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문제, 자주파 사고 전환 필요
    세습 침묵, 고뇌 이해하지만 잘못
        2011년 03월 10일 12: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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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민주노동당 지도부 선거에 대한 쓰라린 추억

    2006년, 필자는 당시에 민주노동당 지도부 선거 투표를 앞두고 있었다. 당 정책위의장 선거에 나온 후보들 중에 누구를 찍어야 할지 고민이 컸다. 당시 필자는 소위 자주파에 속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파가 지지했던 이용대 후보를 찍을 수 없었다.

    이미 필자는 반미(반제)자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자주파의 당시 주장을 수용할 수 없었고, 이용대 후보가 정책토론 과정에서 보여준 정책위의장으로서의 역량 부족을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정책역량에서부터 한반도 평화문제 등에 있어 광범위한 대안과 정책을 제시하는 윤영상 후보를 지지하고 싶었으나 무언가가 그를 지지할 수 없게 잡아 끌고 있었다. 결국 필자는 정책위의장 선거에서 기권을 하고 말았다. 비겁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필자를 잡아끌었던 그것은 끝까지 떨쳐내지 못했던 오랜 관성, 아니 그러니까 소위 자주파들이 가지고 있는 통일문제, 북한문제에 대한 무서운 자기검열이었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절망스럽게도 민주노동당은 분당되었고, 여전히 절망스러운 기분을 지우기에는 부족한 진보정당 통합논의가 양당에서 진행되는 상황이 도래했다. 지난 일요일 필자를 고뇌하게 만들었던 윤영상 선배가 눈앞에 앉았다.

       
      ▲토론회 모습. 

    소셜지성 청년포럼의 첫 번째 토론회, 북한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다

    일요일이었던 3월6일 합정역 ‘새움’에서 ‘소셜지성 청년포럼’이 개최한 작은 토론회가 열렸다.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연령에 속하는 약 40여 명의 젊은 활동가들이 모였다. 발제자로는 윤영상 진보신당 당원과 민경우 청년포럼 기획위원이 맡았고, 필자는 사회를 봤다.

    오랜 기간 진보정당 운동과 평화운동에 노력해 온 윤영상 전 진보신당 정책위 부위원장과 20여년간 두 번의 옥고를 거치며 통일운동에 매진해왔지만 최근 자주파의 노선에 대해서 날선 비판을 던지고 있는 민경우 선배의 토론은 충분히 경청할 만한 수준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때로 두 발제자가 이 정도의 내용이 합의될 수 있으면 분당할 이유도 없었지 않겠느냐고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물론 북한문제만이 분당의 모든 원인은 아니겠지만) 토론의 합의정도는 높았다는 점이다. 필자 역시 두 발제자의 토론에 상당히 공감이 갔다.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문제를 주제로 한 청년포럼의 첫 번째 토론회는, 사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진보진영 통합과 관련된 쟁점을 드러내고, 어디까지 합의하고 논의되어야 하는지를 짚어보고자 기획되었다.

    당연히 북한문제, 한반도문제에 대한 정세인식은 뜨거운 감자이다. 진보진영의 통합이 도로 민주노동당이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통합 과정에서 새로운 진보정당의 노선과 쟁점들을 솔직하게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토론회에서 양 발제자가 합의되었던 부분도 있고 끝내 합의되지 못한 부분도 있다. 토론회 사회를 보면서 합의되었던 부분을 중심으로 생각해볼 때 현재 진보진영통합 논의에서 민주노동당의 자주파가 더 많은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고, 쟁점들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겠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었다.

    또한 새로운 진보정당이 과거 반제국주의 또는 반미 수준의 강령을 넘어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국제정세인식,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 역시 들었다.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더 이상 반제-반미가 시대의 척도가 아님을 인정하자

    첫 번째는 현 시기 한반도 정세분석을 포함해 국제정세를 바라봄에 있어서 더 이상 ‘제국주의론’은 전가의 보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인구, 에너지, 환경, 전염병 문제 등 전지구적 의제의 출현과 이에 대한 인류의 대응속도 격차 등, ‘제국주의론’이 제출된 시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문제들이 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이제 ‘반제국주의’라는 단선적 시각을 질적으로 교체하고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시기에 서있다. 저기 80년대 열광적인 반미노선을 말했던 ‘카다피’의 타락과 몰락이 이미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두 번째는 첫 번째 고민의 연장선에서 반제-반미 민족해방론과 같은 전통적인 자주파의 시각으로 동아시아 질서를 이해할 수 없으며, 조국통일 만능식의 사고도 한반도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자주파의 정세인식의 기본을 차지하는 북미, 남북관계 분석으로만은 동아시아 질서를 설명할 수 없다. 중국의 부상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는 이미 현실이다.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자주파의 정세인식이 국제정세와도 한국사회 국민들의 상식에도 어긋날 때가 많았던 것은 그 때문이다.

    2005년 급작스레 전 당력이 집중된 맥아더 동상 철거 투쟁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반제-반미 민족해방론에 기초한 미국에 대한 악마화와 북한에 대한 신화화는 진보정당의 현실 대응에 있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진보정당이 한반도 평화에 대한 책임 있는 대안 제시보다 북한에 대한 악마화를 통해 관념적인 논쟁에 치중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무용하다.

