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닌주의에서 사민주의 정치운동으로
        2011년 03월 17일 10:50 오전

    Print Friendly

    3월 14일 유시민씨는 <시사 인>에서, 현재의 핵심적인 주제는 ‘국가’에 대한 것임을 이야기했고, 남한의 80년대 이후의 운동사를 알고 있는 이들은 이것이 핵심적인 주제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론 핵심 주제되다

    20여 년 전, 『변증법적 유물론 비판』의 서문을 쓸 때, 글 쓰는 이는 당시의 구소련과 북한 사회 등을 경제적 체제로서는 굳이 이야기하자면 ‘국가자본주의'(20세기 형태에 이루어진 자본의 시초축적의 특이한 형태)로, 정치적 체제로서는 구봉건제인 짜아르 군주제가 전복되어 전체주의적 형태의 쏘비에트 헌법체제(헌법이 있다는 의미에서의 민주공화국)를 갖춘 것으로 설명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때의 민주공화국이란 미완성된 것이고, 세계 경제차원의 자본주의적 관계에서 경쟁에 필요한 시초축적(원시적 축적)이 이루어지고 난 후엔 다시 한 번 탈바꿈이 있어야 될 것이었는데, 1990년 경 공산당의 해체와 함께 비로소 완성된 형태의 민주공화제 헌법이 마련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때 1990년 초 경에, 글 쓰는 이는 차후의 세계에 대한 예측에서는 여전히 전 세계의 자본주의가 하나의 강력한 세계 교통관계를 이루어 나가게 되면,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발전에 의해 그것이 더 견딜 수 없게 된 지점에서 연속적으로 붕괴되고 거의 동시적인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에 의해 새로운 인류공동체가 마련되게 될 것이라고 여겼었습니다.

    (이는 여전히 맑스의 불명료한 어떤 관념에 의해 지배받고 있던 것이었는데, 항상 그것을 넘어설 구체적인 운동의 형태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의식이 그것을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보입니다. 그것은 한반도에서 80년대 이후 2010년 경부터 대중적 바램과, 운동가들의 그간의 경험의 총합물로서 서서히 고개를 들고 표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여겨지는데, ‘사회민주주의적인 정치활동’을 의미합니다) 
      
    이번에 ‘강령소감(진보신당)'(진보신당 자유게시판 게재, 닉네임 오로라)을 통해서 필자는 이제 거기에서 벗어난 생각을 문서화할 수 있었습니다.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일으키는 모순에 대한 마르크스의 역사에 대한 이해 방법은 여전히 유효하며, 이제 그것은 의식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움직임 ‘사민주의적 정치활동’

    즉 이 생산력은 일차적으로 노동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며, 노동이란 인간의식의 특성에 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실은 이 인간의식이 마르크스에 의해 인간사회에 대한 대략의 이해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인간사회는 이 의식의 좀 더 집단적인 공명과 진화에 의해 전화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역사적으로 하나의 커다란 혼란처럼 보여졌던 것이 ‘마르크스주의에 의한 구소비에트 혁명’이라는 오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역사가 대략 70여년 동안 세계사의 한 부분을 지배했고, 강력한 권력의 힘에 의해 그러한 오도를 전 세계에 이데올로기로 유포시켰습니다. 
     
    또 그러한 오도된 이데올로기가 실질적인 힘으로 전환돼, 소비에트와 유사한 권력 형태들을 아시아 지역에도 낳았는데, 이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 보통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듯이 중국은 이미 그 경제관계의 형태에서 자본주의적 관계를 완전히 보여주고 있으며, 세계 교통관계와 더욱 깊이 연관될수록 심화될 것입니다.

