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르바초프의 호소 “체르노빌을 잊지 말자”
        2011년 03월 16일 11: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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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인해 일본은 물론이고 전세계가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제2의 체르노빌’ 사태로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초기의 전망과는 달리, 원전 1~4호기가 모두 폭발하면서 최악의 참사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원전 폭발과 이에 따른 방사능 유출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고 있고,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들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듯, 일본 정부는 원전 5호와 6호에서도 이상 징후가 발생했다며, 추가적인 상황 악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렇듯 후쿠시마 참사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과학기술 숭배주의와 지구 온난화의 유력한 대안이라는 두 가지의 미신이 만나면서 맹위를 떨쳤던 ‘원전 르네상스’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갈림길에 선 인류사회가 핵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는 오만의 늪에 계속 빠져들지 시험대에 올라선 것이다. 

    공교롭게도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20세기 가장 큰 재난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체르노빌 참사 25주년을 앞둔 시점에 발생했다. 인류사회가 체르노빌의 악몽을 떠올리며 이러한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촉구가 일어날 즈음에 그 악몽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현장. 

    체르노빌 참사와 고르바초프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폭발이 일어났던 1986년 4월 26일,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은 미하엘 고르바초프였다. 그는 이 참사를 목도하고는 핵과 인류의 미래는 양립할 수 없다는 신념을 더욱 굳건히 했고,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보다 20여년 앞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했다.

    이러한 ‘신사고’는 미-소 냉전을 평화적으로 종식할 수 있었던 결정적 힘이었고, 노벨상 위원회는 1990년 고르바초프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상해 그의 업적을 기렸다. 

    고르바초프는 체르노빌 사태 25주년을 맞이해 ‘핵과학자협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3/4월호 기고문을 통해 ‘체르노빌을 잊지 말 것’을 호소하고 나섰다. 후쿠시마 참사 이전에 작성된 글이지만, 후쿠시마 참사를 거치면서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 호소가 되고 있다. 

    그는 “체르노빌 사고 25주년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장엄한 임무를 되새기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이정표”라며, “우리 모두 체르노빌을 기억하자. 체르노빌 사태의 부정적 측면뿐만 아니라, 더 안전하고 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희망의 횃불로써 되새기자”고 호소했다. 

    고르바초프는 25년 전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제2의 체르노빌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예방, 재생 에너지, 투명성, 테러리즘과 폭력에의 취약성 등 4가지 문제에 인류사회가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바로 ‘재생 에너지’이다. 

    그는 “우리가 오늘날 핵 에너지를 쉽게 거부할 수는 없지만, 핵 발전이 에너지 공급과 기후 변화에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그는 마치 핵 발전이 ‘비용 절감형’ 에너지인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이는 “과장된 것”이라며 미국의 예를 들었다. 미국은 1947년부터 1999년까지 미국 정부는 원자력 분야에 모두 2천6백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 반면에, 풍력과 태양열 발전에는 불과 55억 달러밖에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원자력만큼이나 재생 에너지에 투자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대안적이고 지속가능한 에너지원, 즉 바람, 태양열, 지열, 수소 등에 투자”해,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면서도 깨지기 쉬운 지구를 보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로 이어진 ‘횃불’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핵 과학자들이 인류에게 ‘핵’을 선사한 이후, 3대 핵 발전소 사고는 모두 원자력 선진국임을 자부했던 미국, 소련, 일본에서 발생했다. 1979년 스리마일, 1986년 체르노빌, 그리고 2011년 후쿠시마 사고가 바로 그것들이다. 이는 원전 자체의 결함이든, 인간의 실수이든, 지진과 지진해일과 같은 자연재해에 의해서든, 언제 어디서든 이와 같은 사고들이 재발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더구나 핵 발전소가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인구 증가와 산업화에 의한 에너지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 기후 변화 대처의 유력한 대안, 유망한 수출 상품, 과학 선진국으로서의 자부심 등을 구실로 원전은 지난 수년 간 급속도로 지구화되어왔다. 또한 후쿠시마 사태에도 불구하고 원전 선진국 정부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우리의 원전은 안전하다”고 강변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에너지 수요가 늘어나고 있고 또 적지 않은 부분을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류사회가 하루아침에 핵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원전을 가동하는 동안 철저한 안전 관리와 사고 예방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핵에 대한 의존이 높아질수록 인류의 미래도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것은 후쿠시마 참사를 통해 거듭 확인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스리마일→체르노빌→후쿠시마로 이어진 ‘핵 화염’은 인류사회의 공동 투쟁을 촉구하는 ‘횃불’의 의미도 담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핵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인간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 전에 맞서 싸워 이겨내야 한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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