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다피-미국, 밀월관계 이어질 수
    왕정 국가들의 침공…반혁명 선동
        2011년 03월 16일 02: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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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사우디 아라비아가 주축이 된 아라비안 반도 왕정국가 연합군이 바레인을 침공했다. 필자가 ‘마침내’라고 쓴 이유는, 이미 지난 글에서 현재 중동 지역의 전체적인 세력 균형과 구체적인 동학에서 볼 때, 이런 사태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불리해진 반카다피 혁명군

    즉, 리비아 내전에서 카다피의 승리와 아라비아 반도의 반혁명의 관련성, 중동 민주화 시위에 대한 미국의 거리두기, 아라비아 반도로 정치적 초점 이동, 사우디 아라비아의 무력 행사 등이 그것이다. 리비아의 사태 전개도 반카다피 혁명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부상한 반카다피 혁명군 병사 한 명이 트럭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두가지 사건을 접하면서 새삼 드는 생각이 있다. 즉, 사회를 변화시키는 전체적인 과정을 이해하고 거기에 의식적인 요소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과정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 한가지는 사회 발전과정은 기복이 매우 심하며 때로는 전진과 후퇴(때로 아주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가 반복되기도 한다는 점이다.(그것은 몇달 아니, 몇 년을 걸쳐 진행되는 과정일 수도 있다.)

    여기서 진보진영에게 ‘후퇴’가 의미하는 바는, 기존의 기득권 세력들이 사태를 역전시키기 위하여 자신들의 힘을 재결집하고 응집시키는 반면에, 진보운동에 대해서는 갖은 책략과 술수로 분열시키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개개의 고립된 사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 점은 많은 경우, 진보 진영보다도 기득권을 가진 제국주의나 해당 국가의 통치자들이 더 의식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점이다.

    최근의 리비아 사태의 전개와 아라비아 반도의 왕정국가 연합군이 바레인을 침공한 사건은 이런 두가지 측면을 너무나 잘 보여주었다. 먼저 리비아의 경우를 살펴보자.

    카다피 우위의 요인들

    리비아 반카다피 혁명군이 열세에 놓이게 된 것은 여러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다. 예컨데, 다른 중동 국가-특히 이집트에서처럼-산업 중심지나 정치적 중심지인 수도가 아니라 지방에서 투쟁이 발생했다는 점이다.(물론, 이는 어느 정도는 동부 지역에서의 시위에 대한 카다피의 초억압적 무력 행사로 인해 ‘강요된’ 무장투쟁의 성격에서 기인한 점이 있다)

    또한, 초반에 반카다피 혁명군이 전세를 석권할 수 있었던 것은 반카타피 혁명군이 군사력으로 카다피 정부군을 제압해서라기보다는 이들 지역을 방어하던 리비아 정규군의 이탈로 인한 것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강력한 화력이 반카다피 혁명군에게는 부재했다는 점을 둘 수 있겠다.

    하지만, 최근에 카다피 정부군의 공세가 성공할 수 있었던데는 근본적으로는 정치적인 요인이 가장 컸다고 본다.

    반카다피 혁명군이 수도 진입을 앞두고 있었고 트리폴리에서도 빈민과 노동자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지역에서 카다피에 대한 도전이 등장하고 있었을 당시, 서방 국가들을 중심으로 군사적 개입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와 동시에 반카다피 혁명군 진영내의 일부가 서방에 접근하려는 태도를 보였었다.(기층에서의 경계와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그러자, 카다피 진영은 이를 놓치지 않고 반카다피 혁명군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공격-외국의 하수인, 알-카에다 등등-함과 동시에 동요하던 지역이나 부족들을 재규합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그 때를 기점으로 카다피 진영은 자신의 정치적 힘을 다시 응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카다피의 이데올로기 공격 먹혀들어

    실제로 트리폴리에서 혁명군에 지지를 표하면서 시위를 벌이거나 바리케이드를 쳤던 빈민, 노동계급 지구의 투쟁이 시간이 갈수록 그 도전의 수위와 응집력이 약해졌던 것도 이런 정치적인 요인에 일부 원인이 있었다고 본다.

