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스라엘은 카다피를 원한다?
    사우디, 3월 11일, 정치적 폭풍 시작
        2011년 03월 10일 08: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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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언론에서는 최근 카다피 정부군이 리비아 해안가의 몇 개 지역을 장악하자, 전세가 역전된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냉정히 평가해보면, 현재 진행되는 상황을 카다피 정부군 측의 정치적, 군사적 승리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리비아 전세는 역전됐나?

    무엇보다 경무장한 반카다피 혁명군에 비해 월등한 무장력(공중 폭격과 탱크 투입)을 갖춘 카다피 정부군이 현재 장악한 지역을 뺏기 위하여 몇 날을 낭비해야했다는 점에서다. 이들 지역조차도 계속 장악할 수 있을지 여전히 불투명한데, 이 점에서 아무리 후하게 평가해도 일단은 ‘상처뿐인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트리폴리 서부의 자위야 같은 지역의 경우, 카다피 정부군의 정예부대가 그동안 수 차례 투입되고도 아직까지 탈환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위야 지역에서 정부군을 계속 몰아낸 반카다피 혁명군은 이런 결과에 대해 <가디언>기자에게 자신들은 사기가 매우 높은 반면에 정부군의 사기는 형편없기 때문이라며 당연하다는 태도를 보였었다.

    실제 돈을 목적으로 온 용병들의 사기가 계속 유지되기는 어렵다. 카다피측으로서는 무언가 자신들의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군사적 탈출로가 있다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않고는 자신의 대열 내에서 계속적으로 사기와 응집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월등한 무력을 동원한다고 해도 현재 리비아 전역을 휩쓸고 있는 반카다피 혁명군 활동 전체를 일거에 파괴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정권을 유지하려다 자신의 모순적인 본질을 폭로하고 있는 카다피-한편에선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반제국주의적 수사를 다시 동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알-카에다의 위협설을 통해 서방의 지지를 끌어들이려 하다. 아랍 민족주의자라는 겉모습과 달리 이스라엘의 지원도 마다하지 않다.

    리비아 민중은 협상을 수용할까?

    그럼에도 최근 서방국가들의 군사적 개입 논의는 카다피 정부군측에 일정한 자기 정당화를 제공한 측면도 있어보인다. 오히려 카다피 측이 정권 유지를 위하여 서방의 군사 개입 논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 단계에서 보여주고 있는 리비아 내전의 양상은 우선 상호간의 타협과 협상을 전제로 한 힘겨루기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이미 각종 타협책과 협상설(카다피 해외 망명과 사면, 신변 안전과 정치 개혁 등)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일정하게 그런 분위기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만약 현재의 상황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앞으로 진행될 전투는 그러한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상대에게 더 많은 양보를 강제하기 위한 성격일 수 있다. 마치 한국전쟁 당시 휴전 협상의 와중에도 철의 삼각지대를 무대로 무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투가 벌어진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협상을 반카다피 혁명군의 기층이 수용할지, 이들의 무장해제는 어떻게 진행할지, 향후 구성될 ‘통합’ 리비아 정부 내에서 구체제의 일소를 어떤 식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자체적인 무장을 통해 해방된 지역의 공공시설과 산업체, 농지를 민주적으로 통제해 본 리비아 민중들이 향후 어떤 식으로 등장할 지가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물론, 리비아가 두 개로 분할되는 경우를 배제할 수는 없다.)

    가장 나쁜 경우는, 카다피가 서방의 군사적 개입 논의가 ‘논의’로만 끝날 뿐 –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 때문에도 실제 이행되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 실제로는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이를 적극적으로 내전에 이용할 때이다.