    이 측면에서는 여전히 1847년 <도이치 이데올로기>에서의 맑스의 예견이 들어맞습니다. 아시아적인 국가들은 민주공화국을 성립시켜가는 과정이 자체 내의 시민혁명에 의해서라기보다, 자본주의가 이미 발전했던 타민족의 물리적 침탈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때문에 오히려 국가주도의 자본의 시초축적이라는 구소련의 방식을 더욱 쉽게 채택할 수가 있었다고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세계적 차원에서, 그것이 선발 자본주의 국가들 자체 내의 시민혁명에 의해 민주공화국을 수립하면서 세계경제관계를 형성한 것이든, 이 경쟁관계 속에서 군주제로부터 빠르게 자본주의적 시초축적을 위해 국가주도의 전체주의적 헌법체계를 수립했던 경험이 있든, 결국엔 하나의 자본주의적 세계라는 것을 형성하게 된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듯합니다.

    의식혁명

    이는 자본주의의 발전의 무의식적 측면이며, 이제 이러한 세계적 교통관계의 형성과 발전과정 속에, 사회민주주의적인 정치활동을 통해 가능한 만큼 집단적으로 민주공화제의 정치적 장을 이용하여 임노동 대중(즉 국민)에 여러 필요들을 만족시켜 나가려는 행위들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의식적인 행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의식적인 행위가 곧 자본주의 사회 안에 내재할 수밖에 없게 되는 생산력의 요소인 것이며, 이것을 이제는 ‘의식혁명’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내재적인 생산력이란, 자본주의사회까지의 소외된 인류의 전사를 이해하게 된 유물사관적 인식이 보편적인 이해로 받아들여져 하나의 집단적인 정치적 힘으로 전화되어 자체 내의 경제관계의 요소들을 변화시켜 나아가는 것을 포함하는데, 이는 전 인류가 처한 의식 수위의 상태에 반드시 영향 받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본주의가 발전한 정도에 맞는 개별 국가적 차원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국가(민주공화국)’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산력의 요소이며, 그것이 갖는 부정적 측면과 함께 긍정적인 측면도 함께 바라보아야만 하는 까닭이 될 것입니다. 
     
    때문에, 민주공화국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의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상부구조이며 동시에 자본주의를 마무리하게 하는, 자기 소멸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는 상부구조의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최고의 형태가 ‘세계연방합중국’이 될 것임은 의심할 바가 없을 텐데, 이때에 비로소 인류는 전 세계의 상비군을 해체시키며, 그 자원을 모두 인간 삶의 복지와 탐구에로 돌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남한에서 ‘진보’를 이야기하는 이들은, 위의 주제에 대해 스스로의 입장들을 표명해야 한다고 보며, 이는 조만간 현실화될 거라고 보입니다. 
     
    글 쓰는 이는 『변증법적 유물론 비판』을 썼던 당시에 유물사관이 담고 있는 인식론에 의해 도움 받았던 그대로, 마르크스 방법론의 근본적인 내용을 수용하며, 불명료하였던 부분을 재차 뚜렷하게 정식화하여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레닌주의에 대한 오해

    그리고, 이는 ‘사회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계승된 운동들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으며, 그 운동들의 경험이, 위에서 언급한 남한 사회의 현재 시작되고 있는 운동의 풍성한 자산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구소련 공산당 권력을 형성케 하였던 레닌주의라는 아주 단순한 오해와, 속임에 대해 그것이 어떻게 근본적으로 맑스의 방법에 어긋난 행동이었던가를 밝힌 것은 이미 20여 년 전(1993)의 일인데, 그것이 사회민주주의라는 정치운동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것은 2010년 경에 들어서 이해되고 표면화되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서 20여 년 전에 글 쓰는 이가 생각지 못했던, 그래서 문서화할 수 없었던 내용은, 이제 마지막 남은 80년대 운동이념(레닌-스탈린주의)의 흔적이 자신의 원 지류를 찾아 방향을 잡고 있는 시기에 명문화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순전히 시대 속에 살고 있는, 더 나은 세상을 포기하지 않는 모든 영혼들의 노력에 힘입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