    반제국주의적 전통이 강한 리비아에서 반카다피 혁명군의 대의가 의심받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었는데, 이는 그동안 중립적이거나 반카다피 혁명군 측으로 일정 부분 기울었던 지역이나 부족들도 카다피가 쏟아내는 선전을 신경쓰게 만드는 효과를 불러왔을 것이다.

    사실, 카다피가 트리폴리에 포위되었을 당시에도,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지금처럼 강력한 군사력-전투기, 폭격기, 군함, 탱크 등-을 동원하여 혁명군을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혁명군의 대의에 일정 부분 수긍할 만한 점이 있다고 여겨지면서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혁명군의 정당성이 더 월등했던 상황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이용해 무력으로 탄압했다면 오히려 정치적으로 더 많은 리비아 민중들을 카다피로부터 이반시키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카다피는 영악하게도 이데올로기전에서 우위를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지난 2월 10일을 기점으로 혁명군에 대한 총공세에 들어간 것이다. 여기엔, 카다피가 서방, 특히 미국이 리비아 사태에 진지하게 개입하고 싶은 마음이 없음을 알아챈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미국의 모호한 태도

       
      ▲2009년 7월, G8 정상회담 만찬장에서 카다피와 반갑게 악수하는 오바마. 언제든 다시 거래할 수 있는 사이. 

    더구나, 미국은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대해서도 계속 모호한 태도를 보였고, 카다피군의 통신 교란이나 혁명군에 대한 무기 지급조차도 삼가는 태도를 보였다.

    (한 때 미국은 리비아에 대한 무기 금수조치는 반카다피 혁명군에게도 해당한다고까지 언급했는데, 이것은 그런 명분을 이용하여 다른 인접 아랍 국가들이나 민중들의 반카다피 혁명군에 대해 군사 지원을 차단하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도 있다)

    하물며 반카다피 혁명군 정부를 유일한 리비아 정부로 인정하는 문제에서조차 미국은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미국이 리비아 국민위원회를 승인할 것인지 여부를 질문받자, 미국은 이 위원회를 포함한 반군 그룹들과 접촉했지만, 지금도 이들이 누구인지를 파악하고 있다며 즉답을 회피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반군 그룹들과 위원회, 그리고 개인들이 가진 비전이 무엇이고, 이들이 누구이며, 카다피 이후 이들이 리비아를 어디로 이끌 것인지를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미국은 반카다피 혁명군 내에서 서방에 추파를 던지는 세력이 너무나 미약한 나머지 혁명군 내의 급진파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암시한 셈이다.

    미국, 중동 민주화 운동에 찬물

    이 점에서 미국은 오히려 카다피가 상황을 장악하는 것이 리비아 자체로서나 중동 전체에서도 미국이나 기타 독재자들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미국의 의도가 실제로는 카다피의 리비아 혁명 진압을 통해 중동 지역 전체의 민주화 시위에 찬물을 끼얹으려는데 있다는 것이다.

    즉, 리비아 내전에서 카다피의 승리는 중동 지역에서 펼쳐질 본격적인 반혁명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최근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중동 지역에 대한 접근 방식을 두고 ‘현실주의’라는 이름으로 후퇴한 것에서 이미 그 전조가 시작되었다.

    이는 사실상 해당 지역의 미국 동맹국들이 자국의 시위대에게 행사할 폭력에 대해 이전보다 더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본다는 뜻이지만, 사실상 민주화 시위대를 버리겠다는 것을 내포하는 것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리비아까지는 모르겠으나 막대한 석유와 이란이라는 지정학적인 제거 대상, 중요한 미군 기지가 존재하는 아라비아 반도의 민주화 시위는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막아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설사, 그것이 지난 2009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집트 카이로에서 행한 중동과 관련하여 행한 ‘기념비적인’ 연설을 완전히 무색하게 만들지라도 말이다.