    그렇다면 카다피측으로서는 간헐적으로 대대적인 무력 공세와 협상을 번갈아 사용해가며 조금씩 반카다피 혁명군 진영을 압박하려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

    카다피 측이 공세를 펼칠 때마다 서방을 중심으로 다시금 군사적 개입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겠지만, 몇일 전에 보여준 것처럼, 카다피 측이 이내 협상과 중재를 제안하면서 시간을 끌고 ‘국제사회’의 반응을 눅이는 과정을 반복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중동 지역의 시위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에 밀려 리비아 문제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을 면치 못할 수 있고, 서방은 수세에 몰린 반카다피 혁명군측에 ‘명예롭지 못한’ 양보를 종용할 수도 있다.(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이다) 

       
      ▲리비아 동부 베가 지역 외곽 사막에 카다피 공군이 투하한 폭탄이 폭발하고 있다.

    미국 이해관계의 속내 

    더불어 카다피가, 외견상 보이는 서방의 완강한 입장과는 다르게 이들의 모순적인 입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측면도 있다. 이미 미국을 포함한 서방은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을 놓고 강경과 온건이 수시로 오락가락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 미국의 영향력있는 외교문제 씽크탱크인 외교관계위원회(CFR) 의장인 리차드 하스가 그런 생각의 일단을 내보인 바 있다.

    그는 지난 3월 8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비행금지 구역 설정이든 반카다피 혁명군 무장과 지원이든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소 길더라도 인용해 보겠는데, 글 중간에 밑줄로 강조한 부분은 필자가 한 것이다) 

    "우선,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사태에 결정적일 것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 외부에서 취할 수 있는 다른 군사적 조치들은 어떤가? 이를테면, 운전금지구역 설정 같은 것을 들 수 있는데, 이 조치의 목적은 카다피 정부군이 탱크나 장갑차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데 있다. 하지만 이 조치는 비행금지구역 설정보다도 더 확장된 미국의 군사력을 필요로 한다.

    설사 이러한 조치가 실행된다 해도 카다피 측의 모든 군사력 이동을 죄다 제지할 수 있도록 서방측 비행기가 정찰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리비아 전장에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훈련 교관이나 군사 고문단, 특수부대들을 보내는 정도일 것이다.

    "반카다피는 모두 민주주의 편인가?"

    또한, 미국이 리비아 내전에 군사적으로 말려들어가서는 안되는 정치적 이유들도 있다. 카다피를 잔혹한 독재자로 규정하는 것이 그에 저항하여 싸우는 사람들을 자동적으로 민주주의 편에 서 있는 것으로 확정시켜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가운데 일부는 진정한 민주주의자들일 수 있다. 하지만, 카다피 정권을 제거한다고 해서 이들이 권력의 자리에 바로 올라서게 될 것이라고 가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카다피와 그 주위의 사람들을 제거할 경우, 다른 부족의 지지를 받는 또 다른 유력자가 정권을 잡게되는 연쇄적인 사태 전개가 발생하기 쉽다.

    설령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급진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어떤 쪽으로든 리비아의 중요한 지역들이 그 어떤 정부의 통제로부터도 벗어나 알 카에다나 이와 유사한 그룹들이 그러한 정치적 공백을 이용할 상황이 조성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반군들을 무장시킨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1년 9/11 사태 이전의 아프가니스탄이 이에 대한 교훈을 제공해준다. 미국은 소련의 지원을 받는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이에 대항하는 사람들과 집단들(무자헤딘-역주)을 무장시킨 바 있다.

    당시 이 정책은 그러한 정권의 타도라는 즉각적인 목표를 현실화시키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그 이후에 미국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 이들에게 힘을 부여하는 결과도 초래하고 말았다… 또한, 리비아는 해당 지역에서 미국에게 중심적인 우려 사항이 아니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리비아, 미국 외교 우선순위에서 떨어져"

    어느 모로 보나 리비아는 중동 지역에서 미국에게 가장 중요한 국가라고 보기엔 어렵다. 리비아가 지닌 정치적 영향력이나 석유 시장에 가지는 영향력이라는 면에서 그렇다. 이보다 미국 정책 담당자들은 이집트의 정치적 이행 과정이 별탈없이 진행되고, 사우디 아라비아가 안정을 유지하며, 이란은 그렇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집중하는게 현명할 것이다.

