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판 운운 꼴통교회, '카라' 걱정 한심 언론
        2011년 03월 14일 08: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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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의 재앙 앞에 인간은 속수무책이었다. 항시적인 지진의 위협에 대비해왔던 일본의 최첨단 지질학 통계 예측이 지진의 진앙지가 도쿄 인근 지역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규모 9.0의 대지진의 진원은 도쿄 북동쪽 389km 떨어진 도호쿠 지방에서 발생했다. 일본 대지진의 역사가 주로 도쿄 인근 지역이었었기에 지진 대비 시나리오는 당연히 이 지역을 중심으로 대비되었다.

    이것이 역사적 통계를 바탕으로 한 상식이었다. 하지만, 발생 가능성 0.1%의 검은 백조(블랙스완)가 9.11 테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발견된 것처럼, 이번에는 지질학적 통계예측의 과학성을 비웃으며 일본열도에 출현했다.

    때문에 재난 대비에 있어서 지구상의 어느 국가보다 철저했던 일본의 상식을 벗어난 이번 대지진의 재앙 앞에서 일본이라는 국가와 일본인은 속수무책이었고, 허망할 뿐이었다.

    수많은 죽음의 마지막 삶들

    대지진과 쓰나미와 원전 폭발로 인한 방사능 공포 앞에서 미야기현과 이와테현 등의 동북구 지방의 사람들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한 죽음의 공포, 두려움, 고통이 다가오는 대재앙의 시간 앞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바다낚시를 즐기며 가족과의 여유로운 삶을 향유하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사랑하는 연인에게 청혼을 상상하며 생기에 가득찬 젋은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일본 동북구로 허니문 여행을 온 일본인과 외국인 신혼부부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다니면서 ‘비극적 인생’이라는 것을 한 번도 떠올려보지 않은 어린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8.6% 대의 청년실업률 국가에서 쓰나미가 밀려와 자기 방을 쓸어버릴 것이라고 가끔씩 상상하는 취업낙오자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인 누군가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재정 적자가 900조엔을 넘어서 노령화 대책에 지원할 만한 세수가 없는 국가에서 의료 서비스와 식사지원을 거부하고 인생을 포기한 채, ‘고독사’에 방치되어 삶의 비애와 고통 앞에서 죽음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노인들 중의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살자 수가 13년 연속 3만 명을 초과하는 국가에서 동반자살을 꿈꾸며 동북구 지방의 낮선 여관에서 독극물을 입에 넣기 전에 그날의 대재앙에게 타살당한 누군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분노와 탐욕과 번뇌에서 벗어나 선사에서 자비희사(慈悲喜捨)에 충만한 선인의 삶을 누리는 누군가도 아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고, 아마도, 또한, 일본인이기 전에 하나의 인격체로서 생이 힘겹더라도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는 보통의 인간의 삶을 긍정하며, 다양한 얼굴을 가졌던 일본 동북구 지방의 대다수의 누군가들은 대재앙의 노여움 앞에서 자기 앞에 닥쳐올 운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어갔다.

    보수언론, 극우 복음교회, 자본의 경악스런 모습

    그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는 사랑하는 이들을 잃어버린 슬픔으로 인해 가슴이 미어터지는 고통 앞에 오열하며 죽음보다 더 큰 생의 지옥을 견디고 있다. 이들 대다수의 누군가들의 죽음과 고통을, 우리는, 지금, 언론을 통하여 인터넷의 소식을 통하여 바라보고 듣고 있다.

    TV를 통하여 쓰나미에 휩쓸려가는 물 속에서 아내와 아이의 손을 놓치고 오열하는 남자의 얼굴에서, 3명의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어 울음을 참을 수 없는 여자의 얼굴에서, 우리는 허망하고 고통스러운 인간의 얼굴을 보고 있을 뿐, 과거사 속의 식민지 황국신민의 얼굴을 그들에게서는 볼수도 없고, 보아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대한민국에서 일본의 대재앙을 해석하는 권력자들의 목소리를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듣고 있다. 이성적인 한국인들을 경악에 금치 못하게 만드는 이들을 감히 ‘패륜아’라고 부르자. 이 패륜아들은 보수언론, 극우 복음교회, 자본, 극우 국수주의자들이며 대재앙의 기회를 틈타 고통받는 자들에게 야비한 ‘이지메’를 교묘하게 가하고 있는 자들이다.