    기존의 현란한 휘장과 수사마저 다 포기해야 할 만큼 미국은 이 지역에서 다급한 위치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전 글에서도 지적했던 것처럼, 리비아의 사태 전개는 전체 중동 지역, 특히 아라비아 반도의 사태 전개상황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었다.

    즉, 서방, 특히 미국은 리비아의 사태 전개 방향을 전체 중동지역의 관리와 통제라는 측면에서 종합적,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카다피의 리비아 정국 재장악은 ‘반제국주의 투쟁’의 새로운 승리이기는커녕, 오히려 북아프리카에서 확산되던 민중혁명에 대한 반혁명 구실을 할 가능성이 높다.

    반혁명 기지

    이 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이미 카다피는 인접국인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민중 혁명이 발생했을 당시, 이들 국가들의 독재자들의 퇴진을 반대하면서 이들 지역 민중들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보였다. 그리고 이런 면모는 카다피 정부군이 리비아 내전을 피해 인접국으로 도피하려고 대기하던 외국인 노동자들 가운데 유독 이집트와 튀니지 출신 노동자들에게 갖은 폭행과 욕설을 가했던 것에서도 드러난다.

    카다피 정부군이 이들을 집중적으로 폭행했던 것은 리비아에서 발생한 자신들의 ‘불행’이 죄다 이집트와 튀니지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카다피 정부군이 반카다피 혁명군이 장악한 지역을 최종적으로 탈환한다면, 이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반카다피 혁명군에 대한 유혈낭자한 ‘피의 보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또한, 애초의 예상과는 다르게 ‘현실주의’라는 미명하에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둘러싸고 떠들썩했던 서방의 분위기가 언제 그랬냐 싶게 증발할 수 있다.

    이미 정부군이 라스 라누프를 탈환한 뒤, 카다피는 내전 이전에 이 지역에서 석유 사업을 하던 이태리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작업을 다시 재개할 것을 종용했다. 브레가를 탈환하면서는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국가들에도 손짓을 하고 있는데, 아마도 반카다피 혁명군 정부를 가장 먼저 인정하는 ‘실수’를 범한 프랑스에게는 이보다 못한 대우가 뒤따를 것이다.

    어쨌든, 향후 카다피가 서방 정부들에 제시할 갖가지 사업 기회에 눈이 먼 서방 정부들과 기업들은 이러한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 카다피 정부를 상대로 갖은 노력을 다 할 것이다.(물론, 여전히 수사적이고 상징적인 수준에서는 말싸움을 하면서 적절한 냉각기와 거리두기를 하겠지만)

    서방 언론의 보도 태도 변화

    그 때문인지 이미 지난 몇 주 동안 서방 언론들은 카다피가 보인 잔학성의 정도에 대해 그 노출 수위를 조심스레 떨어뜨리기 시작했고, 이와는 반대로 반카다피 혁명군들이 알-카에다나 ‘반민주적인’ 왕정 복고주의자들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점차 유포하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반카다피 혁명군이 군사적으로 붕괴한다면, 카다피 정부군은 반카다피 혁명군의 벵가지 본부에서 알-카에다와의 연관을 보여주는 조작된 자료를 들이대거나, 포로의 강제 자백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들은 정치적으로 봤을 때, 사실상-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카디피가 내전에서 이길 수 있게 방조하는 것이다. 

       
      ▲카다피의 친구들. 왼쪽부터 축출된 튀니지의 벤 알리, 살레 예멘 대통령, 카다피, 축출된 이집트의 무바라크.