    또한, 리비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미국의 군사력을 흐트러뜨리는 결과도 초래할 수 있다. 안그래도 미국은 이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걸쳐 군사력이 지나치게 확장된 상태다… 물론, 리비아에 대한 미국의 이해관계가 극히 중대할 정도가 아니라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리비아에 걸린 우리의 이해관계에 상응하는 정도만큼만 우리가 행동을 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리비아의 경우, 그러한 조치들로는 자산 동결이나 무기 수입 금지, 전쟁 범죄 기소, 리비아 내외에서 인도주의적 피난처 개설 정도가 적절할 것이다." 

       
      ▲한 반카다피 혁명군 병사가 리비아 동부의 베가 지역으로 출전하는 반카다피 혁명군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얼마 전에 필자는 알제리 정부가 리비아 카다피 정부를 지원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에서 미국이 정말 카다피를 군사적으로라도 패퇴시킬 생각이 있는지에 대해 잠깐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리차드 하스의 언급에는, 미국이 알제리 정부의 리비아 정부 지원을 왜 묵인하는지, 미국의 반카다피 혁명군에 대한 실제 입장이 무엇인지, 그 이유를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는 실마리가 있다고 본다.

    물론 리차드 하스의 언급이 미국 정부의 심중을 드러내는 언급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 하스가 전략적 고려라는 밑바탕에서 공유하는 지점들도 있을 것이라는 점까지 배제할 순 없다. 이러한 점은 카다피에 대한 미국의 이중적인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카다피와 이스라엘은 ‘절친’?

    미국 정부는 리비아 유혈사태가 발생하기 수개월 전에 카다피 정권과 7,700만달러 규모의 군용차량 수출 계약을 ‘조용히’ 추진했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영국 방산업체 BAE의 미국 현지법인에 해당하는 BAE시스템이 리비아에 병력수송 장갑차량(M113)의 개량 모델을 최소 50대 수출하겠다며 제출한 계획을 승인했던 것이다.(나중에 의회의 반대로 무산)

    반면에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차관보는 "리비아 시민군에 무기를 제공하는 문제는 무기금수를 규정한 유엔 결의에 위배될 수 있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어쩐지 핑계를 단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카다피와 미국의 동맹국인 이스라엘간의 관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3월 2일, 이란 관영 <Press> 통신은 다음과 같이 리비아 카다피 정부와 이스라엘간의 관계를 폭로했다. 

    "이집트 소식통에 따르면, 한 이스라엘 군 보안 회사가 리비아에서 벌어지는 반정부 시위를 공격하는데 동원될 약 5만 명의 아프리카 용병들을 리비아 카다피 정부에게 제공해왔다고 한다. <News-Israel>에 따르면, 이 회사는 이전에 아프리카 특정 국가에서 불법 거래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적도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Global CST’ 라는 이름의 이 회사는 카다피 측에 용병들을 제공하기 전에 이스라엘 관리로부터 이에 대한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Global CST’의 책임자가 에후드 바락 이스라엘 국방장관과 정보국장등을 만나 이에 대한 허가를 얻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 회사 대표는 아프리카 차드에서 리비아 정보국장인 압둘라 사누시를 만나 이에 관한 최종 협상을 타결짓기 위하여 세부사항을 논의했다고도 한다. 리비아 반정부 시위대를 공격했던 용병들의 대다수는 차드에서 동원되었다…

    반면에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측에 리비아 시민들을 살해한 아프리카 용병들에 대해 전쟁 범죄로 기소하는 조항을 삭제할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리비아에서는 이집트와 튀니지에서 최근에 발생한 혁명들에 고무받아 혁명이 발생하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카다피 붕괴 원치 않을 수도 

