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가 싫다”
    [투고] 5월 19일 오후 4시 서울역…“웃음 찾는 집회를 만들자”
        2012년 05월 17일 10:54 오전

    Print Friendly

    ‘쌍용차 해고 노동자’

    언제부턴가 내 이름 앞에 ‘쌍용차 해고 노동자’라는 또 다른 딱지의 이름이 붙어 있다. 어디를 가든, 언제나 나를 소개할 땐 맨 앞에 붙는 또 다른 수식어다. 이제는 나도 모르게 몸에 맞는 옷처럼 스스럼없이 해고노동자라는 말을 하는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영락없는 해고노동자다.

    “아빠, 왜 해고가 살인이야?”

    77일의 파업과 1년의 구속 생활이 끝난 후 지금은 12살이 된 큰 아이가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빠, 해고가 뭐야? 근데 왜 해고가 살인이야?” 라며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아빠도 해고 됐어?”라고 하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어린 아이들까지도 “해고와 살인” 이라는 말을 너무도 쉽게, 아무 거리낌 없이 내뱉는 질문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터진 듯 충격으로 다가 왔다.

    “그래, 난 해고자야. 하지만 난 떳떳해!”

    평택시민들에게 2009년 쌍용차 파업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 대기업 귀족 노동자의 이기주의로만 기억되어 ‘니들도 당해봐라’는 식의 따가운 눈초리는 77일의 투쟁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덧붙여 가족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해고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마저도 색깔을 덧씌워 공격하는 이 사회는 힘없는 노동자가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었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 집회 모습 (사진=장여진 기자)

    그러나 1년의 구속생활을 끝내고 시골 고향에 갔을 때 나이든 동네 어르신의 말씀은 나에게 다시금 힘을 주었다. “너는 잘못한 것 없어. 당당하게 살아!”라는 말씀에 “그래, 난 해고자야, 떳떳해, 그래서 당당하게 살 거야!”라며 힘을 얻었다.

    이렇듯 주변에서 보이지 않는 많은 힘들이 “아빠도 해고 됐어? 라고 묻는 아이의 질문에도 떳떳하게 대답하고, 색깔을 덧씌운 중상모략에도 당당하게 말하며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죽음…해고자에게 웃음이란

    울지 않고 웃으려고 아무리 스스로 위안을 삼고 살아가고 있지만 긴 시간 앞에, 연이은 죽음 앞에 사라져가는 웃음은 어쩔 수 없다. 2011년도와 2012년도를 시작하면서 더 이상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와 “죽음”이라는 단어가 해고자의 입에서 나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해고노동자들의 죽음은 22명째 이어졌다.

    나는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와 “죽음”이라는 단어가 제일 싫다. 이 구호와 단어가 죽음을 부르는 소리로 들리는 것 같아 구호와 문장으로도 쓰지 않으려 무던히 애 써보지만 난 또 이렇게 쓰고 있다.

    22번째 죽음의 소식을 접한 다음날 비를 맞으며 평택공장 앞 아침 출근투쟁을 하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이 자리에 없어야만 죽음의 광경을, 참혹한 살육의 현장을 목격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니, 한시라도 빨리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소식조차도 알릴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세상과의 작별을 고해야 하는 선택을 한 해고노동자의 그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만연한 죽음 앞에 나도 모르게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몸에서 향냄새가 가시질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더 두려운 것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나뿐만이 아닌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입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빼면 이야기가 안 될 정도로 나도 모르게 죽음이 만연돼 있다. 이 얼마나 비참한 현실인가.

    그토록 하기 싫었던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가 나도 모르게 나오고, 죽음이라는 말 아니면 생각나는 단어가 없을 정도로 일상화 되어버린 처참한 현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웃으면서 끝까지 투쟁

    해고 노동자에게도 웃음이 있을까?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우리에겐 절박함의 구호다. 웃지 못하는 해고노동자들에게 웃음이라도 강요해야 그나마 웃지 않을까 싶다. 그 웃음들을 함께 찾아보자고 호소한다. 그것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 주변 가까이에 늘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5월 19일(토) 16시 서울역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아 주자. 우리 모두의 발걸음이 서울역으로 향할 때 쌍용차 진실이 밝혀지고, 해고노동자들의 아픔의 시간도 그만큼 짧아 질 것이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고, 해고 없는 세상을 향해 “쌍용차 희생자 추모 및 해고자 복직을 위한 범국민대회”에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활짝 웃는 모습으로 여러분들을 기다리겠다.

    필자소개
    쌍용차 해고자

    페이스북 댓글