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사에 혈안 대학, 돈에 눈먼 교수
        2011년 03월 06일 05: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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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의 대학들에서 사유화 및 상업화의 경향은 한층 가속화되었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은 이윤 동기가 학문의 객관성과 학자의 양심을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는지 보여 주었다(그는 현재도 ‘H 바이온’의 대표이사로 2009년 서울대는 줄기세포 기술을 이 회사에 양도했다).

    장사에 혈안된 대학, 돈에 눈먼 교수

    큰 배움이 없다며 대학을 박차고 나온 명문대 여대생의 대자보를 둘러싼 논란은 대학 교육의 현실과 서열화된 대학 체계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으며, 중앙대를 인수한 두산은 노골적으로 대학도 기업이라 선언하며 구조 조정의 칼날을 들이댔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서울대 법인화법이 2010년 12월 여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되면서 정점을 찍었다.

    이는 비단 한국 대학의 현실만은 아니다. 『대학 주식회사』(제니퍼 워시번, 후마니타스, 18000원)에서는 이런 한국의 대학들과 놀랍도록 유사한 일들을 겪고 있는 미국 대학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기에는 특허 장사에 혈안이 된 대학들과, 돈에 눈이 멀어 학자로서의 양심은 던져 버린 지 오래인 교수들과, 이런 교수들 밑에서 학자로서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대학원생들과,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교사로서의 사명을 다하고자 했던 시간강사들, 그리고 치솟는 등록금에 허리가 휘청이고 있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있다. 우리가 그토록 선망하는 하버드, 스탠퍼드, 버클리 등 미국의 유수 대학들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미국의 대학 캠퍼스를 가보면, 누구나 목가적인 풍경에 매료되어 그곳이 실제로는 기업의 앞마당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눈치 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어느새 기업의 자금으로 지어진 건물과 교수직, 연구소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라이스 대학의 켄 레이 연구센터는 엔론 사 CEO의 이름을 딴 것이었으나 그가 기소된 후 이름을 바꾸었다. 하버드 대학의 보건대학원 소속 위험성평가센터는 사실 화학회사와 살충제 생산 회사로부터 재정의 60퍼센트를 지원받고 있으며, 이들 회사가 생산하는 상품에 대해 우호적인 보고서를 쏟아 내는 곳이다.

    기업과 대학의 유착

    텍사스 대학은 자대학 교수에게 11년간 담배 회사의 변호사들을 위한 비밀 연구를 수행하도록 승인해 주는 대가로 170만 달러를 받았다. 같은 시기 엔론 사도 하버드 주요 연구소에 자금을 대주고 캘리포니아 주의 에너지 시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고서를 31개나 쏟아 냈다.

    하버드 전력정책집단은 엔론 사가 도산한 후에도, 가격 조작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밝혀지기 전까지, 엔론 사를 옹호하는 보고서를 써냈다. 갈수록 기업가 출신 대학 운영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놀랄 일도 아니다.

    2002년 하버드 대학의 캠벨 교수는 이와 같은 기업과의 유착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기 위해 학생들과 비밀 인터뷰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생명과학 회사 가운데 약 88퍼센트가 대학과 계약을 맺을 때 학생과 연구원들로 하여금 정보를 비밀에 붙일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원생과 연구원들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빨리 발표해야 첫 직장을 얻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이런 비밀 유지 정책으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는다.

    이와 같은 사례는 무수히 많다. 저자인 저널리스트인 워시번이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직접 발로 뛰어 모은 자료들과 인터뷰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등록금 천만 원 시대에 공립대의 법인화를 추진하고 있는 한국 대학의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워시번의 분석에 따르면, 등록금 인상과 시간강사의 증가, 인문학의 몰락 등은 사실 상업성 있는 실험실로 기업과 정부의 지원이 집중되고, 기업 스스로가 이윤을 추구하면서 공적 임무를 망각한 데 있다. 첨단 기술 장비를 갖춘 실험실에는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면서, 종신직 교수나 전임 교수를 시간강사나 대학원생으로 대체하고 있는 대학.

    학문의 공공성을 다시 묻는다

    컴퓨터 공학이나 경제학 등을 전공하는 스타 교수들은 수십만 달러의 연봉을 주고, 강의는 최소한만 하는 조건으로 채용하면서, 대학 교육과정의 중심이 되어야 할 인문학 수업은 커다란 강당에서 수백 명의 학생이 강의를 듣고, 학생 개개인에 대한 지도는 거의 전적으로 대학원생 조교들이 담당하도록 하는 대학.

    마지막 결론에서 워시번은 대학의 본분을 되묻는다. 우리는 대학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고 있으며, 교육과 학문의 공공성은 왜 지켜져야 하는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담당할 시민을 키워 내는 기관이자,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며, 객관적인 연구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독립적 기관인 대학을 과연 사유화하는 것이 정당한가?

    사회의 모든 부문이 시장에 잠식되고 있는 지금, 시장이 간과하는 문제를 탐구하고 비판하는 대학의 독립적인 기능이 이 모든 사례의 피해자들인 우리가 대학에 바라고 기대하는 바가 될 것이다.

                                                        * * *

    저자 – 제니퍼 워시번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네이션』, 『워싱턴 포스트』, 『아메리칸 프로스펙트』 등에 기사와 사설을 쓰고 있다. 지난 30년간 미국 대학 교육의 상업화가 교육의 질과 연구의 객관성, 공적 지식의 자유로운 흐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이 책으로 학계와 평단으로부터 “대학의 기업화 과정에 대해 저널리즘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분석을 보여 주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2001년에는 전미과학협회에서 수여하는 ‘사회 속의 과학 저널리즘 상’을 수상했다. 뉴 아메리칸 재단 연구원으로 미국의 대학 교육을 변화시키고 있는 시장 세력에 대한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역자 – 김주연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노숙자 진료소 <희망진료센터> 1대 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전충남지회 운영위원, 보건의료단체연합 국제연대 담당 위원,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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