    이처럼 미국 정부와 이스라엘 정부의 카다피에 대한 태도를 보면, 이들의 행동이 미국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 친이스라엘 입장으로 유명한 리차드 하스의 전략적 고려와 분명 부합하는 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미국의 동맹국인 이스라엘 정부 역시 공식적인 언사와는 다르게 내심 리비아 카다피 정부의 붕괴-최소한 급격한 붕괴-와 그에 도전하는 급진적 성격의 정부 출현을 반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카다피 정권이 리비아를 다시금 통제하는게 차선의 대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미국이나 이스라엘 정부의 반카다피 혁명군에 대한 경계는 사실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영국 외교관을 대동한 영국군 특수부대가 반카다피 혁명군 지도부를 만나러 몰래 리비아 내로 잠입했다가 오히려 이들에게 붙잡혀 감금되었던 사례가 그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 사건은 이들 반카다피 혁명군 진영이 서방을 얼마나 불신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에피소드였기 때문이다.(이들 반카다피 혁명군 측은 영국 총리의 친서까지 휴대하고 와서 자신들과 접촉해보려 했던 이들을 무시하고 구금한 후에 사실상 추방해버렸다)

    서방과 리비아 반카다피 혁명군 사이의 긴장은 다른 방식으로도 감지할 수 있다. 얼마 전에 미국 정부가 카다피와 앙숙 관계인 사우디아라비아 왕정을 통해 리비아 반카다피 혁명군에게 무기를 제공해 줄 것을 타진했다 실패한 사례가 그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왕정이 미국의 요구를 거절한데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내의 시위 사태 발생 가능성에 우선적으로 대비해야 했던 급박한 상황도 있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보기에, 지난 80년대에 자신들이 군사적으로 지원했던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들과 현재의 리비아 반카다피 혁명군은 그 성격이 다르다는 점도 무시못할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정이 제아무리 카다피를 증오할 이유를 가지고 있다해도, 리비아 민중들을 무장시켜 카다피를 무너뜨리는데 자신들이 지원을 한다는 것은, 부메랑처럼 사우디아라비아 왕정의 국내 민중 통제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확산되는 아라비아 반도의 시위 양상에 대처하기 위해 바레인이나 오만 정부를 지지하고 물질적으로 지원하는 맥락과 근본에서 다르지 않다. 

       
      ▲리비아 아즈다비야 외곽에서 반카다피 혁명군에 의해 추락한 카다피 정부군측의 비행기 잔해를 들고 서 있는 반카다피 혁명군 병사들.

    그런데, 미국 정부가 리비아 내전에 대해 보이는 이런 이중적인 태도의 배경에는 국면적 변화도 일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미국 정부가 현재 중동에서 벌어지는 시위 사태에 대해 이전보다 더 소극적인 태도로 옮겨왔다는 점이다.

    미국, 중동 시위에 소극적 태도로 변해

    즉, 이집트 시위 사태 당시 오락가락하면서도 결국 무바라크 퇴진을 언급할 수 밖에 없었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제는 그러한 언급을 하는 것조차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미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아라비아 반도의 왕정 국가들이 이집트 무바라크에 대한 미국의 압력에 불만을 제기한 바 있고, 최근에는 그러한 압력이 가중되어 온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예멘의 살레 대통령은 연이은 시위 사태에 대해 이 모든 것이 미국 때문이라고 공개적으로 쏘아붙이기도 했다. 이런 사태에 접하자, 미국 정부는 중동 각국의 시위대에게 일종의 정당성을 제공하면서도 동맹국 정부와는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유사한 언급을 삼가는 것이 이 지역의 불안정을 통제하는데 필요하다고 보기 시작하였다.

    더군다나, 이들 아라비아 반도의 왕정 국가들은 국제 석유 시장에 대한 영향력이나 지역 내 미국의 군사 기지 주둔이라는 면에서 미국에게 훨씬 더 중요하다. 이 때문에 최근 미국 정부는 이 지역에서 ‘regime change’이라는 말대신 ‘regime alteration'(정권 개혁 혹은 조정)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이다.

    즉, 현 중동 산유국 정부의 체제 유지를 지지하면서 이에 저항하는 시위대들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적극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오히려 정권과의 타협을 종용하는 것이다. 마침 이런 외교적 접근의 조정이 필요한 시점에서 리비아의 카다피가 시위대에게 잔혹한 무력 공격을 가하여 민간인 희생이 속출했다.