       
      ▲중앙일보 3월 12일자 1면. 

    중앙일보와 서울신문은 3월 12일자 1면의 기사제목을 ‘일본 침몰’로 뽑았다. 아시다시피, ‘일본 침몰’은 일본의 멸망을 담은 영화이다. ‘정신분열증적 리비도’에 사로잡힌 한국의 보수언론은 ‘일본 침몰’이라는 포르노그라픽한 기사제목으로 숨기고 싶었던 극우정신을 적나라하게 자기 노출하는 바바리맨을 자처했다.

    이에 뒤지고 싶지 않은지, MBC뉴스는 일본대지진으로 인해 ‘소녀시대’와 ‘카라’가 주도하는 신한류 열풍이 걱정이 된다는 보도를 보내어 수많은 국민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전쟁이나 자연대재앙 같은 상황에서는 인간의 감춰진 본성이 드러난다는 말은 진실인가.

    소녀시대, 카라 걱정하는 MBC

    언론은 자신들이 자연의 대재앙으로 인한 고귀한 생명의 죽음을 보도하면서도 ‘신한류 열풍’을 걱정하며 외설적 관음성과 로리타 콤플렉스를 드러내는 것이, 소위 대한민국 수컷 국민들을 얼마나 민망하게 하는지를 모른다면, 그 언론은 진정 패륜아이다.

    ‘쓰나미 피해는 예수 믿지 않아서 생긴 재앙이며, 이슬람, 힌두교, 불교국가에 하느님의 심판이 있다‘고 설교한 금란교회의 김홍도 목사는 일본의 대재앙에 대하여 또 무슨 복음을 전해주실까. 트위터에서 한 극우복음주의자는 “일본 8.8규모의 대지진이 발생했네요. 주여. 주여. 도우시옵소서. 일본땅의 모든 우상들이 파괴되고 복음이 증거되게 하옵소서. 일본땅의 사역자님들과 선교사님들을 보호하여 주옵소서.”라고 글을 남겨 수많은 네티즌에게 분노의 복음을 전해주었다.

    생물과 자연과 역사적 인물을 신령으로 모시는 신도 교인이 49%이고, 불교도가 45%인 일본인에게 하느님 이외의 우상숭배를 파괴하라는 극단적 기독교인의 패닉 상태의 저주에 대하여, 재치있는 한 네티즌은 프리드리히 니체식의 웃음의 철학으로 복음주의 패륜아를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조롱하였다.

    “울 나라가 지진 안 일어나는게 이명박 덕이란 소문이 파다합니다. 지진 올 것을 알고 동물 400만 마릴 신께 산채로 받쳐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윤의 가치가 최고선인 자본은 경제신문을 통해 이번 일본대지진이 어떤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올지에 대하여 분석하기에 골몰하였다. 머니투데이는 일본의 재건복구 과정에서 수십억 달러의 자금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역설적으로 이번 대지진이 일본에 경기부양효과를 주게 되어 일본 경제회복을 견인할 것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양국 수구 꼴통들의 핑퐁 게임

    특히 재건 과정에서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지진피해가 심한 건설과 에너지라고 자세하게 설명도 해주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국내 자동차, 화학, 철강업종이 반사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 놓았다.

    한국전쟁으로 일본경제가 재건되었던 것처럼, 정권과 자본은 혹시 아니 역시 일본대지진을 통해 한국경제의 부흥을 꿈꾸는 아류 제국주의의 흉악한 미소를 인도주의의 가면 속에 숨기고 있는 패륜아이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의 비동시성 속에서 패망한 일본 군국주의와 한국의 자본과 MB정부는 실질적인 ‘쌍생아’라는 것을 이웃나라의 재앙을 통하여 평균의 한국인과 보통의 일본인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패륜아이다.

