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종교계 보스들 '행복한 놀이터'된 까닭
        2011년 03월 04일 07: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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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대통령보다 더 ‘서열이 높은 보스’라고 생각하는 듯한 – 그리고 그러기에 "대통령 하야 운동"을 과감하게 언급해서 권부를 압박한 – 조용기 목사의 용감무쌍한(?) 행동을 구경하면서, 한 가지 궁금증을 계속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종교는 왜 끗발에 셀까?

    도대체 어떻게 해서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지금과 같은, 거의 ‘성역’에 가까운 위치에 서게 됐는가요? 어떻게 해서 한국의 일부 종교인들은 재벌과 정치인, 그리고 과거 조선 사회의 ‘山林’, 즉 일종의 ‘사회 지도자’와 같은 기능들을 한 몸에 다 겸비해 기이한 ‘삼위일체’를 이루었는가요?

    우리에게 급이 높은 종교인들이 누구에게도 호통을 칠 수 있는 풍경은 익숙해져 있지만, 이는 사실 조선 내지 동아시아 전통과 상당히 다르기도 하고, 또 세계의 많은 다른 나라들과도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종교인 만능’ 차원에서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사실상 조금 독특합니다. 또 어찌 보면 종교적 파벌(종파)들의 우두머리들의 무소불위의 권위/권력은, 재벌 만능주의와 고도의 병영화/군사주의와 함께 남한 사회의 ‘3대 특색’을 이룬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풍경은 조선 전통이나 동아시아 전통의 시각에서는 왜 이색적인가요? 정권이 늘 종교가 제공하는 정당성을 필요로 해온 동남아시아와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애당초부터 국가는 이미 그 자체로서의 충분한 정당성을 보유해온 것입니다.

    종교란, ‘王化’에 기여하는 한, 또는 기여하는 만큼 용인되고 장려까지 될 수 있었지만, ‘왕화’, 즉 정권의 정치적/문명적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입장에 전혀 서 있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정권의 요구대로 자기 고유 원칙까지 헌짝처럼 버릴 때가 많았습니다.

    임진왜란 당시의 승병 징발이나 그 후의 의승(義僧. 국가적 신역身役을 다하는 승려)에 의한 남한산성 축성 같은 걸, 태국이나 스리랑카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동남아에서는 승보(僧寶)에 대한 외호(外護)야말로 왕권 존재의 전제조건입니다.

    한국 종교의 이상 비대화

    한데 아조선(我朝鮮)은 정반대죠. 승려든 한양 소격서(昭格署)의 도관(道官)이든 심지어 유림이든 다들 왕조를 보필하지 않고서는 설 자리를 얻을 수 없었죠. 중국, 일본에서의 정교 관계 구조도 그 근본상 이와 상통해, 종교 지도자들이 적어도 사회를 ‘지도’할 수는 없는 오늘날 중국이나 일본은 바로 동아시아 전통 차원에서는 ‘정상’에 가깝겠습니다.

    일면으로는 유럽과 비교를 해도 한국 종교는 아주 비상하게 비대화돼 있어요. 루터교를 아직도 형식상 국교로 하는 노르웨이에서만 해도, 실제 교회 출석하는 인구는 전체의 형식적 기독교인 중의 약 4%에 불과하며, 기독교적 담론은 소수의 우파 정당(기독교민중당 등) 외에서는 사회에 전혀 영향력을 미치지도 못합니다.

    노르웨이에서는 예컨대 오슬로 주교가 조용기 씨와 같은 류의 발언을 했다면 일차적으로는 ‘월권'(종교인으로서의 부당한 정치 참견) 시비는 일어났겠지만, 결국 대다수는 이를 아마도 ‘개그’쯤으로 취급했을 것입니다. 오슬로 주교는 인기 있는 방송국 기자나 인기 작가보다 훨씬 권위가 없기 때문이죠. 그러면, 대한민국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지역에서도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종교계 보스들의 ‘행복한 놀이터’가 됐을까요?