    이는 미국 정부로 하여금 외견상 카다피 정권을 더 강하게 비판하거나 압박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아넣은 면이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앞으로도 이런 언사를 계속 사용하거나 실제로 군사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차후 다른 경우에 위험을 조성할 수 있다.

    미국의 근심

    예컨데,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하여 자국인나 바레인, 오만 등에서 발생하는 시위를 탄압했을 때, 미국은 국제사회로부터 리비아에서처럼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을 요구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는 그만큼 이들 국가들이 국내 민중을 통제하는 데 행동반경을 좁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 왕에게 직접 퇴진을 요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일부 지역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해야 하는 상황말이다.

    또한, 미국의 주요한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심상치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우선 이집트에서는 무바라크가 퇴진한 이후, 군부가 가까스로 상황을 통제하면서 일련의 ‘정치개혁안’을 이행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집트 군부의 불충분한 ‘개혁’에 대한 도전들이 지속되고 있다. 거리에서의 시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 심지어 악명높은 이집트 보안 기관의 해체와 인권 유린에 대한 자료 확보를 위해 시위대가 해당 기관에 대한 습격을 하는 대담한 행동들도 발생하였다.

    이러한 대중의 압력에 못이겨 이집트 내각은 총리에 이어 여러 명의 구체제 출신 인사들이 줄줄이 퇴진하고 그 자리를 개혁적 인사가 차지하면서 군부를 더욱 더 압박하고 있다.(이러한 사태 전개는 다른 국가들에서도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대통령에 이어 연이은 시위 끝에 구체제 인물인 총리를 퇴진시킨 튀니지나 대중의 압력에 밀려 내각 장관을 12명째 퇴진시키고 있는 오만이 가장 현저하다)

    가자 지구 봉쇄 파열음에 주목

    설상 가상으로 가자 지구에 대한 이집트 정부 측의 봉쇄조치도 일정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지난 3월 6일, 가자 지구에 대한 지원으로 보내진 첫 시멘트 포대가 이집트와 가자 지구 사이의 터널이 아닌 라파 지구를 통해 직접 전달된 것이다.

    이는 애초 지난 3월 4일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이집트 당국이 가자 지구에 들어갈 사람들 가운데 외국인들을 제외할 것과 가자 지구에 들어갈 최종 대표단을 12명으로 제한하면서 논의를 위해 몇 일 지체되었다.

    실랑이 끝에 지원을 위해 가자 기구에 접근했던 사람들은 일단 이집트 당국의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지만, 이는 그동안 이집트 정부의 봉쇄로 가자 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물자 지원이 원천 봉쇄되어온 상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보 전진임에 틀림없다.

    이는 가자 지구에 대한 봉쇄를 해제하고 인도적 지원을 요구하며 노력해 온 이집트 인들과 전세계 양심적인 사람들 모두의 승리라 할 수 있다.(이후에 가자 지구에 대한 추가적인 물자 지원이 계획되어 있는데, 이러한 과정은 사실상 가자 지구 봉쇄 해제의 첫 출발이 될 수도 있다)

    연이은 파업 속에 이집트 내에서는 노동자 운동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세력들도 속속 형성되고 있다. 이집트 관변 노조로부터 독립한 노조들의 각종 연합체와 다양한 노동자그룹들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중인 ‘노동민주당'(Labor Democratic Party)과 기존 친무바라크 좌파당으로부터 뛰쳐나온 사람들 및 다양한 좌파, 사회주의 활동가들이 모여 만든 ‘대중동맹당'(Popular Coalition Party) 같은 정당들이 등록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집트 노동대중들이 이집트 혁명 과정을 통하여 진정으로 자신이 목소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일대 진전이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과연 중동의 시위 물결에서 예외가 될 수 있을까?