    어찌어찌해서 정말 나토군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차후에 리비아가 두 개로 쪼개진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리비아에 엄청난 투자를 해 온 유럽의 제국주의자들과 자본가들에게 꼭 환영할 만한 소식은 아니다. 물론, 미국에게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유럽은 상대적으로 리비아의 석유에 의존을 많이 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미국은 현재 리비아로부터 석유를 수입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이 유럽이 상대적으로 리비아 사태에 대해 더 강경한 외양을 띄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사실, 과거 1956년에 이집트의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했을 때도,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과 달리 미국은 군사적 개입을 반대하여 이를 관철한 바 있다. 미국은 리비아 처리 문제에 관한 유럽의 이해관계를 자신의 다른 국제적 이해관계에 지렛대로 이용할 수도 있다.

    은혜와 청구서

    만약 카다피가 사실상 미국의 국제적인 ‘사보타지’ 행위로 살아남는다면, 향후 카다피와 미국 사이에는 더 깊은 밀월관계를 이어질지도 모른다. 국제관계에서는 ‘은혜’를 입은 뒤에는 그에 상응하는 청구서가 ‘칼같이’ 날아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미 카다피는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둘러싸고 서방과 대결하는 척하면서도, 미국측의 알-카에다의 색출과 탄압에 협력할 의사를 내보인 바 있다. 무엇보다도 ‘반제국주의 아랍민족주의자’라는 그가 현재 중동 지역을 휩쓸고 있는 시위를 지지한다는 발언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향후 카다피는 미국을 의식하여 북아프리카에서 이집트나 튀니지의 혁명운동이 더 이상 발전되지 않도록 하는데 일익을 담당할 수도 있다. 카다피의 재등장은 호시탐탐 이집트 혁명을 역전시켜보려 기회를 엿보고 있는 이집트 군부에게도 ‘잘못된’ 신호를 줄 수도 있다.

    또한, 카다피는 이란과 북한 핵문제, 기타 국제적인 차원의 ‘반제 전선’을 한층 더 교란-미국과 타협한 이후로 그랬던 것처럼-시키는 ‘제5열’의 역할을 강화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놓고 볼 때, 그동안 리비아 내전 과정에서 ‘친카다피’ 입장을 취한 다양한 진보, 좌파 진영의 태도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으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그보다 덜 분명하지만 카스트로 역시-가 그랬는데,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진보-좌파 진영의 일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들은 카다피의 껍데기만 남은 ‘반제국주의 아랍민족주의자’라는 외양과 리비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만 초점을 둔 나머지, 미국의 공식적인 언급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진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진보, 좌파의 순진함

    그 ‘순진함’이란, 미국 정부가 공식석상에서 보여주는 반카타피 언사-이조차 서로 상충되는데-와 실제의 정책 사이에 놓인 모순을 알아채지 못한 것을 말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카다피가 혁명군에게 사용한 음해 선전을 그대로 반복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이들이 ‘친서방 경향의 무장한 왕정주의자’라거나 미국 중앙정보국이 훈련시킨 요원들이라는 주장 같은 것들인데, 이들은 정작 카다피가 혁명군을 대상으로 단골로 사용한 비난인 알-카에다라는 주장은 어쩐 일인지 차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차베스와는 다르게 엄연히 중동에 존재하면서 일부 운동 진영으로부터 ‘전통적인’ 반미전선을 구축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이란 정부가 카다피 정부를 격렬하게 비판하며 반카다피 혁명운동 편을 들었던 점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설명이 없다.

    무엇보다도 이집트의 무바라크와 튀니지의 벤 알리의 퇴진에 반대한 카다피가 이집트, 튀니지 민중들의 눈에 어떻게 보였을 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런 점은 친카다피 입장을 보이며 중재를 자청해 결과적으로 카다피에게 시간만 벌어다 준 역할을 한 차베스도 마찬가지다.(그런데 카다피는 그러한 중재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이는 ‘새로운 21세기 사회주의 운동’을 표방한 그에게는 적지 않은 정치적 위상 실추이며, 그의 행동은 중동 지역의 민중운동과 중남미 지역의 진보 운동간의 긴장을 조성하는 분별없는 행위였다. 