    아마도 근대 초기 이후로 개신교를 ‘문명’과 동일시한 초기 민족주의자나, 일제 시기 도산과 같은 기독교인들의 독립운동에서의 공훈을 이야기할 사람들부터 있겠지만, 한 가지만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측면은 분명히 있었다 해도, 일제말기에는 조선에서 기독교 인구의 비율은 약 2%, 오늘날 일본과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불교의 기반은 훨씬 튼튼했지만, 불교계 지도자들의 태심한 부일협력 등으로 그들의 대사회적 권위는 생각보다 크지도 않았습니다. 한국의 ‘기독교화’는 미군 점령과 이승만의 반(半)식민지적 정권 수립, 미국의 엄청난 영향으로 시작이 됐지만, 주로 1960~80년대에 이농인구의 교회 유입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최저임금제조차 없었던 ‘무복지 개발독재’에서는 교회란 ‘공동체 소속’을 잃은 수많은 이들에게 ‘대체/유사 공동체’가 되어준 것이었죠. 불교계는 주로 1980년대 이후, 상당 부분 기독교의 선교방법들을 그대로 채택해서 그 세를 넓힌 것입니다.

    행복의 대체물

    그런데 지금과 같은, 도시화 과정이 다 끝나고 적어도 기본적인 복지 서비스들이 이제 교회 밖에서도 점차 생겨나는 시대에 왜 아직까지 조용기가(家) 등 교계 호족(豪族)들의 ‘하나님 장사’는 이리도 잘 돼갑니까? 도대체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 중독’에 빠지게끔 하는 사회적 요인은 무엇인가요?

    제 답은 간단합니다. 교회나 사찰이란 결국 진정한 의미의 개인적 종교의 대체물이기도 하고 (직접 신을 만나고 부처를 만날 줄 아는 사람에게는 교회도 사찰도 전혀 필요없습니다), 또한 행복의 대체물이기도 합니다.

    행복 지수가 한국만큼이나 낮은 사회에서는 종교 광신의 지수가 지금처럼 높은 것은 절대 우연은 아닙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긴밀히 연관돼 있죠. 신이나 부처님에게 성금, 불전의 형태로 (통하지도 않을) ‘뇌물’ 이라도 주어서 풀려고 하는 문제들은, 우리가 평소에 풀 수 없는, 풀 수 없으니까 늘 괴로워하는 문제들입니다.

    살인적인 경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그리고 궁극적으로 무의미한 암기로 끝나고 마는 ‘공부’, 보람을 느낄 수는 없어도 불안과 공포를 늘 느끼는 직장, 상호 이용과 충성 경쟁, ‘하향’ 멸시와 ‘상향’ 아부로 압축되는 대인 관계, 일종의 기업체가 되고 마는 가정 등등…

    이 무의미의 왕국에서 그래도 살아남으려는 수많은 이들은 결국 조용기들을 매개체로 해서 ‘최고의 상사’라고 생각되는 신이나 부처님에게 가서 자신들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최종 결재’를 받으려고 하는 셈입니다.

    경쟁과 아부의 이 왕국에서 모든 문제들은 개인적으로, 상사에게 잘 접근해서 푸듯이, 행복의 문제도 개인적으로, 공인 받은 매개자를 통해 풀려 하는 것이죠. 그러기에 이 매개자들이 전통상, 그리고 국제관례상 보기 드문 힘을 얻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행복을 얻으려는 이 마음이야말로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맙니다. 미안하지만, 지옥에서는 개인적으로 그 지옥의 불을 도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옥을 타파하자면 염라대왕에게 하소연해도 소용 없고, 명부시왕에게 개인적으로 빌어도 소용없습니다. 서로 손을 잡고,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도산(刀山)에서 몸이 살점으로 찍혀나갈 각오로 같이 몸부림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복은, 바로 이 과정에서 찾아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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