    복잡한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상황도 복잡하다. 이미 이란 군함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문제에서 이집트 군 당국과 이스라엘 정부 누구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이란 군함을 이집트 당국이나 이스라엘 정부 어느 쪽에서든 막거나 공격했을 경우,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는 시위가 급속하게 반제국주의, 반이스라엘 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란 군함이 이스라엘 앞바다를 거쳐갔다는 것과 이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가 어떤 제지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패배다. 더구나 지역 내 미국의 영향력이 흔들리고 이집트와 맺은 평화협정의 미래가 불확실해지자 이스라엘 정부가 느끼는 불안감은 더해가고 있다.

    지난 8일, 에후드 바락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집트의 새 지도부가 1979년 이스라엘과 맺은 평화협정을 ‘당분간은’ 준수하고 안보협력도 계속해 나갈 것으로 믿지만, 이스라엘은 만일을 위해 장기적으로 국방비 지출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집트와의 평화협상이 불확실해지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컨데, 지난 2월 28일에 이스라엘 국방장관 에후드 바락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이스라엘측과 평화협상 논의를 할 수도 있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이 발표를 하면서 에후드 바락은 시리아가 평화협상을 하려 한다면, 자신은 기꺼이 그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며 남다른 적극성을 보였다. 마침 지난 3월 4일,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시리아를 방문한 미국 상원의원 존 케리를 중재자로 해서 ‘수 개월 동안’ 평화 협상과 관련하여 논의를 해 온 사실도 드러났다.

    시리아의 경우

    다른 한편, 시리아는 시리아 라타키아 항구에 해군 기지를 건설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이란과도 협의를 진행중인데, 쉽게 말해 시리아는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 양 진영으로부터 ‘구애’를 받는 행복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필시 시리아의 이런 지정학적 필요 때문에 시리아 항구로 향하던 이란 군함을 이스라엘이 제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물론, 시리아 정부가 이스라엘 정부와 평화협상에 정말로 진지한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헤즈볼라가 존재하는 레바논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적성국가인 시리아를 상대로 평화협상을 시도해야할 만큼 이스라엘 정부의 상황이 ‘외통수’로 몰리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해보인다.

    이스라엘 내부의 분열과 국제적 고립 역시 가중되고 있는데, 최근 이스라엘 일간지인 <하레츠>지의 저널리스트인 알룹 벤은 이런 이스라엘의 처지를 두고, "네타냐후 총리가 그의 친구인 무바라크를 닮아가기 시작했다"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또한, 그는 "값비싼 정부 건물과 긴 호위 차량, 엄청난 보디가드들, 세계 지도자들로부터 끝없이 걸려오는 전화 등, 정부의 대표적인 상징들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그 영향력은 사라진 지 오래다."고도 한탄했다.

    사우디, 3월 11일, ‘분노의 날’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미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사우디 야당이 선언한 3월 11일의 ‘분노의 날’시위에 초강경 대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11일의 ‘분노의 날’에 대비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약 만 명에 이르는 보안요원들을 이 나라 북동부의 시아파 거주지역에 배치하였다.

    이 지역에 사는 시아파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한다. 한 때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정치 개혁을 요구한 시아파 성직자를 구금했다가, 이들 지역에서 거주하는 시아파 주민들의 연이은 시위로 인해 다시 석방하는 등, 다소간 오락가락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분노의 날’이 제시하는 요구는 간단하다. 입헌 군주제, 부패 청산, 통치자들 가운데 최소한 일부라도 선거를 통한 선출, 여성의 자유, 수천 명에 이르는 정치범 석방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들은 이웃나라인 바레인에서처럼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사우드 왕정 타도’라는 요구로 발전할 수 있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각종 경기부양책과 경제적 당근을 제시하면서 사우디 아라비아 민중들의 불만을 달래려 하고 있는 중이다. 일부 주류 언론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보유한 막대한 ‘오일머니’로 이 나라가 중동 지역을 휩쓸고 있는 시위 사태로 끌려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인구의 거의 절반이 18세 이하이며, 이들에 대한 교육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인구는 현재의 약 2천만 명에서 십 년 뒤에는 약 3천만 명으로 폭발적인 증가가 예상된다. 실업률은 20%에 이른다. 더구나, 모든 연령대의 사우디 아라비아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중동 지역의 시위를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도 눈여겨보아야한다.