       
      ▲지난 13일 바레인의 마나마 광장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폭동진압 경찰과 싸우고 있는 바레인 반정부 시위대-이날 시위는 바레인 폭동 진압경찰이 더는 시위대에 대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카다피 없는 카다피체제

    더군다나, 만에 하나 리비아 사태를 기점으로 중동의 세력 관계가 기존 제국주의 국가들과 독재자들에게 유리하게 전개된다면, 그동안 친카다피 입장을 보이며 그를 옹호해온 차베스가 속한 중남미에게도 하등 이로울 것이 없다.

    그렇다고 향후 카다피에게 무한정 ‘장미빛 미래’만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투쟁이 게릴라전으로 양상이 바뀔 여지도 감안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혁명군 진압 과정에서의 역할을 둘러싸고 그의 아들들 사이에서 격심한 논공행상과 승계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이미 카다피가 나이가 너무 많은 데다가, 서방이 명목상 다시금 리비아 정부와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최소한 카다피의 ‘2선 후퇴’라는 명분을 요구하면서 ‘카다피 없는 카다피 체제’를 요구할 때 그럴 수 있다.

    이것은 각기 다른 아들들에 대한 충성을 바치는 경쟁하는 분파들간의 ‘정치적 궁정 내전’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이는 카다피를 애초부터 지지했던 부족들 내의 분열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라, 이후 리비아 민중들이 재차 기회를 붙잡을 여지가 아예 없지는 않다.

    다음은 사우디 아리비아를 필두로 한 아라비아 반도 왕정국가 연합군의 바레인 침공이다. 리비아의 카다피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혁명운동에 대해 군사력을 동원한 무력 진압의 모습을 띄고 있다. 이 점에서는 이번의 아라비아 반도 왕정국가 연합군의 바레인 침공도 마찬가지다.

    중동 독재자들의 태도 변화

    중동 혁명운동에 대한 노골적인 군사적 도전이라는 점에서 이 둘은 공통점이 있는데, 하나는 북아프리카에서, 다른 하나는 아리비아 반도에서 그렇다. 그런데, 이들 아라비아 반도 왕정국가들은 중동 전체, 특히 리비아의 사태 진전에 일부 고무받았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리비아에서 카다피가 서서히 승기를 잡아가고 있던 때부터 중동 지역에서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속속 드러났다.

    예컨데, 예멘의 살레 대통령은 가열되는 시위에 밀려 연내 퇴진 입장까지 밝혔다가 카다피의 반격과 미국이 말과는 다르게 사실상 이를 방관하는 태도를 취하자, 이전의 약속을 철회하고 반정부 시위를 가혹하게 탄압했다.

    이 과정에서 예멘 정부는 반정부 시위대의 캠프를 재차 습격하거나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신경가스까지 살포하는 극악함을 보였다. 애초에 카다피가 혁명군을 진압하기 위해 화학무기를 사용할지도 모른다며 호들갑을 떨던 서방 언론들이나 정부도 그에 대해 실제로는 한 일은 없었다.

    그런데, 예멘 정부가 실제로 이런 것에 상응하는 무기를 시위대를 향해 사용했을 때에는 변변한 이의 제기조차 없었다.

    이스라엘의 에후드 국방장관도 이런 분위기 반전을 눈치챘는지, 최근 시찰차 방문했던 이스라엘 북부 전선의 관련 장교들에게 재차 레바논에 대한 침공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바레인을 침공하는 아라비아 반도 왕정국가 연합군

    중동의 종파적 분열

    사우디 아라비아 역시 지난 3월 11일의 ‘분노의 날’ 대중 시위를 물샐틈 없는 예방적 탄압과 숨박힐 듯한 경계조치로 일단 수면 아래로 잠재우는데는 성공했다. 바레인 정부도 유화적인 태도를 뒤집고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종파적 분열을 사주하거나, 칼과 몽동이로 무장한 남아시아 출신 용병 깡패들을 바레인 대학에 난입시켜 시위중인 사람들을 습격하기도 했다.

