‘안전 주술’>이라는 칼럼에서 이렇게 전했다.

    “공포감을 주는 건 ‘판도라의 상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사성 물질만이 아니다. 더 끔찍한 것은 대중을 안심시킨다는 명분으로 ‘안전하다’라는 말만 되뇌는 기술관료주의자들의 카르텔이다.…’최악의 경우에도 우리만은 안전하다’고 속삭이는 그 목소리들은 과학이 아니라 맹목적인 주술에 가깝다.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운 교훈은 자연계에서 ‘가능성 제로’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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