    사우디 노동자들도 파업

    지난주, 카티프라는 도시에서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난폭한 진압-시아파 여성들에 대한 공격도 포함-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왕정 체제에 반발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 지난주 금요일 수도 리야드에서 기도를 마친 사람들이 알-라지 모스크 앞에 모여 반정부, 반부패 구호를 외친 것도 범상치 않은 일이다.

    이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 챈 사우디아라비아 노동부 장관 아델 알 파키는 이러저러한 경제적 양보-실업과 인플레, 빈곤 해소-를 약속하고 있다. 그는 심지어 고용에 있어 여성을 차별하는 각종 제약들도 철폐하겠다고까지 약속했다.(그는 금세 이 약속을 거둬들였다)

    덧붙여,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노동자 파업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2월 25일, 메카에 있는 모스크 북쪽 지역 확장 공사를 하던 600여 명이 넘는 사우디아라비아 노동자들이 두 달 동안의 임금 체불과 초과 노동시간분에 대한 임금 지급, 임금 인상,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던 것이다.

    사흘이 지난 뒤에야 사우디 아라비아 경찰이 투입되어 이들을 강제 해산했다. 사우디 건설현장은 낮은 임금과 위험한 작업 환경으로 악명 높은데, 지난 달에도 수도 리야드의 한 여자대학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붕괴사고로 3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치기도 했다.

    지난 2월 16일에도 리야드에서는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통상임금 지급과 초과노동분 임금 지불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간 바도 있다.

    무력한 알-카에다, 정치적으로 이용돼

    미국 정부가 리비아 내전에 대해 취하는 태도의 이중성은 미국이 이들 지역에서 알 카에다의 발호 가능성에 대해 더 큰 우려를 표명하기 시작한 것과 맞물려 있기도 하다.(최근에 미국에서는 9/11 테러사건 당시, 경찰 헬기에서 촬영한 동영상이 공개되었는데, 이러한 갑작스러운 영상 공개도 큰 틀에서는 알-카에다에 대한 공포를 다시 자극하는 데 목적이 있을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예멘과 리비아에 대해 그러한 우려를 집중적으로 표명하고 있는데, 이런 태도는 중동 지역의 시위가 급진화되는 것을 극단적인 이슬람주의로 통칭하여 왜곡하려는 의도도 있다. 무엇보다 이런 태도는 현재 중동 지역 시위 사태에서 알-카에다가 보여주고 있는 주변적 위치와 무기력함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서 리비아의 카다피가 지속적으로 반카다피 혁명군을 알-카에다와 연관지으면서 자신이 붕괴할 경우, 알-카에다와 같은 세력이 리비아내에서 급속하게 세력을 확장할 것이라는 위협을 소방을 상대로 끊임없이 펼쳤던 노력이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지난 2일 "알-카에다 요원 상당수가 이른바 ‘해방 지역’이라 불리는 리비아 동부 출신"이라며 "리비아가 ‘제2의 소말리아’가 되는 것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했다. 또한, 최근 미국 군사 전문가들은 리비아 시위대가 정부 무기고에서 빼낸 총과 미사일이 국내외 암시장을 통해 다른 독재국가나 알-카에다 같은 테러 조직에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현재 중동의 정치 지형의 초점은 리비아 내전에서 아라비아 반도로 이동하고 있다. 실제 사우디아라비아는 11일 ‘분노의 날’ 시위가 예정되 있는데, 리비아에서 거센 충돌을 낳았던 중동의 시위 물결이 드디어 아라비아 반도 한복판에서 그 막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규모에서 다른 국가에 비해 크지 않을 수도 있고, 정부의 탄압으로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사태 전개는 다시금 중동 지역에 새로운 흐름을 조성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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