    이집트 역시 콥트교도와 무슬림간의 분열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최근에 이집트 군은 둘 간의 충돌 현장에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최근에 시위대가 이집트 보안기관을 습격하여 획득한 기밀 자료에는 무바라크가 퇴진하기 얼마 전에 발생한 콥트교 교회에 대한 방화사건에 이집트 보안기관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하여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때에 미국 국방장관인 로버트 게이츠는 바레인을 방문하여 바레인 국왕을 만났고, 이틀 뒤에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는 다른 왕국들을 이끌고 바레인을 침공했다.(다른 왕정 국가들의 병력 가운데는 경찰-특수부대들도 있는데, 이명박 정부는 침공에 합류한 UAE의 특수부대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한국 특전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미국 백악관 대변인인 제이 카니는 이러한 사우디 아라비아의 행동이 아라비아 반도 국가들이 상호 합의한 조약에 근거했고, 바레인 국왕의 요청에 의한 것이기에 침공이 아니라고 극구 두둔했다. 그러나, 미국의 호도와는 다르게 바레인에서 가장 큰 야당인 알-웨파크 당은 이들을 ‘점령자’라고 명확하게 규정했으며, 이러한 침공은 자신들과 전쟁을 하자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바레인의 민주화 시위는 이제 왕정 체제를 타도하는 것을 넘어 이들 점령군도 철수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만약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와 다른 아라비아 반도 연합군이 바레인 시위대를 무력으로 분쇄하는데 성공한다면, 이러한 억압은 중동 지역 전체에 걸쳐 반혁명을 선동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전세계 민주시민과 노동자들의 과제

    아직도 무바라크는 이집트에 있고, 튀니지의 벤 알리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안락한 망명 생활을 ‘즐기고’ 있다. 이들을 포함하여 튀니지와 이집트의 구체제 세력들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군사적 개입 시도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라비아 반도 왕정국가들의 군사적 개입 시도가 성공할 경우, 중동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군사적 도발이 동반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특히,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는 바레인과 자국 내의 시위를 이란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선전하고 있는데,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는 이것을 빌미를 이란과의 긴장을 조성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도 한층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그 억압의 형태가 군사력 사용으로 바뀐 점, 성격이 중동 지역 전체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라비아 반도 왕정국가 연합군의 바레인 점령과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탄압에 반대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중동 지역 전체 민중들의 공동과제다. 이는 현재 중동 지역 민주화 운동의 성숙도와 발전 가능성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중동 지역에서 제국주의와 왕정, 독재국가들이 구체제 파괴를 일정 부분 저지하는데 성공-현재는 바레인에 대한 무력 개입-하게 되면, 중동 지역을 벗어난 국제적인 차원의 진보운동에 대한 이들의 공세도 뒤따르기에 이를 저지하는 것은 전세계 민주시민과 노동자들의 공통 과제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명박 대통령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원전을 이 지역에 수출함과 동시에 이들 국가의 체제 유지를 목적으로 특전사까지 파견하였다. 이들에게 훈련받은 UAE 특수부대의 일부가 현재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바레인에 가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명박의 특전사 파견 의미

    운동은 항상 변화와 전진, 후퇴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곤 한다. 이 점은 무바라크를 퇴진시킨 이집트 혁명이 거쳐온 다양한 단계들-시위, 유화책, 탄압, 재차 시위, 깡패를 이용한 탄압, 정체기, 군대 동원 협박 등-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금은 그러한 단계가 중동 지역 전체의 판도에서 벌어지고 있다. 더이상 피할 수 없는 대결 국면에서 제국주의와 그에 부역하는 국가의 통치자들이 판돈을 크게 걸고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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