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못된 대립, '좌파로 살기' vs '결혼하기'
        2011년 03월 17일 08: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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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상시 <레디앙>의 ‘진보 야’ 코너를 즐겨 읽고 상당 부분 공감했던 나로써는 "청년들 ‘결혼 파업’ 돌입했나?"라는 글을 읽었을 때 몇 가지 어려움을 느꼈다. 우선 어려운 부분은 글 주제가 ‘결혼 파업’이었음에도 글 전반에서 제시하는 좌파 청년 남성들이 소위 ‘결혼 파업’에 이르기까지의 문화가 생소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것과 다른 생소한 문화

    내가 글을 통해 어렴풋이 느낀 것은 좌파 청년 남성들이 술자리에서 정치 얘기만 하고 정작 결혼이나 출산, 양육에 대해서는 고민하기 어려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접하는 많은 청년, 특히 여성들은 글 속의 ‘청년들’처럼 ‘좌파로 살 것인지, 결혼을 할 것인지’ 선택지 속에서 결혼 파업에 이르는 과정에 도달하지 않는다. 혹은 저자가 글 말미에 제시하듯 쿨하게 가족 제도는 별거 아닌 것인 양 치부하면서 결혼 파업에 이르지 않는다.

    내가 접하는 결혼하지 않는 ‘청년’에는 이성애자 여성으로서 결혼이라는 손쉬우면서도 어려운 선택지를 두고 방황하며,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양육은 하고 싶다’고 토로하는 이들도 있으며, 결혼보다 다른 사회적 동거 시스템을 꿈꾸는 동성애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내 경험에 비추었을 때, 현재 많은 좌파를 포함한 청년들이 결혼은 단순히 하기 싫어서, 혹은 내 일이 아닌 것으로 여겨 안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싶은 청년들은 결혼에 따르는 과도한 부담으로 인하여, 혹은 결혼할 여건이 되지 못하여 결혼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결혼하기를 원치 않거나 결혼에 대해 망설이는 청년들은 결혼하지 않고도 안전한 사회적 관계망을 존속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결혼’ 여부는 이처럼 단순한 선택이 아니며, 자신의 삶을 어떻게 영위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 속에서 이루어지는 선택들이다. 이 과정에서 출산, 양육 또한 포함될 수 있다.

    그러한 지점에서 저자가 ‘좌파 청년 남성’들의 경험 또한 편향적으로 분석하고 있는지 우려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좌파 청년 남성’들의 문화 속에서 내린 판단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성급한 결론

    우선 저자의 의도는 출산과 결혼을 주로 여성들만 고민해 왔던 의제인 양 내버려두지 말고 좌파들도 솔직하게 고민해보자는 취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성만이 아닌 남성들도 함께 고민하는 결혼과 출산, 양육을 나로서는 환영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을 ‘좌파로 사는 것 vs 결혼을 하는 것’으로 대립시키면서 현재의 양상을 타파하기 위해 우파의 낙태 반대 보조금까지 들먹이면서 좌파가 결혼과 사회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고민해야 한다고 성급한 결론을 내린다.

    낙태 반대 보조금은 낙태를 하려다가 하지 않겠다고 한 여성에게 지원하는 선택적 출산 지원금으로, 출산의 의무를 여성에게 부과하는 우파의 이데올로기 공세이다. 그 외에도 중간 중간 제기되는 사회적 조건 얘기를 제외하면 ‘남녀가 함께 고민하는 출산과 결혼’은 사실 우파들도 많이 하는 얘기이다.

    ‘남녀가 함께 고민하는 출산과 결혼’은 좌파와 우파가 동시에 얘기하는 지점에 가깝다. 그에 대해 좌파는 출산과 결혼, 양육 그외 여러 가지 사회적 결합에 대해 사회적 지지와 인정을 강조하는 한편 우파는 이를 개인의 책임으로 제시한다. ‘가족의 가치’를 우파가 중요시하는 것도 이들 제도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효과를 지니기 때문이다. 사실, 청년들에게 출산과 결혼의 가치를 모른다고 훈계하는 목소리는 우파의 목소리에 가깝다.

    나는 엥겔스의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을 언급하고 작년 여성의 날 아젠다를 기억하는 저자가 소위 여성운동의 활동과 고민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글을 읽으면서 소위 기존의 좌파 청년 남성들이 여성 운동의 출산 및 양육권 고민, 특히 좌파 여성운동의 고민들을 조금이라도 접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여성운동 고민 접해보지 않은 듯

    왜냐하면 그랬다면 저자처럼 결혼과 출산에 대한 고민이 좌파에 없는 것처럼 여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파의 가치를 기준으로 내세울 것처럼 주장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운동의 입장에서 여/남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는 문제와 결혼과 출산, 다양한 사회적 결합에 대한 사회적 지지 및 지원망의 문제를 별도의 것이거나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소위 성소수자들뿐 아니라 이성애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사회적 결합을 꿈꾸는 기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동거 등의 형태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제도가 갖추어지기를 바란다.

    여성의 성적 자율권이 이러한 결혼 등 사회 제도의 변화를 추동하는 강력한 동력이라면, 이성애자 남성들 또한 자신의 권리적 차원에서 이 흐름에 동참하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쉽게도 저자는 이러한 여성운동의 고민과 입장들을 잘 접해보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지 않으면 왜 여성들의 출산 파업을 가족 만이 아닌 사회에서 출산과 양육에 대한 지지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으로 고민을 잇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출산, 양육에 대해 남성이 동참해야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존 여성운동에서 남성들이 동참하는 출산, 양육 시스템에 대한 고민도 많았지만 그것은 ‘남성의 동참 의무’로만 제시해 왔던 것이 아니다. 비혼 여성도, 비혼 남성도 양육을 할 수 있으며 그 외 성소수자를 비롯한 다양한 동거 커플 또한 양육을 할 수 있다.

    소멸 지향 운동 아니다

    그런 다양한 사회적 결합들이 출산, 양육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혈연 중심 결혼 중심 가족만이 의무를 짊어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 출산, 양육의 사회화, 사회적 공동 책임이고 좌파가 고민해야 할 영역인 것이다.

    노동자 파업, 소위 생산 영역 파업이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좌파는 아무도 없다. 결혼과 출산, 육아 또한 그런 생산 영역과 별개가 아니다. 나는 현재의 소위 ‘출산 파업’이나 ‘결혼 파업’이 생산 영역 파업만큼 의도적인, 목표를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 파업이 무의미한 ‘소멸 지향 운동’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현재의 경로 외의 다양한 방식의 사회적 결합과 지속가능한 관계망의 욕구 또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통해서만 출산 및 양육을 일구고 싶은 이 외에 다른 삶의 방 식을 통해 출산, 양육으로 이어지는 재생산에 대한 욕구를 지니는 이들도 있고, 이 역시 함께 인정하는 사회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현재의 ‘결혼 파업’ 혹은 ‘출산 파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현재 가족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고 가족 형태를 통해서만 재생산이 가능한 시스템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회 시스템 전환을 위한 고민은 남성의 양육 시스템 고민 이상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전개 되어야 할 것이다. 결혼을 하고 싶은 이도, 결혼을 하지 않고자 하는 이도 함께 동참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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