    일부 일본의 극우꼴통과 한국의 극우보수들은 자신들이 실제 ‘쌍둥이 형제’, 즉 ‘쌍생아’인 것을 잊은 채 ‘혐한(嫌韓)’과 ‘혐일(嫌日)’의 핑퐁게임에 이 대재앙의 와중에도 즐기기에 여념이 없는 패륜아이다.

    일본의 극우 네티즌들은 ‘재일(한국인)이 폭동을 야기할 수 있으니 자위대가 진압해야 한다’, ‘한국의 구조대가 구제역을 몰고 올 것이다’는 식의 글을 올렸고, 어느 정신 나간 한국의 극우 반일주의자는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의 한국인 대학살을 언급하면서 ‘(대지진) 현상은 경악스러웠지만 한편으론 쾌재를 부른것도 사실이다. 그들의 조부가 그들의 부모들이 저지른 만행을 하늘이 벌하는 것이리라.’는 저주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들 역시 비극적인, 아니 차라리 희극적인 한일 연대의 깃발을 힘차게 펄럭이며 일본 대재앙을 무대삼아 광란의 국수주의의 굿판을 벌이는 패륜아들이다.

    위로와 환대의 목소리

    그러나, 극우 언론과 자본과 극단적 복음기독교주의자와 국수주의자들이 휘젓고 다니는 이 패륜의 세계에서도,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위로와 환대를 보내는 윤리적 존재들이 국가와 자본과 종교를 넘어서 참된 소통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이 세상은 부조리와 환멸 속에서도 견디며 살 수 있는 곳이다.

    ‘죄 많은 일본이지만 한국인 여러분,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일본 여성의 호소는 한국인의 심금을 울렸고, ‘과거를 넘어서 인류애를 발휘하자’는 한국 네티즌들의 호소는 양국 극우 패륜아들의 ‘망언의 곡소리’를 대지진 진앙지에 파묻기에 충분했다.

    나는 이 땅의 몰지각한 패륜아들이 "죄를 저지르는 일은 인간이 하는 일이며, 자기의 죄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악마의 일이다."라는 톨스토이의 경구를 백분의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9.11 사건 직후 "다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는 수잔 손탁의 말을 경청할 만한 기초적인 이성을 학습하기를 권한다.

    일본대지진이 있기 보름 전인가. 나는 2011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공지영의 <맨발로 글목을 돌다>라는 단편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의 미덕은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가해자와 피해자를 도덕의 법정에 세우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 고통 앞에서 인간은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를 묻고 있기에 현재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의 고통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을 던져주었다.

    스물두 살 때 가시와자키 해변에서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도중 이유없이 납치되어 24년을 북한에서 보낸 일본인 H, 일본군에게 위안부로 미얀마 전선으로 끌려간 순이 할머니의 증언, 아우슈비츠의 절망 속에서 살아 남은 프레모 레비와 빅토르 프랭클의 이야기, 탈레반에게 조카의 친구들을 빼앗긴 이야기, 성서의 욥기의 ‘고통론’이 모자이크처럼 중첩되는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나는 타인의 고통과 불가해한 폭력이 구축된 이 세계를 어떻게(How), 무엇으로(What)으로 해석해야 하며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견뎌나갈 것인가를 일본의 대재앙과 고통받는 일본인들을 마음속으로 위로하며 상념에 빠졌다.

    그 상념의 결론은 헐벗은 모습으로, 고통받는 모습으로, 짓밟힌 자의 모습으로, 타인이 호소할 때 그를 섬기고 사랑할 때 진정한 윤리적 주체가 구성되고 진정한 인간의 연대가 이뤄진다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는 대재앙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보통의 일본인들 앞에서 제발 과거사 운운하는 비이성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자본과 보수언론과 대형교회의 반이성적인 패륜아들과 그 하수인들의 몰지각한 입에 재갈을 물리고 격노의 거룩한 복음을 베풀자.

    이 땅의 패륜아들이여! 회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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