       
      ▲토론회 모습 

    북한문제 이미 성역이 아니며, 연방제 또한 비현실적

    세 번째는 북한에 대한 입장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80년대에 나왔던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같은 수준의 인식틀로 현재 북한의 상태를 평가하는 것은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 현실의 문제를 자꾸 60년 전의 과거로 소급해서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60년 전 분단전후 시간대에서 북한 건국세력이 항일무장투쟁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자주파가 이러한 인식을 참혹한 전쟁까지 겪고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지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이미 북한은 60년의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이 변했고 남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1945년 김구마저도 암살당하는 해방공간이 아니라 2011년 민간인들의 머리 위에 북한이 쏜 포탄이 떨어지는 현실에 살고 있다.

    이 문제는 이전 민주노동당 시기 소모적인 당내 논란을 불러오는 근원이다. 따라서 새로운 진보정당에서는 현 시점에서 북한의 행태에 대해서 국민들의 상식수준에서 ‘분명하게’(이것이 중요하다)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사안에 따라 충분히 비판할 수 있고, 진보양당이 합의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비판의 수위에 대해서 또 소모적인 논란이 일게 된다. 통합 과정에서 북한의 3대세습 문제, 핵실험, 연평도 포격 문제 등에서 비판적 입장을 민주노동당의 자주파에서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양보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비판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정도로는 신뢰를 주지 못한다. 과거의 경험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제 비판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신뢰의 싹이라도 트는 것 아닐까?

    네 번째는 통일문제에 있어서도 새로운 진보정당은 연방제 통일 강령에 대한 집착 또한 버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연방제 즉 1국가 2체제는 이미 남과 북이 두 개의 국가로 기능하고 있는 현실과 맞지 않다. 중국과 홍콩처럼 그 규모에서 막대한 차이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현 시점에서 연방제는 명확한 통일대안이기 힘들다.

    물론 6.15선언 이후 낮은 단계 연방제의 개념이 제출되었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낮은 단계 연방제가 사실상 국가연합과 차이가 없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결국 당장에 새로운 진보정당이 통일강령에서 제시해야 하는 것은 평화체제 실현이며, 현시기 가능한 통일의 형태는 국가연합이다. 장기적 과제로 연방제가 가능할 수는 있으나 이것이 현 시기 통일의 대안일수는 없다.

    이렇게 보자면 과거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노회찬 후보가 제시했던 P+1 KOREA정책(민주노동당내 자주파가 반발했던)과 큰 차이가 없다. 이미 현실적으로 자주파가 그런 정책 수준을 수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으며, 변화된 한반도의 현실은 그것을 수용해야만 하는 상황임을 인정하자.

    물론 현재 한반도는 미-중간의 대결구도가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남북이 평화체제 구축실패라는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것은 동북아 질서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연평도 사태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재발할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따라서 평화체제 구축에 진보진영의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향후 새로운 진보정당이 출현하는 시기라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진보정당에서 군축 등을 포함한 평화운동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어야 하며, 북한을 악마화시켜 평화운동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침묵으로는 통합을 이룰 수 없다

    지난 북한의 3대세습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은 침묵을 견지했다. 당 대표까지 나서서 침묵하는 것이 한국사회 진보의 책임 있는 자세라고 말했다. 100보 양보해서 그것이 한국사회 진보진영에게 일정 정도 필요한 자세일지도 모른다. 극우-보수세력의 장난질에 말려들어가지 않는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정견을 가진 세력과 통합을 고민하는 정당의 자세는 아니었다. 침묵으로는 통합을 이룰 수 없다. 서로 다른 정견과 사고, 수십 년간의 다른 활동 경험을 가진 세력들이 통합할 때는, 침묵보다 자신의 솔직한 입장을 밝히는 것과 충돌하는 지점에 대해 허심탄회한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은 진보양당을 포함해, 진보진영 전체가 과거 자신들이 심각한 관성에 빠져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새로운’ 이라는 형용사를, 앞으로 탄생할 진보정당 앞에 붙일 수 있을 것이다.

    토론회 사회를 보며 만약 필자가 지금 다시 시간을 되돌려 2006년으로 돌아간다면 기권하지 않고 윤영상 후보를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물론 한심하고 허망한 넋두리에 불과하다. 우리가 기존 운동의 논리와 관성을 벗어나는 그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간다. 그리고 그 시간과 함께 진보가 국민대중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도 흘러가버린다. 이미 우리는 5년의 시간을 그렇게 보내오지 않았던가?

                                                       * * *

    * 이 글은 진보정당대통합 또는 새로운 진보정당의 노선에 대해서 다양한 토론을 기획, 진행하고 있는 ‘소셜지성 청년포럼’의 조성주 대표가 보내온 글입니다. ‘소셜지성 청년포럼’은 새로운 진보정당의 운영원리와 노선에 대한 6번의 토론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레디앙>은 앞으로 매 토론회가 끝날 때마다 토론 내용을 요약하고, 필자의 의견이 들어간 글을 연속 게재할 예정입니다. 두 번째 토론회는 오는 3월19일(토) 오후 3시 “한국사회성격과 진보정당의 역할”을 주제로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실(총신대역)에서 열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http://facebook.com/socialforum)를 통해서도 다양한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주최 측은 진보정당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고뇌하는 젊은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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